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70)
막장드라마의 제왕 270화
32장 합구필분(合久必分)(9)
스캔들이 터진 뒤 어언 15일, 『서풍』 측은 수많은 가랑비를 맞으면서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당혹해하고 있는 건 실상 일을 터뜨린 쪽이었다.
“…그냥 버티겠다고? 이 상황을?”
MBS 총무부 비서실.
원광훈 사장에게 전권을 넘겨받고 일을 꾸민 측근- 사장비서 겸 비서실장은 내심 황망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보내온 정보를 아무리 검토해 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현석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전개.
그간 원광훈을 지지하며 여러 지저분한 일을 맡아온 비서진들 역시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장님.”
“맞습니다. 이쯤 되면 긍정이면 긍정, 부정이면 부정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름지기 대중들의 관심이 가장 쏠리는 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의 의혹이다. 피 붙고 광 붙어 천억 가깝다는 규모의 기획을 끼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해법도 무척이나 간단하다는 뜻이었다. 일단 사실이든 거짓이든 결과가 나오면 여론은 순식간에 식어버리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현석은 그 간단한 걸 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군요.”
“맞습니다. 딱히 열애설 인정하기 곤란한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도나가 명성 있는 배우긴 하지만 당연히 아이돌은 아니었다. 연차도 충분히 쌓여 있었고 ‘국민 여동생’이니 뭐니 순진한 이미지로 팔아먹는 쪽과도 거리가 있었다.
타격이 있더라도 클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인정할 거 빨리 해버리고 상황을 수습하는 게 보통 아닙니까? 수백억짜리 기획인데.”
“그렇지…….”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기에 상사인 원광훈 사장도 지금 하는 짓을 ‘애들 장난’이니 ‘의미 없는 차장(車將)’이니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현석은 침묵을 지키며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 영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째서일까.
곤혹스럽게 얼굴을 마주 보던 부하들 중 하나가 말했다.
“저…….”
“뭔가?”
“혹시 모를 이도나에 대한 하차 여론이 무서운 게 아닐까요? 둘이 사귀는 중이라고 한다면…….”
정답이었다. 올바른 근거에 도출된 결론이었으니 다른 이들도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본래 바른 말이 바르게 들리는 법이 드문 법이었다. 특히 비서실장에게 있어서는 영 웃기지도 않는 소리로 들렸다.
그는 노골적으로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 말도 안 되는 얘기군.”
“예? 하지만…….”
“상대는 이현석이야. 모르겠나?”
“……?”
“이현석이란 말이야.”
실장은 그 말로 충분한 설명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흉계와 심모원려로는 저 원광훈 사장을 뛰어넘는 괴물- 그것이 바로 그가 아는 이현석이란 존재였던 것이다.
1년 만에 KBC 이사회를 거꾸러뜨리고, 더욱이 2년간 숨죽인 뒤 한순간에 SBC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인물.
그토록 장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괴물이 정에 휘둘릴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어리석은 부하들은 쉬이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경계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현석이 대단한 놈이긴 해도 일개 피디 아닙니까?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웹플릭스로 간 건 놀랍긴 해도 딴에는 국내 영향력을 포기하고 도박수를 건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좋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하나같이 실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들 모두 원광훈 사장의 최측근이 될 만한 뛰어난 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래서야 어떻게 사장님의 측근을 맡을 수 있겠냐!”
하지만 뭐, 그 대장이 헛다리를 짚고 있어서야 별 의미는 없었다.
“…….”
고개를 숙인 부하들에게 실장은 쯧쯧 혀를 차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 거드름을 피우고는 있지만 대다수가 원광훈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현재 KBC 상황은 어떻지?”
“…이사회가 쓸려나간 뒤 안기식 사장의 지지는 압도적입니다. 공영방송인 입장에서 더 이상의 컨트롤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 사실상 방통위의 손을 거의 떠난 셈이야.”
실장이 혀를 찼다.
“이현석이 완벽하게 1승을 거둔 게 아니냔 말이야.”
“하지만 그건 순전히 이현석이의 공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비서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반론했다.
“그놈이 계기는 줬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칼을 갈고 있던 안기식 사장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럴 수 있겠지. 나도, 원광훈 사장님도 그래서 녀석을 잘못 판단했었고.”
실장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지금 SBC를 보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어?”
“그것은…….”
“다들 SBC는 상업방송이라고들 했지만 그 진정한 무서움을 아는 놈은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실장이 부하들과 눈을 마주쳤다.
“웹플릭스가 어마어마한 돈을 살포하고 있고, 거기에 환호하는 주주들이 한가득이다. 이사회도, 모기업도 발이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
“…….”
“최도정 사장의 시대가 온 거다. 그 양반을 외통수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지 불과 반년도 안 되어서……!”
실장이 책상을 쿵 쳤다.
“물으마. 그 웹플릭스를 누가 끌어들였지? 이것도 우연이라고 할 텐가?”
…뭐, 그것도 사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전문용어로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오해하기 쉬운 상황에도 비서들은 유능함을 드러냈다. 그들은 쉬이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냉정한 자세로 분석에 나섰다.
“우연…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노렸다기에는 SBC에 간섭하는 웹플릭스의 움직임이 조금 굼떴습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3개월의 타임렉이 있었는데, 그만큼 앞당겼다면 SBC를 완전히 회를 쳐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많이 이상합니다.”
누구나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도 상사의 압력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 여간하지 않은 뚝심이자 유능함이었다.
원광훈 사장의 주변에는 실로 인재가 가득했다.
“웹플릭스는 이미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걸로 압니다. 마침 이현석과 뜻이 맞아 논의하던 중 어쩌다 보니 이현석의 친정인 SBC와 연결되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나온 결론이 결국 진실을 꿰뚫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거다 싶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연결은 둘의 생각보다 그리 강고하지 못할 겁니다. 책임론으로 몰고 가면 이현석을 회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완벽하고 모범적인 조언이었다. 이현석과 김철이 들었다면 가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실장은 그런 매서운 추리를 헛웃음을 지으며 흘려 넘겼다.
너희들도 아직 멀었구나, 뭐 그런 얼굴이었다.
“멍청하기는, 지금이 과연 어중간한 타이밍이라고 보나?”
“예?”
“생각들 좀 해보지. 만약에 이현석이 몇 년 전에 웹플릭스를 끌어들이며 지금 한 짓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말이야.”
“그야…….”
별 차이 없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말하려던 비서 한 명은 순간 곰곰이 생각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아…….”
“뭐야, 왜 그래?”
동료들의 추궁에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그는 순간 실장을 돌아보았다.
“종편! 설마 이현석은 종편까지도 계산에 넣은 겁니까?!”
“…뭐?”
모두가 황당한 얼굴을 했지만 실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송구합니다…….”
“주변은 머저리들밖에 없는 것 같군. 자네가 해설을 좀 해보지.”
시선이 집중되었다. 비서는 고개를 몇 번이고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모두가 이현석을 심히 경시하고 있었다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현재의 SBC 사태 말입니다. 이전의 공중파… 방송 3사의 세상이었다면 이런 일로 방송국 하나를 뒤집어엎을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지?”
“방송 3사는 같은 상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 ‘봐주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을 테지요.”
이전, 원광훈 사장은 KBC와 MBS의 방통위와의 유착관계를 들어 ‘형제’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과언이라고 해도 아차 하면 방통위에서 두 곳을 견제할 수 있는 체제임은 틀림이 없었다.
SBC 역시 모기업인 건설회사가 제2주주인 공기관의 눈치를 봐가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 상전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결국 방송 3사는 전부 방통위에 매여 있다고 봐도 틀리진 않은 셈이었다.
KBC 사태는 여론을 등에 업은 상태였으므로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 SBC는 얼마든지 지원사격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본래라면 그리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불청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었다.
“지금,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나온다면 종편들이 물고 늘어질 겁니다. 무조건!”
최근 자리를 잡기 시작한 종합편성채널은 기존 배경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도 각자 거대한 뒷배를 두고 있었으며, 어떻게든 시청률 파이를 빼앗아올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이들의 ‘상전’은 방송 3사와 같은 방통위가 아니었다. 물어뜯어서 덩치를 키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현석의 절묘하기까지 한 타이밍에 비서는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종편 개국 직후는 안 됩니다… 그 때는 종편들이 약할 테니까요.”
“음.”
“그렇다고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여서도 안 됩니다. 그때는 기존 3사와 모종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철저하게 의도된 거라면-
비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현석은… 이미 2년 전에 종편들이 SBC 저격을 거들어줄 최적의 타이밍을 계산했다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계속하게.”
“이어 그 타이밍에 SBC를 치기로 결정했고… 그를 위한 무기로 웹플릭스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걸 위해…….”
비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실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
“『벌칸의 몰락』을 반억지로 미국에서 발표하고, 『삼세번』에서 김경숙 작가나 곽태영 감독과 같은 이들과 교류를 맺고, 각종 인재와 자재를 동원했지. 모두 이 타이밍에 웹플릭스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야.”
실장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놈은 무려 2년 전의, 지금이 SBC를 뒤집어엎을 적기가 될 거라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어. 성공할 거라고 믿고 적절한 타이밍에 방통위에 선전포고까지 했지.”
“…….”
“그래, 다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지?”
아무도 운 좋은 꼴통이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서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모두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몇 명이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미치광이…….”
“…괴물이군요.”
암만 봐도 이현석 같지는 않은, 본인이 들으면 그건 누구냐고 되물을 법한 이현석β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실장이 깍지를 낀 채로 물었다.
“그럼 이현석이 지금 스캔들에 대해 무대응인 이유가 그런 시시한 게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희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괴물이 그런 바보 같은 이유로 매사를 결정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비서실장은 성공적으로 휘하 비서들의 지능지수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대개 그와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놈의 의도가 뭘까요?”
아까와는 달리 아무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생각이 나는 게 이현석β의 짓이라기에는 모두 너무나도 뻔한 것들이었던 까닭이었다.
보통 고지능자들이 그렇지 않은 상사를 만났을 때 ‘이런 뻔한 걸 물어볼 리가 없다’는 생각에 확대해석하다가 고문관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장은 지금 그런 비효율적인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튼 뭔가 획기적인 무언가를 찾아보려던 이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혹 반대가 아니겠습니까?”
“반대?”
“대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대응한 결과가 지금인 게 아닐까요?”
상당히 심각한 부류의 개소리였지만 다들 이미 맛이 가 있었다. 일단 그럴듯한 의견이 보이자 다들 지지를 보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저는 그 정도로 신중한 이현석이 그런 사진을 찍히면서도 몰랐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고도 찍혀줬다는 건가?”
“아마도…….”
개소리 포인트가 추가되자 다들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즉, 이현석은 일부러 스캔들을 낼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어째서지?”
“그야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스캔들을 내는 경우는 다른 시끄러워질 상황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
모두가 눈을 끔벅이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실장이 대표로 물었다.
“이현석이 숨길 만한 거, 짐작 가는 게 있나?”
“…있습니다.”
“뭐라고?”
모두가 놀라는 사이 부하가 조심스럽게 사진을 하나 내밀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용인 네버랜드였다. 하지만 이현석과 나란히 찍혀 있는 인물은 조금 달랐다.
실장은 순식간에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잘 안 보이는데, 이거 암만 봐도 다른 여자 아니야?”
“그렇습니다. 워낙 철저히 가려 신원은 특정하지 못했습니다만…….”
“찍힌 날짜는?”
“그것이…….”
부하가 머뭇거렸다.
“이도나와 데이트하기 하루 전입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실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아주 그레이트 씨발놈 아녀?”
아무도 대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