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99)
막장드라마의 제왕 299화
1.
가히 대한민국 전체의 관심사가 한 곳을 향했던 날이었다.
이런 멀쩡한(?) 기사들로 끝날 수 있던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머잖아 공개된 한 장의 사진과 동영상은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야 말았다.
-어, 그러니까…….
-음?
첫 반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내로라하는 온갖 악플러들조차 처음 본 순간에는 정신이 혼미한 채 외마디 신음만을 내뱉었을 따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대체 뭔 상황이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뉴스의 앵커들조차 말을 버벅거리며 쉬이 설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한 패널이 어떻게든 내뱉은 한 마디가 끝내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외전 01. 김철 라이즈(Rise)
‘그딴 수치가 말이 되냐, 이 사기꾼 새끼야……!’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막장드라마의 제왕입니다!』
‘죽여 버릴 테다!!’
때는 시스템창의 헛소리에 이현석이 벌떡 몸을 일으키던 순간이었다.
찰칵.
얼빠진 기자 하나가 셔터를 누르고, 그와 동시에 김철은 순간 시야가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엉?]보다 정확히는, 세상 전체가 멀어지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뭐야 이건, 또?]외쳐보기도 했고 손을 허우적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김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들이 김철을 놔두고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석아! 안 들리냐? 현석아!]대답은 없었다. 김철은 어어,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선배님 아틀리에였다는 말씀이죠?
“그래.”
-제기랄, 참 잘 되셨습니다! 그 망할 물건이 약속은 지킨 것 같으니!
전화 너머로 이현석이 짜증스러운 축하를 건넸다.
지금 그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보다 극진하게 기뻐할 방법은 따로 없을 터였다.
김철이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아틀리에라는 건 외부에서 꾸민 말이고 걍 작업실 딸린 집이다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고말고.”
김철은 살짝 고소한 심정으로 낄낄댔다.
“이 자식아, 네가 업보를 받는 거야. 내가 그간 뭐라고 했었냐!”
그는 줄곧 이현석이 두 조각이나 세 조각, 혹은 네 조각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누가 가지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고.
거기에 비하면 삼천 명의 기자에게 쫓기는 것 정도는 그다지 큰일에 속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현석이 투덜거렸다.
-몸 찾으신 김에 하나뿐인 제자를 좀 도와주실 생각은 안 드십니까?
“오냐.”
-제기랄, 제가 선배님을 잘못 보고 있었습니다……!
흐흐.
한참을 놀려먹던 김철은 이내 아직 어색한 몸을 풀며 기지개를 켰다. 적당히 만족했기도 하고 슬슬 저 머저리를 건져낼 생각이었다.
…외국에서 몇 개월 있다 오면 되겠지. 아마도.
하지만 이현석은 그런 김철의 자비로운 마음을 흙발로 짓밟고야 말았다.
-됐습니다. 어차피 크게 도움도 안 되실 테고.
“…뭐, 인마?”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이 망할 기자들을 제게 떼어낼 수 있을 만한 건수입니다. 선배님 정도로는 무리지요.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3대 영화제… 아니, 하나는 아직 아니지만 그래도 2대 영화제를 제패한 레전드. 그가 바로 김철이었다.
살아생전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위대한 감독이 이제 육신을 되찾았다.
그런 자신이 화제를 돌리는 데 모자라다고?
‘이 자식이…….’
김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이현석은 한술 더 떴다.
-제기랄, 장연철 PD와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
-그 사람이야말로 지금의 저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어떻게 연락이 안 되시겠습니까?
그 고얀 말에 김철의 인내심은 끝내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오냐, 내가 네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마!”
-…예?
“두고 봐라, 네 녀석의 네 다리 의혹 따위는 내 압도적인 작품 아래에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을 테니!”
-아니, 대체 무슨… 선배님?
김철은 전화기를 꺼버리고는 성큼성큼 걸었다.
격장지계였다면 대성공이라 하겠지만 김철은 이현석이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더욱 분노가 타올랐다.
‘이 망할 놈에게 몰라뵀다며 스스로 무릎을 꿇게 만들고야 말겠다……!’
유령 생활이 길긴 했지만 김철의 삶이란 본래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곧장 자신과 친분이 있는 스태프들을 호출했다.
2.
“단편 영화를 만든다!”
몇 년 만에 행적이 묘연하던 김철이 부른 데 흥분해 있던 측근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편?
“20분 영화 말씀이십니까?”
“아니, 10분으로 간다!”
“예??”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0분 영화라니, 보통 대학생이나 아마추어들의 습작 정도로나 나오는 물건이 아닌가?
당연히 투자자가 있을 리 없는데 10분이라도 돈은 돈이었다. 취미생활로 하기엔 무리가 많이 따랐다.
“뮤튜브에 올려서 조회수로 메꾸면 되잖냐.”
“오! 하긴 김철 감독님의 복귀작이라고 하면……!”
“아니, 익명으로 올린다!”
“…….”
슬슬 스태프들은 미치광이를 보는 눈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안 보이시더니 어디 편찮으신 게 아닌가 하는 눈빛들이었다.
…이상하군. 원래 나는 저쪽에 있던 포지션이었던 것 같은데.
김철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그는 차마 자신이 이현석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짐짓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그, 최근 말이야. 이현석인지 뭔지 하는 놈 때문에 시끄럽더구만.”
“그야 당연하지 말입니다!”
스태프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하긴, 요즘 대한민국 안의 누구한테 말을 걸어도 비슷할 터였다.
“설마 이도나와 사귀면서 네 다리를 걸쳤을 줄이야! 정말 대단… 크흠,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어? 나는 사실 이설과 사귀면서 이도나로 위장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유지아라고…….”
“뭔 소리야. 유지아가 사실 숨겨놓은 딸이었대. 그래서 입양도 하려고 했다잖아.”
“그럼 엄마는 누군데?”
“서예린 아냐?”
“미쳤냐, 나이 계산 못해? 김경숙 작가지! 『삼세번』 때 딱 찝은 것만 봐도 보이잖아!”
으음, 김철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대충 이야기만 들어도 지금 얼마나 상황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이 소문의 파급을 막아야만 했다.
“아무튼, 한 달 뒤에 공개하는 걸 목표로 간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쳐줄 테니 일 좀 하자!”
“어…….”
“…뭐야? 너무 빠르다고?”
“아뇨, 그.”
스태프들이 버벅거렸다.
“김 감독님께서 보수 관련 운운하시는 건 꽤 드물지 않나 해서요…….”
“음.”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기는 본래 김철은 자신이 예술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제작자였고, 거기에 돈이니 상업이니 하는 게 끼어드는 걸 끔찍하리만치 싫어했다.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무슨 헛소리십니까? 세상은 돈입니다! 제작은 돈입니다! 모든 게 다 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한 번만 제 앞에서 제작비 무시해 보십시오! 선배님 머리에 밍키마우스 귀를 씌워드릴 테니!!
으음. 김철은 내심 신음성을 삼키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꽤 귀엽기는 했다…….
“그래서 뭐야, 돈 준대도 꼬우냐?”
“아닙니다!”
“그럼 일들 하자!”
배우야 뭐, 굳이 타협할 것도 없었다. 그 김철이 짧은 단편이나마 배우를 구한다고 하자 온갖 지원자들이 쏟아졌다.
근 4년 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철의 신작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3.
‘흐흐, 이거지.’
촬영이 진행되며 김철은 차라리 행복한 심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거란 말이야.’
지시하는 대로 착착 처리되고, 아무런 오류도 없고, 미쳐 날뛰는 머저리 한 놈도 없다. 모든 게 극히 평온하기만 하다.
그래, 본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이토록 우아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 자식처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안 되면 대충 땜빵하던 게 이상한 거야……!’
결과물이 어찌어찌 제대로 나와서 그렇지, 그게 멀쩡한 방법일 리가 없지 않은가.
김철은 고개를 주억이며 흐뭇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서, 여기에서는 부감으로 내려가는 게 보다 유리하겠지.”
“맞습니다!”
“…여기서는 루즈를 쓰는 게 맞을 테고.”
“대단하십니다! 확실히 다르군요!”
어째서일까.
뭔가 조금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김철은 반짝거리는 시선들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하나의 오점도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듯한 얼굴들이었다.
김철은 천재로 나고, 천재로 경력을 쌓아왔다. 늘 그렇듯 무척이나 익숙하고 당연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째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제기랄, 제 목숨을 걸고 여긴 앙각이라고 주장합니다!
-네? 루즈라고요? 맙소사, 선배님 턱수염이야말로 루즈 그 자체입니다! 제정신이십니까?!
…제기랄. 무슨 세뇌도 아니고. 김철은 고개를 홰홰 저었다.
하지만 환청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김철은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선 틸트를 크레인으로 사용해서 고도가 있는 이미지를 주는 게 맞겠지.”
-멍청한 소리 마십쇼. 여기선 패닝으로 이미지라인을 넘어가야 하는 타이밍 아닙니까? 안 그래도 시야도 좁은데!
“여기는 무리할 필요 없이 달리를 쓰는 게 맞고.”
-하, 무리할 곳도 못 보십니까, 이젠? 팬, 틸트, 줌 싹 넣고 3중으로 빡세게 갈 타이밍에 대체 뭔 소릴 하시는 겁니까?
“이런 씨부랄……!”
김철은 촬영하다 말고 벽을 쾅쾅 들이받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하다 하다 이제 없는 자리에서도 내 속을 뒤집어놔?!
“…….”
처음엔 놀랐던 스태프들도 곧 그러려니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대개 적응하는 법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 감독님, 놀고 계셨던 건 아닌 것 같지?”
“맞아. 4년 전보다 명백히 좋아졌어. 스타일리시한 느낌도 늘었고.”
“…조금 더 미치신 것 같긴 하지만.”
미쳤든 어쨌든 영화만 잘 나오면 그만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나온 단편은 김철의 고집으로 나중에 이름을 밝힌다는 조건으로 익명으로 뮤튜브에 올라갔다. 하지만 알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작은 묻힌 걸 발견하기 좋아하는 외국인들이었다.
…사실 한국인들은 이런 걸 찾아보기에는 지금 너무나도 바빴고.
-대체 누가 이걸 만들었지?!
-한국? 한국에서 이런 게 또 나왔다고?
-맙소사……!
해외에서는 순식간에 이 단편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회수는 거의 만 단위로 뛰어댔다.
이 물건의 제작자가 김철인 게 밝혀진 것도 금방이었다.
모두가 감탄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세상에, 더 대단해진 것 같은데?!
-이름값으로 먹고살고 있다던 머저리 평론가들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제기랄, 어째서 장편을 만들지 않는 거지!
이 거대한 흐름은 ‘이현석 게이트’가 한창이던 한국에서도 미약한 관심사가 될 정도는 되었다.
“으음…….”
김철은 그 ‘미약한 관심’에 몹시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구멍을 뚫은 것에 만족했다.
이제 인터뷰에 나가 적당히 입을 털어주면 그만이겠지.
“어… 그러니까, 이현석 프로듀서와 친분이 있으시다고요?”
“그렇지요. 이번 물건도 그놈 때문에 만들게 된 것이고.”
“어떤 관계이십니까?”
“뭐라고 할까, 지긋지긋한 사이지.”
“…예?”
“이번 영화만 해도 죽을 뻔했어요. 그놈이 내 귀에다 대고 이래라저래라 속살거리는 것 같아서!”
“어… 그…….”
“제기랄, 지금 생각해도 빡치는구만……!”
김철은 인터뷰를 잘 끝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후 이현석은 여자 네 다리 의혹을 넘어 남자도 가리지 않는다는 의혹에까지 시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 피디 찐사랑은 따로 있었어……!”
사람들은 이현석의 배포(?)에 크게 감탄했고, 홍지호의 탈락에 광분했던 몇몇 이들은 이 의혹에 신이 나서 마구잡이로 퍼뜨려대기 바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선배님……!
“…….”
이현석의 당연한 분노에 김철은 아무런 말도 돌려주지 못했다.
2주간 전 언론을 점령했던 이현석 게이트.
이는 장연철 PD의 『위대한 요리사』가 정자은행에서 룰렛으로 임신할 정자를 결정하는 장면을 방영하고 나서야 간신히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 장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