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97)
막장드라마의 제왕 297화
35장 막장드라마의 제왕(2)
하여간에 높으신 분들은 보석(保釋)이 쉽게도 나오는 게 문제였다.
비명소리가 멀게 들렸다.
누워 있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전 방통위원장은 어째선지 겁을 먹은 듯 움츠러들더니 이내 줄행랑을 쳤다.
나는 의아해졌다.
‘뭔 짓인지 모르겠군요. 어차피 CCTV에 다 찍힐 텐데.’
[…그야 다 죽게 생겼는데 웃고 있는 놈을 보면 무서울 만도 하지.]‘세상에, 저 죽게 생겼습니까?’
거 고민하던 차에 운도 좋지.
선배는 말이 없었다. 머잖아 딱딱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처음 죽을 때랑 꽤 비슷하다. 뼈가 부러지면서 전신은 물론 폐에다도 구멍을 내놨고, 거기로 피가 콸콸 흘러 들어가고 있지. 과다출혈로 죽든 폐에 찬 피에 질식사하든 어지간히 괴로울 거다.]‘오, 잘 아시는군요… 실제로 지금 기분이 영 아닌데…….’
[지혈대 따위로 될 게 아니고 구급차는 늦을 거다. 난 돌팔이다만 지금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알아.]‘거… 다행이군요. 심각하다니.’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살아났다간 곤란할 뻔했다. 어디 두 번 해먹겠나, 이거.
생각이 느려졌다. 힘이 빠지고 눈이 자꾸만 감겼다.
나는 애써 눈에 힘을 넣었지만 쉽지 않았다.
[관둬. 까딱하다간 눈 부릅뜨고 죽는 수가 있다.]‘무슨 장비도 아니고…….’
[눈 감은 채로도 얘기할 수 있잖냐.]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피가 너무 나면 사람은 조금 바보가 되는 건지도 몰랐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아, 혹시 저도 죽으면 선배님처럼 부려 먹힐 가능성이 있습니까?’
[빌어도 안 될 거다. 지금 하는 짓부터가 저 물건한테 엿 거하게 먹이고 있잖냐.]‘쳇.’
그럼 뭐, 이걸로 끝이겠지. 나는 담담하게 끝을 받아들였다.
꽤 과분한 연장전이었다. 하꼬 PD가 언제 김철 감독 정도 되는 거물과 농담 따먹기를 해보겠나.
생각해 보면 막장 만든다고 눈이 뒤집혀서 못할 짓도 많이 했지.
[알기나 하니 다행이다.]‘흐흐.’
[…그래도 뭐, 요즘의 너는 아슬아슬하게 제자로 못 쳐줄 것도 아니었어.]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는 낄낄 웃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거 마지막쯤 됐으면 좀 거하게 인정해 주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자식이, 곽태영이쯤 되는 허접 자식이면 내가 이런 말도 안 했어.]‘그… 아.’
[…….]‘아뇨, 죄송합니다… 뭔가 멍해서요.’
시간 감각이 애매했다. 멀찍이서 구급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다음엔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서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들리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물속에라도 잠긴 것처럼.
김철 선배와 여러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암만 봐도 헛소리나 넋두리에 가까울 텐데도 선배는 꼬박꼬박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간신히 다시 정신이 든 것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걸 깨달은 때였다. 선배의 표정을 봐선 딱히 가망이 생긴 것 같진 않았다.
질문도 그런 종류였다.
‘……네.’
[됐냐?]의미 없는 물음에 나는 피식 웃고는 연극조로 말했다.
‘옛 말에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마다 등장과 퇴장이 정해져 있고 주어진 시간에 따라 7막 동안 여러 역을 연기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8막째를 맞았고.
‘제 역은 요 몇 년 신명 나게 논 걸로 지나칠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철 선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정신 나간 놈, 뒈질 때까지 문자 쓰고 싶냐?]‘흐흐.’
[…크흐흐.]나와 선배가 그렇게 웃고 있던 와중이었다.
문득 어딘가가 시끄러워졌다. 소란은 쉽게 멎지 않고 한참을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콧수염을 기른 교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병상 갈아줄 테니 뵙게 해드려.”
“…진심이십니까?”
“저렇게 난리잖나. 봉합은 깔끔하니 봐도 괜찮을 거다. 영안실로 모실 수도 없고, 임종실도 당장 남은 거 없고…….”
“오빠!!”
몸이 움직이고, 잠시 후 눈물이 그렁그렁한 지아의 얼굴이 보였다. 어찌나 울어댔는지 새빨갛게 부어 있는 눈이 보였다.
…제기랄, 어린애한테 사람 죽어가는 걸 보여줘? 나는 모습을 감춘 콧수염 교수를 잡아 죽이고 싶어졌다.
지아는 더듬더듬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괜찮은 거죠? 저희 오빠 괜찮으신 거죠?”
“…….”
“왜 말씀들이 없으세요? 다 나은 거잖아요, 그쵸?”
지아는 주변에 떠도는 표정들에 어떤 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를 딱딱 부딪치며 내 팔을 잡았다.
“오빠, 오빠… 저 봐주세요. 저 좀 봐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신 오빠 앞에 안 나타날게요. 저번처럼 멍청한 소리도 다신 안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나는 손을 잡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힘이 들어가지 않아 팔은 축 늘어졌다.
“아… 아아…….”
지아는 털썩 주저앉았다.
멀찍이 설이가 아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강주연 매니저가 손을 꽉 잡았다.
“설아, 부디 진정하고…….”
“돌아가지… 않아요.”
“뭐?”
“돌아가야 되는데. 계속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도 그래야 하는데…….”
“이설.”
“어째서… 이럴 거면 어째서 나에게 줘서 이런 꼴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강주연은 볼을 두들기며 눈을 마주쳤지만 시선은 맞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저런 모습들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눈을 감아도 신기하리만치 전부 보였다. 힘이 빠져 넘어진 설이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이쪽으로 오려 했고 강주연이 그걸 끌어안고 막았다.
설이가 암만 차고 후려쳐도 강주연은 손을 놓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다가온 이도나는 표정이 없었다.
가만히 다가와서는 뭔가 이상한 것이라도 보는 듯 생경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의사 하나가 천을 덮었다.
“…운명하셨습니다.”
“아닌데.”
“인사를 마저 끝내시고…….”
“이 사람 연기 잘 해요. 나도 엄청 잘 가르쳤고.”
“…….”
“그런데 자기도 잘 하는 줄은 몰랐네… 응, 하기는 그래야 그렇게 잘난 척을 할 수 있으려나.”
그럼 자기가 배우 하면 될 것을- 이도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얼굴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뭐가 미동을 하는 꼴이라도 잡겠다는 듯이.
나는 어떻게든 인사라도 하기 위해 최대한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도 떠지지 않았다.
오열하는 지아의 목소리만이 점점 커졌다.
…제기랄.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우울한 심정으로 마지막을 기다렸다.
………………
………………
………………
………………
…잠깐, 방금 뭐랬지? 운명?
운명하셨다고?
‘저기, 선배님?’
[어? 어…….]‘저 죽은 겁니까? 그런 것치고는 어째 오감이 멀쩡한데요?’
딱히 ‘첫 번째’처럼 이상한 공간으로 간 것도 아니고 말이지.
[아니, 몸은 죽은 게 맞을 텐데.]선배는 눈을 끔벅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생물체가 대체 왜 살아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좀 기분이 나빴다.
‘아니 그, 뭐라고 할까… 데려가실 거면 좀 빨리 데려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런 걸 계속 보고 있자니 영 기분이 그래서…….’
[이 자식이, 사람을 또 저승사자 취급해?! 그리고 저건 네 선택의 대가 아니냐!]‘아, 솔직히 선택은 안 했지요. 하기 전에 그 새끼가 들이받은 거 아닙니까?’
[말이나 못하면……!]늘 그렇듯 성을 내려던 선배가 눈을 끔벅였다. 내가 생각보다 살 만해 보이는 것에 의아한 기색이었다.
…생각해 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둘이 사이좋게 눈을 끔벅이던 와중이었다.
슬그머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목표 달성’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기에 부족한 사항이 있습니다.』
『문제 확인 완료. 사용자의 마지막 드라마에 관한 집계를 개시합니다.』
‘……?’
[……???]김철 선배가 눈을 끔벅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 있었냐?
나는 고개를 세 번 저어 그런 게 있으면 치사하게 혼자 먹었겠냐고 대꾸했다.
메시지창은 의구심 어린 눈빛들에 자애롭게 대답했다.
『사용자는 방금 전 선언하셨습니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라고.』
‘어… 음. 말은 했는데. 그건 선언이라기보단 셰익스피어 말 빌려서 잘난 척 해본…….’
『본 기기는 이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에 특례를 인정코자 합니다.』
‘…….’
무슨 특례. 무슨 감명.
문득,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감을 느꼈다.
메시지창은 계속해서 깜박였다.
『사용자는 원래 세계라는 본래의 보상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새로운 보상을 재설정합니다.』
『시련은 동일. 사용자는 ‘궁극의 막장드라마’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집계를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그 드라마가 어딨냐고! 『서풍』도 제대로 안 끝났구만!
『늘 말씀드렸듯, 진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내가 분통을 터뜨리는 사이 메시지창은 화면을 비춰주었다.
아니, 비춰줬다기보다는 그냥 투과시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울고 있는 녀석들 뒤에서 나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심지어는 카메라를 숨겨든 기자들마저 있다.
……기자?
『카메라가 있고 배우가 있다면 곧 드라마라.』
『본 기기는 원론적인 해석에 충실코자 합니다.』
…아니, 뭔 소리야. 요즘 그딴 구닥다리식 해석은 교양과정에서도 안 배운다고.
『본 기기가 구닥다리 물건인 터라.』
웃기지 마, 이 자식아!
내가 펄쩍 뛰거나 말거나 일은 시작되었다.
먼저 입을 연 건 혼절해 있던 서예린 작가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
“이 피디님이 차 하나 피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실 때까지 하나같이 뭔 부담을 지우고 있었던 거냐고요.”
어, 못 피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유도미사일 같은 거였는데… 아마 아직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았다.
서예린 작가는 이내 주저앉아 있던 지아를 잡아 일으켰다.
“저번 일, 역시 네가 한 축이 되어서 벌인 거지?”
“……네.”
“그래.”
“…….”
“그럼 무슨 자격으로 울고 있는 거야, 너는?”
지아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내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사이 서예린은 재차 지아의 몸을 잡고 밀쳤다.
“내가 말했지? 나한테는 어떻게 하든 이 피디님께는 민폐 끼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었잖아!!”
“오빠…….”
“그러니까 대체 무슨 면목으로 부르고 앉았느냔 말야!”
연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무서웠다.
다행히도 그런 서예린 작가를 이도나가 침착하게 말렸다.
“그만하세요. 우린 모두 동죄에요.”
“…….”
“그리고, 그렇게 큰 소리 내지 마세요. 저 사람이 깨어나면 놀랄지도 모르잖아요.”
서예린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이도나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을 보는 표정이었다.
그 때 설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역시, 제가 어설펐어요.”
“뭐?’
“뭐가 됐든, 원래 생각대로 했어야 했어요. 애초에 감독님을 자택에 모시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다면 이런 일은-”
“…그래, 가장 원흉에 가까운 게 있긴 했지.”
이도나가 웃었다.
“나도 잘못 생각했어. 저 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진작 묻어둬야 할 녀석이 있었는데.”
“잠깐만요, 지금 뭘 하시려는……!”
강주연이 어버버하는 사이 사태는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설이와 이도나가 뒤엉켰고, 말려든 강주연 매니저가 필사적으로 떼어놓으려 했다. 지아는 내 팔을 거듭 잡으려다 서예린에게 제지당했고, 그럼에도 엉기적거리며 기었다.
이 난장판은 서로 맞물리며 이내 눈덩이 구르듯 커졌다.
“허……?”
“이게 뭔…….”
침울한 표정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기자 놈들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실로 쓸데없는 직업의식이었다.
찰칵.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빌어먹을! 얘들아, 저 소리 안 들리냐? 사진 찍혔다고, 사진! 저기 봐, 저 새끼는 아예 불 켜놓고 동영상을 돌리고 있잖아!
제기랄……!
내가 울부짖는 사이 메시지창은 느긋하게 내용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을 종합한 시청률과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로 판단을 보충합니다.』
‘웃기지 마, 이 자식아! 당장 막아!’
『아- 사실 이 회선은 송신 한정이라 들리지 않습니다.』
‘구라 치지 마, 빌어먹을 놈아!’
『기다리기도 귀찮으니 미래의 시청률과 막장도를 미리 예측하도록 하겠습니다.』
‘구닥다리 어디 갔냐!’
메시지창은 내가 욕지거리를 쏟아 붓는 중 빙그르르 돌며 내용을 토해냈다.
가히 조작 수준의 사기극이었다.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67.3%,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100%입니다.』
‘그딴 수치가 말이 되냐, 이 사기꾼 새끼야……!’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막장드라마의 제왕입니다!』
‘죽여 버릴 테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기극에 나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치켜들었다.
…일어나고 말았다.
“…….”
“……아.”
어림잡아 수십 명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설이와 그 목을 잡아챈 이도나, 지아와 그 머리채를 잡고 있던 서예린, 그리고 중간에서 두들겨 맞아 산발이 된 강주연 매니저.
그리고 병상에서 벌떡 일어난 나.
긴 정적이 흐르고, 기자 하나가 얼이 빠진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