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64)
돌아보니 지아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입을 달싹이고 눈동자를 떨다가 스르륵 시선을 피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는 듯한 얼굴이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 헛똑똑이를 어쩌면 좋나.
“···조, 좋아요. 뉘신진 몰라도 보호자시라니 잘 됐네요.”
지아의 멱살을 잡고 있던 여자가 다시 눈을 치뜨고 꽥꽥대기 시작했다.
“우리 은비뿐 아니라 친구들 둘도 같이 다쳤어요. 아시겠어요?”
쓸데없이 키는 있다. 덕분에 내가 들어올 무렵 멱살이 잡힌 지아는 발이 약간 떨어진 채 매달려 있었다.
···음.
“대체 어떻게 책임지실··· 힉!”
내 얼굴을 보고는 또다시 괴상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선다.
“왜 말씀을 하시다 마는지 모르겠군요.”
진심으로 알 수 없었다.
내가 애써 이성적인 대화를 통한 해결모색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유지아 학생··· 보호자님? 지나치게 다른 학부모님을 위협하실 경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짜증스런 표정의 안경잡이가 경고했다.
“당신은?”
“유지아 학생 담임입니다.”
애 담임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보호자를 자칭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이미 사안은 사흘간의 정학처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간단하게 사과만 받으면 끝납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고 담임이 주변을 확인했고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뒤에서 지아도 옷자락을 지그시 잡아당겼다.
“왜 지아가 사과해야 합니까?”
“···유지아 학생이 정학을 받을 정도의 폭력사태를 일으켰으니까요. 당연한 일입니다.”
“거 이상하군요. 우리 지아는 그럴 애가 아닌데.”
내가 웃었다.
“학폭위를 거쳐서 내려진 처분이라면 내역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 애들이 얼마나 다쳤고, 어떤 경위로 그런 처분이 내려졌는지?”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지만 정적은 길었다.
보호자도 없는 상대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날치기로 통과시켜 덮었을 거다. 찔리는 구석이 넘치겠지.
이내 한 학부모가 벌개진 표정으로 나섰다.
“이보십시오, 그 애가 우리 애들을 폭행한 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쪽은 그렇게 말하겠지요.”
“그쪽이고 뭐고 애들 셋이 똑같이 증언을 하는데······!”
“저는 입을 맞춘 그쪽 셋보다 지아를 더 믿습니다. 이걸로 반반이 되었군요.”
“하······!”
주변이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현석아. 그건 좀 억지 아니냐?]뭐가?
지아가 올바른 건 당연한 일이다.
지아가 일방적으로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 만약에 저질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면 별 거 아닌 걸 침소봉대한 것일 테고 그것도 아니면 상대가 쓰레기였을 것이다.
아무 문제도 없지 않은가?
김철 선배가 침음성을 냈다.
[굉장하군··· 넌 절대로 애 낳으면 안 되겠다.]이후에도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끝내 담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보호자님. 그렇게 홀로 억지 부리셔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까지 억지라고 말하신다면, 좋습니다. 법대로 가겠습니다.”
“법이라고요?”
담임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학부모 하나가 거드름을 피우며 나섰다.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합니다만, 여기 계신 은비 학생 아버님께서 변호사십니다.”
남자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게 우습다는 표정으로 명함을 내민다. 꽤 유명한 로펌의 이름이 쓰여 있다.
하긴, 어느 정도 지위가 되는 이들이니 운영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었겠지.
명함을 받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주 잘됐습니다. 굳이 대표자를 따로 정하실 이유가 없겠군요.”
나도 명함을 돌려주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락받으실 SBC 법무팀 담당자분 명함입니다.”
“······?”
영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눈을 깜박인다.
“PD 이현석······? 이현석?”
몇몇 이들이 놀란 얼굴로 내 얼굴을 돌아보았다. 조금 낭패한 표정이다.
내가 언론 관계자라는 걸 알자 반응은 약간 수그러들었다.
한 학부모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보았다.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법무팀이라니, 좀 농담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허세는 적당히 하라는 듯한 표정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유지아 작가는 얼마 뒤 제가 현재 촬영중인 『연구일지 속 보석함』 제작진에 합류할 예정이었습니다.”
지아가 눈을 깜박인다.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뭐, 살다보면 본인도 모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저희 제작에 중역이 될 유지아 양이 불미스러운 사태에 휘말려들었으니 당연히 사측 법무팀이 나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억지스런······.”
억지 맞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면 아니지.
통 크신 최도정 사장님께는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이걸 우겨댄 덕분에 받아낼 예산이 얼마나 깎일지 상상도 안 가는데.]김철 선배가 앓는 목소리를 냈다.
처음엔 헛웃음을 짓던 변호사 아버님은 내 얼굴을 보며 점점 표정이 흐려지더니만 끝내 딱딱하게 굳었다.
이쯤 되자 사람들도 내가 단순히 기세로 을러대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저희는 여러분들이 날치기로 처리한 학폭위의 처분결과가 몹시 부당하고 편파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따라서 관계자 전원을 고소조치하고 진상을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간신히 먼저 정신을 차린 담임이 허겁지겁 목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아, 물론 여론에도 좀 호소해볼 생각입니다. 너무 노여워하진 마십시오. 제가 그걸로 먹고 사는 인간이라.”
“저기··· 보호자님! 잠시만······!”
기세등등하던 학부모들의 안색은 새파랬고 이게 뭔 병신인가 하고 보던 담임의 얼굴은 새까맸다.
그가 허둥지둥 내 팔을 잡았다.
“그,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굳이 일을 키워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대화로 해결하실 수 있잖습니까?”
“오, 아주 평화주의적인 말씀이십니다.”
나는 조금 감명받았다.
“눈앞에서 학생이 멱살이 잡혀있는데 심드렁하시던 인간과 같은 분이라곤 믿을 수가 없군요.”
“······.”
팔을 떨치자 담임은 맥없이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 지아의 멱살을 잡았던 여자가 발악하듯 외쳤다.
“지금 우리를 협박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그런 거겠죠. 당신들이 그간 그러셨듯.”
“무슨······!”
“장은비 학생라고 했던가요? 전적이 꽤 화려하더군요.”
다시금 침묵.
법무팀 쪽 양반은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굴러오는 정보가 허다해서 혀를 찼다는 모양이다.
학교위원회 소속에 돈 많고 지위 있는 부모 빽이 있으면 얼마나 활개를 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어지간한 전과들이었다.
이쪽에서 ‘자의적으로’ 전학을 간 애들만 좀 모아봐도 다큐 한 편이 뚝딱 나올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시사교양팀이 좋아하겠군.
드디어 주변이 조용해졌다.
내가 다시금 물었다.
“그래서, 누가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었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쉽게 나왔으면 여기까지 일을 벌인 보람이 없지 않은가?
남은 얘기는 법무팀 양반과 추후 차분하게 할 기회가 있을 거다.
“지아야, 가자.”
“네? 네······.”
지아가 머뭇머뭇 끌려왔다.
막는 이는 없었다.
무슨 소동인가 어리둥절해하던 학생들도 슬금슬금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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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고 오는 동안 지아는 줄곧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내가 가만히 떠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굳혔다.
“유지아. 여기 앉아봐.”
“예······?”
“앉아보라고.”
생전 대한 적이 없는 표정에 지아가 겁먹은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내가 예전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안 했던가?”
“그, 그건······.”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셨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나는 한동안 일부러 지아의 심기를 박박 긁었다. 하지만 지아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끝내 본심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나는 결국 말을 멈추고 머리를 꾹꾹 눌렀다. 울화통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미치겠다. 진짜 이 헛똑똑이를 어쩌면 좋나.
세상에 자기가 어느 정도 위치인줄도 모르고 저런 웃기지도 않는 머저리들한테 저런 꼴을 당하고 다니냔 말이다.
어느 학교에 가도 어서옵쇼, 엎드려 절할 판에 저런 웃기지도 않은 놈들에 휘둘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
왜 부모들이 애가 멍청하게 맞고 오면 속이 터져서 화를 내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자존감이 부족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김철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애가 눈치 보고 다니는 게 그냥 성격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야. 얘는 자기 위치에 대한 자각이 없어. 그리고······.]심지어 지금은 내가 세상의 전부다.
그리고 그걸 지금껏 내색조차 하지 않고 숨겨왔다.
···펴 본적도 없는 담배가 고팠다.
도리가 없군.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어제 허겁지겁 급조한 서류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지아가 머뭇머뭇 받아들었다.
“···이게 뭐예요?”
“내가 최근에 회사를 하나 설립하게 됐다.”
“···예?”
표정이 의아해진다.
안다.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미 직장이 있으니까.
시작은 꽤 오래전이었다.
“이도나 씨랑 홍지호 씨 소속사에 박진태 실장님이라고 계셔. 그분이 나오셔서 만드실 회사에 투자를 좀 했고.”
예전 촬영장에서 내가 그에게 물은 건 혹 독립할 생각은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양대 배우를 끌어들이고도 낙동강 오리알 상태인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금에 만족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거듭 충고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예 불미스러운 사태로 몰려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건 실제로 일어날 일이었다.
어려운 표정이 되어 떠난 그에게 비로소 몇 주 전, 거듭 감사를 표하는 연락이 왔다.
잘 된 일이었다.
다만, 이후에 새로 만들 회사를 두고서는 의견충돌이 좀 있었다.
“곧 죽어도 나를 대표로 해야겠다더라.”
“아······.”
정말 어지간한 황소고집이었다.
나는 한참을 설득하다 포기하고 그냥 직함만 가져오는 선에서 동의했다.
“뭐, 어차피 일은 그쪽에서 다 할 테니 단순한 바지사장이지만.”
“···그래도, 오빠 회사인 거네요?”
“그래. 그리고 그게 계약서다.”
지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건······.”
“그래. 생각 있으면 이후에도 나랑 같이 일해줬으면 좋겠다.”
지아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무척 이상한 얘기라도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네가 처음이다.”
멍하니 입을 벌린다.
“처음···이에요?”
“그래.”
“···제가요?”
“응.”
“···예린이 언니보다도요?”
한참을 입을 달싹이다 머뭇머뭇 묻는 모양새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냐.”
그 대답에 비로소 지아의 얼굴이 변했다.
글쎄.
그 표정을 무어라 형언할 수 있을까.
눈가에 눈물을 맺은 채 별 거 아닌 종이 몇 장을 보석상자라도 끌어안듯 감싸 안고 웃는 모습.
그걸 본 김철 선배는 바보처럼 코를 훌쩍대기 시작했다.
[젠장··· 쓸데없이 표정은 좋기는······.]이쪽 분은 어제도 통화내용을 들으면서 대성통곡을 하시더니만 이 모양이다.
[왜 카메라가 없는 거냐, 현석아. 이 감독 근처도 못 간 놈아!]“······.”
지아는 눈물을 닦아낸 뒤 조그맣게 웃었다.
“오빠.”
“왜.”
“『연구일지』. 저도 가끔 참가해도 될까요?”
“저, 거기 합류할 예정이었던 거잖아요?”
나는 가만히 내려보다가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래도 좋다고 웃는다.
“공부, 제대로 해.”
“···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작가 하나가 늘었다.
곧 들어올 연예인이 하나가 될지 넷이 될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말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