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67)
「···여러분들은,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감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시는군요.」
「당신의 부러움이 느껴집니다. 이상하네요. 저희들이 보기엔 여러분의 한정된 감응 능력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데.」
「······.」
「환영합니다, 이방인. 멸망해가는 세계라도 좋으시다면 마음껏 둘러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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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에고의 만남이 있은 뒤 머잖아 판권 계약이 성사되었다.
나는 안기식 사장과 상의해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인 후 정보를 풀었다.
▶종영 반 년 만에 『연극처럼 살다』의 프리퀄 제작 발표. 제작은 미국?
▶팬들 기쁨과 당황 교차, 너무 글로벌해진 드라마.
▶제작사측, ‘3개월 이내 방영이 목표’··· ‘이현석 감독에게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밝혀.
▶로드리게즈 감독, ‘나와 이현석은 친구···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 될 것.’
본격적으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놀랍게도 몇몇 기사는 일간 랭킹에까지 올랐다.
– 와··· 실화냐?
– 나올 줄 알았음. 애매하게 풀린 떡밥이 몇갠데.
– 이제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시리즈물 하나 나오는 건가?
– 생각보다 되게 빠르네요;
– 아니 뭐임; 왜 후속작이 이현석이 아니라 양놈들 제작으로 나오는 건데.
ㄴ 후속작이 아니라 프리퀄.
ㄴ 판권 사간 거예요.
– 난 걱정밖에 안 됨··· 왜 하필 디에고 놈임? 진짜 악명 높은 새낀데······.
– 똥 묻었네. 여기 주인공도 네 다리 걸치다 찔려서 죽을듯.
– 또 네쌍둥이 엔딩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다만 반응 자체는 다소 엇갈리는 감이 있었다. 주로 디에고의 명성을 아는 이들 덕이었다.
댓글을 읽어나가던 김철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네쌍둥이는 무슨 소리냐?]“디에고 전전작 결말입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주인공이 임신을 했는데 이란성 네쌍둥이였고, 검사 결과 아버지가 전부 달랐다는 내용입니다.”
[······.]김철 선배가 입을 떡 벌렸다.
사실 그 이후가 더 진국이지만··· 일일이 언급하기엔 내 목구멍의 여백이 좀 많이 부족하다.
“그걸로 막장도 98% 찍었더군요.”
“···남은 2퍼센트 놈들은 대체 뭐냐.”
고개를 몇 번이고 저은 선배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그런 놈이 우리 편이라니,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군.”
“예.”
최근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디에고는 날이 갈수록 더욱 의욕에 불타는 듯 보였다.
– 정말 고맙네, 현석. 자네의 조언과 도움 덕에 내 일생의 역작이 완성되고 있어!
그 디에고의 일생의 역작이라! 과연 어느 정도의 물건일까?
어지간한 나도 침을 꿀꺽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더 이상 막장도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이제 함정만 주의하면 되겠지.
[함정?]“왜, 동시제작의 경우 막장도 계산법이 좀 괴상하잖습니까?”
『막장도는 합하여 백의 자리를 버립니다.』
그게 보상 계산법이다.
말인즉슨 디에고가 사자분신의 활약으로 90퍼센트의 막장도를 뽑아내 주더라도 『연구일지』가 10퍼센트를 기록한다면 0퍼센트가 된다는 뜻이다.
김철 선배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많이 불합리한데?]“뭐, 어차피 『연구일지』의 막장도는 오를 기미도 없잖습니까?”
우주 대왕조개조차 통하는 판에 무슨 걱정이랴.
다음은 뭘지 모르겠다. 지아의 설욕을 위한 우주 대왕오징어쯤이면 될까?
김철 선배가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그게 의외로 괜찮게 들리면 걔네들한테 물들기 시작한 거냐?]“···한 잠 주무십쇼.”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애의 심정으로 다가올 친구의 선물을 기다렸다.
디에고의 작품에서 전설이 된 십이각관계인가? 아니, 어쩌면 죽고 죽이는 치정극으로 벌칸이 몰락하는 걸 보여줄지도 모른다.
지아가 몇 개 보낸 쇼트스토리를 활용한다면 더욱 대단하겠지.
나는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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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연예데이트』 본사.
“『연극처럼』 관련해서 뭔가 새로운 정보 있는 놈?”
소식이 터진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떡밥은 식지 않고 있었다.
일과처럼 어뷰징 기사를 두드리던 기자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딱히 없습니다.”
“저도요.”
“아, 방금 곤잘레스 감독이 SNS에 좀 아쉽다고 한 마디 남기긴 했습니다.”
“···그거라도 일단 올려.”
한 기자가 마땅찮은 얼굴로 턱짓했다.
“도대체가 이현석이 그 새끼는 상도덕이 없다니까.”
이어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불만을 성토한다.
“요새 제일 얘깃거리 많은 놈이 이것저것 떡밥도 뿌려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뭐 그리 잘났다고 죄다 비밀주의야?”
“비밀주의랄 것까지야······.”
“아니면 뭔데?”
한 기자의 조심스러운 말에 코웃음이 돌아왔다.
“『연구일지』 제작발표회도 안 했지, 『연극처럼』 프리퀄도 밥 다 되고 적선하듯 뿌렸지, 유지아 작가 건은 아예 양념 좀 치면 바로 고소 때리겠다고 엄포까지 놨잖아?”
“···마지막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눈앞의 선배기자가 쓰던 찌라시의 수준을 보고 경악했던 기자로서는 볼멘소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엎었다고 원한을 가진 거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그게 네 녀석이 아직 수습 티 못 뗐다는 증거야, 자식아.”
“······.”
“왜, 꼽냐? 꼬우면 네 누나한테 가서 기삿거리나 몇 개 건져오던가.”
기자 – 강성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에게 선배기자가 노골적인 시선으로 혀를 찼다.
애매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다른 기자가 나섰다.
“뭐, 그래도 이현석 피디 정도면 잘난 척 해도 되지 않아요? 『연구일지』는 슬슬 30퍼 천장 뚫으려고 하고 있고. 잘하면 이번에도 40까지 갈지도 몰라요.”
“진짜 그러면 미친 거지. 이렇게 쉬지도 않고 연타석 40퍼 찍은 PD가 있었나?”
“있을 리가요. 90년대 이전 공중파 전성기까진 뒤져봐야 될 걸요?”
“이게 입봉 후 차기작이야. 그것까지 감안하면 전무후무한 거고.”
흥미로운 떡밥에 기자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범상치 않은 선구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설, 한유미 등 『연극처럼』에서 시작된 대화는 곧 『연구일지』까지 이어졌다.
“이도나 홍지호 조합 밀어붙인 건 진짜 대단하지.”
“방송가 최대 금기사항이었었는데 말야. 흐흐, 아마 당사자들도 자기들이 이 정도로 케미가 터질 줄 몰랐을 걸?”
“유지아 발굴한 건 이미 쉰 떡밥이고··· 서예린이도 어지간하지? 『연구일지』에서 조금 맛이 덜 가보이고 훈훈한 건 죄 그 사람 솜씨잖아?”
“PD들 죄다 서수현 마이너 카피라고 눈도 안 줬었잖아요. 눈깔이 삔 거지.”
“유지아 임팩트만은 못해도 정말 괜찮은 작가인 것 같아요.”
유지아만은 못하다.
자연스럽게 나온 말은 태클 거는 이 없이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그렇게 제각기 이현석에 대해 쑥덕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비웃음이 들려왔다.
“아주 지랄들을 해라.”
앞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던 선배기자였다.
“쪽팔리기 싫으면 적당히 해둬. 이현석이 그놈은 그냥 거품이야. 지금이야 신선해서 잘 나갈지 몰라도 머잖아 꺼져.”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한 명이 물었다.
“그렇게 보시는 이유라도 있으세요?”
“모르겠냐? 애초에 로드리게즈같은 놈이랑 짠 거에서 딱 한계가 보이는 거야.”
대놓고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으로 말을 잇는다.
“그게 얼마나 병신 같은 놈인지는 세 살배기도 알아. 왜 그런 놈을 골랐겠냐?”
“그건······.”
“그냥 코앞 미국 시장에 급급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매달린 거라고. 그렇게 한치 앞도 못 보는 놈을 가지고 선구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안 쪽팔리냐?”
댁이랑 커넥션 있는 장연철 PD가 더 웃긴 것 같다ㅡ
그렇게 내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실제로도 다들 디에고 로드리게즈를 선택한 것에 의아해하는 중이기도 했고.
선배기자가 조롱기를 머금었다.
“하여간 봐라. 이번 프리퀄 쫄딱 망하고 『연극처럼』 프랜차이즈니 뭐니 하는 개소리는 금방 쏙 들어갈······.”
그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떴습니다!”
“뭐가?”
“『연극처럼』 프리퀄 트레일러요! 방금 떴습니다!”
“어디!”
말이 끊긴 이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몇몇 이들이 허둥지둥 자리에 앉고, 대다수는 찾아볼 시간도 아까운 듯 말을 꺼낸 젊은 기자 앞으로 모여들었다.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연극처럼』 이전 화잖아?”
“트레일러라며, 새끼야! 어디서 낚여가지고는······.”
“맞다니까요. 공식 영상이에요!”
젊은 기자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 화면 안에 비치고 있는 건 『연극처럼 살다』 18화의 장면이었다.
한지원이 정체를 드러내고 정하늘을 집에 구속시켜 두었던 당시의 대화다.
「···어째서 넌 그런 행동만 골라서 하는 거야?」
「글쎄, 도리어 나는 네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묻고 싶은걸.」
이를 갈며 외치는 정하늘을 일별한 한지원이 빙긋 웃는다.
「효율과 비효율 중에 후자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 난 이해할 수 없어. 그래서야 도태되는 게 당연하지.」
여기까지 보고 다시 후배를 갈구려던 기자들이 멈칫했다. 대사와 함께 갑작스레 씬이 흐려지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주르륵 당겨지기 시작했다.
지구 여기저기서 반짝이던 문명의 불빛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고도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밑에 자막이 떠오른다.
– 약 6천 5백만 년 전.
– 도태된 이들의 이야기.
대지를 활보하던 공룡들이 고개를 들자 주포를 충전하고 있는 전함의 모습이 비친다.
그 너머로 문명의 빛이 반짝이고 있는 화성, 금성, 수성이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차례로 지나간다.
– 고대 태양계 문명.
그리고, 그 너머로 본래 없어야 할 작고 붉은 행성이 하나 더 비친다.
– 수도성, 벌칸(Vulcan).
그리고 이내 화면이 하얗게 물들며 서서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과부하율이 너무 높습니다.」
「지구의 후처리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월광 수정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들끓는 태양을 등 뒤로 한 웅장한 신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삼켜질 듯한 아찔한 모습에 몇몇 기자들이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타이밍 맞춰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십이궁이라.」
흘끗, 어마어마한 규모의 함대가 스쳐지나간다.
「외곽선에서 막을 수 있을까요?」
「다른 친구들이 협력해 준다면요.」
「불가능하다는 거군요.」
그리고 이어진 약 1분간의 밀도는 어마어마했다.
화려한 전투, 정치적 야합, 배신. 그리고 그 안에서 들끓는 애증의 관계들.
어지간한 화려함엔 면역이 된 기자들도 힘이 한껏 들어간 장면들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 두 가지군요.」
「우리만 살아남느냐, 아니면 우리만 희생하고 미래를 살리느냐.」
강보에 싸인 아기를 감싸든 외계인이 빙긋 웃었다.
「부디,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해봅시다.」
이어 타이틀이 떠올랐다.
『연극처럼 살다
-The Fall of Vulcan』
영상이 끝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척이나 본격적인 트레일러에 긴 침묵이 흘렀다.
얼굴을 마주보던 이들 중 누군가가 툭 내뱉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쫄딱 망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
선배기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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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 어디갔어?]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지.
대체 이 안에 나에겐 안 보이는 어떤 대단한 빌드업이 숨겨져 있는 거지.
한참을 머리를 잡고 있는데 문득 전화가 울렸다.
“어, 수아야. 왜.”
– 저, 그게요······.
이야기를 들은 내가 눈을 끔벅였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 하지만 진짜예요, 선배님.
정수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 이번 트레일러랑 외계행성 편 전후로 『연구일지』가 사실 『연극처럼』 후속작이 아니냐는 얘기가 퍼지고 있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