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50)
▶ KBC, 역대급 수렁텅이. 고위급 인사들 줄줄이 비리 파문.
▶ 안기식 사장,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 질타··· 책임론에는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으로 만든 뒤 따르겠다’.
▶ KBC 이사회 운영규정 도마 위. ‘소수의견 가로막는 독소조항 투성이’ 한목소리.
▶ 검찰 본격 수사 나서··· 대규모 압수수색 결정.
“무슨 눈덩이 굴러가듯 커집니다.”
내가 신문을 덮었다.
[안기식이가 약 빨고 달리는 모양이다.]김철 선배가 혀를 찼다.
[패로 쥐고 압박을 넣어서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그냥 쑤셔 박고 터트릴 모양이야.]“음.”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제법 화끈한 양반이었다.
[뭐.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히도 이쪽은 화제에서 빠졌다만.]“배려로 생각해둡시다.”
기자들에게 쫓겨 도망다니는 경험은 나름 신선하긴 했지만 별로 재미는 없었다.
뭐, 좋은 일이겠지.
회귀 전, 안기식 사장은 내가 쫓겨난 지 약 2년 뒤에 맥없이 물러났다.
이후에 결국 비리가 터지긴 했지만 당시엔 이미 사장과 이사회가 한통속이었다. 크게 번질래야 번질 수가 없었다.
안기식 사장의 숙원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쯤 신이 났을 거다.
“저쪽은 저쪽이 알아서 하겠죠. 지금은 우리 코가 석잡니다.”
[그렇지.]시상식으로 1주일, 그 이후의 사태로 다시 1주일.
『연극처럼 살다』의 마지막 2회는 무려 2주간이나 결방된 상태였다.
[이미 그른 거 아니냐? 흐름이 이만큼이나 끊겼는데.]“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내가 이도나에게서 날아온 메시지에 답장하며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뉴스거리로 빵빵 때려댔는데 안 보던 사람도 한 번 봐볼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48화의 시청률은 35퍼센트대.
불과 2화만에 40퍼센트까지 끌어올리는 건 힘든 일이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철 선배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딴에야 그렇다만··· 이제 마무리단계 아니냐?]문제는 거기였다.
48화에서 한지원이 돌려서나마 ‘시계열’을 언급하며 자신의 루프를 암시했다.
절정 부분은 실질 끝이 난 셈이다.
앞으로 남은 건 그 해설과 한지원이 죽을 때까지의 마무리 및 결말이다. 텐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심지어는 이미 촬영도 끝난 상태다. 후작업이 간단히 순서작업과 러프컷만 끝낸 뒤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원래라면 시상식 전후로 추가촬영을 생각하고 있었지?]“네. 하지만 지금에야 불가능한 얘기죠.”
연말 시상식에 갑작스레 일이 터지고, 나도 근 며칠을 이리저리 뛰며 날려먹었으니까.
이설은 현재까지도 두문불출하는 중이다.
본인의 의사인지 소속사의 결정인진 몰라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상황이 정리되면 나도 그 녀석과 얘기할 거리가 있을 거다.
그렇게 상황이 어중간한 가운데 로이드 감독이 한국을 떠났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그를 배웅했다.
내게 조언을 해준 걸 떠나 그는 개인적으로 호감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와 그의 나이차는 열 살에 가까웠으나 그는 나를 깍듯이 존중해주었다.
떠나기 전, 로이드와 나는 연출에 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바탕에 있는 천성적인 번뜩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로이드는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현석. 당신에겐 나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떠나기 싫다니 어쩔 수 없지만 결국 당신은 이쪽에 오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낯 뜨거운 찬사를 보낸 로이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이야기도 꺼냈다.
“하지만 한국에 남으실 거라니 이 말씀도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
“제 생각에 당신은 약간의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 어려워하는 태도에 내가 웃었다.
“얼마든지 말해주십시오. 단점이 쌔고 쌘 게 접니다.”
“단점이 아니라 약점입니다.”
로이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현석, 당신은 너무 완벽주의적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주의?
내가?
···글쎄. 이번 촬영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알면 이런 소리는 못 할 텐데.
“연출에 관한 얘깁니다.”
로이드가 말했다.
“보고, 듣고 있자면 당신의 미학은 그겁니다. 배우가 완벽한 연기를 하도록 만들고, 그걸 최대한 살려낸다.”
“···음.”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건 내 철학이기도 했고, 나아가 내 멘토인 김철 선배의 철학이기도 했다.
“물론 훌륭한 배우가 있고, 그들이 완벽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주문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연극처럼』의 배우들도 모두 훌륭했고요.”
“만약 당신이 만드는 게 영화였다면, 하다못해 우리들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면 그건 명백한 장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고 로이드는 여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국 TV쇼의 제작환경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요. 아니, 터놓고 말하자면 최악입니다.”
“······.”
“촉박한 스케줄, 한정된 예산과 인력. 검증되지 않은 배우가 낙하산으로 쏟아지고, 동시에 위대한 배우라 할지라도 인물상을 못 잡고 헤매게 만들지 않습니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10년쯤 뒤라면 약간은 나아지겠지만 지금 한국의 제작환경은 로이드의 말 그대로였다.
물론 그 나아질 상황도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지옥일 테고.
“따라서 전 당신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의 대처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완벽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시지 않습니까? 48화에서 한지원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절로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배우로서는 오히려 더 대단했지요. 시청자나 일부 평론가들 – 심지어 당신의 작가진조차 그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정서에 얼이 빠졌으니까요.”
로이드의 말은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안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녀는 극중에서 완전히 컨트롤되지 못했습니다. 다릅니까?”
“···맞습니다.”
“그런 경우는 무척 흔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촬영 중 수십 차례 그런 경우와 마주하지요.”
로이드가 멋쩍게 웃었다.
“어느 쪽이냐면 당신이 그런 황당한 일정과 시나리오 안에서 그간 배우들을 완벽히 컨트롤해냈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
“이건 찬사가 아니라 염려입니다, 현석. 현재 한국의 제작 환경으로 볼 때 당신이 계속 이런 방식의 제작을 고집한다면 결국 편집증에 걸리고 말겁니다.”
나는 침묵했다.
로이드 감독은 가만히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라면 필요할 때 앞에 나가겠습니다.”
로이드가 말했다.
“연출에 제 의도로 진하게 색칠을 해버리지요. 방해되는 건 후작업으로 파묻어버리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듭니다.”
굳이 곁눈질을 하지 않아도 알았다.
내 옆의 김철 선배의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건 김철 선배가 무엇보다도 사도(邪道)로 여기는 방법이었다.
[무슨 개 같은 소리를······!]김철 선배가 으르렁거렸다.
[저딴 헛소리 듣지 마라, 현석아. 애초에 제대로 돼먹은 감독이면······!]“염두에 두겠습니다.”
내가 틀어막자 김철 선배가 눈을 크게 떴다.
“으음, 생각해볼수록 사실 제가 이런 말을 한국인인 당신에게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군요.”
로이드가 뺨을 긁적였다.
“한국산 컨텐츠는 그런 것의 프로페셔널이니까요. 액션은 어마무시하게 큰 음악으로 덮어버려 지휘하고, 감정이 필요하면 클로즈업을 마구 당겨가며 관객에게 억지로 동참하게 하지요.”
“‘주입하려 든다’는 표현을 씁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
“오,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러시답니다 – 하고 알려준 사람을 돌아보자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
“당신의 미학은 이해하지만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현석. 불가피할 때는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보십시오.”
로이드가 떠난 뒤에 나는 공항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기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와, 이현석 피디 아냐? 『연극처럼』!”
“공항엔 왜 있대? 누구 기다리나?”
웅성웅성 모여드는 사람들을 피해 차를 몰면서 나는 마음을 정했다.
“선배님. 이번엔 한 번 다르게 가보겠습니다.”
[알아서 해라.]김철 선배가 불퉁거렸다.
[그 양키놈이랑 눈 맞고선 그간 헌신한 놈은 헌신짝으로 만들겠다 그 말이지?]“삐지지 마십쇼.”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이미 증명하셨듯이 선배님은 막장엔 소질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음.]이미 거하게 말아먹은 적이 있는 만큼 김철 선배는 반론하지 못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선배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조금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봐도 괜찮을 때 아니겠습니까?”
로이드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지금껏 어째서 막장도를 잡아내지 못했는가? 아차 하는 순간에 배우가 날뛰고, 시나리오가 날뛰었던 까닭이다.
물론 그건 대개 좋은 방향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출이 그걸 쫓아가 커버해줘야 옳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다르지 않습니까?”
[······.]김철 선배는 인상을 찌푸리다 끝내 마지못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게?]“일단 설이 색깔을 좀 빼야겠죠.”
[음.]“그리고 그동안의 일을 꿈으로 만들겠습니다.”
[···응?]“그 뒤에는 고양이와 개가 나오는 씬에 전력을 담겠습니다.”
김철 선배가 눈을 끔벅였다.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마주보았다.
한동안 나와 시선을 마주치던 선배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알아서 해라.]포기한 표정이었다.
그 태도에 오기가 생긴 나는 거진 사흘 밤낮을 새며 포스트 과정에 혼을 쏟았다.
평소 별 문제없으면 넘어가던 컬러 콜렉션 과정도 일일이 간섭했고 심지어는 믹싱 과정에서 한 번 뒤집어엎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렇게 주조정실에 방송용 테이프가 들어간 건 실제 방영되기 하루도 채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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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에서는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외계인이 정하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수십, 어쩌면 수백 차례 루프를 돌렸다는 것, 그에 따른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홀로 남은 외계인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진짜’를 갈망했기 때문이라는 것.
대부분 시청자들이 예측한 가운데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홍지호는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간 한 걸음 물러서있던 무언가가 비로소 앞으로 나왔다는 느낌.
한지원과 정하늘의 감정선에서도, 이광진과의 이별 씬에서도 잔잔히 깔려있던 그건 50화에 와서야 확실히 드러났다.
“아.”
화면이 위로 솟구치자 홍지호는 눈을 크게 떴다.
「긴 꿈을 꾸었다.」
거기에 따르듯 정하늘의 독백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만은 기억하고 있다.」
「나의 일생은 그 녀석에게 있어 연극이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그 녀석에게 있어 하나의 연극이었다.」
「몇 차례나 반복되는.」
화면은 움직이지 않았다.
빛은 색채다.
모네, 아니, 더 나아가 렘브란트의 근원이라도 훑으려는 듯 조명을 통한 연출이 아른거리며 펼쳐졌다.
「연극에는 배우가 있다. 무대가 있고, 관객이 있다.」
「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마지막 요소가 빠져 있었다.」
한쪽에선 고양이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선 강아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둘은 아장거리며 행진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는 연극이 되지 못했다.」
정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그저 그 녀석은 살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봐줄 사람이 나와 하나의 극이 되기를 바라며.」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 마주보며 머리를 갸웃한다. 자신들이 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걸 보고 살풋 웃은 정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연극처럼.」
보이지 않는 색채에 인물이 파묻혔다.
그 아래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따스한 결혼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
“······.”
한동안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던 홍지호가 끝내 고개를 숙였다.
“씨발··· 그때 지구 날아간다는 데 걸걸.”
#
▶ 『연극처럼 살다』 최종회, 여운 있는 마무리로 종영.
▶ 마지막에서야 베일 속에서 드러난 작의(作意)···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 잇따라.
▶ 50화의 여정을 모두 담아낸 결혼식의 주인공은 한지원의 개와 고양이. 『연극처럼』은 끝까지 『연극처럼』다웠다.
▶ 시즌 2는 외국에서? 신빙성 있는 소문에 KBC는 묵묵부답.
– 끝났구나······.
– 시원섭섭하네.
– 첫 편에 자동차 터질 때만 해도 이런 드라마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ㄴ 예상한 사람 있으면 재능을 썩히고 있는 거니 당장 업계에 투신해라, 제발.
ㄴ ㄹㅇ
– 내 평생에 다시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그야말로 아무도 터치하고 간섭하지 않아서 나올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ㄴ 아니, 아무도 간섭 안 해도 보통 이런 거 안 나와ㅋㅋ
– 이제 주말에 뭐 보냐.
– 마지막 저거 지구임, 다른 행성임?
– 아··· 이렇게 끝나는 게 맞긴 한데 뭔가 아쉽다.
– 시즌 2는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음. 대충 엮기만 해도 스토리 뚝딱 나오는 떡밥이 한두 개가 아닌데.
기사와 댓글 반응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연극처럼 살다’가 50화로 종영되었습니다. 결과를 집계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40.2%,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6%입니다.』
나는 결국 해냈다.
비원의 시청률 40%를 넘겼다.
그리고 김철 선배가 침묵 속 감격의 첫 마디를 내뱉었다.
[···글렀잖냐.]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래에는 메시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놀랍게도 막장도 10% 이하의 훌륭한 ‘명품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시청률 40%를 돌파한 것에 의해 부분보상이 주어집니다.』
『타이머가 재조정되었습니다. 현재 목표 달성까지 남은 기간은 5년입니다.』
『부분보상 달성에 의해 다음 수령에 필요한 수치가 증가합니다. 다음 부분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시청률 50% 이상이나 막장도 90% 이상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추신이 있었다.
『충고 : 사용자 이현석과 김철 모두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데 소질이 치명적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얌전히 5년 후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권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