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29)
“아무튼 지금은 뭐라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청률및 막장도 제한 완화는 이번 『삼세번』에만 한정된 보상이었다. 이번이 지나가면 또다시 막장도 90퍼센트 이상을 향해 매달리는 수밖에는 없다.
여섯 시간 자본 사람이 네 시간 자곤 못 산다고 그 차이가 어지간할 리가 없었다.
[뭐라도라니, 뭘 어쩌겠다는 거냐기김철 선배는 늘 그렇듯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선언했다.
“그렇군요. 일단은 김경숙 작가님께 되는 대로 헛소리를 불어넣어 보겠습니다.”
[…말은 똑바로 하자, 현석아. 그래서는 마치 지금까진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듯한 말투로 들리잖냐.]“예?”
[엉?]나와 김 철 선배는 한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상황은 급박했다. 나는 다짜고짜 김경숙 작가에게 찾아가 외쳤다.
“작가님! 우리 드라마에 등장한 마법이 사실 마법이 아니었던 것으로 하면 안되겠습니까?’
“……”
입을 떡 벌린 김철 선배가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김경숙 작가는 당혹스런 기색이었으나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세를 바꾸었다.
뜻밖으로 빠른 수용이었다. 기가 찬 시선 하나쯤은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이 피디랑 작업하다보면 다들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서예린 작가님은 늘펄펄 뛰시던데요.”
“아끼세요. 참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건 또 무슨 정신없는 이야기죠?”
“그것이……”
나도 뾰족한 생각은 없었던 터라 되는 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언젠가부터 『삼세번』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은 이차원 추리극을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이어온 추리의 근간이 흔들린다면 보는 이들도 세상에 이런 막장이 어디 있나 기가 찰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최대한 주워섬긴 내 말이 끝나자 김경숙 작가가 어째선지 제법 고민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나왔군요…… ”
“작가님?”
“마법이란 개념을 없애는 건 사실 나도 조금 고민했던 일이었어요. 설마 이 피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응? 나는고개를 갸웃했다.
어째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사실, 이번에 설정 자문을 받으면서 물리학에 대해 조금들었는데 말이에요. 꽤 재밌더군요.”
“아, 그러시군요.”
나는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글쎄, 나도 어린 시절 본의치 않게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면 저렇게 생각할수 있었을까?
…아닐것 같은데.
“가장재밌던 건 그거더군요. 이중슬릿 실험.”
“어… 혹시 양자역학 말씀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카테고리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관측하면 입자로 존재하지만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으로 움직인다는 내용이 무척 신기하더군요. 마법 같아서.”
맞네, 그거.
대체 이 아주머니 자문위원은 무슨 자문을 해주고 있는 거지.
내가 의문을 곱씹고 있는 와중에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네요.”
“재미있는 실험이요?”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에서가 아니라, 현미경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생체분자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말이에요.”
“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김경숙 작가의 목소리는 점점 열기를 띠었다.
“결국 모든 물질은 크던 작던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뜻이라고 들었어요. 관측에 따라 그 성질이 정해지는 것뿐이라고.”
“예……”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축약하니 제법 간단해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 똑똑한 물리학자들도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질러 대는문제아닌가.
조금 과장하자면 게이머의 눈에 보이는곳만 렌더링하는 컴퓨터 게임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모양 이다.
“또 인상적인 이야기가,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더군요.”
다행히 이건 나도 아는얘기였다.
“아서 클라크군요.”
“그래서 말인데… 실제로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극에서라면 그 ‘관측’의 경계를 정하는 존재를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걸 마법 세계와 현실 세계를 가르는 차이라고 하면 될 테고.”
“…예?”
갑작스럽게 『삼세번』의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같은 생각을 한 이 피디라면 이해하겠지만, 세 번째 살인사건은 양자 얽힘을 끌어들인다면 재미있을 거라고 보지 않아요?”
양자… 뭐? 누가 같은 생각을 해? 나는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경숙 작가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열변을 이어가고 있었다.
“벨의 부등식으로 볼 때 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최대 상관관계를 가지려면 세 가지가 존재해야 한다고 하지요. 측정이 될 입자가 이미 존재하고, 그 둘 사이의 영향이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고, 가장 큰 전제조건으로 관측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물론 깨졌지만, 하고 김경숙 작가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실 이미 무언가는 결정 되었고, 우리의 지각으로 인지한 ‘자유의지’는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는 게 아닐까. 극중 마법이라 지칭되는 영역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아뇨, 그……”
“아, 이 피디가 하고픈 말은 나도 알아요. 뇌에서의 양자결맺음은 10-13초에서 10-10초 정도의 극히 짧은 시간밖에 일어나지 않으니 뉴런이 이를 활용할 수는 없지요.”
“저……”
“비록 의식의 불확실성은 양자 세계로 인한 게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설정에서 활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령 양자수(Quantum Number)가 같은 뮤 입자(Muon)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봐요. 이걸 활용하면……”
긴 이야기가 마무리된 뒤,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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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김경숙 작가의 생각은 아마추어답게 적잖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특히 김 작가의 지인이자 자문을 해주던 모 대학 물리학과 교수는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노했다.
“어떻게 이런 미치광이 같은생각을!”
반대로 나는 적이 안심했다.
“음, 역시 문제가 있군요. 아쉽지만 이 설정은 없던 걸로…… ”
“걱정 마시오, 피디님 ! 내 반드시 친구들을모아 이 헛소리를 말이 되게끔 수정해 보이리다!”
“어, 저기…… 예?”
그리고 잔뜩 뿔이 난 교수는 정말로 친구들을 호출했다. 내로라하는 교수들 모두가 눈이 벌개져서는 무급이라도 좋다고 달려왔다.
나는 순식간에 회의실의 평균연령이 두 배 가까이 올라가는 꼴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지하게들 하게! 시청률 40퍼센트 가까운 드라마야! 미래의 노예…가 아니라 귀중한 물리학의 재원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렇고말고! 굴려먹기 좋은 대학원생…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둥을 받칠 기초과학을 위한 일이지!”
“…그런데 저 머저리는 왜 데려왔어? 시간이 흐를수록 무수한 세상이 새로 생겨난다는 헛소리 집어 넣을 일 있나?”
“뭐가 어째? 빛보다 빠른 정보전달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머저리들보다야 낫지!”
이 교수님들은 이미지와는 달리 썩 우아하신 분들은 아니었다.
서로 삿대질을 하고, 목청을 높이고, 욕설을 쏟아 붓는 사이 그 옆에서 김경숙 작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설정을 짜맞춰갔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 기괴한 상황은 어느샌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너네들 삼세번 제작자문 리스트 봤냐?
-미친, 물리학 교수가 몇명이야;;
-그냥 교수들도 아님… 소속 대학들 좀 봐…….
-우리 학교 교수님도 있네ㅎㅎ
└간접적 기만;;
└관악산 밑임? 아님 대전 지방대?
-이번에도 이현석이 하자고 밀어붙였단다ㅋㅋ진짜또라이인듯ㅋㅋㅋㅋ
이윽고 목소리 큰 양반들이 수백 차례 검수를 거친 설정이 공개되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우겨 넣자고 주장했던 마법은 이미 원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거였다.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가물치가 큼지막한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일단 PD인 나조차 저게 뭔 소린지 반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반응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마법(물리)
-아니, 이건 진짜 물리잖아ㅋㅋㅋㅋ
-암튼 마법 맞음. 내가 이해 못하니까 마법 맞음!
-엄밀히 말해 법칙의 기준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으니까 마법(摩法)이라는 의미로 쓴듯. 그것만으로 이 정도로 바뀔 줄은 전공자인 나도 몰랐지만…….
-이현석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거냐ㄷㄷ
-미친놈임, 이현석.
계산하긴 뭘 계산해.
하지만 불행히도 이건 몇몇 괴짜들의 헛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마법 얘기 나왔을 때만 해도 개막장이라고 생각했잖어ㅋㅋ 또 속을 뻔ㅋㅋㅋㅋ
-나도 까맣게 속았음. 지금쯤 계획대로 됐다고 박수치고 있을 듯^^
아니야…
-예전부터 나오던 얘기 있었잖아. 이현석은 사실 대한민국에서 막장을 없애려는 거임
-이거 맞다. 일부러 막장스런 설정으로 수작 뽑아서 뭐든 막장이 아니게 만들 수 있다고 계몽하려는 게 틀림없음
아니라고……..
-또 이현석 의심한 흑우 없지?
-1타석은 우연이라도 3타석은 과학이지
-런치같은 막드 보는 분들 가슴에 손 얹고 반성좀!
이런 빌어먹을……!
손 댈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나는 기가 막히고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미 둑이 터진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다음날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며 『삼세번』은 순식간에 파도가 꺼지듯 몰락했다.
가히 예전 서브프라임 사태 수준의 폭락이었다.
『’삼세번’30화의 방영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집계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40.2%,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8% 입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멍하니 고개를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늘 그렇듯 한 줄이 더 떠올랐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십시오, 사용자. 깨달음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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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이 늘 그렇듯 삽질을 반복하는 사이에도 김철의 경고는 서서히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미 도화선에 불은 붙은 셈이었고,『삼세번』이 온연한 호평으로 돌아서며 그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다.
“그래서 이현석 사단 주요 멤버는 결국 누구누구야?”
“서수현 수준으로 대가족 선호하는 것도 아니니까 주연을 몇 가지고 갈 리도 없고……”
“결국 이설이냐 이도나냐에서 갈릴 것 같은데.”
“흐흐. 예전에 한 판 붙었던 것도 혹시 그것 때문인 거 아니야?”
그렇게 알 만한 이들이 수군대는 사이 의외로 먼저 심지가 빨리 타오른 쪽은 따로 있었다.
그간 사이좋게 이인삼각을 맞춰온 서예린과 유지아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