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4)
024 – 만드는 것은 PD지만 보는 것은 사람이다(2)
아이돌 그룹 『에어리즈』의 숙소.
막내인 아라가 제 목에 걸린 팻말을 흔들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천치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거 인간적으로 언제까지 해야 되는데?”
“네 양심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셋째 은솔이 새침하게 말했다.
“와, 어떻게 유미 언니를 의심할 수가 있어? 유미 언니가 떡상한다고 하면 떡상하는 거지, 뭐? 돌았다고?”
“언니도 속으론 맞다고 생각했으면서!”
“뭐래.”
아라가 억울한 눈으로 둘째 언니를 보았다.
“아니, 솔직히 시청률 4프로따리가 17.8퍼 스타트 잡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냐고!”
하지만 주리 역시 냉정하게 그 시선을 외면했다.
자신의 찔리는 점을 덮기 위해 되레 상대를 과도하게 비난한다.
인류 역사상 오랫도록 반복된 비극이 4인조 걸그룹 내부에서도 또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한동안 꽥꽥대다 포기하고 목의 팻말을 받아들인 아라가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우리도 폰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인터넷 반응 장난 아니라는데.”
“맞아.”
은솔도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런 동생 둘을 주리가 달랬다.
“악플도 엄청나대. 매니저 언니 말로는 『연극처럼』 보는 사람들 막 누렁이라고 그러고 욕하고 비웃고 논다더라. 특히 이도나 팬들이 장난 아니래. 안 보는 게 좋아.”
“우린 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거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사람들 아냐?”
막내의 맹랑한 말에 주리가 슬쩍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번에 유민 선배님 악플 때문에 자살까지 하신 거 몰라?”
“그야 그 정도로 심한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아라는 조금 기가 죽은 목소리로 웅얼대면서도 뜻을 굽히진 않았다.
주리도 무어라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데뷔 4년차 무명.
슬슬 정말로 악플마저 고플 무렵이다.
“그리고 드라마랑 별개로 유미 언니는 인기 좋다며.”
“맞아. 막 사이다녀니, 하늘님이니 칭호도 엄청 붙었잖아. 속 시원하게 죄다 대가리 까부순··· 교정시킨다고.”
주리가 다시 얼굴을 굳히자 은솔이 슬쩍 표현을 바꾼다.
“그리고 솔직히 『연극처럼』 재밌잖아? 굳이 유미 언니 아니라도.”
“그치. 막장은 막장인데 별로 짜증도 안 나고.”
작중 친구 한지원에게 철저히 교육받은 정하늘은 현재 시댁 식구들을 철저히 몰아놓고 궁지에 몰린 쥐처럼 가지고 노는 중이다.
그 과정에 개연성이며 설정이 여러모로 날아다니긴 했지만 사실 보고 나면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냥 그런 거구나, 하고 보면 그만이다.
한편으론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대체 왜 들어갔는지 모를 이광진과의 썸도 달달하니 나름 평가가 좋다.
“한지원 캐릭터가 진짜 작위적이긴 한데.”
“맞아, 맞아. 팬카페에도 그거 이야기 많이 나왔잖아.”
세 소녀는 열심히 한지원을 씹었다.
보다 정확히는 그 안의 이설을 씹는 것에 가까웠다.
명백히 주연은 큰언니 한유미인데 한참 모자란 비중으로도 그 못잖은 화제가 되고 있으니 조금쯤 고까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팬카페도 점령당했고.
그렇다고 다들 그걸 대놓고 깔 만큼 못된 성격들도 못 되니 작중 인물을 꺼내들고 허수아비나 때리는 거지만.
“시작한다.”
그 한 마디에 세 소녀는 얼른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오늘은 회장 나오려나?”
지금껏 『연극처럼 살다』가 15회나 진행되는 동안 시아버지, 그러니까 그룹 회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딱히 죽거나 한 것은 아니고 계속 작중 언급도 되고 흑막처럼 그려지는데 등장을 하질 않는 것이다.
“진짜 소문대로 배우를 못 구해서 출연을 못 시키나.”
“에이, 그게 말이 돼?”
“소문대로면 말 될 것 같은데? 매니저 언니가 방송국 전체가 이현석 PD님 따시킨 거 팩트랬잖아. 섭외도 다 혼자 했다고.”
“암만 그래도······.”
세 소녀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화면 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옛 시댁 식구들은 몰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비열한 수를 다 쓰지만 여주인공 정하늘은 이미 그걸 전부 다 읽고 있다.
이어 정하늘이 누군가와 여유롭게 체스를 두는 장면이 비친다.
말 하나를 잡을 때마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시동생이 이를 부서져라 깨물고 시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상을 뒤집어엎는다.
평소의 시원시원한 전개다.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이 50분이 뚝딱 흘러갔다.
그리고 마지막,
화면 안의 정하늘은 희미한 조소를 띄고 옛 시댁 식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끝인가요?」
「큭······!」
「뭔가 더 있을 텐데요. 한일그룹을 끌어들인다거나, 이영종 의원에게 가서 빌어본다거나. 뭔가 더 발악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시댁 식구들은 이를 갈면서도 대꾸하지 못한다.
한동안 그들과 눈을 마주치던 정하늘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 정말 마지막인가 보네.」
한숨과 함께 조소가 느릿하게 지워져간다.
「겨우 이거였어, 당신들?」
「······.」
「겨우 당신들 정도에 승호 씨는 죽고··· 나도 죽을까 생각했던 건거야?」
겨우 당신들에게, 하고 다시 되뇌는 정하늘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리고는 끝내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된 것 같아요. 어머님, 아가씨들, 그리고 도련님도. 더 이상 가지고 놀 재미도 없는 것 같고.」
정하늘은 조금 지친 표정으로 되돌아섰다.
「10년 후에 봐요. 징역살이도 익숙해지면 나름 아늑하답니다.」
뒤로 돌아 걸어나가는 정하늘.
모두가 고개를 숙이나 싶더니 이내 이를 갈던 시동생이 벌떡 일어선다.
잔뜩 분노한 표정이다.
품에서 무언가를 쥐고 뒷모습을 보인 정하늘에게 달려든다.
정하늘은 그제야 눈치 채고 뒤돌아서지만 이미 뒤늦고 –
멍하니 입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가 정하늘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찔린 이가 컥, 하고 피를 토한다.
직접적으로 비춰주진 않는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 어? 뭐야?!”
“잠깐, 아니지? 암만 막장이라도 이건 아니지?!”
아라, 은솔, 주리.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 비명도 관계없이 정하늘은 눈도 감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
잠시 경련하던 몸도 이내 움직임이 멎었다.
“······.”
“미친······.”
화면 밖의 소녀들은 죄다 넋이 나간 표정이고,
「헉··· 헉······.」
화면 안에서는 쨍강, 하고 흉기를 떨어뜨린 시동생이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두 손을 바라보는 게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 표정.
「사··· 상선아, 대체 어쩌려고 그래?!」
「어쩌기는! 저 년을 죽이지 않았으면 우리 전부 다 죽었어! 아냐?!」
「······.」
여자들이 덜덜 떨며 입을 닫는다.
「처리, 내가 할게. 엄마랑 너희들은 입만 잘 잠그고 있어. 절대 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모의가 이루어지려는 순간.
「어머, 뭘 알지 못하게 한다는 걸까?」
멀찍이서 또각또각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동생이 대경실색해 몸을 부들부들 떨고, 마치 호러영화의 연출처럼 카메라가 흔들린다.
가까이 다가온 목소리가 정하늘을 들여다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음··· 죽었네.」
「그······.」
「내가 요즘 기억이 오락가락하긴 하는데, 분명 뭘 해도 좋지만 육체적인 위협과 상해는 금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 죽이지 않으면 저희가 죽었습니다!」
시동생이 더듬더듬 외쳤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불가항력······!」
콰당.
아무도 민 사람이 없는데도 시동생은 그대로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엎어진 채 미동도 없는 몸에서 붉은 색 피가 흘러나온다. 제 엄마와 누이들의 비명이 그 위에 덮인다.
그리고 화면이 암전된다.
「후우, 귀찮게시리.」
암전된 화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며 페이드 인.
깜박, 깜박.
눈을 깜박이는 듯한 효과와 함께 시야가 움직인다.
「정신이 들어?」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빙그르르 돌아가 상황을 비춘다.
「···지원···아?」
눈앞에서 한지원이 웃고 있다.
「음, 얼마 안 되어서 다행이었네. 아무리 그래도 사후경직까지 갔으면 나도 좀 어려웠을지도.」
「······.」
정하늘의 복수를 돕고,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가 평소처럼 상냥한 웃음을 짓고 있다.
「사과할게. 설마하니 저것들이 저렇게까지 폭주할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지 뭐야.」
정하늘의 입이 달싹인다.
「···너, 누구야?」
「누구냐니, 네 친구인······.」
「나한테 너 같은 친구는 없어!」
비명처럼 외치는 목소리.
「전부 기억났어.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나에게 네가 먼저 합석하자고 했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래.」
한지원이 뺨을 긁적인다.
「하긴, 한 번 숨이 끊어진 상황에서 암시가 이어지길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겠지.」
그리고는 빙긋 웃는 모습.
「그래도 아쉽네. 꽤 즐거웠는데, 요즘.」
「······.」
그 웃음에 화면 밖에 있는 소녀들조차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저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부자연스러운··· 만든 것 같은··· 인형 같은?
어떤 수식어를 써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홀로 수백 년을 무감정하게 살아온 사람이 애써 웃으려 하면 저렇게 될까.
저렇게 웃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너는··· 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어? 그리고 나를, 날 가지고 놀고 있었던 거야?!」
「오해는 피하고 싶으니 말해둘게. 딱히 저것들은 아무래도 좋아. 그냥 적당한 장난감이다 싶어서 놔둔 거야.」
「···뭐?」
「내킨다면 지금 당장 죽이는 건 어떠니? 뒤처리는 내가 해줄 수 있는데.」
「······.」
아무렇지도 않은, 그렇기에 더욱 진심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그토록 두렵고 원망스러웠던 시댁 식구들이 힉 소리와 함께 서로 끌어안고 떠는 모양새에 정하늘은 황망한 모양새로 얼어붙고 말았다.
달싹거리는 입가에 두려움이 담겼다.
「너는··· 누구야? 나한테··· 대체 뭘 원하는 거야?」
「일찍이도 말하지 않았니? 나는 그저 네가 나와 같은 위치에 도달하길 바랄 뿐이야, 정하늘.」
미소를 짓는 한지원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이미 만난 적 있지 않니? 나와 같은 녀석.」
진지하게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말하던 이광진의 모습이 컷백 기법으로 스쳐지나간다.
「음, 뭐. 그래.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지.」
잠시 말을 고르듯 몇 번을 갸웃하고는, 표정을 바꾼다.
거의 초 단위로 얼굴에 표정이 희미하게 스쳐지나간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지루함.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한지원은 그 수십 가지의 표정 중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를 골라냈다.
옷장에서 옷이라도 고르듯, 간단히.
「안녕하세요. 제 현재 이름은 한지원이라고 해요.」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닌, 어떤 다른 종족이 다정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시겠어요?」
「······.」
하얗게 질린 정하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파직, 일렁이며 암전했다.
암전.
스탭롤.
그리고 이어 광고가 나오기까지.
누구 하나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연기··· 맞지?”
은솔이 팔에 돋은 소름을 문질렀다.
이미 그동안의 내용은 머릿속에서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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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처럼 살다’ 15화의 방영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집계합니다······.』
“크크크······.”
[흐흐흐······.]나는 김철 선배와 나란히 앉아 품위있게 웃고 있었다.
외계인, 통수, 거기에 더해 사자소생!
심지어 방심위에 경고 한 방 후려맞을 각오를 하고 유혈씬까지 첨가했다.
이게 먹히지 않을 리가 없다.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18.1%,』
상상 이상의 상승률로 눈을 끔벅거리던 것도 잠시, 나와 김철 선배는 더욱 웃음의 피치를 올렸다.
“크크크, 4퍼센트 가까이 올랐습니다, 선배님!”
[흐흐흐, 압도적이구만! 이거 겸사겸사 MBS도 잡아버리는 거 아니냐?]그렇게 나와 선배가 김칫국을 마시던 때였다.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64%입니다.』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