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25)
당연히도 『초라한런치』 1화가 나가고난 뒤 TVM 측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나 모기업에서 내려온지 얼마지나지 않은 CV 미디어콘텐츠본부장은 그야말로 뒷목을 잡고 고성올 쏟아냈다.
“대체 다들 일이 이 지경까지 될 때까지 뭣들 하고 있었던 거야! 저런 내용이 나가는데 내가 까맣게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되나?!”
간부들이 하나같이 눈치를 보았다.
“그것이… 이쪽에 딱히 경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도 만만한 커리어가 아니니, 전임 사장님께서 맡길 거면 죄다 맡겨보라고……”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만들어본 거라 봐야 개그 프로그램의 짧은 단막극 대본 정도인 이들이 10년차 드라마 PD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으랴.
하지만 제아무리 억울해도 사회는 결과주의로 돌아가는 법이었다.
잘됐으면 문제가 없어도 잘못됐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만 했다.
“맡겨보라고 해서 저 지랄을 할 때까지 그냥 놔뒀다고? 자네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자네들 월급은 땅 파서 주는줄알아?!”
“……”
어지간한 폭언이었지만 간부들은 하나같이 자라목을 한 채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여론의 눈치를 본 방통위가 곧장 긴급 회의에까지 들어간 판국에 무어라 변명할 거리가 있을 리도 없었다.
울적한 분위기가 흘렀다.
가까운 미래에는 쉴 새 없이 홈런을 쏘아 올리며 부진에 빠진 공중파 대신 콘텐츠 캐리어가 될 TVM. 하지만 지금은 한낱 이름만 조금 알려진 케이블 방송에 지나지 않았다.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한 기획사들은 실적이 시원찮자 슬슬 눈치를 보며 빠져나가는 중이었고, 모 기업인 CV에서의 지원도 점점 미미해지고 있었다.
상승곡선의 신호탄이 될 ‘화답하라’ 레트로 시리즈의 초기작조차 아직 기획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후 CV의 막강한 자본력으로 인재를 쓸어 담아 나중의 수작들을 뒷받침할 스튜디오 드라군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아직 두각조차 나타내지 못한, 이른바 듣보잡 케이블이 당장 정부터 맞게 생긴 셈이었다.
“맙소사……”
맥없는 간부들의 태도에 본부장도 맥이 탁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따로 놀던 방송이 종편 개국의 흐름을 탄 인수합병으로 CV E&M으로 통합되었을 때만 해도 기회다 싶었다. 거기에 자신이 본부장으로 영전하면서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환희까지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부 허상이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알겠네.”
본부장은 애써 머리를 휘휘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로얄로드는 일단 물 건너갔다고 쳐도 어떻게든 수습하지 않으면 제 밥통부터 잘리게 생긴 상황이지 않던가.
“애초에 말이야, 그 장연철이라는 인간. MBS에서 짜깁기로는제법 우수한 피디라는 평판이 있지 않았나? 대체 왜 갑자기 저러는 거야?”
간부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또 아는 게 없나?”
본부장이 재차 폭발할 기미를 느꼈는지 간부 하나가 얼른 입을 열었다.
“MBS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그쪽 원광훈 사장과 큰 충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충돌?”
“최근에서야 들어온 얘깁니다.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럼 그런 걸 왜 말하고 있냐는 시선을 느꼈는지 입을 연 1팀장이 얼른 말을 보탰다.
“그리고… 그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장연철이 그간 악의적인 기사를 의뢰하거나 소문을 유포해 이현석 피디를 견제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그 이현석이 말이군.”
“예.”
이현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본부장의 태도가 슬쩍 변했다.
이제 『삼세번』으로 3연타석 홈런. 그 세 작품이 입봉작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방송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괴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MBS와 틀어졌던 이현석이 한 때는 TVM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니 본부장은 더욱 입맛이 썼다. 어떻게든 낚아채왔어야 했는데.
‘그런 괴물이 여기 있으면 얼마나든든했을까.’
하지만 그와 별개로 1팀장이 말하고 있는 장연철과의 악연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거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짐작하던 내용 아닌가.”
온갖 이해관계가 얽힌 연예계다.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더러운 판짜기가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장연철은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케이스였지만 딱히 심하게 더러워서 라기보다는 본인이 이성을 잃고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집행유예로 나왔다는 얘길 봐선 어차피 원광훈 사장이 뒤를 봐준 게……”
아, 하고 본부장은 순간 입을 닫았다.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모순이라는 걸 느꼈던 것이다.
“좀이상하군?”
“그렇습니다!”
1팀장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장연철 피디가 자수한 일련의 사건이 그다지 큰 화젯거리가 되지 않고, 본인도 쉬이 풀려났습니 다. 이걸 보아 뒷배가 있는 건 자명하지만……”
“그게 대판 싸운 원광훈 사장은 아니라는 거군.”
“예.”
“……”
본부장이 노성 대신 생각에 잠기는 기색이자 1팀장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집행유예로 나오게 된 가장 큰 사유는 이현석 피디가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에 입사하게 될 때 서수현 작가의 입김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흐음.
그 말에는 본부장도 몹시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 둘은 장연철이 그 친구의 가장 큰 피해자 아닌가?”
“그렇습니다. 서수현 작가의 경우는 조카이긴 합니다만… 그 조카를 자기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소문이기도 하고.”
“그렇지.”
본부장은 의자를 톡톡 두드렸다.
다시 말해, 장연철이 저지른 일의 가장 큰 피해자 둘이 그를 건져내고 여기다 데려다 놨다는 뜻이다.
이게 드라마라면 진정 어린 사죄와 용서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걸 믿지 않았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말이군.”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수현 작가의 성격상 이번 일올꾸민 이는 이현석이 될 것이다. 거기까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도달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의 영문을 도통알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런 원수를 포섭해 공중파도 아니고 여기까지 들여보낸단 말인가?
“…이현석이 저희 TVM에 들어올 생각이 있는 걸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이현석은 SBC에서 유리 공예품 다루듯 귀하게 여겨지고 있는 입장이다. 『삼세번』은 보는 입장 에서도 황망할 정도의 전개의 연속이었지만 국장도, 최도정 사장도 그를 쉬이 건드리지 못하고 속만 끓였다.
최근 이현석의 입지는 그 정도의 것이었다. 이제 와서 근거지를 바꿀 이유가 없다.
“그럼 저희를 견제하겠다는……?”
“MBS에 남은 장연철이면 모를까 이런 코딱지만한 케이블을 견제해서 뭐 어쩌겠다는 말이야?”
공중파의 고위직들은 슬슬 변동하는 시청률에 불길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으나 아직은 이런 쪽이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공중파가 쪼개먹고 남은 파이를 어떻게 더 먹을까를 두고 종편들이 아귀다툼을 벌일 거라고.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던 중 문득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혹시 최근 디에고 로드리게즈와 로이드 곤잘레스 감독이 비밀리에 방한했다는 이야기 못 들어보셨어요?”
“그야 듣긴 했지만… 이현석이 본 뒤에 1주일쯤 머물고 그냥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나?”
순간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제 생각이긴 한데요… 여기에서도 알려졌올 정도의 유명인들이 설마 사람 하나 만나고 가려고 왔을 리는 없지 않을까요?”
사실 그러기 위해 온 것이 맞았다. 덧붙여 그 둘은 최근 제 컨디션(?)을 찾은 『삼세번』에 크게 만족하고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상식적인 사고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 시기가 꽤 겹치는 것 같지 않나요?”
늘 그렇듯 뻔한 전제를 오인하고 시작하니 이어지는 추론이 헛다리를 짚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눈을 깜박였다.
“시기를 따져보면… 마침 그 즈음 장연철 피디가 경찰에 자수를 했지.”
누군가 툭 내뱉은 말이 물꼬를 텄다.
“이현석이 탄원서를 넣은 게 두 감독이 돌아갈 즈음이고.”
“나온 장연철은 동백 피디의 소개를 받아서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백 피디는 따지고보면 옛 서수현 사단의 일원이었지요.”
“그 장연철은 시작부터 욕을 신나게 얻어먹는 물건을 쓰고 있지요. 옛날 이현석, 아니, 그보다는 로드리게즈 감독과 비슷한……”
아.
회의실 안에 있던 이들이 문득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마주보는 얼굴에 말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눈빛으로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본부장이 먼저 확인하듯 입을 열었다.
“MBS에 있을때의 장피디 마지막 작품 말이야, 신나게 말아먹었었지?”
“예 ”
“굉장히 평소답지 않은 막장스런 작풍이라고 시끄러웠는데 이름이 분명……•”
“『화려한디너』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만들고 있는건 『초라한 런치』라는 이름이지.꽤 비슷하구만그래.”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대부분이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들이 었다.
눈치를 보던 2팀장이 물었다.
“이미 그 때부터 장연철이 이현석과 짜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암만 그래도 그건 좀……
“전 예능국 쪽이긴 했어도 MBS 출신이라 장연철이를 좀 압니다. 좋은 작가와 좋은 스크립터를 신나게 부려서 나쁘지 않은 물건을 뽑아내는 게 특기인 녀석이었어요. 그런 괴상한 물건을 자력으로 만들려고 생각할 놈은 아닙니다.”
“그거야 모를 일입니다. 이현석이 막장인 척 속이는 걸로 대박을 터뜨렸으니 본인도 그렇게 가려고 했던 건지도.”
신중론을 주창하는 2팀장에게 1팀장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맙소사 멍청한 소리 마십시오. 기획서 안 내보셨습니까? 그런 바보 같은 이유로 승인이 나올 리 가없잖습니까?”
…딴엔 맞는 말이었다.
불행히도 항상 이성적인 사고로만 세상이 굴러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이건 정말로 큰 건일지도 모릅니다.”
2팀장이 입을 다물고 헛다리가 진실이 된 사이, 누군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대부분의 심정이 비슷했다.
“이현석은 자기 입봉작의 외전을 미국에 맡겼고, 그 완결을 자기 조연출이었던 인물에게 넘길 정도로 대담한 인물입니다. SBC라는 연못에 마땅치 않다고 생각해 자신의 새 기획을 장연철 피디에게 ‘외주’를 주었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억측이라면 억측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그 장연철을 굳이 용서하고 여기에 집어넣은 이현석의 행보가 설명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이 맞다면 TVM은 장연철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호재, 이현석의 신작을 마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 우린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상황이에요. 그 말이 맞다면 사운을 걸 만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정황 증거로만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분위기가 묘해지는 와중 2팀장이 재차 신중론을 제기했다.
“장연철의 경력을 보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끌어들였다?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현석과 장연철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기도 하고요.”
“그게 아니면 대체 장연철 피디를 왜 봐줬단 말이에요? 그렇게 당하고도.”
“뭐,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장연철이의 견제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거나, 도리어 반겼다거나…… ”
그 날카로운 추리에는 불행히도 비난의 폭풍우가 쏟아졌다.
“지금 장난합니까?”
“억측을 누가하고 있습니까?”
“좀 제정신인 소리를 하시죠!”
2팀장은 대부분의 간부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는 쪼그라들었다. 진실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이들이 당하는 취급이 대개 그와 같았다.
언성이 높아지자 본부장이 간부들을 달랬다.
“자자, 그만들 해.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본부장이 턱짓했다.
“본인 불러. 직접 물어보게.”
그렇게 말하는 본부장도 새로운 호재에 대한 기대로 눈썹을 작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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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
그렇게 사방이 난리통인 와중, 사태의 원흉인 장연철 PD는 편집실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인상은 한껏 찌푸린 채였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초라한 런치』의 믹싱이 끝나지 않은 영상과 대본, 시나리오 같은 것들이 었다.
사색을 이어가는 와중,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장연철은 살짝 불쾌한 표정이 되어 전화기를 들었다.
“예, 장연철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장연철은 길게 탄식하며 일어섰다.
“”아깝다. 내가 이현석 피디를 더 공부하기로 백 시간을 기약했거늘 인제 겨우 일흔 시간인걸……”
본인이 들으면 댁 캐릭터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고 입을 벌릴 소리와 함께 장연철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는 어쩐지 기묘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연극처럼 살다』,『연구일지 속 보석함』, 그리고 『삼세번』. 그리고 심지어는 조연출 시절 담당했던 물건들까지 .
장연철의 작업대 한 구석에는 그간 이현석이 연출한 작품의 대본과 콘티, 헤진 회의록들과 우주 대전차로켓 설계도 등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