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27)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사람들은 실패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 과거에 성공했던 사례를 답습하려고 하고, 더 나아가 그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계속 일하려고 한다.
방송계에서 통하는 사단(私團)이란 본래 그런 이들을 비꼬는 단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시초격인 서수현 작가가 레전드급으로 올라선 뒤에는 사실 아무래도 좋은 얘기가 되었고, 그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본 PD며 작가들도 혼히 자신의 사단을 꿈꾸기 시작했다.
특히나 경력이 좀 쌓인 제작자들 간에는 배우를 두고 묘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흔했다.
“재작년 이건 아무리 봐도 이도나가 더 나았을 텐데 굳이 백윤설을 데려갔지?”
“세력 굳히기 들어갔던 거지. 쫄딱 망해서 그냥 은퇴수순 밟았지만, 흐흐.”
“작품에 파벌싸움 끌어들이고 있으니 망해도 싸지 !”
스태프들은 그렇게 입방아를 찧었지만 그들 역시 유능한 PD의 사단에 들기를 희망하는 건 마찬 가지였다. 떨어지는 보너스도 보너스지만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달린 문제 아닌가.
대중들이 쉽게들 말하는 사단은 대개 그렇게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현석의 경력은 꽤 기묘한 것이었다.
언젠가 본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글쎄요, 딱히 누구와 계속 작업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 세 작품쯤 촬영하면 중견 PD로 쳐주는 경향이 있고, 같이 가는 스태프들도 대충 정해지게 마련이지만 이현석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현석은 KBC에서 입봉작을 찍고, 외주 제작업체에서 차기작을, 이어 합병되어 SBC 소속으로 세 번째 작품을 찍었다. 그 사이 제작 스태프들은 계속 바뀌었다. 뾰족한 측근이랄 게 없다는 뜻이었다.
작가로 따지면 유지아와 서예린이겠지만 벌칸 시리즈가 끝난 다음에는 미련 없이 놓아주었고, 배우 역시 차기작까지 끌고 간 케이스가 드물었다.
유일한 예외가 이설이긴 했지만 『연극처럼』에서 또 하나의 주연에 가깝던 배우가 『연구일지 』에서 보인 엑스트라 수준의 출연 빈도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세번』에서 주연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호사가들은 일반적인 경우를 보면 사단에 들었다고 하긴 힘들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감독님은 역할의 비중을 잘보시는 분이시니까요.”
“아, 그 인간눈깔이 삐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게 뭐 어쨌는데요?”
“오, 오빠는 제 성장을 위해서라고 하셨고……”
“신경 쓰지 않아요. 고모 말대로라면.”
그간 익명의 인물들은 이렇게 반응해왔지만 사실 그들 사이에서도 묘한 컴플렉스랄까, 라이벌 의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장연철 PD의 이현석 사단 좌장 발언은 그 미묘한 선을 노골적으로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 주제에……!’
“힉!”
가히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에 이도나의 매니저는 벌벌 떨기 바빴다.
물론 이설의 매니저 쪽도 그리 편한 쪽은 못 되었다.
“언니.”
“…응?”
“좌장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어… 글쎄?”
강주연은 슬쩍 눈을 피했다.
“정치하는 사람들한테 무슨무슨 계 좌장이라고 하는 건 얼핏 들었는데……”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그 자리를 주재하는 가장 어른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래요. 나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해요.”
…역시 알고물은 거였구나.
강주연은 불평을 내뱉는 대신 트집을 잡히지 않은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설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난데.”
“…으, 응. 그렇지.”
강주연이 갈라진 목소리로 얼른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설은 계속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조금 무서웠다.
“농담을 하려던 거였을까요?”
“노, 농담은 아니지 않을까?”
“그럼 왜 저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하고 있는 걸까요?”
“……”
아, 이거 글렀다.
어떻게든 달래보려던 강주연은 얼른 포기했다. 슬슬 그녀도 담당 배우를 말릴 수 있는 상황과 말릴 수 없는 상황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가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이도나 때처럼 찾아가서 깽판을 치지나 못하게 막을 수밖에… 아니, 달리 쐐기를 박을 방법이 없을까?
강주연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도 소문은 더욱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예, 예린이 언니. 설마 오빠는 정말 남자를……”
“응, 뭘 봤는지 알겠는데 거긴 나쁜곳이니까 보지 말도록하렴.”
“또 도나가 지랄하겠군… 근데 솔직히 여자 쪽은 둘째치더라도 남자쪽은 나아닌가?”
“그래도 남배우로서는 홍지호 선배님보단 내가 출연이 많았던 것 같은데……
생각하는 건 대개 비슷했다.
고로 내린 결국도 결국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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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쪽 취재는 가이드라인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TVM 신작 쪽은 어떻게 할까요?”
“그쪽은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인터뷰 끝나면 퇴근하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얼마 전 새로 들어온 후배를 보낸 『연예투데이』강성재 기자는 늘 그렇듯 남은기삿거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때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하루살이 신세였으나 최근의 그는 나름 잘 나가는 기자였다. 백안시하던 이들도 많이 줄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본인도 물론노력했다. 하지만 현재의 입지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아무래도 이현석과의 친분으로 건져온 기사들이었다.
“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다.”
이현석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강성재 본인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근 장연철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꽤 부정적이었다.
‘형님께 민폐가 되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외적으로는 『삼세번』의 시청률을 야금야금 뺏어오고 있다는 점, 내적으로는 이현석 사단의 일 이라고 떠들고 다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강성재를 선뜻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둘 사이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 탓이었다.
사실 그게 아니고서야 장연철이 저렇게 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리 없었다.
‘형님은 정말로 그 인간을 파벌로 끌어들일 생각이실까?’
글쎄, 이현석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강성재였지만 장연철의 소문을 잘 아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미심쩍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인간이 갱생했다는 말을 믿느니 누나 강아라가 얌전해졌다는 소리를 믿고 말지 .
이번에 굳이 뻔한 인터뷰를 직접 가려는 것도 슬쩍 떠보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렇게 일상적인 업무를 이어가던 강성재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였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예, 강성재입니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예?!’’
“아뇨, 그,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이도나씨십니까?”
“예. 물론입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강성재는 반신반의로 외투를 걸치고 뛰어나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곧 큰 선글라스와 함께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여자의 모습이 비쳤다.
강성재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 중 하나이자 인터뷰 따기가 별 따기 수준이라고 소문난 사람을 불과 삼십 분 만에 즉각 만나게 된 셈이었다.
선글라스 아래로 매끄럽게 드러난 콧대에 강성재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데 이도나가 시계를 툭 쳤다.
“삼 분.”
“예?”
“지각했다고요.”
“죄, 죄송합니다.”
강성재는 허둥지둥 고개를 숙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그… 어쩐일이십니까?”
어쩐지 이도나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정돈하고 새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쪽이 그 인간… 크흠, 이현석 대표님 관련 기사로 가장 신뢰를 얻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예, 그야 형님이 주시는 기삿거리 덕에 먹고 살고 있긴 합니다만……”
어쩐지 수상쩍은 어조에 강성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같은 소속사소속 아닌가? 어째 남 얘기 같은 분위긴데… 형님 소개로 나온 게 아니었나?
이도나는 어쩐지 불편한 안색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 기사를 하나 내줬으면 좋겠는데요.”
“기사 말씀입니까?”
“이현석 대표님 관련해서.”
“……?”
“원고료는 충분히 지급할게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주세요.”
이어 생각났다는듯 얼른 본인한테는 비밀로, 하고 덧붙인다.
“……”
이쯤 되자 강성재도 어쩐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이현석에게 비밀로 약속을 잡은 배우가 수상쩍은 태도를 보이며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비밀리에 기사를써달라고한다.
심상치 않다고 할까, 사실 이쫌되면 솔직히 다른 케이스가 생각이 날 턱이 없었다. 강성재는 생각 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해… 어, 뭐라고요?”
이도나는 어째선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강성재는 단호 했다.
“이렇게 비밀리에 의뢰하시는 걸 보아 형님께 좋지 않은 기사를 부탁하시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 합니다”
“좋지 않은……? 아뇨, 이봐요. 그게 아니라……!”
“죄송하지만 제가 아는 형님은 결코 불합리한 일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께 음모를 꾸미는 일에 동참할 생각은 없습니다.”
“음모……”
무어라 말하려던 이도나는 순간 멍하니 굳었다.
잘은 몰라도 그 단어에서 예상치도 못한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강성재가 슬쩍 어조를 바꿨다.
“어떤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비열한 획책으로는 아무것도 낳을 수 없습니다. 부디 마음을 고 치시고……”
“대체 뭐라는 거예요?!”
이도나가 늘 그렇듯 참아내지 못하고 폭발했다.
“나는 음모 따위……! 그, 꾸미고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
“역시!”
“역시는 얼어죽을! 댁은 새대가린가요? 사람 말을 좀 들어요!”
한동안 아웅다웅하던 배우와 기자는 뭐지, 하고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얼른 얼굴을 숨겼다.
이도나는 정말이지,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짜증스런 목소리로 설명에 나섰다. 의뢰하려는 기사의 자초지종을 들은 강성재는 순간 당혹스런 기색이 되었다.
“어… 그러 니까……”
“뭐죠? 이것도 비열한 음모라고 할 건가요?”
“아뇨, 그…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도나의 뾰족한 목소리에 강성재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오해할 만하잖아. 애초에 이런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비밀리에 의뢰를 하는 건데?
강성재는 기분이 상한 이도나가 자리를 박차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입술만 삐죽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강성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그러니까, 그럼 말씀을듣겠습니다.”
“흥”
“음,그럼 어디서부터 쓰면 되겠습니까?’
“…처음부터요.”
이도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고 강성재는 이내 업무 모드가 되어 성실한 표정으로 받아적었다.
인터뷰는 대략 삼십 분간 이어졌다.
“예, 감사합니다. 기사는 내일모레쯤 나올 겁니다.”
“그래요… 알겠지만 그 사람한테는 내가 의뢰했다고 절대 말하지 마세요.”
“예……”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강성재는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도나의 독점 인터뷰는 모든 기자들이 목에 단내가 날 정도로 원하는 물건이다. 좋은 기회를 건진 거겠지. 예쁘기도하고.
‘조금… 아니.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이 바닥에서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믿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살펴 가십시오.”
어쨌거나 고객은 고객, 머리를 꾸벅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강성재에게 재차 두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누나의 전화를 끊어 버리고 보인 건 모르는 번호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누른다.
“예, 『연예투데이』 강성재입니다.”
“예, 예……”
“…서수현작가님 이시라고요?”
강성재는 문득 이 까닭 모를 흐름이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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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김철 선배는 눈을 끔벅이며 오늘의 『연예투데이』의 새기사를 보고 있었다.
이 신문사의 드라마란은, 그러니까… 무언가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다.
…대체 뭘 쓰고 있는 거야, 이 녀석은?
아니, 그보다 내 기사만 몇 개를 낸 거야?
황당해진 내가 전화를 걸자 강성재는 여덟 콜만에 전화를 받았다. 어쩐지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형님… 저 열심히 했습니다
“…뭐?”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나는 전화기를 고쳐 잡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모를 독촉하자 강성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특히 저희 누나가 ‘성재야~ 누나 부탁~~♡’ 하고 같잖은 애교를 떠는 게 너무도 끔찍해서……!
“으음……!”
-무시하려고 하니까 목소리가 더 블링블링해져서는..…!
“맙소사……!”
잘은 몰라도 떠오른 이미지가 워낙에 두려웠던 터라 나는 일단 위로하기로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