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42)
“5천만 달러군요?”
“예.”
“달러……?”
“그렇습니다.”
나는 멍하니 생각해보았다.
-위원장님, 말씀하신 대로 이현석이라는 놈 깔끔하게 묻어놨습니다! 이제 국내에는 발도 못 붙일 겁니다!
-음,잘했네. 그놈 요즘은 뭘 하나?
-웹플릭슨지 뭔지 하는 해외의 이상한 회사랑 손잡고는 푼돈 들고 발악하는 중이랍니다. 이제 위협도 안될 것 같습니다, 흐흐.
-됐군. 이제 그런 놈은 무시하지 .
지금까지 내 계획은 이랬다.
완벽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그림이다.
이렇게 방치된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로 비수를 꽂는 것이야말로 실로 바람직한 과정과 결과라고 할수있겠지.
하지만.
-그래서 그놈들이 얼마를 지원했나?
-5천만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환산하면?
-600억 원 정도겠군요.
-……
-……
음, 암만 생각해봐도 그른 것 같다.
무시하기는커녕 되레 영혼까지 끌어다가 생사투를 벌이려 할 것 같은 상황이 아닌가.
아니, 애초에 원수진 내가 아니라 옆집 사는 호식이가 저만큼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배가 아플 액수가 아닐까 싶다.
‘당장 내가 이걸 받아먹으면 금세 기사가 뻥뻥 터지겠지……’
그렇게 되면 몰래 칼을 갈며 준비해도 모자란 카르텔과 대놓고 한 판 뜨는 꼴이 될 테고.
끔찍한 상상에 머리가 쭈뼛 섰다. 암만 봐도 이건 아니었다.
“음.”
나는 애써 헛기침을 했다. 어쩌다 기분에 좀 크게 질렀겠지 하고 슬쩍 물러설 구실을 건넸다.
“저 하나보고 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투자가 아닙니까? 사업 얘기에는 허언이 없는 법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회 웹플릭스는 그 정도 규모는 되는 곳입 니다.”
하지만 테일러 씨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눈치였다. 내 은근한 신호에 되레 조금 불끈한 표정으로 말을이었다.
“애초에 저희 웹플릭스는 독점작을 선정할 때 따로 투자자를 모으고 회의를 해 제작비의 규모를 결정합니다. 결코 주먹구구식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제안을 드린 게 불과 며칠 전이지요. 그렇다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게 아닙니까?”
내 필사적인 지적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오, 리 감독께서는 1년 전부터 저희들의 사업 확장 계획의 주요 멤버로 올라 계셨습니다.”
왜.
뭣 때문에.
“투자 규모는 진작에 얘기가 나왔지만 모실 방법이 애매해 묻어둔 얘기였는데… 설마 이렇게 먼저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
“아마 저희도 슬슬 확장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AHAHA’ 하고 웃는 테일러 씨에게 내심 이를 갈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사람처럼 웃는다고 내가 속을 것 같나.
[미국사람 맞잖냐……]‘너무 스테레오타입 같다는 소립니다.’
음, 나는 애써 내색하지 않고 고민에 잠겼다.
‘저 정도 금액을 그대로 받아먹을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탈 납니다.’
[글쎄다, 그렇다고 투자 덜 받고 싶다고 줄여달라는 감독은 내 생애에 보질 못했는데.]‘그렇지요……’
그건 암만 봐도 미친놈이다.
나는 고민 끝에 그냥 대놓고 부딪쳐보기로 했다.
“솔직히 잘 이해할수 없군요.”
“뭐가 말씀입니까?”
“저 같은 삼류 감독에게는 너무 과분한 제작비 아닙니까? 과연 제대로 쓰일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나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지른 한 방이었다.
“오, 그런 식으로 떠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테일러 씨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리 감독이 한 번도 좋은 조건에서 뭘 해보지 못한 건 알고 있습니다.”
“예?”
“아,물론 그 안에 나름의 야심이 있으시다는 것도 말이지요.”
“……?”
내가 아리송해하는 사이 테일러 씨의 눈은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벌칸 시리즈까지는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삼세번』에서 우리는 비로소 확신했습니다.”
“…대체 뭘 말씀입 니까?”
사실, 그건 반짝임을 넘어 일종의 번뜩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테일러 씨는 문득 표정을 바꾸었다.
“제가 보기에 리 감독은 단순한 SF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신 것 같더군요.”
“음?”
“간보인 시리즈에는, 그리고 당신에게는 무언가 숨겨진 목표가 있습니다. 아닙니까?”
“……”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알아챈 건가? 내 막장을?’
설마.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눈앞의 존 테일러를 홅어본다.
그야말로 나 엘리트요, 하는 인상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양복, 서늘한 인상에 놓인 은테 안경, 단정하게 쳐낸 머리스타일까지.
더해 이 정도 액수를 협상할 수 있을 정도라면 분명 웹플릭스 안에서도 높은 위치겠지 .
이 정도 인물이라면 대중들이 왜곡한 내 작품들의 진실올 알아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며 짐짓 한 발 빼보았다.
“저로선 무슨 말씀인지 통……”
“바꿔 말하지만 시치미를 떼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짐작이 있습니다.”
돌아온 자신만만한 태도에 내가 품은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보면 웹플릭스는 디에고 로드리게즈와 친했다. 어쩌면 그가 타락하여 생긴 공백의 소프 오페라의 자리를 나에게 넘기려는 건지도 모른다…….
침을 꿀꺽 삼킨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무엇을 짐작하고 있으시다는 겁니까?”
“꼭 제 입으로 들으셔야겠다는 것 같군요. 좋습니다.”
테일러 씨가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그는 신뢰감이 넘치는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벌칸 시리즈의 두 작품과 『삼세번』, 겉보기엔 전혀 공통점이 없는것 같은 셋입니다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
“아, 물론 스토리상의 공통점은 아닙니다. 그건 말하자면 제작자의 어떤 의도, 근본적인 구성 원리에 가까운 것이지요.”
오오…….
“이 세 작품으로 리 감독은 끌어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도 잘 되지 않았던 것 같군요.”
오오오……!
맙소사, 이쯤 되자 나 역시 일종의 확신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감동어린 눈으로 테일러 씨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오랜 사이였던 설이조차 알아채지 못한 걸 바로 본 사람이 있을 줄이야……!
만감이 담긴 시선이 교차했다. 내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테일러 씨는 신뢰감이 넘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 감독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것을요.”
“……”
긴 침묵이 흘렀다. 잠시나마 느꼈던 감동은 어디론가 씻은 듯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뭐라는 거야.
하지만 내가 말문이 막힌 사이 테일러 씨의 눈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뻔한 얘깁니다. 리 감독은 벌칸 시리즈에서는 네메시스 가설과 벌칸 가설과 같은 폐기된 천문학 이론들을 비롯해 다차원 해석을 적용하셨지요.”
“어……”
“뿐만 아니라 『벌칸의 몰락』에서는 그쪽 스태프들을 동원해 장대한 설정집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뇨, 그것은……”
“압니다. 놀라운 완성도였고 대부분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테일러 씨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사람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당신은 『삼세번』에서 그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물리법칙을 정립하고 교묘하게 이능력이 실존할 수 있는 배경을 내놓았습니다!”
주먹이 쿵, 하고 탁자를 쳤다. 속사포처럼 말을쏘던 눈에서는 영문 모를 불꽃이 넘실거렸다.
“저는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대중들의 생각보다 훨씬 장대한, 그야말로 근본 단위의 유니버스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니, 진짜뭐라는 거야.
하지만 상대는 내 기가 찬 얼굴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음, 물론 정정해야할 건 있지요, 하고 고개를 주억인다.
“세간은 당신을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의 후계자를 꿈꾸고 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존 테일러가 눈을 번뜩였다.
“당신은 영상이란 도구로 J.R.R 톨킨이나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웹플릭스는 나한테 미친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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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때 뜨거운 화제이던 『삼세번』과 『영원의 시대』의 대결 중 먼저 결말에 가까워진 건 후자 쪽이었다.
중반부에 운석이 떨어지기까지의 전개는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하지만 그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 및 생존물로서의 완성도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평론가들은 영 애매한 느낌의 칭찬을 건넸다.
-뭐, 일단 연출은괜찮았지요.
-레슬링과 테러조직. 두 단어로 대표되던 초중반부의 황당한 요소들을 어떻게든 회수한 것도 칭찬할 만하고.
-등장인물들이 뭣도 없이 죽어나가던 전개도 뭐, 한 치 앞을 예상치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참신하고 훌륭한 시도였다고 하기에는 비슷한 느낌으로 완벽에 가까운 복선 회수율을 자랑하고 있는 『삼세번』이 있었고, 반대로 신나게 까기에는 핵폐기물이 듣고 화를 낼 수준의 『초라한 런 치』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극 자체도 초중반은 졸작, 중후반은 수작이라는 의미불명의 구성에 연출도 워낙 실험적인 구석이 많다보니 모두가 애매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완결이 나봐야 뭘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현석 스타일의 마이너 카피 같은 느낌이니까요.
대부분은 결말에 따라 극 전체의 평가가 변동할 거라고 여겼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 남은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곽태영 감독은 한 번도 실망스러운 결말을 낸 적이 없습니다. 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썩어도 곽태영. 그라면 분명 마무리 부분엔 뒤통수를 후려쳐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힘내주십시오, 여러분!”
물론 곽태영 감독 본인도 그런 기대에 보답하려는 생각이 충분했다. 최소한 결말만큼은 충실한 여운을 만들려는 건 모든 감독들의 당연한 욕구였다.
하지만 뭐, 늘 그렇듯 문제가 생겼다.
“……”
“……”
“…뭘 봐요?”
…이거 글러먹은 거 아닌가?
서로를 서늘하게 쏘아보는 두 작가와 배우 하나를 본 곽태영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