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35)
신인 아이돌 임태준, 예명 테이준은 선량한 청년이었다.
물론 연예계에서는 덮어놓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렇다고 쳐주는 경향이 있지만 이 경우는 말 그대로인 희귀한 케이스라는 뜻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활동을 다녔고- 생활기록부에 적어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말로 연로하신 분들의 짐을 들어주다 지각하곤 했으며-딱히 변명거리로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데뷔 이후에는 팬들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동해 눈물을 줄줄 쏟기도 했다.
심지어는 얼마 전, 매니저의 삽질로 대선배 이도나에게 도리깨로 탈곡당하듯 털린 뒤에도 쫓겨나는 매니저를 걱정하며 눈시울을 붉혔을 정도였다.
그를 익히 겪어본 소속사 인물들은 누구할 것 없이 놀라움과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준이는 굳이 오글거리게 인성 포장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암, 솔직히 사람됨으로는 연예계 톱 수준 아니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제눈의 안경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테이준은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렇게 선량의 아이콘으로 연예계의 등불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장연철 PD의 『초라한 런치』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번지점프를 합시다.”
회의 중 장연철 피디가 말했다. 늘 그렇듯 밑도 끝도 없는 한 마디였다.
“제기랄, 또……!”
한구석에 있던 작가가 과호흡이 온 듯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눌렀다. 그 사이 AD 하나가 얼른 말을 받았다.
“저, 피디님? 일단 다들 알아듣게 설명을해주셔야…… ”
“음. 제가 실수했군요.”
장연철이 반성하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 말은, 번지점프를 하면서 씬 촬영을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
눈곱만큼도 발전이 없었다. 아무도 이 개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장연철은 되레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지 개탄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르시겠습니까? 지금 저희 드라마는 시청률 정체기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정체기…?”
“말인즉슨 루즈해졌다는 뜻이지요! 이걸 빠르게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즈……?”
회의실에 있는 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저번 회 내용이 뭐였더라?’
그러니까, 정자은행에서 전 남편의 정자를 가로채 임신에 성공했는데 그게 사실 시아버지의 정자 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스토리였던 것 같다.
‘루즈?’
루즈는 얼어죽을, 얼마나 욕을 퍼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체기 역시 괴상한 표현이었다. 얼마 전,『초라한 런치』의 시청률은 무례 15퍼센트를 돌파하며 『영원의 시대』와의 격차를 0.3퍼센트 차이로 좁히는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로서도 놀라운 커리어였지만 여기가 종편인 TVM이라는 걸 생각하면 심히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나름 긴 역사에서도 최고시청률이 7.3%에 불과했었는데 무려 그 두 배라니.
정체기라기보단 신기록 경신이 조금 더 맞는 단어가 아닐까, 그런 조심스러운 의문에 장연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현석 피디였다면 여기에서도 가볍게 30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을 뽑아냈을 겁니다.”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확신할 수 없는 게……”
“할수있습니다.”
“예?”
“1번 제자인 제가그렇게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
논리부터가 엉망진창이었고, 본인이 들었다면 언제부터 제자가 되었냐고 펄펄 뛸 그림이었다. 하지만 장연철은 진지했다.
회의실에 있는 이들은 서로 마주본 뒤 이내 한숨을 쉬고는 포기했다.
‘또 이현석인가……’
여기 있는 인물들은 이현석과 일면식도 없음에도 슬슬 그 이름에 노이로제가 생기려 하고 있는 중 이었다.
아무튼 장연철이 뭔가 미친 짓을 한다 싶으면 그 배후에는 이현석이란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만악의 근원이 또 있을까.
아무튼 모두가 포기한듯 말이 없자 장연철은 평소처럼 납득시켰다고 여겼다.
세상은 종종 불행한 오해로 돌아가곤 하는 법이었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이런 상황에 이현석 피디는 항상 승부수를 던져왔습니다. 때로는 반전을 꾀하고, 때로는 놀랍고도 참신한 연출로 인식을 뒤집었지요.”
여기까지는 멀쩡한 소리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저는 그런 정도의 실력은 없습니다.”
“그러면……”
“따라서 번지점프인 겁니다!”
“……”
심히 엉망진창인 결론을 낸 장연철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남주인공은 아내가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것에 절망해 뛰어내리려고 결심한다! 그걸 번지점프에 달린 카메라로 연출한다! 작정하고 연출한 것만은 못해도 버금가는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요, 작가는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한 표정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애매한 분위기인 와중 가만히 듣고 있던 남주인공 역 배우, 테이준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그런데요.”
“뭡니까?”
“그건, 그… 오케이 나올 때까지 제가 뛰어내려야 한다는뜻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저 고소공포증 있는데요.”
“참으십시오. 예술을 위해서입니다.”
장연철이 눈을 번뜩였다. 어설픈 그래픽 처리 따위는 생각도 말라는 듯한 어조였다.
테이준은 설마 했지만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는 이틀에 걸쳐 쉰여덟 번을 뛰어내려야만 했다.
어린 시절 이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는 “씨발!”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울 정도로 놀라운 촬영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자연한 법칙으로 물에 빠진 남주인공은 하류로 떠내려가는 사이 벼락을 맞고 기억을 잃습니다.”
“아, 예. 그렇군요…… ”
“이현석 피디라면 죽은 듯 떠내려가는 장면을 완벽하게 연출하겠지만, 저희는 그냥 직접 그렇게 찍도록 하겠습니다.”
“예???”
테이준은 마흔한 번을 입수하며 “빌어먹을!”이라는 표현을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기억을 잃은 남주인공은 모종의 음모로 호적이 바뀌어 재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까.”
“이현석 피디라면 개펄에서 구르는 장면의 비정함을 완벽하게 연출하겠지만, 저희는 그냥 될 때까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테이준은 기진맥진해 실려가며 “개호로자식!”이라는 욕설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장연철…! 이현석……!!’
극히 선량하던 새 나라의 청년은그렇게 두 악마의 덕에 착실히 악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실행범인 장연철PD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기 바빴다.
“역시 이현석 피디가 해온 일에 비하면 내가 하는 건 소꿉장난에 불과하구나!”
옆에서 들은 이들 모두가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현석은 대체 어느 정도의 미치광이란 말인가.
그 이도나가 진저리를 치고 그 홍지호가 오들오들 떨었다는 등의 단편적인 소문만 들어본 이들은 특히나 더욱 두려움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
…뭔가이상한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TVM제작센터 로비에 서 있었다.
딱히 이곳 자체에 용무가 있어서는 아니고 예전에 장연철 피디와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기 위해서였다.
외부인인 입장이라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어째선지 시선이 몹시 따가웠다.
일부 사람들은 늘 그렇듯 흘낏흘낏 보며 지나갔지만 몇몇은 화들짝 놀라거나 심지어는 얼굴을 가린 채 몸을 돌리기도했다.
“맙소사, 저 사람이 이현석 피디야?”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얼굴이군! 보정을 먹인게 틀림없어!”
“그 장연철 피디가 자기는 이현석에 비하면 세 발의 피라고 그랬대……”
“대체 얼마나 갈궈댔으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으음.
어째 전에 왔을 때랑은 반응이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은 어째선지 장연철 PD가 반색한 채 나타나자 더욱 강해졌다.
“어이쿠. 오셨습니까. 스승님!”
“거 농담이라도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하하, 받아들이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가시죠!”
우리는 같이 걷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갈수록 보는 눈이 더더욱 기묘해지는 듯한 압박감에 나는 애써 말문을 이었다.
“굳이 촬영 있으실 때 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번에 급하게 일정이 잡혀서요.”
“무슨 말씀을! 언제든 불러주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요.”
손사래를 치던 장연철 피디가 문득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급한 일정이라는 건 유지아 작가와 김경숙 작가님의 만남을 주선하시는 걸 말씀하시는겁니까?”
내가 눈올 끔벅였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든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는 법이지요.”
“예?”
“저는 이 피디님에 대해 모든 걸 알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윽하게 덮쳐오는 눈길에 나는 순간 움찔했다.
아니, 그… 농담이겠지만 홍지호와의 묘한 소문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입장에서는 영 웃음으로 넘길 수가 없단 말이지.
나는 애써 헛기침을 했다.
“예 뭐 그랬습니다”
“역시 그러셨군요. 무언가 복안이 있으시리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주의하십시오.”
장연철 피디는 생각보다 시원스레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되레 의아한 심정이 되었다.
“저, 복안이라니요?”
“굳이 시치미를 떼실 필욘 없습니다, 하하.”
장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유지아 작가는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김경숙 작가는 자기연민이 강하지요. 붙여서 생길 화학작용이야 뻔한게 아니겠습니까.”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이번에 봤을 때는 적당히 죽이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을 뿐 별다른 건 없었는데.
하지만 줄곧 마땅찮은 표정을 짓던 김철 선배는 어째선지 조금 눈을 치켜뜨는 모양새였다.
[…현석아. 쟤 유지아 본적 있냐?]‘MBS에 있올 때 계약 문제로 한 번 보지 않았습니까.’
[한 번 말이지.]김철 선배는 으음, 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알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내가 거기에 무어라 물으려던 찰나 장연철 PD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아, 예.”
장연철을 따라 도착한 곳은 무척 작은 회의실이었다. 사실 말이 회의실이지 자료 빼고 남은 창고에 테이블 하나놓고 이름만 붙인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탓인지 그 흔한 카드키가 없고 열쇠 잠금식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간 뒤 장연철은 잠시 주위를 살피고는 따라 들어왔다. 빙글빙글 웃던 표정 역시 조금 진지해져 있었다.
“저번에 MBS 원광훈 사장에 대해서 못 드린 얘기가 있었지요.”
“예 ”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에 나도 표정을 바르게 했다.
굳이 카페나 술집이 아니라이런 애매한 곳까지 데려왔다라……
이거 생각보다 별 거 아닌 화제는 아닌 것 같은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