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30)
이현석이 또한 건 했구나!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이번 『삼세번』의 변화를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고즐거워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편하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쪽이냐면 대개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부류들이었다.
“이현석이란 놈,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군.”
그 대표격인 MBS 원광훈 사장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부 그놈의 뜻대로되었어.”
반쯤 질려버린 듯한 투였다.
그런 모습에 측근인 비서는 송구스러운 한편 조금 의아한 심정이었다.
“그야 이번 드라마도 성공한 것 같긴 합니다만… 녀석의 실력은 그 전으로 익히 아신게 아니셨습니까?”
“멍청하기는.”
원광훈 사장이 혀를 쯧 찼다.
“지금드라마를 성공시킨 게 문제가 아니야.”
“예? 그럼……”
“처음 이현석이 놈의 파트너가그 김경숙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 주변 반응이 어땠었나?”
“그야… 아.”
비서가 그제야 깨달은 듯 입을 벌렸다.
떠올려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느니, 실컷 휘둘린 끝에 세상 무서운 줄 알게 될 것이라느니 등등 몹시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벌칸 시리즈를 끝낸 이현석의 커리어가 눈부시기는 했지만 아직 신인이었고, 김경숙은 그 정도로 콧대가 높은 작가였던 까닭이었다.
다들 파국을 예상했다.
“이현석이도 그걸 알았는지 초반부는 철저하게 김경숙에게 맞춰주는 양상이었지.”
“예……”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됐지? 모든 게 그놈 생각대로되지 않았느냔 말이야.”
하지만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던 파국은 찾아오지 않고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백 보 양보해 시댁 식구들이 죄다 죽어나가던 씬, 그리고 그게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것까지는 김경숙의 의도와 합치하며 움직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작금의 추리 드라마가 그 김경숙에게서 나올 확률은 추호도 없으리라고 원광훈은 확신했다.
어느샌가 주체로 올라선 건 이현석이었던 것이다.
“아마… 아니, 분명 그놈은 처음부터 지금의 설정을 그리고 있었을거야.”
“처음부터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비서가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간 『삼세번』의 스토리 중에는 갈피를못 잡고 헤매는 것 같은 부분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특히 초반부가 그러했는데 평론가들은 전체적으로 호평하면서도 그 부분은 PD와 작가가 어우러 지지 못했던 흔적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곤 했다.
원광훈 사장이 재차 혀를 찼다.
“아직도 모르겠나? 그것조차도 노린 거란 말이야.”
“노렸다고요?”
“김경숙이의 기분을 맞춰주는 척 하면서 서서히 핸들올 돌려 몰고 간 거야.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가도록 말이야.”
이해가 늦는 측근을 보며 원광훈은 살짝 피곤한 얼굴을 했다.
“김경숙이 말이야. 과학 매니아가 다 되었다지 ?”
“예. 교수들한테 자문을 구하며 열심히 설정을짜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마구잡이로 밀어붙여 이현석이 곤혹해하고 있다는소문이… 아.”
측근도 그제야 눈치를 챈 기색이 되었다.
“설마, 이현석이 그간 휘둘리는 척을 하며 반대로 조종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원광훈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김경숙이를 생각해보게. 그런 공부를 할 위인인가? 아니, 애초에 설정이라는 걸 진지하게 써내려갈 위인이던가?”
“…아니지요.”
고개를 젓는 측근에게 원광훈 사장이 재차 물었다.
“이현석이는 김경숙올 보는 순간 자신과 일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은 상대라는 걸 눈치챘어. 자네 라면 어떻게 하겠나?”
“…다른 작가로 바꿀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기획을 날리거나.”
“그게 바로 범인의 사고일세. 하지만 이현석이는 작가 본인을 자신에 맞게 바꾸는 쪽을 선택하고 그걸 철저히 유도한 거야.”
그리고, 이현석의 철저한 계산속에 김경숙은 ‘스스로 선택해서’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
뭐,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원광훈은 생각했다.
“맙소사……!”
무시무시한 스케일의 이야기에 비서는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제 3년차인 PD가 20년이 넘도록 독불장군이던 까마득한 선배를 상대로 생각해낼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원광훈을 따라다니며 어지간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측근조차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드니 뜯어고친다고?
이현석이란 인간은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더욱 놀라운 점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장본인과 그 주변의 반감을 전혀 사지 않았다는 걸세”
아마 마법이란 게 정말 존재한다면 이쪽이리라.
모든 게 계산대로 이루어졌음에도 쉬이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그런 천연덕스러운 태도는 나름의 처세술로 여기까지 올라온 원광훈 사장조차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것이었다.
“효웅(最雄)이 아니라 간웅(奸雄)이로군.”
원광훈 사장은 비로소 확신했다.
“그 녀석은 나와 비슷한 부류야.”
이전 KBC 사태를 일으킨 것도 우연이 아니고, 지금껏 엮어온 성공도 결코 재능에서 비롯된 무언가가 아니었다.
이현석이란 인간은 철저한 계산으로 사리를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 김경숙 작가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이상 그가 움직일 수 없는 말은 이 바닥에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김경숙 작가를 지목한 것도 굳이 그걸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지.”
그간 이현석의 움직임은 제법 단순해 보이면서도 약간씩은 아리송한구석이 있었다.
단순한 성공가도를 위해서는 전혀 필요 없는 시도를 이어간다. 그런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대개 하나라는 걸 원광훈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 녀석은 나와 같은 위치를 노리고 있을 테지.”
“…SBC의 사장 자리 말씀입 니까?”
“아니, 그보다 위를 말하는 거야.”
“그건……”
측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원광훈 사장의 말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비로소 확신했네. 윗선이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녀석은 어떻게든 해둬야한다고.”
침묵하던 측근이 물었다.
“…제대로 밟으실 생각이십니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지만… 저 녀석의 의뭉스러움을 봐서는 반대 방향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지. 제 안위쯤은 얼마든지 계산해뒀을 녀석이야.”
“반대라하시면……”
원광훈이 턱을쓰다듬었다.
“물론, 동업자로우리 ‘사업’에 끌어들이는 쪽이지.”
#
방송국 사장이 열심히 음모론을 만들어 내고 있던 와중, 쇼크를 받은 이는 달리도 있었다.
서수현 작가는 화면 너머로 자칭 라이벌의 인터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가 살짝 잠긴 채 홀러나왔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말이야. 지옥편의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인기가 많아.”
“…생뚱맞게 뭔 소리야?”
고모는 눈살을 찌푸리는 조카를 무시한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웬 개새끼가 물어뜯고, 펄펄 끓는 관 속에서 아파하고, 나무가 되어서 쪼아 먹히고, 땅바닥에 못 박힌 채로 밟히고……”
사실 서수현은 그런 이야기에서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사람 사는 세계를 그리려 했다. 그리고 내세에 악덕을 심판받는 세계를 믿는다는 건 현세에서 심판하지 못하는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느낀 것은 있었다.
“2층인가 거기서 웬 놈이 하는 말이 있어. 비참한 상황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큼 괴로운일은 없다고.”
지옥의 문에는 ‘이 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적혀 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고로 어떤 이들에게 있어 지옥이란, 행복했던, 혹은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반추하면서 그걸 결코 되찾을 수 없는 걸 깨닫는 데에 있는 것이었다.
“나도, 김경숙이도 비슷한 부류지. 이미 늙어서 다시 오지 않을 전성기를 되돌아보는 것밖에 못 하거든.”
“…고모.”
“이제 저쪽은 아니게 된 것 같지만.”
서수현 작가의 입지는 현 시점에서 정점에 이르러 있다.
명절 때면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인사를 하러 오고, 어쩌다 촬영현장에 얼굴을 들이미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PD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서수현은 지금 드라마를 쓰고 있지 않았다.
“…부럽구만.”
예전, 로비에서 김경숙 작가를 잠깐 만났을 때 잘난 척 훈계를 했더랬다. 당시의 자신을 떠올리며 서수현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래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니까.
아무래도, 그녀는 아직도 조카사위 될 사람의 편린조차 보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고, 똑같이 잃어가는 재능이 있지. 젊음이라고.”
서수현 작가는 그간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경숙에게는 제 2의 젊음이 존재했었는지도 몰랐다.
– 예, 좀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 생각이네요.
TV에서 밝은 얼굴로 공부를 이어갈 거라고 말하는 후배. 그 얼굴을 서수현 작가는 조금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모?”
조카의 시선에 고모가 툭 내뱉었다.
“네 드라마, 전환은 좋았다만 슬슬 한계지 ?”
“…뭐야, 갑자기.”
서예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화제인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게 사실이었던 까닭이었다.
『영원의 시대』의 시청률은 계속해서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삼세번』때문이 아니었다.
『초라한 런치』.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라는, 이현석과 곽태영 사이에 고스란히 낀 위치의 이 드라마는 이미 기세를 탄 『삼세번』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영원의 시대』에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 방영된 『초라한 런치』 5화의 시청률은 무려 14%대였다. 종편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것은 물론, 20퍼센트대에서 굴러 떨어진 영원의 시대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금세 따라잡히리라고 보고 있었다. 시청층을 빼앗기는 전형적인 그림이었다.
제작진들은 뭔가 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으나 이미 결말로 향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쉽다 말고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기고 나와.”
“그건.”
서예린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영원의 시대』의 시작은 이현석이 자신들을 버려두고 딴 기획을 차렸다는 것에 격분한 배우하나와 작가둘의 모임이었다.
말인즉슨, 여기서 끝낸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현석이 아닌 어떤 영문 모를 막장드라마를 상대로.
고모가 그런 조카를 돌아보았다. 담담한 눈빛이었다.
“곽태영이도 너도 나름대로 얻은 게 있었을 테고, 그걸로 다시 쌓아올리면 되는 거야. 현석이 저 녀석에 맞춰 갈 생각하지 말고 네 나름대로 쌓아올리면 돼.”
아직 젊으니까, 달래듯 말한 서수현 작가는 이내 능글맞게 웃었다.
“아님, 나하고 한 작품 하게 그 녀석 좀 빌려주련?”
“자꾸 헛소리 할래?”
“흐흐.”
묘한 감정이 담긴 웃음이었다.
서예린은 밤새 생각한 끝에 고모의 말에 수긍했다. 심호홉을 한 뒤 말을 걸어보니『영원의 시대』의 중진들의 반응도 엇비슷했다.
도리어 누군가가 물꼬를 터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뭐, 이제와선 어쩔 수 없겠네요… 졌지만 잘 싸웠다고 해두지요.”
이도나는 한숨과 함께 동의했다.
“좀 아쉽지만 이 정도면 성공이라긴 애매해도 실패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곽태영 감독도 자신의 새로운 ‘실험’이 통한 데 충분히 만족해했다. 그는 이제 김철에 도전할 만한 실마리를 잡았다.
방을찬 PD도 자신의 능력 이상을 해낸 것에 기뻐했고, 다른 스태프들도 초반의 기가 차던 반응으로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평가가 상승한 데 그럭저럭 만족하는분위기였다. 이러니저러니해도대부분의 드라마가 죽을 쑤는 가운데 거진 20퍼센
트는 넘겼고.
하지만.
“…지금 무슨 말씀들 하시는 거예요?”
유지아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