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53)
나는 재차 서수현 작가와 김경숙 작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분 모두 고생하십니다. 별 일 없으셨습니까?”
앞서 민재 녀석에게 힘을 실어준 건 어떻게든 이 둘을 컨트롤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번의 험악한 모습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던 까닭이었다.
이번 기획의 화약고라고 하면 이 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네, 뭐……”
“아무일도 없었지요.”
두 노작가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 봐도 숨기는 게 있는 태도에 나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입장상 추궁하기도 뭐한 일이었다. 지아와 서예린 작가가 어떻게든 잘 달래가며 처신하기를 바랄수밖에.
그저 주위를 둘러보며 한 마디 다짐을 더 받았다.
“노파심입니다만 사원(私怨)이 아니라 기획의 공익을 위한 논의를 부탁드립니다. 그걸로는 아무리 뜨거워져도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네!”
“…아니, 지아 너 말고.”
“아… 헤헤.”
혀를 살짝 내밀고 멋쩍어하는 모습에 나는 웃고 말았다.
뭐, 이 정도면 저기 계신 원로 작가님들께는 충분한 경고가 되었으리라.
[틀렸어… 초점이 완전히 틀려먹었다고…….]하지만 김철 선배는 어째선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나는 무시했다. 걱정이 되어 말을 걸면 되레 성질을 내는 꼴이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오늘 온 건 두가지 전달사항이 있어서입니다.”
헛기침을 한 뒤 본론으로 들어 갔다.
“하나는, 드디어 방영 일정과 목표 화수가 잡혔다는 겁니다.”
“와아.”
“드디어……”
지아의 천진난만한 감탄과 서예린 작가의 진지한 표정이 어우러졌다. 서작가는 아무래도 국내 드라마판과는 다르니 여러모로 문제가 있을 거라 여기고 긴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뭐, 내려온 조건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방영 시작은 내년 4월, 화수는 22화 전후가 될 예정입니다.”
“풀 시즌이라고요? 처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도나가 곤혹스러운 기색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 안에서 유일하게 해외 시장이 굴러가는 꼴을 아는 위치다보니 이게 범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체험판이라고도 불리는 파일럿 에피소드.
그게 괜찮으면 제작되는 프론트 13.
다시 그 13편이 반응이 좋으면 주문되는 백 9
미국드라마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세 개의 과정을모두 거쳐야 22편 전후의 풀 시즌이 된다. 웹플릭스는 일반적인 방영매체가 아니기는 하지만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처음부터 풀 시즌 오더가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개는 큰 인기를 끈 작품의 후속편처럼 검증되었을때 받는 특혜에 가까운 것이었다.
바꿔 말해, 우리 기획은 그런 작품들과 비슷한 정도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존 테일러씨가 사자분신으로 날뛰고 계신다는 모양입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이쯤 되면 이제 자제해라 어째라 할 수 있는 수준도 못 되었다.
“예산도 더 타내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고요. 풀 시즌이 확정되었으니 까딱하다간 우리 돈 천억원 가까운 규모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억……”
서수현 작가와 김경숙 작가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백전노장인 둘도 질릴 정도의 금액이니 다른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살짝 동요한 얼굴들을 둘러본 내가 뺨을 긁적였다.
“딱히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었는데요.”
한국 드라마 판에서야 경악할 만한 액수이지만 회당 제작비 수백만 달러도 종종 보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물론 웹플릭스 입장에서는 제 3세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쪽의 투자로는 놀라운 레벨이긴 하지만.
…글렀다. 애써 그러려니 하고 있는 나도 이게 얼마인지 잘 실감이 안간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밝게 했다.
“자자, 그런 표정들 짓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충분히 미국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을 믿는 저를 믿어주십시오.”
“네.”
“…설이 넌 좀 더 긴장하고.’
“긴장 중이에요.”
“뻥 치네.”
이마에 주름을 만들어 보이길래 꾹꾹 눌러주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방글방글 풀어지는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분위기는 풀린 것 같았다. 어째 시선들은 좀 묘했지만.
“뭐, 그런고로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졌으니 참고해 주십사 말씀드렸습니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후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드릴 얘기는……”
말하기 전 살짝 고민이 되었다.
오면서도 몇 번을 고민했다. 과연 이 얘기를 여기서, 그것도 내 입으로 직접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 이런 황당한 얘기는 차라리 대수롭지 않게 말해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마침 어른들도 모여 있는 상황이고.
나는 마음을 정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여러분에 관해 묘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에 대해섭니다.”
“…묘한 소문이요?”
“예. 최도정 사장님께 여쭤본 결과로는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세력이 있다는 모양입니다.”
꼬리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뭐, 십중팔구는 원광훈 사장 쪽이겠지.
도통모르겠는 건 ‘누가’보다는, ‘왜’ 쪽이었다. 대체 이런 황당하고 무의미한 소문을 퍼뜨려서 얻을 게 뭐란 말인가?
나는 머리를 벅벅 긁고픈 심정을 애써 감추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면부정하고 있으니 부디 동요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대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기요,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뭘 어떻게 알아요?”
이도나가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요새 싸울 일이 적어서 그런지 어째 울분이 쌓인 투다.
“무슨 소문인지,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를 말해줘야 그렇구나 할 거 아니에요.”
“…퍼지고 있는 건 인터넷 등지입니다. 꽤 조직적으로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내용은요?”
“그건……”
음, 이것 참 말하기가 그렇군.
나는 민망한 심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지 원.
“황당한 얘기긴 한데… 염문(艶聞) 입니다.”
“…뭐라고요?”
“저랑 여기 계신 분들 사이가 그렇다는 부류의 소문이란 얘깁니다.”
“……”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모인 이들은 서로 기묘한 시선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나와 비슷하게 몹시 황망한 심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니, 백 보 양보해서 이도나나 서예린 작가는 그렇다 쳐도 지아나 설이는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엮어서 소문을 내기로한 건 어디 사는 멍청이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내가 헛기침을 했다.
“너무 황당한 얘기긴 한데, 어쨌거나 모르고 접하시면 당혹스러우실 수 있는 얘기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죠? 하고 동의를 구하자 다들 맞장구를 쳤다.
“…황당하네요, 감독님.”
“마, 맞아요, 오빠! 저는 그런 거 안썼어요!”
“저, 저도……”
“어떤 놈이 하는 건지 보이면 대가리를 깨놓기로 할게요.”
다행히 다들 별반 동요한 기색은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걸 걱정했던 나는 내심 안도했다.
솔직히 지아가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조금 한강 다리에 가고 싶어 졌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 던 중, 가장 폭력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이도나가 살짝 눈치를 보았다.
“근데, 별로 궁금하진 않은데요… 누가 가장 위에요?”
“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보충설명이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하는꼴은 영 요상했다. 눈병이라도 났는지 눈을 힐끔거리면서 몸은 어째 꽈배기처럼 꼬고 있다.
목소리에도 살짝 비음이 섞였다.
“왜, 있잖아요. 소문이 퍼지는 속도라거나 믿는 숫자라거나……”
…아니, 그게 왜 궁금한데.
눈살을 찌푸리며 타박하려던 나는 시선이 몰리는 바람에 움찔 놀랐다.
모두 진지한 얼굴이었다. 심지어는 뒤에 있는 노작가들마저도.
…이런 거에도 자존심 싸움이 있는 건가? 나는 턱을 긁적이다가 적당히 대답하기로 했다.
“홍지호씨입니다.”
“……”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 있는 이들을 죄다 합쳐도 홍지호와 나를 엮어대는 비율에 비하면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무시무시해라.
“저……”
농으로 한 소린데 어째 반응은 무진장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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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 게이야! 틀림없어!”
곽태영 감독이 평온한 저녁식사를 즐기던 중 다짜고짜 쳐들어온 이도나가 외쳤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게이라고!”
“어, 저……”
“이 내가 쪽팔린 거 참고 어필하니까 나오는 이름이 홍지호? 그거 달린 남자 맞아?!”
그것도 흉험한 기세로 거품까지 물면서까지 성토하는 모양새다.
이 새롭고도 무시무시한 의혹에 대해 곽태영이 어버버하는 사이 그의 아내는 쿨하게 대답했다.
“진정하렴,도나야. 게이들도 그거 달려야 할 수 있잖니.”
“지금 그 소리 하는 게 아니잖아, 이모!”
“이이랑 같이 목욕탕 갔을 때가 있었다는데, 증언으로는 꽤 대단했다고 하더라.”
“눈곱만큼도 안 궁금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도나는 궁금증이 드는지 흘끔흘끔 눈치를 살폈다. 곽태영은 문득 자리가 몹시 불편해졌다.
방에 들어가 있을까 고민하던 사이 아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좀 하렴. 애초에 정말로 그 쪽이었으면 너를 좀 더 편하게 대했을 거라고생각하지 않니?”
“지금 이 따위로 대하는 것보다 더?!”
“내 말은, 이설씨나 유지아작가 대하듯이 했을거라는 말이야.”
“…….”
“그 둘한테는 쉽게 스킨십 하잖니? 너한테는 손끼리도 안 닿게 조심하면서.”
당장 오늘 낮의 광경을 떠올린 이도나는 침묵했다. 사실 이현석이 이설과 유지아를 대하는 태도와 이도나와 서예린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는 가히 태평양 수준의 간격이 있었다.
그 안의 카테고리에서 ‘애’로 분류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도 해도 될 것이다. 유불리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무튼 게이야… 게이가분명해……”
조카가 쉬이 진정할 것 같지 않자 이모는 진정하라고 주스를 따라 건넸다. 알코올이 2% 섞인 마법의 주스를 마신 이도나는 이내 술주정을 늘어놓고는 곯아떨어졌다.
침대에까지 옮겨놓고 매니저를 부른 아내는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한참을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만 이내 길게 탄식했다.
“정말이지 누굴 닮아서 이렇게 허당인지 원.”
어쩐지 꾸민 듯한 말투였다.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이 감독님께는 말씀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딱히 말해봤자 뭐라고도 생각 안 할 걸요. 이현석 씨한테 얘 이미지가 지금 어떤데요.”
씁쓸한 기색에 우울한 얼굴. 조카를 걱정하는 이모라기보단 딸을 걱정하는 엄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여간에, 내가 그간 얼마나 조언을 했는데……”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던 곽태영도 그런 표정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뭔가 돕고픈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방에 들어가려는 아내를 잡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제게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이젠 당신한테 부탁할 면목도 없는 것 같아요.”
“부부 사이에 가릴 면목이 어디 있습니까?”
어째 입장이 역전된 것 같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참을 사양하던 아내는 끝내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한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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