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96)
막장드라마의 제왕 296화
34장 드라마의 제왕(5)
『보상으로 ‘제2의 삶’-‘원래 세계선으로의 귀환’이 선택되었습니다.』
“…….”
한동안 나는 그 한 줄만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건 제가 목표를 달성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네가 죽은 원래 시간대 말이다.]“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 선배는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내가 굳이 다른 고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헛기침을 하고는 애써 목소리를 꾸미는 모습이다.
[뭐, 목표를 달성할 즈음이면 미리미리 인사나 하러 다니라는 소리다. 미련 남지 않게끔.]“…….”
[하기야 남은 기간 안에 될까가 더 문제지만… 왜 그러냐?]“아뇨, 조금. 이상한 게 떠올라서 말입니다.”
놀랍기도 했다. 허무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그와 동시에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그건 그간 내가 만들어온 드라마의 배경들과도 관련이 깊은 것이었다.
『연극처럼 살다』, 『연구일지 속 보석함』, 『삼세번』, 그리고 『서풍』.
내가 그간 만들어온 모든 드라마들은 신기할 정도로 모두 평행세계, 혹은 다중우주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었다. 마치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려는 것처럼.
-혹은, 의심하게 하려는 것처럼.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엔딩?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법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노파심일지 몰라도 물어보는 덴 수고가 들지 않았다.
“한 가지 묻고 싶은데.”
『말씀하십시오, 사용자.』
“내가 ‘성공’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치면, 지금 여기는 어떻게 되지? 그대로 남아 있나?”
뭐? 김철 선배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뭘 그런 걸 다 묻냐는 표정이었다.
대답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었다.
『답변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없던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답변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선배는 아연한 얼굴로 굳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 * *
지난 한 달간 나는 『서풍』을 수습하면서 평행세계와 다중우주의 존재에 관해 재차 조사했다.
내가 또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삼세번』 시절 연을 맺은 국내 교수들을 포함해 해외 여러 곳에서도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뾰족한 답은 없었다. 거품우주도, 멤브레인도,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마저도 아직은 가설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관측하지도 못하는 걸 증명할 수단이 어디 있겠나.”
“오,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습니다!”
도리어 김경숙 작가의 말처럼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은 ‘실험’이 가능한 코펜하겐 해석의 쪽이라고 한다.
관측과 동시에 결과는 하나로 수렴한다.
이걸 세계론까지 확장하는 건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지만, 결국 두 세계가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적어진 건 분명했다.
『답변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메시지창의 단호한 대답도 내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양쪽 모두 존재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까지 대답을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보통 대답을 피하는 사람들은 말하고 싶지 않은 구석이 있게 마련이었다.
“뭐, 저게 사람은 아니겠지만요.”
[…….]김철 선배는 최근 굳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너,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냐?]“아니, 없어진다면 좀 억울하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전 제 나름대로 이것저것 좀 더 낫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공중파들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KBC도 그렇고, SBC도 최도정 사장이 잘 해줄 테고, MBS도 원광훈 사장이 물갈이되며 신나게 뜯겨먹었으니 눈치라도 좀 보지 않겠습니까. 왜 개혁에 성공했는데 나빴던 때로 돌아가야 한답니까?”
[넌 그런 데 관심 없잖냐.]“제기랄, 절 너무 잘 아시는군요.”
그 말대로였다.
내게 보다 중요한 건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서예린 작가는 최근 기력이 넘쳤다. 요즘 상황에 당혹스러워하긴 해도 『서풍』에서 일정 부분의 자극을 받은 건 분명했다. 이후 어떤 작품을 만들던 예전처럼 세태에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
김경숙 작가 역시 열성적으로 공부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전 세상처럼 ‘요즘 젊은 것들은…’ 하는 인터뷰를 쏟아내며 ‘악플러’로 정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떠오르는 사람은 많다.
성재 녀석도 지금이 나아 보이고, 본래라면 슬슬 은퇴를 생각했을 이도나도 그렇다. 강주연 매니저는 의외로 괜찮은 구석이 있었고, 에어리즈 멤버들도 요즈음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 막내조차도.
-그리고, 뭐.
“지아가 살아 있지요.”
[…….]“저는 그 녀석이 그렇게 죽은 역사 따위를 인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비관, 자살, 그리고 도작.
당시 기사로 그러려니 읽던 키워드들을 이제 그렇게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 녀석을 잘 알았다.
만약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살아야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아니, 제기랄! 그렇다고 뭘 어쩌겠다는 거냐?]김철 선배가 목소리를 높였다.
[목표 달성을 일부러 실패하기라도 하겠다고?! 그러면……!]“뭔진 몰라도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지요. 압니다.”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은 그냥 알거지가 되어 고독사하거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나가는 정도로 그친다. 하지만 보통은 그것보다 훨씬 나쁜 일이 된다.
-예전에 들은 설명은 이랬다.
나와 선배는 늘 모가지에 관련된 농담을 했지만 사실 내 한 목숨으로 끝날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라 불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모험을 하기엔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한 달간 고민했던 것이고.
하지만.
“최근, 꽤 있을 법한 생각을 하나 해냈습니다.”
김철 선배가 눈을 끔벅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당연한 얘기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메시지창을 불러냈다.
“물어볼 게 있다.”
『답변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아니, 이번엔 다른 거야.”
내가 말했다.
“5년 내로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강제로 중단되면 어떻게 되지?”
이번에는 조금 긴 간격이 있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간단한 얘기야. 5년이 주어졌는데 4년 차에 내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냐는 뜻이다.”
메시지창은 한동안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김철 선배의 얼굴이 멍하게 떴다가 곧 사나워졌다.
[이 자식이……!]“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선배님.”
[기다리긴 뭘 기다려? 이 정신 나간 새끼가! 기껏 살렸더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선배가 내 멱살을 잡았다. 제대로 된 물리력도 없어 옷자락이 약간 뜨는 정도로 그쳤다.
나는 그걸 무시했다.
“대답은?”
『큰 범위로는 실패로 간주될 것입니다.』
“큰 범위로 그렇다는 건 작은 범위로는 아니라는 거겠지?”
5년간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실패. 바꿔 말해 내 시계가 4년에서 돌아가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나봐야 의미가 없다. 아니, 애초에 그게 뭔지 알 길도 없겠지.
메시지창은 한동안 점멸한 끝에 마지못한 분위기로 인정했다.
『…실패 패널티는 부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강력히 경고합니다. 이는 본 기기가 만들어진 목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꿀 것을 촉구합니다.』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똑같이 물었다.
“내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이곳은 어떻게 되지? 그것만 설명해 주면 돼.”
『…답변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말이나 못 하면.”
저 대답이 나오는 이상 내 최선의 해답도 변하지 않는 셈이었다.
고개를 돌려 멱살을 잡고 씩씩대는 선배를 향했다.
“그만하시죠.”
[그만하긴 개뿔,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자살이나 하겠다는 게?!]“…선배님.”
김철 선배는 분노에 차 있었다. 자기는 이미 죽은 주제에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양반이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시죠. 전 한 번 죽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살 기회를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자식아! 당장 나라고……!]“잘은 몰라도 세상 모두가 저 같은 기회를 갖지는 못하겠지요.”
내가 웃었다.
“안 그래도 불공평한데 살 사람까지 없애가며 살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선배님도 이도나 씨를 위해서 이러고 계신 거 아닙니까?”
가만히, 김철 선배는 입을 닫았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심증은 넘쳐흐르지요.”
[애초에 목숨이란 건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고.]“보통이라면 맞는 말씀입니다만, 죽은 사람이 죽는 데 문제 될 게 뭐겠습니까.”
[유지아 걔는 네가 살린 거잖냐.]“늙은 놈 죽어서 어린애 살렸으면 된 거 아닙니까.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 욕 안 먹는 법입니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긴 주말을 보낸 뒤- 혹은,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난 뒤처럼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아닥쳤다.
“선배님, 전 연장전치고는 원 없이 신명 나게 놀았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은 어떠십니까?”
선배가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 수많은 색깔이 스쳐 지나갔다.
선배는 나를 설득하지 못할 것을 알았고, 나도 선배가 납득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따라서 누군가는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눈을 감아준 것은 선배였다.
[개뿔, 지긋지긋했지.]“거 너무하십니다.”
[웃지 마, 자식아. 정 든다.]“아직 안 드셨었습니까?”
능글능글 웃는 나를 보며 선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썩을 놈.]* * *
이후 나는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가 남긴 것들이 중단되지 않도록 준비했다. 『서풍』에는 콘티를 남겼고, 정수아에게는 내 노하우가 집대성됐다고 할 만한 물건을 넘겼다.
지아와 설이는 굳이 만나지 않았다. 한때 나는 그 녀석들에게 필요했지만 이제 와서는 불필요했다. 최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 되레 괜찮은 퇴장 타이밍을 잡은 셈이었다.
…아니, 지아는 좀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유언장을 잘 써뒀으니 됐겠지.
김철 선배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명에 한해서만큼은 예외였다.
[도나는?]“뭐, 누명을 풀 만한 건 준비해 뒀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설이가 어련히 알아들었을 테지만.”
[그 얘기가 아니야, 자식아. 나한테 장인어른이라면서?]“…시적 허용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건.”
그 사람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원흉이 사라지는 걸로 빨리 회복이 되기를 빌 따름이었다.
김철 선배의 ‘보상’을 엿 바꿔먹은 것도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도나 본인의 커리어는 좀 나아졌으니 그걸로 만족했으면 싶다.
“자, 그럼…….”
그렇게 정리를 마친 다음에는 고민이 앞섰다. 죽는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목이라도 매면 남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트라우마가 되겠는가.
하지만 뭐, 이미 마음을 먹은 탓인지 운도 좋았다. 곧 고민할 일도 없어지게 되었으니까.
연말에 가까운 어느 날이었다.
“양아치 같은 놈! 뒈져라……!”
이번에 원한을 산 곳이 너무 많다보니 도리어 상황이 생각지 못하게 진행되고 말았던 것이다. 미리 준비를 끝내둔 게 다행이라고 할까.
길가에서 차에 치인 나는 채 깨닫지도 못하고 땅바닥을 굴렀다.
두 번째라 조금 그런지 덜 아팠다. 어쩌면 전보다 몸이 반 바퀴 더 돌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누워있는 감각이 멀어지고, 사방에서 비명과 괴성이 쏟아졌다.
“사람! 사람 죽었어!”
“저 미친놈 뭐야! 작정하고 와서 들이받고서는!”
“저거 이현석 아냐? 이현석 피디!”
“어떡해……!”
살짝 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