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78)
“뜻대로 하십시오.”
편집 과정 중 일견 무리해 보이는 요구에도 조을호 편집감독은 순순히 응낙했다.
사실 예전 1, 2화가 방영된 이후로 그는 내 말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단숨에 막장도 찍으려다 삐끗한 건데 말이지.]“······.”
아무튼 이어진 믹싱 과정에서 나는 철저하고도 완벽한 논리로 움직였다.
“목표는 32퍼센트에서 42퍼센트 사이입니다. 즉 미세한 선에서 막장도를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이 아니라 ‘으음······?’ 하는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인즉슨 초반의 공룡과 같은 임팩트 있는 씬은 최대한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당연히 정석대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석?]김철 선배는 눈을 끔벅였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지아의 스타일이 통상적인 막장과는 살짝 궤를 달리한다는 건 일찍이도 얘기한 바다.
따라서 여기서는 굳이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연출을 강화하는 것이다.
흔히 그런 연출을 ‘발암 전개’라 부른다.
“막장도를 느긋하게 올리는 데는 이만큼 검증된 수단이 없지요.”
심지어는 패턴화로 전형적이 된 까닭에 다루기 쉽다는 장점도 갖췄다.
김철 선배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자세히 설명을 좀 해봐라.]“간단합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대개 알고도 당합니다.”
[······?]말 그대로다.
막장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악역을 단숨에 묻어버릴 수 있는 키를 쥐고도 그걸 바로 터트리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이러이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나 해!’ 하고 친절하게 알려준 후 뜸을 들이다 되레 역습을 당한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기가 차서 욕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결과 작중 핵심이 되는 아이템을 빼앗기면 더욱 뒷목을 잡지요.”
대체 무슨 비밀이 들었는지 모를 ‘USB 찾기’가 대표적이다. 잠깐 가지고 있다가도 뺏기고, 그걸 다시 뺏고··· 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편수가 늘어난다.
중요한 건 아무도 그걸 차지한 사이 데이터를 복사할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밖에도 여러 법칙들이 있습니다.”
한동안 내 설명을 듣던 김철 선배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잘 알면서 넌 왜 못 만드는 거냐?]“······.”
그런 비웃음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주조정실에서 기다리다 못해 사람이 찾아올 때까지 철저하게 조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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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나는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유미를 보는 게 꽤 간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극처럼 살다』 이후 어째 잘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대화로 풀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주인공, 김성재가 사람 좋게 웃으며 움직인다. 뒤에는 최근에 외계 행성에서 얻어온 호신용 물건이 들려 있다.
여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총을 발사해 손에 든 물건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윤가연이 그 틈을 타 정하늘의 뒤통수에 무기를 들이댄다.
「움직이지 마!」
여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미적지근한 태도로 한숨을 쉬었다.
윤가연이 언성을 높였다.
「쏠 거예요. 진짜 쏴버릴 수 있어요!」
「···그렇게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당신은 방금 절 죽일 수 있었어요.」
「네?」
여자의 뒤에 섬광이 번뜩이더니 갑자기 나타난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하늘을 모조리 가렸다.
갑작스런 우주전함의 등장에 두 주인공은 뻣뻣이 굳었다.
전형적인 ‘여주인공이 곧장 움직이지 않다가 역습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리고 최미나의 눈은 되레 반짝였다.
‘지아 배다!’
설마하니 다시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묘한 느낌이 나는걸요.」
핵심 아이템, 연구일지도 아무렇지 않게 빼앗기고, 두 남녀는 맥없이 끌려갔다.
역시나 암 걸리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하지만 최미나는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어 침을 꿀꺽 삼켰다.
이후로도 몇 가지 노림수들이 있었지만 최미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냥 그랬다.
「유전자 감식을 완료했습니다. 둘 모두 인간임이 분명합니다.」
「···그 녀석이 거기까지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은.」
「아무리 그래도 그건 힘들겠지요.」
여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감옥에 갇힌 두 남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어쩔 수 없으니 대화를 해보죠.」
「···바라던 바입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할까요.」
여자가 말했다.
「제 이름은 한지원이라고 해요.」
화면 밖의 최미나가 응? 하고 눈을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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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일지 속 보석함』 20화··· 기존 추측에 확인사살. 팬들 ‘환호’.
▶프리퀄에 더해 전작 주인공 등장··· 본격적으로 유니버스 넓히나?
▶『연극처럼』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먹힌 정하늘 카리스마··· 자칭한 이름 ‘한지원’과 작중 시기에 팬들 갑론을박.
▶SBC 방영인데 ‘지아함’이 그대로? 이현석 피디 독립설과 관계있나.
늘 그렇듯 가만히 기사를 살펴보던 김철 선배가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너랑 나랑 막장 찍는 실력에 별반 차이는 없는 거 같지 않냐?]나는 눈을 부릅떴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반론하려면 일단 저거부터 어떻게 해보던가.]하지만 뒤따른 말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일지 속 보석함’ 20화와 ‘The Fall of Vulcan’ 1화의 수치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시청률 총합 30.6%,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들을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의 합은 70%입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어째서지. 완벽하게 전통적인 막장 요소를 녹여냈을 텐데.
···분명 무언가 실책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제 장기가 아니었습니다.”
[뭐?]“그간 너무 지아 스타일의 연출에 익숙해져서 감을 잃었던 겁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운이 나빴습니다. 제 실력은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김철 선배가 입을 떡 벌렸다.
[현석아, 너 지금 겁나 유치한 거 아냐?]알 게 뭔가. 아무리 그래도 막장에 관해 김철 선배와 동급이라는 모독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헛기침을 했다.
“뭐,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에피소드 마무리까지는 3화나 남았습니다. 어떻게든······.”
[아니, 이제 시간초과일 거다.]김철 선배가 먼눈을 했다.
[우리가··· 아니, 네 녀석이 괴물을 깨워놨거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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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작가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고 기묘하다면 기묘한 두 면면이 모여 있다.
“진짜 그 인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도나가 언성을 높였다.
표독스런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런 표정조차 영 불쌍하게 보일 만큼 눈 밑이 퀭해져 있다.
그간 이도나는 그 정도로 고생했다.
“대체 배우를 뭘로 아는 거예요, 그 인간은? 그냥 죽어라 두들기면 음료수가 나오는 자판기로라도 아는 거예요, 뭐예요?”
촬영을 지켜보던 서예린은 얼추 비슷한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만뒀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이현석을 닮아가고 있는 사고방식에 조금 반성했다.
“그래도 결과는 좋은 것 같던걸요?”
“···안 괜찮았으면 진작에 멱살 잡았을 거예요.”
사실 그게 최근 이도나가 욕구불만이 되고 있는 원인이었다.
뭔가 쏟아내고는 싶은데 구른 만큼 일이 잘 되니 트집을 잡을 구석이 없다.
서예린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보면 한유미 씨는 어떠셨나요? 처음 보시는 걸 텐데.”
“설이보다 걜 한지원 시키면 되겠던데요.”
이도나가 심플하게 말했다.
“이미지 상으론 둘이 바뀐 것 같거든요.”
서예린은 웃고 말았다. 글쎄, 꼭 그렇지만도 않던데.
“···그래서, 난 왜 부른 거예요?”
이도나가 운을 뗐다.
“그 사람하고 같이면 모를까 저희 둘이서만 보는 건 좀 어색하네요.”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서예린이 목을 쓰다듬었다. 가만히 말을 고르다가 묻는다.
“저, 이도나 씨는 어째서 제 작품에 출연해주시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이도나가 눈을 깜박였다.
“어···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전 딱히 작가님 보고 온 거 아니에요. 그 사람 따라온 거지.”
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 표정이다.
영 겸연쩍은 상황이 되었지만 서예린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제가 잘못 들은 거면 죄송한데, 이 피디님 말씀으로는 이미 제 원고를 알고 계셨다고 하던걸요.”
“···그 인간이.”
입은 싸서는.
이도나는 잠시 우물거리다가 적당히 내뱉었다.
“작가님 원고가 적당히 굴러다니는 쓰레기들보단 괜찮았으니까요. 그냥 기억에 남았던 거예요.”
“그런 것치고는 스토리는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셨던 것 같은데요.”
방황하던 시기 이것저것 막장 요소를 섞었을 때 대놓고 기뻐하기도 했고.
이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고 눈매가 짜증스러워졌다.
하지만 톱 여배우가 대놓고 눈을 부라리는 상황에서도 입봉 작가는 태연했다.
“아뇨, 그냥.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여주인공인 윤가연의 캐릭터는 본래 좀··· 그랬잖아요?”
소심하고, 눈치 보고, 맥아리 없고, 답답하고.
“암만 봐도 이도나 씨의 평소 연기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신데, 어째서 여기엔 불만이 없으셨을까 해서요.”
심지어 이도나는 배역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기로 유명한 배우다. 예전 오지호 CP는 덕분에 드라마가 산으로 갔다고 한숨을 쉰 적도 있었다.
그런 이도나가 윤가연이란 배역에 딱히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는 건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맨 처음 서예린 본인에게 역할을 피로한 적도 있지 않던가.
“···그건.”
서예린이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제가 잘못 짚은 거면 죄송한데요. 이도나 씨는 혹시 예전에는 그런 성격이셨나요?”
“······.”
이도나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단순히 짜증이 어렸던 눈에는 적의가 섞이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걸 들어서 뭘 어쩌려고요?”
“이야기를 써야죠.”
“···네?”
서예린의 표정은 진지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제 대본은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냥 시청률만 바라보는 누더기였죠.”
그 말에 담긴 진심은 한껏 뿔이 났던 이도나도 조금 당황시킬 정도였다.
“어··· 아니, 그렇게 말할 것까진······.”
“그걸 수습하려면 단순히 잘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도나 씨와 완벽히 싱크로할 수 있는 무언가여야 해요.”
『연극처럼』을 끌어들인 건 지금에 와서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20화 직전까지의 방황을 수습하기 위해 새로 무대를 쌓아올리는 것보다는 다른 작품의 무대를 빌려오는 게 더 확실하니까.
이 ‘치사한 생각’을 아마 지아도 느낀 모양이지만.
이도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표정을 바꾸며 미간을 누르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보면 왜 이걸 그 사람 없이 저만 불러놓고 얘기하는 거에요? 작품을 위해서는······.”
서예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짝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조금,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아, 네··· 그러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