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63)
막장드라마의 제왕 263화
32장 합구필분(合久必分)(2)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위즈톤 엔터테인먼트 측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풍』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며…….
-이전 『인생캠프』 편집분에서 나왔다는 이도나 씨의 발언도 재차 조명될 수밖에 없는……
갑작스러운 이도나와의 스캔들. 이는 당연히 이현석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간 둘 사이에 크고 작은 소문은 있었고, 그랬기에 공개된 사진의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얘기였다.
당장 『서풍』의 스태프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조차 이미 사실을 전제하고 있었다.
“모레 촬영 일정이 취소되었다는군.”
“으음, 그렇게 넉넉한 일정이 아닐 텐데 말이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까딱하다간 이도나 씨 하차할 텐데 빈자리 누가 채우냐고요.”
평소라면 그저 시끄러울 뿐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몹시 애매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어간 프로젝트, 그 안의 주연배우와 PD 사이의 염문이다. 혹시 모를 악영향을 대비한 도의적인 하차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경우 이도나를 대체할 만한 배우가 쉽게 어디서 굴러올 리도 없었다.
“이거 큰일이구만.”
“그러게요…….”
상대적으로 이런 일에 관대한 해외 출신 스태프들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는 촬영 전후로 남녀 주연들이 스캔들이 터지는 경우 가십거리는 될지언정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좋은 노이즈 마케팅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감독과 배우여서는 아무래도 김이 빠질 확률이 높았다.
대부분이 하차까진 아니더라도 비중의 조정을 예상하는 이유였다.
“오, 좀 더 자제를 고려에 넣을 수 없었을까?”
“둘 모두 우리 나이로는 20대지.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주어지는 시기라고.”
“하하, 리 감독이 부럽군!”
그렇게 사방이 동요로 들썩거리는 가운데 유일하게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있었다.
사실 그건 차분함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체념에 가까웠다.
“저질러 버렸나…….”
곽태영 감독은 한숨을 쉬며 쥐고 있던 신문을 접었다.
“정말 이게 옳은 일일까.”
몇십 번이고 고민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아내는 그에게 처조카가 되는 이도나와 이현석의 사이를 중재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곽태영은 이현석의 솜씨에 심취해 있기도 했고, 인격적으로도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해 왔다.
하지만, 서서히 좋은 사이를 쌓아나가게 하기엔 라이벌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고민하는 듯하던 아내는 끝내 지금의 극단책을 꺼내 들었다.
“비열하고 못된 짓일지는 모르지만요. 저는 제 조카에게는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주고 싶어요.”
“……이해합니다.”
고개를 숙인 아내가 안타까워 찬동한 곽태영이었지만 현 상황에는 아무리 그래도 미심쩍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계기로 이어지게 하는 건 너무한 게 아니겠는가.
‘아니, 처조카…… 이도나 씨도 최고의 신붓감이 아닌가. 좀 솔직하지 않은 게 문제겠지만 이 감독이라면 괜찮겠지. 나처럼 행복할 거야.’
애써 정당화를 해보아도 기분은 영 시원치가 못했다.
곽태영은 애써 그런 기분을 떨쳐 버리려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남은 게 거의 없어 오전 중에 끝나고 말았다.
울적한 기분으로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내려갔다. 커피를 순식간에 한 캔 비우고 자판기에서 다시 한 캔을 뽑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시간을 때우던 중이었다. 멀찍이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한가해 보이는군요, 곽 감독.”
“아…….”
곽태영은 멈칫하며 자세를 정돈했다. 김경숙 작가가 마땅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만에 뵙습니다.”
“재밌는 인사군요. 서로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늘 얼굴은 보고 살지 않나?”
“으음…….”
그에게 있어서는 김경숙은 영 어려운 상대였다. 일단 언제나 이유도 모를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으니만큼.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곽태영으로서는 예전부터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혼생활은 즐겁나요?”
“예? 예, 물론입니다.”
“다행이네요. 우리 소은이를 위해서도.”
“…….”
김소은. 김경숙 작가의 늦둥이 딸이자 현재 한 종편의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곽태영과는 꽤 친한 사이였는데 김 작가는 그것이 항상 못마땅한 듯 보였다. 그렇다고 거리를 두면 더 짜증을 낸다는 점이 무진장 불합리했다.
눈살을 찌푸리는 곽태영을 보며 김경숙 작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 처, 참 청순가련하고 착한 사람이지요?”
“예, 제게는 많이 과분한 사람입니다.”
각을 잡고 말하는 곽태영을 김경숙은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더기가 끓는 오물을 보는 눈 같기도 했다.
“댁이 그렇게 둔하니까 뒤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거지요.”
“예?”
“……됐어요.”
길게 한숨을 내쉰 김경숙이 표정을 바꿨다.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
“지금 사태,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죠?”
“…….”
“역시나, 그 애가 꾸밀 것 같은 짓이네요.”
곽태영은 너무도 놀라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본 김경숙 작가는 별반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주억였다. 이미 예상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지금쯤 체크메이트를 놓았다고 좋아할진 모르겠는데, 내가 있는 이상 유지아 작가가 똑같은 방법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해줘요.”
“그…… 저로선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말은 당혹해하는 곽태영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이어졌다. 사람이라기보단 전령(傳令)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리고 애초에 그쪽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고도.”
“……간과한 것 말씀입니까?”
곽태영이 눈을 깜박였다.
“똑같이 둔감하더라도 종류가 다르다는 거예요.”
“예?”
“이 피디는 불도저에요. 이거다 싶으면 대각선 위 방향으로라도 끝까지 달려가 버리죠. 그런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여줄 거란 기대라니 우습지도 않네요.”
하긴, 한두 번 얼굴이나 본 사이로는 그런 정도겠죠, 하고 조소를 머금는다.
“내기해도 좋아요. 절대 그 아이가 생각한 결과는 안 나올 테니.”
* * *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둘뿐인 사무실에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사실 당장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뒤에 있는 김철 선배가 연거푸 말리는 바람에 그만뒀지만.
늘 딸의 일이 되면 이성을 잃는 김철 선배치고는 꽤나 색다른 태도다 싶었다.
……뭐, 색다른 태도라고 하면 맞은편의 사람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
음, 나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았다.
나는 오기 전 적어도 쓰레빠, 심한 경우는 사무실 옆의 등기구로라도 얻어맞을 각오를 굳힌 참이었다. 그 이도나의 성격 아닌가. 뭘 던지든 그러려니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이도나는 그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인상은 찌푸려져 있어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긴 했지만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무릎을 움켜쥔 손이 작게 떨리고는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나는 전봇대로 두들겨 맞는 것보다도 더한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쇼크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나?
“……나라도 언제나 날뛰지는 않거든요?”
“아뇨, 이번엔 그러셔도 됩니다.”
내가 얼른 말했다.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뭔지 모르겠다.
차라리 평소처럼 지랄발광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 테니.
하지만 이도나는 여전히 애매한 어조였다.
“……딱히 그쪽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닙니다. 입장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야 반쯤 물러났다고 해도 나는 이도나가 소속된 기획사의 대표였다. 당연히 그에 맞는 책임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걸 다하지 못한 거고.
뭐, 그걸 떠나 현 상황에 누가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는지만 따져봐도 명백한 얘기였다.
제아무리 연차와 입지가 쌓인 배우라고 해도 스캔들은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홍지호조차 나와의 소문을 적극 활용하며 철벽을 치고 있지 않던가.
……곧 쓸모없어질 예정이지만.
그쪽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상황을 수습해야만 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서야 뭣도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력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말씀하셨던 대로 책임도 지도록 하지요.”
“……책임.”
“예.”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눈을 깜박이던 이도나가 살짝 주저하며 물었다.
“책임이란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이도나 씨가 제게 원하는 걸 말씀하십시오.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딱히 제한을 두진 않겠습니다.”
내가 곧장 대답했다.
차라리 이도나가 길길이 날뛰었다면 이 정도까지 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무래도 너무 심각해 보였다.
필시 본인에게도 적잖은 쇼크였던 것이리라.
“그러니까…… 그쪽이 뭐든 해주겠다는 소린가요?”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상관없습니다.”
“…….”
이도나가 가만히 이쪽을 보았다. 있을 수 없다는 걸 보았달까, 몹시 혼란스러운 것 같은 눈동자였다.
이내 어째선지 살짝 험악해진 표정으로 입을 연다.
“방송에 나가서 머리 박고 사과하라고 해도요?”
“예.”
“이제부터 제 시다바리 다 하라고 해도요?”
“예.”
“……피디 그만두라고 해도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음, 그건 약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한 2년 정도가 지나면 괜찮을 것 같군요. 그쪽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지만.
뭐, 죽어도 PD를 그만두는 건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는 꽤 난이도가 낮은 소원이었다.
……사실 나부터가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째선지 이도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이도나 씨?”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도나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보였다.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줘요.”
“예?”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에 내가 되물었다.
“나랑 ……줘요.”
“죄송하지만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정중히 말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항상 기차통을 삶아먹었는지 의심이 가던 이도나다. 그런 사람이 이런 태도로 나오다니, 내 죄가 얼마나 크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말을 꺼낼수록 이도나는 더더욱 울상이 되어갔다.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도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눈을 치켜떴다.
“그러니까, 나랑……!”
흉험하던 기세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이도나는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진짜! 못 해먹겠네!!”
나는 순간 눈을 끔벅였다. 이도나가 갑자기 책상에다 자기 머리를 들이박았던 것이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재차 들이받는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나는 황망하게 입만 벌리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아니, 뭘 하시는 겁니까? 미쳤습니까?”
“놔둬요! 이게 내 스타일이니까!!”
“대체 어느 세상의 스타일입니까?!”
너무한 상황에 돌아버리기라도 했나?!
내가 뜯어말리자 이도나는 아무리 봐도 피멍이 든 것 같은 이마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도 벌게진 게 당장 내 목을 따버릴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설마하니 진짜로 죽어달라는 부탁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저기요, 이현석 씨.”
“예, 예?”
내가 속으로 벌벌 떨고 있는데 이도나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내가 꾸몄어요.”
“……예?”
내가 멍하니 눈을 끔벅이는 사이 이도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