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46)
모든 작가 팀을 고용한다.
이 새롭고도 대담한 계획에 김철 선배는 말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안 돼, 이 자식아!]“아니, 뭔가 이유를 좀 설명해주셔야 저도 납득을 할 거 아닙니까?”
[아무튼 내 말들어라! 그건 미친 짓이야!]“으음.”
나는 뺨을 긁적였다. 뭐라고 말을 붙여보지도 못할 정도로 발작에 가까운 태도였다.
나는 이래봬도 김철 선배를 신뢰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답답한 표정으로 가슴을 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태도는 좀……
아마 내가 김경숙 작가와 서수현 작가의 사이를 잘 다뤄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내가 애써 반론했다.
“아예 하나만 골라서 둘의 원한을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까딱하다간 원한이 문제가 아니야. 네가 뒈진다고!]‘예?’
진실미가 한가득 담긴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죽는다는 건 PD로서, 혹은 막장의 구도자로서 못써먹게 되어 먹는다는 뜻일 것이다. 김철 선배쯤되는 감독의 눈에는 세 팀을 동시에 굴려서 나올 주화입마의 결과가 이미 보이는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간 선배를 아직도 과소평가해왔는지도 몰랐다.
[아니, 내 말은 물리적으로…….]무어라 말하려던 김철 선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런 걸로 하자. 아무튼그건 안돼. 알겠냐?]“…일단알겠습니다.”
나는 애써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영원의 시대』의 마지막화가 나오기 전까지는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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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답이 없군요.”
비슷한 시각, 마지막촬영만을 남겨둔 곽태영 감독은 집에서 허허로이 웃고 있었다.
물론 딱히 즐거워서 짓는 웃음은 아니었다.그의 손에는 『영원의시대』최종화의 대본이 들려 있었다..
“기가 찰 정도로 따로국밥이니 원.”
웃어서 얼버무리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절로 두통이 났다.
결국 그간 서예린과 유지아의 사이는 눈곱만큼도 회복되지 않았다. 아니, 되레 서수현과 김경숙의 대리전으로까지 발전하며 더욱 험악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있었다.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서 릴레이 소설이라도 쓴 것 같은걸요.”
뒤에서 흝어보던 그의 아내는 이렇게 평가했다. 훌륭할 정도로 장면마다 분위기가 바뀌어대고 있다는 얘기였다.
문외한조차 이렇게 느낀다면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지간한 곽태영도 곤란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를 짚은 채 고민에 잠긴다. 같이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내가 문득 생각난 듯 조언했다.
“한 명을 내치고 다른 한 명이 쓰게 하는 건 어떤가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영원의 시대』란 물건은 두 작가가 섞여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위화감이 적잖을 겁니다.”
그리고 뭐, 곽태영쯤 되는 인물도 김경숙이나 서수현의 원한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판과 드라마 판이 사실상 따로 논다고는 하지만 뭐가 어떻게 돌아올지 알겠는가.
점찍어둔 배우를 가로채는 정도는 크게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고.
“그럼… 아예 둘 다 내치고 당신이 처음부터 다 쓰는 건요?”
“이거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곽태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한 편이면 몰라도 지금껏 멀쩡히 시나리오가 끌어온 물건을 마무리하기엔 곽태영은 그리 뛰어난 문필가는 못 되었다.
아내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작가들을 버릴 수 없고 둘 다 데리고 가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게 사이가 나쁜데도.”
“…뭐, 그렇습니다.”
그런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곽태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러면 뭐,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요?”
“예?’
그녀는 곽태영이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예 싸움을 더 붙여버리죠.”
“……?”
곽태영은 뭔가 낯선 걸 본 듯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이 더욱 컸다. 위화감도 잠시, 그는 이내 이어질 말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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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시대』는 초기부터 전체적으로 엉망진창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난장판에서도 군계일학이라 할 정도로 시청자들을 기가 차게 만든 요소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배움을 청한 레슬링. 그리고 갑작스레 등장해 갑작스레 사라진 테러조직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배경이 재난물, 이어 아포칼립스물로 바뀌며 갑자기 중대한 복선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수많은 위험을 겪으며 지친 주인공 일행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그 내부는 개개인을 짓밟고 생존이란 명목으로 모든 것을 갈취하는 실로 부조리한 것이었다.
거기에 납득하지 못한 일행들은 끝내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고 살인멸구를 기획한 정민회에게 많은 식구들을 잃는다.
시어머니는 최후의 엘보 드롭 – 가장 감동적인 씬 1위와 가장 황당한씬 1위를 동시에 차지한- 과 함께 장렬히 사망하고 여주인공도 중태에 빠지며 일행은 말그대로 풍비박산이 난다.
『영원의 시대』의 최종회는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간신히 세력을 수습하고 결사의 각오를 마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대본을 다시 쓰고 싶습니 다.”
곽태영 감독이 두 작가에게 말했다.
“지금은 씬 배분이 조금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사실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곽태영은 서예린의 예의바른 시선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주인공 일행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은 유지아 작가님께서. 테러 조직, 즉 정민회의 시점에서 나오는 일은 서예린 작가님께서 각각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파트를 아예 나누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작가는 가만히 서로를 쏘아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유지아였다.
“전 괜찮아요. 잘 쓸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다행이군요.”
곽태영은 한숨을 쉬었다.
실로 다행이었다. 이 분위기 속에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소화제를 하나 더 먹어야 했을 테니.
곽태영은 이걸로 괜찮을까 스스로 자문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오산이 있다면 도리가 없지, 하는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그리고뭐, 역시 오산은 있었다.
“허……?”
그건 그렇게 부추겨서 나온 결과물이 정말이지 의외로 괜찮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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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수가 없군요!”
『영원의 시대』의 마지막화를 다시 돌려 본 이현석이 탄성을 내질렀다.
“과연 곽태영 감독님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제법이군』김철 역시 못마땅하긴 했지만 무어라 말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나온 완결편은 그 정도의 완성도였던 것이다. 실제로 비판적이던 평론가들조차 마지막에는 마지못해 칭찬을 보탤 정도였다.
-그간의 스토리텔링에는 아무 많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종화가 완벽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연출도, 대사의 분위기도 절반으로 나뉘었다. 놀랍게도 『영원의 시대』는 지루하게 사정을 설명하는 대신 완전히 별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각자의 정당성을 증명해냈다.
-필요악과 위선. 과연 누가 악당인가? 무엇이 증오의 연쇄를 만드는가? 화면은 그저 보여줄 뿐이 다. 하지만 시점에 따라 그 답은 극단적으로 나뉠 것이다.
“으하하하!”
하지만 그런 평론가들, 그리고 어쩌면 『영원의 시대』의 제작진보다 더욱 기뻐 날뛴 건 이현석 이었다. 그는 유지아와 서예린이 또 한 걸음 나아갔다는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늘 부리부리한 눈도 지금은 산타클로스처 럼 휘어져 있다.
“조금 걱정했지만 역시 대단하군요! 저랑 있을 때의 지아나 서 작가님이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완성돕니다!”
[음.]“곽 감독님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걸까요?”
김철은 대충 그 방법을 알 것 같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의 뛰어난 오성은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짐작하게끔 했고, 그것을 아는 게 이 건방진 후배에게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도록 만들었다.
이 일은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김철은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아, 너무 궁금해서 문자로 물어봤습니다.”
[하지 마, 이 자식아!]”예?”
이현석이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김철은 되레 팔짝 뛰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미친놈이 누군데……!
제발 보지 마라.
그렇게 기원한 것도 잠시, 머잖아 곽태영에게서 몹시 성실한 답변이 도착했다. 이현석은 꼼꼼히 답장을 읽고 문득 표정이 환해졌다.
“과연! 경쟁을 붙인 거군요! 역시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글렀군.
김철은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석은 신이 나서 보여주기 바빴다
“보십시오, 선배님. 선배님께서는 저번에 절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마는, 결국 이렇게 결과가 보여주지 않습니까?”
[….]“지아와 서작가도 경쟁으로 이만큼 성장했거늘 세 팀을 붙인다면 오죽하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세계구급 명작을 위한 최단 루트가 분명합니다!”
…그야 명작은 되겠지. 네 모가지가 멀쩡할까가 문제지.
하지만 이현석의 꼴을 보아하니 더 이상 설득이 통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너 알아서 해라.]김철은 쿨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일단 일이 결정되자 이현석은 늘 그렇듯 기가 찰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하여 현 프로젝트는 제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인재가 필요한 바, 가능하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제작을 진행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
모두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특히나 한껏 찡그려진 서수현 작가와 김경숙 작가의 표정은 가히 볼 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존 테일러마저 조금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뭡니까?”
“미안합니다만 현석, 미국에서 수십 명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라고 해도 그 안에 쇼러너나 크리에이터는 있게 마련입니다.”
머리가 셋인 독수리가 날기나 하겠냐는 뜻이었다.
거기에 이현석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럼 독수리를 세 마리로 만들면 되겠지요.”
“예?’
“저는 작가 팀을 셋으로 나눠 기획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호오, 그것은……”
여기에는 존 테일러도 턱을 쓰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아예 별개의 라인을 구성해 경쟁을 붙여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협력할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이디어와 시나리오의 채택을 놓고싸우는 입장이 될 것이다.
까딱하다가는 원수지기 십상일 관계다.
‘그걸 자신의 손으로 제어할 자신이 있다는 건가? 역시나군!’
이현석과 달리 그런 관계에 빠삭한 존 테일러는 그의 호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스태프 구성에 짜게 쓰시지는 않겠지요?”
“물론입니다, 하하!”
음.
존 테일러의 수긍과 달리 서수현과 김경숙의 태도는 여전히 못마땅한 것이었다. 콜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흐르던 와중 손을 든 쪽은 유지아였다.
반색한 이현석이 물었다.
“오. 그래. 뭐가 궁금하냐?”
돌아온 질문은 그에게 있어서는 조금 뚱딴지 같은 것이었다.
“이기면 오빠 사단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어… 뭐?”
“여기에서 두드러진 쪽이 이기는 거잖아요. 그럼 이현석 사단 대표로 인정해주시는 건가요?”
“음…….”
이현석은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최악의 단점은 너무도 대범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 걸 굳이 되물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글쎄… 뭐, 그렇겠지.”
이현석은 애매하게 긍정했다.
그 한 마디의 위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서예린, 유지아 양 작가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리고 서수현과 김경숙도 자세를 고쳤다.
그전까지의 애매한 분위기는 간 곳이 없고 전장마냥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김철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이현석의 지뢰 매설은 그걸로도 그치지 않았다.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 가능하면 기획에는 이도나 씨와 설이도 포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그래도 얼마 전 이현석 사단 기사 건으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던 둘마저 경쟁에 끌어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이 녀석 혹시 자살하고 싶은 건가?
김철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