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88)
막장드라마의 제왕 288화
33장 결실을 맺다(14)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언니? 돌아가셨다고 기사도 나왔었잖아요!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어, 응. 그게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고, 반쯤 죽다 살았다고 해야 하나…….”
“뭔 소리예요, 그건?!”
“어, 그러니까…….”
이설은 살아생전 제 매니저가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눈은 홉떴고 어깨는 들썩였으며 목소리는 천장쯤은 뚫어버릴 기세였다. 평소 능글맞던 언니조차 여기에는 조금 기가 죽은 것 같았다.
“…그래서.”
도무지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질 것 같지 않자 결국 이설이 중재에 나섰다.
“두 분은 대체 무슨 사이신 건데요?”
“글쎄, 딱히 무슨 관계랄 것까지는 없고…….”
“팬이야!”
“…응, 뭐.”
카페 주인이 뺨을 긁적였다. 이설은 더욱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다.
“언니, 연예인 지망생이었지만 데뷔 못 했다면서요.”
“데뷔를 못 해? 누가?”
펄쩍 뛴 건 강주연이었다. 타락한 불신자를 보는 광신도쯤 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너 『셜록』 모르니? 인디 밴드의 전설 『셜록』 몰라?”
“글쎄요… 여자 예명으론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밴드 이름이거든?!”
대충 차우림과 임윤아 정도의 관계구나, 하고 이설은 대충 납득했다. 아무튼 저 강주연이 침을 튀기며 열변할 정도면 어지간한 수준은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뭐, 그렇다면 문제가 있었다. 이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간 거짓말하신 거예요?”
카페 주인이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비슷한 거잖니. 방송 출연도 변변히 못했고. 어릴 적 현석이나 너도 못 알아봤잖아.”
“저기 펑펑 울고 있는 열성팬 분이 계신데요?”
“음…….”
그녀는 애써 말을 빙빙 돌렸으나 결국 이설의 싸늘한 눈빛과 강주연의 감격스러운 시선을 이기지 못했다.
사정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어릴 적 시작한 밴드가 몇 년 만에 간신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밴드 『셜록』은 강행군에 돌입했다.
하지만 본래 몸이 약하던 한 멤버는 여기에 따라가지 못했고, 끝내 건강을 크게 해치는 바람에 혼수상태에까지 빠졌다는 거다.
…뭐, 요약한다고 일어난 일 자체가 단순해지지는 않았다.
“죽었다는 건 오보기는 했는데, 결론은 비슷했거든. 이래저래 때를 놓쳐서 오래는 못 살 거라고 그러길래 그냥 냅두기로 했지.”
“…….”
멋쩍게 웃으며 하는 말에 강주연은 침묵했다. 멋모르고 화를 내던 스스로를 자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설은 늘 그렇듯 심드렁했다.
“여태껏 잘만 살아 계시잖아요.”
“그건 뭐… 일종의 기적 같은 거라고나 할까.”
“…….”
“아니, 진짜라니까? 그런 눈으로 봐도 어쩔 수 없어! 의사도 기적이라고 했다고!”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에 이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카페 주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다가 있는 돈 없는 돈 그러모아 카페나 차려본 거야. 적당히 적적하게 보내다가 말년을 정리할까 했거든.”
계획은 생각대로 잘 풀렸다. 사실 안 풀릴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까, 웬 재수 없는 알바생 하나가 들어와서 훈수를 두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보너스 같은 소리를 할 거면 장사할 생각이나 좀 갖춰 두고 하시지요, 이 게으름뱅이 인간아.
-…….
신나게 깽판을 치며 손님을 잔뜩 끌어온 이 알바생은 이내 사방팔방을 쏘다니며 일을 저지르고 다녔고, 심지어 몇 년 후에는 어디서 귀염성 없는 여자애까지 하나 주워왔다.
암만 그래도 여기에는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귀염성은 아직까지도 없다니까.”
“…….”
“기껏 그 녀석한테 물려준 기타도 어디다 팔아먹고 말이지.”
“물려줬다고요?!”
이설의 눈치를 살피던 강주연이 순간 기겁했다.
“설마 그거 언니가 현역 때 쓰시던 기타였어요?!”
“뭐, 옛날부터 쓰던 싸구려 연습용이긴 했는데… 일단 그렇긴 하죠. 현석이한테는 대충 중고샵에서 구했다고 했었지만.”
“세상에! 물건의 가치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 나한테 팔았더라면……!”
이현석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던 강주연은 이설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고서야 간신히 입을 닫았다.
평소라면 그걸로 끝이었겠지만 계속 눈치를 보며 궁시렁거리는 꼴이 어지간히도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카페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 돌고 돌아서 다시 설이 너한테 갔잖니? 그리고 현석이한테 돌려줬고.”
“…네.”
“아, 그 과정에 매니저님도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처, 천만에요! 말 놓으세요, 언니!”
“그래도 될까?”
“그럼요!”
강주연이 벌벌 떨었다. 이설이 보기엔 참으로 색다른 광경이었다.
아마 이현석도 동의할 터였다.
“…그런 줄 알았으면 한 번 핥아보기라도 하고 설이 줄걸.”
“뭐라고 했니?”
“아뇨, 아무것도.”
강주연은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애써 표정을 정돈했다.
“…어쨌거나, 다시 뵐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속인 것 같이 되어서 면목이 없네. 설마 아직까지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당연하죠.”
간신히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거 아세요? 저는 언니 같은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매니저를 시작했어요.”
“…나 같은 사람?”
“언니는 메이저로 올라가려는 강행군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거잖아요. 그럴 필요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었어요. 제 담당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었고요.”
“어쩜… 이 무슨 인연이니…….”
카페 주인은 그 말에 무척 감격한 것 같았다. 강주연 역시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글쎄.
둘은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이설은 생각이 좀 달랐다.
그도 그럴 게, 요즘은 좀 나아졌기로서니 그간 강주연이 온갖 삽질을 거듭하게 만든 원흉이 저 언니라는 소리가 아닌가.
장본인은 잊어버린 것 같지만 강주연이 이설의 연기대상을 위해 배동기와 손을 잡고 이현석의 뒤통수를 후려친 게 고작 3년 전이었다.
‘매니저 언니의 ‘최선’은 대개 방해밖에 되지 않는데.’
“맞아, 그렇게들 영향을 주고받는 건지도 몰라.”
이설이 불만을 삼키고 있는 사이 카페 주인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당장 나도 말이야, 현석이가 오지랖 넓게 사람들 돕고 다니는 걸 보니 느끼는 바가 있더라고.”
“아, 그래서 우리 설이를 돌봐주신 거군요?”
강주연은 더욱 감동했지만 이설은 누가 누굴 돌본 건지,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실제로 이 말에는 카페 주인도 조금 켕긴 듯 헛기침을 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가끔 사람도 돕고.”
“어떤 사람이요?”
“그러네, 이를테면… 몇 년쯤 전에 되게 죽상을 한 여자애가 들락거린 적이 있었어. 예쁘장하니 좀 통통하던 아이였는데.”
당장에라도 뛰어내릴 것 같이 위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말을 걸자 몹시 까칠한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고.
보통이라면 무시했겠지만 그녀도 이미 이현석의 영향으로 꽤나 오지랖이 넓어져 있던 상태였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다.
결국 몇 주 만에 아이 쪽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저는 제가 너무 싫어요.
-왜?
-언니들에게 민폐밖에 안 끼치니까요. 저만 아니었다면 우리 그룹은 더 잘 되었을 텐데.
…그룹?
이설은 눈을 깜박였다.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얘긴데.
-좀 더 노력해 볼 생각은 없어?
-아뇨, 이제 한계라고 생각해요.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없겠지만.
당시 주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등을 퍽퍽 쳤다.
-에이, 너무 인생 끝난 것처럼 굴지 마! 까짓 연예인 못해도 살 길은 생기게 마련이라니까?
-…그렇겠죠?
-그럼! 혹시 남자친구 사귀어본 적 있어?
-저 아이돌인데요, 일단.
-요즘 그런 거 성실하게 지키는 애가 어디… 음, 됐다. 그럼 은퇴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 소개시켜줄까?
소녀는 의심쩍은 눈빛을 했다. 하지만 주인은 이렇게 땅을 파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 특효약인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일단 설이부터가 그랬지 않던가.
그 녀석 성격에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도 없고 말이지.
-…됐어요.
-그러지 말고. 요즘 인상이 좀 험악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제법 미남이야. 쪼오금 답답하긴 하지만 성격도 괜찮고.
-됐다니까요.
-에이, 듣기라도 해보라니까?
그녀는 다시금 한참을 매달린 끝에 소녀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소녀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대체 뭐 하시는 분인데요?
-음…….
연예계에 학을 뗀 애한테 그쪽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주인은 적당히 말했다.
-그냥 회사 다녀.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고.
-대단하네요. 전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튼 만나보기라도 해.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잖니?
그녀는 며칠을 꾸준하게 설득한 끝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냈다.
하지만 뭐, 결국 이 만남이 실제로 성사되는 일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침 그쪽 그룹 맏이가 드라마로 확 떴거든! 그리고 믿어지니? 그게 현석이 드라마였어!”
“…….”
“『연극처럼』 이후로 그쪽 그룹… 에어리즈였던가? 거기도 잘 나가는 모양이더라. 은퇴 얘기도 쏙 들어간 것 같고. 다행이긴 한데, 나로서는 좀 아쉽기도 하달까.”
현석이랑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카페 주인은 그렇게 투덜거렸다.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언니를 보며 이설은 침묵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서늘하기까지 한 음영이 드리워졌다.
밝혀졌다, 드디어.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만악의 근원이.
“…언니였네요.”
“어, 뭐?”
“언니가 주연이 언니한테 헛바람을 불어넣고, 그 여자를 붙여놓기까지 한 모든 원흉이었던 거군요.”
적은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
뭐라는 거야, 카페 주인이 아연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설은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병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일촉즉발로 변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응원은 못 해주실망정 그건 아니잖아요……!”
“어… 설아? 아얏! 뭐야!”
“솔직하게 맞으세요. 제가 얼마나……!”
“어, 야! 미쳤니? 그만해! 내가 대체 뭘 했다는 거야!”
“뭘 했는지도 모르는 게 진짜 문제인 거예요!”
“언니! 설이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너 일단 환자거든?!”
날뛰는 이설로 인해 병실은 한동안 난장판이 되었다.
1인실인 게 다행이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 이현석은 유지아와의 대화를 끝내고 – 혹은 방치하고 –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설이한테 얘기를 들어봐야겠군요.”
[…….]여상한 어조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현석이 의아한 얼굴로 옆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혹시 진짜 머저리랑 살았는가 궁금해서.]당장에라도 욕지거리를 퍼부을 것 같은 표정에 이현석은 웃고 말았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