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80)
막장드라마의 제왕 280화
33장 결실을 맺다(6)
다시 몇 주가 지났다.
“아직입니다. 아직 대중들이 익숙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현석은 포기하지 않고 시청자들이 『서풍』에 숨겨진 막장스러운 설정들을 깨달으리라는 데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럴 기미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몇 주간 이현석의 노력은 지금까지의 그 무엇과 비교해도 확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할 따름이었다.
“빌어먹을……!”
김철은 울부짖는 이현석을 보며 재차 확신을 굳혔다.
[역시, 이 녀석은 이미 경지에 올랐군.]김철은 이현석이 오른 경지를 두고 내심 견(見)과 관(觀)의 차이를 깨닫는 거라 정의하고 있었다. 일견 심오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해 나무를 보면서 숲까지 같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른 결과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이쯤 되면 굳이 머리를 굴려 고민하지 않아도 몸이 무의식중에 ‘어색하지 않은’ 쪽을 골라 화면에 담게 된다.
말인즉슨 마음 가는 대로 촬영을 이어가도 고칠 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며, 감독으로서는 일절에 올랐다고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는 얘기였다.
[…물론 목표가 막장드라마가 아니라면 말이지만.]김철이 땅을 치는 이현석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그거였다.
일단 그렇게 된 이상 제아무리 황당한 설정을 짜고 조악한 반전을 꾸며도 ‘있을 법한’ 물건이 나오고 만다. 이현석판 『영원의 시대』를 만든다면 『햄릿』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얘기다.
이래서야 무슨 수를 써도 막장이 될 리가 없었다.
끝내 이현석은 『연극처럼』 당시의 반성을 살려 최후의 수단을 시도하기도 했다.
“제기랄, 그러면 트로트입니다! 복고풍 트로트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하고 기대한 다음 날. 사방에는 이게 아닌데, 싶은 평가만이 가득했다.
-이현석 피디가 대단한 건 언뜻 보기엔 애매한 소재인데 그게 완벽하게 퍼즐로 맞아든 거라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이도나가 연기하는 채연이라는 캐릭터가 참 악독하고 기분파적인 캐릭터거든요? 무지무지 비호감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이걸 잘 부르지도 못하는 트로트를 남몰래 부르게 하는 것만으로 희석된다는 거죠.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을 거다, 키워준 조직의 언니가 자주 불렀을 거다- 제대로 설명이 나오지 않으니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이게 대놓고 포장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시청자들이 직접 정당화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사실 이런 확답을 피하는 연출이야말로 이현석 특유의…….
해외에서도 호평이 잇따랐다.
이제 이현석은 그 트로트까지 동원해도 일시적으로도 막장도를 높일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큭……!”
그리고, 이현석이 그렇게 필사적인 삽질을 거듭하는 와중 장연철 PD는 점점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연히도 이 놀라운 물건은 수출을 하지 못했다. 다들 제정신이 박혀 있었으므로 당연했다.
하지만 딱히 뮤튜브 등에서의 저작권 통제도 적극적이지 않았으므로 – 대체 어떤 체면으로 하냐는 여론과 폭탄은 당연히 규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맞섰다 – 암암리에 외국에 퍼져나가는 건 막지 못했다.
그리고, 홍보 하나 없이 국제무대에 진출한 이 드라마는 그대로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Aaah! 살려줘! 날 살려줘!
-피해자가 또 한 명 늘었군 🙁
-대체 왜 이런 걸 본 거야?
-바게트 놈 하나가 『서풍』에 못잖은 명작이라고 추천했다고! 개자식! 호로새끼! 평생 달팽이나 먹으라지!
-멍청하긴ㅋㅋ 라이미가 사칭한 거겠지ㅋㅋㅋ
-어리석은 친구, 범인은 보슈야. 모르겠어?
그간 세계의 막장드라마라 하면 미국의 소프 오페라나 남미의 텔레노벨라 정도였다. 이들은 높은 수위와 꼬인 관계를 통해 막장도를 높이고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화려한 요리사』는 이미 그 부문의 정점인 디에고 로드리게즈의 모든 것을 통달한 상태였다.
뿐인가? 그간 이현석이 시도했던 수많은 요소들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장연철 본인의 경험과 시각이 화룡점정을 그려넣고 있었다.
홍어회와 수르스트뢰밍과 두리안을 넣고 식초에 잘 버무리면 어떤 맛이 날까.
그 궁극의 조합의 결과가 서서히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NOOOOOOOOOOOOOO!!
-AHHHHHHHHHHHHHHHHH!!!
-Wadu hek!!!!!
그야말로 가는 곳마다 괴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이 무시무시한 나라에 대해 무작정 경악을 토해냈다.
-한국은 대체 뭐 하는 지옥도야! 이 시대 최고의 작품과 저딴 물건이 동시에 탄생하다니!!
-그들은 『서풍』으로 세계에 공헌한 대가를 받기로 했어
-그게 바로 분단이 되어 있는 이유지 😀
-웃기지 마. 『서풍』이 최고의 작품이긴 하지만 저런 테러를 용납할 이유는 못 돼!!
-오늘만큼은 눈이 없는 스티비 원더가 부러운데 D=
-감히 장애인을 모욕하다니! 하지만 네 말이 맞아!
그리고, 불행히도 사람들은 대개 혼자 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실컷 괴로워하고 난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게 세상에서 존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이상 나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런 극진한 호의(?)로 주위에 열심히 홍보와 낚시질을 이어갔다. 자막은 순식간에 15개국의 언어로 달렸고, 그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반응은 끝내 끔찍하리만치 단순한 결과로 돌아왔다.
『‘서풍’ 7화의 국내 방영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42.3%,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4%입니다』
『‘서풍’ 10화의 국내 방영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46.2%,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3%입니다』
『‘서풍’ 13화의 국내 방영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50.1%,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2%입니다』
훌륭하기까지 한 등차수열이었다.
그간 이현석의 작품들은 라이벌의 존재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현재 그 라이벌은 유례가 없는 괴물이었으며 『서풍』 못잖은 영향력으로 세계에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상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뻔한 것이었다.
“훗.”
마의 시청률 50%.
2000년대 초반까지의 공중파 전성기 이후 다시는 나올 수 없으리라 회자되던 수치가 끝내 달성되고 주변이 축제 분위기로 접어든 사이, 이현석은 허무한 듯 웃었다.
“선배님.”
[그래, 드디어 유서를 쓸 생각이 든 거냐?]“물론입니다. 어떤 용지에 쓰는 게 좋을까요?”
* * *
내가 기꺼이 유언장을 쓰겠다고 나서자 그간 권유하던 김철 선배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사실 어째선지 조금 기겁한 눈치였다.
[그… 진심이냐, 현석아? 아니지?]“왜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벌써 절반이 지나갔는데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걸?”
내가 껄껄 웃자 김철 선배의 얼굴은 어째선지 더욱 푸르스름해졌다.
그간 나에게는 나름의 확신과 성과가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아쉽게 몰리는 바람에 실패한 것이었으며, 어느 정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서풍』으로 궁극의 막장드라마를 만들 각오로 도전한 것이었고, 실패하더라도 여세를 몰아 마지막 도전을 할 수 있다고 퇴로를 본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쌓아둔 경험치는 한 번에 제로, 아니 마이너스로 돌아가고 만 것이었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데 뭐라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 마음을 바로 가져야 한다고 본 기기는 사용자에게 조언합니다.』
“아니, 네 말이 옳았다. 진리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지.”
『…….』
어째선지 항상 나를 놀려먹던 메시지창도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점멸하며 심기가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반면에 나는 어쩐지 세상이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인생 맨손으로 와서 맨손으로 가는 것인데 뭘 그리 집착하며 살 필요가 있겠는가?’
갈 땐 어차피 한 번에 가는 것을!
그저 함부로 내 와이… 강아라에게 손을 대려 한 방통위원장의 목이나 치고 가면 그걸로 족할 터였다.
[…그거 하나는 안 잊어버리는구만.]“지상명제이니까 말입니다.”
껄껄 웃은 나는 이후 더 이상의 발버둥을 포기했다. 적어도 『서풍』은 막장으로 만들 수 없으며,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장연철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겸연하게 인정하기로 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차기작에 대한 확실한 구상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김철 선배와 메시지창이 가만히 내 눈치를 살피는 사이 몇 주가 더 지났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휴일.
현관문을 쾅 소리와 함께 열고 쳐들어온 괴한이 있었다.
“뭡니까?”
내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가운데 이도나가 이를 꽉 문 채 말했다.
“가요.”
“예?”
“이제 못 참겠으니 여행 가자고요, 어디든.”
“……?”
* * *
이도나는 다짜고짜 세부나 푸켓, 나아가 괌으로 가자고 우겨댔지만 모두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당장 모레부터가 다시 촬영이었다.
“왜 안 돼요? 당일치기 다녀오면 되잖아요!”
“억지 좀 그만 부리십시오… 비행기 타다 하루 다 가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는, 그… 갔다 오는 거 자체죠!”
…또 뭐에 꽂혀서 이러나. 나는 길게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 달래가며 소파에 앉혀놓고 냉커피를 건넸다. 일단 진정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도나는 5초 만에 모두 마셔버리고는 재차 우겨대기 시작했다.
“가자니까요!”
“…정히 여행을 가고 싶으시다면 동해안이나 한 바퀴 돌고 오지요. 차 준비할 테니까…….”
“그러니까, 어디가 됐든 이 나라에서 떠나자고 말하는 거예요!”
나로서는 황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늘 하는 변덕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나도 슬슬 그런 것과 진심 어린 말을 구별할 정도는 되었다.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는 눈은 심지어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다.
“…뭔 일인지 묻고 싶은 건 나라고요.”
“예?”
“아무튼 어디든 가지 않으면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줄 알아요!”
이도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결사적으로 쏘아보는 게 결코 포기할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복잡한 기분에 이런 억지까지 들어주고 있자니 슬슬 골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손사래를 치며 선을 그었다.
“알아서 하십쇼. 오늘은 어머니도 안 계시니 혼자 시간 때우기 적적할 겁니다.”
“…안 계신다고요? 어머님이?”
하지만 그 말은 어째선지 이도나에게 잘 모를 반응을 낳았다.
눈을 깜빡이는 이도나에게 내가 적당히 대답했다.
“뭔 옛날 친구 만난다고 저녁에나 들어오신답니다. 여섯 시간은 더 걸리겠지요.”
“여섯 시간.”
“예.”
이도나는 입을 닫았다. 조금은 정신을 차렸나 싶어 나는 반색했다. 이대로 돌아가 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섯 시간…….”
다시금 중얼거린 뒤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새로운 거라도 발견한 듯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기색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려나? 잘은 모르지만…….”
“……?”
“생각과는 조금 다르긴 해도… 아니, 어쩌면 한쪽 집에서 하는 쪽이 정석일 수도 있고…….”
“이도나 씨?”
한동안 내 말도 무시하고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이도나는 끝내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들었다.
어쩐지 모종의 각오가 선 것처럼도 보였다.
“알았어요. 그냥 안 나가도 되니까 잠깐 이리나 좀 와봐요.”
“음?”
갑자기 얌전해진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렇게 했다. 영 이해가 안 가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배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님?’
또 어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