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61)
막장드라마의 제왕 261화
31장 0시를 향하여(13)
한편, 이현석이 온갖 곳에서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는 사이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금수도 은혜를 알거늘 어찌 이현석 사단의 좌장인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길게 탄식하는 이. 그는 최근 개과천선하다 못해 아예 사람이 변한 것 같은 장연철 PD였다.
장연철은 최근 자신의 긴 커리어에서도 유례없는 실적을 남긴 『초라한 런치』를 막 마무리한 참이었다.
한때 이현석의 『삼세번』, 곽태영의 『영원의 시대』와 경쟁하던 『초라한 런치』는 둘이 차례로 종영되자 그대로 시청층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리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적수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최종회 시청률은 무려 24.6%.
대박이라봐야 두 자릿수 대에 간신히 걸치는 수준이던 종편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할까, 세월을 아득히 건너 뛰어버린 것 같은 결과였다.
당연히도 갖은 곳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ㅅㅂ 내 눈!!!!
-이딴 걸 방영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손해다! 방통위는 대체 뭘 하고 있냐!!
-내가 이런 소리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짜 말세인 듯;;
-명대사 :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가 결혼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밖에 없는데ㅋㅋㅋㅋㅋ
-그래서 삼녀는 결국 누구 고른 거임? 양아버지? 배다른 오빠?
└아들
└미친; 혈연 없는 아들?
└일단 없다고는 하는데 사실 모름. 검사지도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고.
└???????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강림한 것 같은 반응에 장연철은 평온하게 반응했다.
심지어는 인터뷰도 했다.
“조금 황당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을 진솔하게 그렸습니다. 그것이 시청자분들께 사랑받게 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이 뻔뻔한 반응에 TVM 시청자 게시판은 욕을 하려는 네티즌들에게 점령당했고, 서버는 어마어마한 트래픽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갔다.
여기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이 TVM, 나아가 모회사인 CV E&M 전체였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회의실에는 당혹감만이 감돌았다.
이쯤 막장이 되면 아무리 그래도 이현석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거야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치기에는 장연철의 실적이 화려하다 못해 압도적이었다.
모두가 눈치를 보던 중 한 팀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어찌 됐든 지금은 장연철 피디에게 사운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저거에?”
“저거에요!”
아직까지도 『화답하라』 시리즈로 시작되는 TVM의 부흥기는 오지 않았다. 불과 5퍼센트대 시청률도 감지덕지하며 살던 이들은 24퍼센트를 보자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가로막는 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들이었다. 팀장들은 딱히 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게 뭔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래, 암만 그래도 이런 걸 두 번 하는 건 아니야.”
“아, 참. 오늘 『초라한 런치』로 벌어들인 금액의 총계가 나왔습니다.”
양심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반대하던 다른 팀장들도 숫자를 보고 나자 그대로 손목이 돌아갔다.
모름지기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던가. 돈이 전부였다.
“장연철 피디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의 보배입니다!”
“망해도 돈이 있이 망해야 다들 알아주는 겁니다, 본부장님!”
“…….”
앞다투어 그렇게 외치는 팀장들을 보는 본부장은 심히 울적해졌다. 보배라니.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말인가.
하지만 그로서도 다른 방안은 생각나지 않았다. 본부장은 쪼들리는 살림에 도박에 손을 대는 사람이 된 기분으로 마지못해 기획을 승인했다.
장연철이 『초라한 런치』에 이어 곧장 다음 기획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은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저 녀석들 제정신인가? 방통위가 카드를 몇 개나 빼들었는데……!”
“회사 전체에 정신감정이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다들 입을 떡 벌리는 가운데 장연철만이 홀로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이 몸이 너무 뛰어난 것도 죄구나. 빗자루라도 들고 은인을 도와야만 할 시점에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갈 곳 없는 그를 받아준 곳이 TVM이니 장연철로서는 필요로 한다면 의리를 다해야만 했다. 의견을 청한 이현석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몹시 울적한 기분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히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만남이 있었다.
사색에 잠기며 공원을 걷던 중 절로 눈이 가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장연철은 저도 모르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실례하겠습니다.”
“예? 예…….”
“저는 TVM에서 근무하는 장연철 피디라고 합니다.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건 장연철답지 않은, 일종의 직감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잠시 당황하던 그가 대답했다.
“저는 프리랜서 피디인 방을찬이라고 합니다.”
“아, 그 대왕오징어… 아니, 곽태영 감독님을 보좌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 * *
“…그렇군요.”
전화기를 잡고 있던 내가 멍하니 수긍했다.
“분명 잘 맞으셨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피디님이십니다. 저희는 마치 생이별한 형제와 만난 것 같았습니다!
장연철 PD와 방을찬 PD는 순식간에 의기투합했다는 모양이었다. 너무도 그럴 것 같은 상황이라 나는 무어라 지적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도 이현석 피디님을 도울 길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을찬 PD는 놀라운 의견을 내 장연철 PD를 깨우쳐주기까지 했다는 모양이었다.
“무엇입니까, 그것이?!”
“모름지기 달은 주변이 어둡기에 더욱 밝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장 피디님께서 혹평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면 이현석 피디님과 같은 시기에 후속작을 발표하시면 됩니다.”
“……!”
“그럼 이현석 피디님의 신작은 상대적으로 호평 받게 될 것이고 장 피디님의 막장드라마도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장연철 PD는 크게 기뻤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이 환하게 개는 것 같았다’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혜안이십니다!”
그는 곧바로 방을찬 PD에게 새 기획의 합류를 권했고, 갈 곳이 마땅찮던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것이 내게 있어 이 이상 두려울 길이 없는 태그가 이루어진 사연이었다.
심지어 장연철 PD는 곧장 방영일정을 『서풍』 근처에 박아 넣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는 되돌릴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간혹 이 피디님의 드라마를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화 너머의 장연철 PD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후반은 명품이지만 초반은 막장이라고 말이지요. 생각하건대 이들은 진정한 막장을 본 적이 없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저와 방을찬 피디가 함께하는 한 그런 소리는 눈곱만큼도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전화기 너머로 가슴을 쿵 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곱만큼도 달갑지 않다고 할까, 어느 쪽이냐면 끔찍하기까지 한 호의였다.
실제로 옆에 있는 김철 선배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망했어… 이번에도 망했다고……!]지독한 실패의 트라우마가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이번에도 늘 그렇듯 시작하기도 전에 망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전까지와는 달랐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나는 상호간에 일정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미련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더 이상 신경을 쓰거나 고민하는 건 정신건강에 악영향만 끼치겠지. 차라리 뭐라도 대책을 생각하는 것이 경제적일 것이다.
묵묵히 전화기를 내려놓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그러자 어째선지 김철 선배가 눈을 끔벅였다.
[…현석아.]“왜 그러십니까?”
[그… 너무 절망적이라 정신이 나간 거 아니지?]내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을 고민해야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다만…….]머리를 긁으며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두기를 몇 번, 김철 선배는 간신히 말을 골라낸 것 같았다.
[너 요즘 좀 이상하다?]“제가요?”
[그래. 좀 심하게 침착해졌다고 할까.]“저로서는 잘.”
[구체적으론 그… 에어리즈 막내 걔랑 만난 날부터.]“으음.”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건 본의가 않은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제법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김철 선배는 내가 설명할 때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온화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스스로를 돌아보는 걸 놓칠 때가 있고요.”
[…예전부터 계속 물어보려다 관뒀다만, 그 자뻑은 대체 어디의 누구 의견이냐?]“제 안사람이요.”
눈을 반개하던 김철 선배는 순간 말문이 막힌 기색이었다.
나는 살짝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뭔가 있을 때마다 안사람은 제 손을 꽉 잡고는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했거든요.”
[…음.]“이게 처음엔 애를 달래는 것 같아서 우스꽝스러웠는데, 하다 보니 제법 효과가 있더군요.”
물론 내게는 반성할 거리가 없었지만- 아내도 술에 취했을 때만 아니면 인정했다- 간혹 지나치게 다급해지거나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을 경우 다시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뒤에는 신기할 정도로 침착해지고 보다 나은 방법이 떠오르곤 했다. 아내는 대개 그걸 듣고 나서야 손을 풀어주었다.
이번에도 뭐, 비슷한 경우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리는 더없이 맑아져 있었다.
“저는 지금껏 너무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막장도나 환경 변화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는 마음먹은 대로 우직하게 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음.]김철 선배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늘 그렇듯 내뱉지는 않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간의 잘못도 좀 고쳐볼까 합니다.”
김철 선배가 눈을 끔벅였다.
[잘못? 무슨 잘못?]“그간 제가 아무래도 마음이 급하다 보니 1팀… 그러니까 지아 쪽의 비교적 과격한 의견으로 기울어진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걸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말인즉슨?]“예.”
내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서예린 작가님 쪽에 힘을 팍 실어서 균형을 맞춰야겠지요.”
[…….]어째선지 김철 선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뭐시기냐, 별로 좋은 일이 될 것 같지 않은데.]“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냐.]* * *
다시 MBS 사장실.
측근이 가져온 사진을 내려놓은 원광훈 사장은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눈을 내렸다.
기묘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별 건 아니고… 여기 사진 속의 이도나 말이야. 묘하게 이쪽 방향을 살피는 것 같지 않나?”
“예?”
“카메라 의식할 때처럼 말이야.”
눈을 깜박이던 비서가 헛웃음을 지었다.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긴 했지만 그 잔재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요. 그럼 알고 찍혀줬다는 얘기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