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91)
“스탠드 이쪽! 이현석 피디님이 역광 살려달라십니다!”
“조커를 어디다 가져다 대! HMI 가져와, 18k로!”
“발전차 위치 좀 옮겨주십시오!”
촬영장은 언제나처럼 온갖 준비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스태프들의 시선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곳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뭐야, 대체.’
‘사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대체 예고도 없이 여길 왜 찾아와?’
그런 모습을 본 최도정 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허허, 참. 왜들 그러나?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처럼. 편하게 일들 하세요.”
그 말에 스태프들은 애써 표정을 숨겼다. 하지만 역시나 생각은 하나같았다.
‘···누가 봐도 못 올 곳이잖아.’
백보 양보해서 스튜디오 촬영 중이라도 요상한 일인데 여기는 방송국과는 구만리인 외부 촬영장이다.
작달막한 개울에 큼지막한 고래가 거슬러 올라온 꼴이다.
그렇게 스태프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도 이현석은 꽤나 담백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니, 요즘 『연구일지』가 장안의 화제 아닌가? 잠깐 견학이나 하려고 왔네.”
시원스레 웃는 것치고는 심히 괴상한 소리였다. 대부분은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시죠.”
물론 스태프들이 보기에는 거기에 별 동요 없이 즉답하는 피디 역시 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분, 방송국 사장님이야? 진짜로?”
이현석이 불청객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아라가 얼른 물었다.
“응. SBC 최도정 사장님.”
“여긴 왜 오신 거야? 뭔가 큰일 난 거 아니야? 아니, 근데 이현석 피디님은 왜 저렇게 태연하셔?”
아라가 발을 동동 굴렀다.
“뭐, 별 일은 아닐 거니까 진정해요.”
어느 샌가 분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도나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기껏 타 방송국에서 고이 모셔온 거위가 집 나가겠다잖아요? 그야 한 번 설득하려고야 하겠죠.”
“아······.”
아라는 비로소 납득한 기색이 되어 풀어졌다. 이현석이 대표로 있는 위즈톤 엔터테인먼트를 위시한 최근의 기사는 그녀 역시 읽은 적이 있었다.
이도나는 그렇다고 구태여 여기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점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쵸? 그렇겠죠? 『연구일지』도 엄청 성공했고··· 아, 근데 예산을 되게 많이 썼다고도 들었는데······.”
“최근 치솟은 광고 단가에 판권 팔아치운 것까지 하면 이미 본전 넘기고도 남았을 거예요.”
이제 절반 왔는데도 이 정도면 이후의 성공가도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아라는 감탄한 기색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 이현석 피디님도 대단하시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장님과 얘기하는데 저렇게 태연하시다니!”
사장과 대화하고 있는 이현석은 여전히 돌부처와 같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비단 아라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이도나만은 살짝 눈썹을 모았다.
“아니, 내가 보기엔 저건 태연한 게······.”
“네?”
“···아뇨, 아니에요.”
이도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멀찍이서 자신을 부르는 서예린 작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자매 둘만이 남았다.
소란스러운 주변의 중심에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아라야.”
눈을 굴리고 있던 아라는 언니 쪽에서 먼저 물꼬를 터주자 적이 안심했다.
“응, 언니.”
그런 아라를 위로하려는 듯 한유미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나온 말의 뉘앙스는 어째 기묘했다.
“여긴 왜 있는 거니?”
아라가 눈을 깜박였다.
“아니, 말했잖아? 그러니까, 이현석 피디님께 단역으로 캐스팅되어서······.”
“응, 그건 아까 들었어.”
여전히 봄날 햇살마냥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래서, 네가 여긴 왜 있는 거니?”
“······.”
#
···불편하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불편한 촬영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14번 씬부터 가겠습니다.”
제기랄, 대체 어디 사는 피디가 방송국 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메라를 돌려봤겠느냔 말이다.
뒤에서 코웃음이 들어왔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내 때는 말이다, 현석아. 배급사 건너 투자자들 쫙 다 모아놓고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각오로······.]‘예, 예.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김철 선배가 여느 때처럼 꼰대 같은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어준 덕에 조금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스태프들도 힘이 한껏 들어간 덕인지 촬영은 도리어 평소보다 순조로웠다.
“컷. 다시 가겠습니다.”
“네.”
“컷, 다시.”
“네.”
평소라면 싫은 소리 한두 마디쯤은 할 이도나도 다행히 오늘만큼은 분위기를 읽어주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어째선지 눈을 끔벅이던 최도정 사장이 내게 슬그머니 물었다.
“이봐, 이 피디. 따로 배우에게 지시는 안 하나?”
“······? 했습니다.”
“했다고? 언제?”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설명했다.
“그러니까······.”
방금 전 나는 턱짓을 좌우로 두 번 했고 이도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향해 십자로 손가락을 그었다.
즉 내가 줌 인에 달리 아웃을 하겠다는 뜻을 전달하자 이도나는 어느 시대의 현기증 효과냐며 자기가 포커스를 몰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그런데 생각만큼 타이트풀이 위로 안 빠지니까 좀 당겨서 다시 촬영한 겁니다. 나쁘지 않게 나왔습니다.”
촬영된 씬을 보여주자 최도정 사장은 어째선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저기 이도나가 그걸 다 알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 한 마디 말도 안 섞었는데?”
“뭐, 경력 있는 배우 아닙니까?”
나는 이도나를 만나고서야 왜 비싼 배우가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지 절절히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화제성도 화제성이지만 이 정도로 촬영이 편해진다면 나라도 돈을 좀 더 쓰고 싶을 것 같다.
“아니, 이보게······.”
최도정 사장은 무어라 말하려다 애매한 표정으로 말을 삼켰다. 어째선지 김철 선배도 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눈앞의 장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이 물건은 해석할 수 없었어요. 앞으로 꽤 귀찮아지실 것 같아 유감이네요.」
「···유감이라고 말씀하시려면 그 올라간 입꼬리부터 어떻게 하시지 않겠어요?」
「아··· 죄송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저도 모르게 기뻐져서 그만.」
정하늘과 윤가연 모두 빙그레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 둘의 신경전은 항상 내가 끼어들 구석이 별로 없었다.
정하늘이 이번 화 이후로 하차한다는 게 조금 아쉬울 정도로 살아있는 씬이다.
“···대단하군.”
최도정 사장 역시 느낀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도나 씨랑 설··· 한유미 씨 사이에서는 항상 상상 이상의 씬이 나옵니다. 굉장히 케미가 잘 맞아요.”
“잘 맞는다고?”
“예. 뭐, 사석에서는 좀 어색한 사입니다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거겠죠.”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평상시의 뜨뜻미지근한 관계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열기가 오른다.
지금도 그랬다. 윤가연은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정하늘을 바라보고 정하늘은 냉막한 표정으로 윤가연을 내려 보고 있다.
최도정 사장은 어째선지 미묘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 눈에는······.”
“예?”
“아니, 아니야. 자네가 맞겠지. 나도 늙었나 보이.”
최도정 사장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곧 점심이군. 다들 식사할 때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
최도정 사장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한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한 방송국의 사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크지 않은 차를, 그것도 나서는 나를 마다하고 직접 모는 것에서 소탈한 성품이 드러났다.
[뭐, 그거랑 별개로 여기 온 게 그냥 기분파적인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구만.]‘···그렇겠지요.’
최도정 사장이 이 근처 지리를 알 리 없으니 식당은 미리 알아본 거겠지.
나로서는 보통 대동하던 오지호 CP가 없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시청률 상승세가 어마어마하더군.”
서로 마주앉은 뒤 최도정 사장이 운을 뗐다.
“이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자네가 약속한 40퍼센트는 금방일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
슬쩍 겸양하긴 했지만 내 속내는 달랐다. 40퍼센트 가지고는 부족하다.
『시청률 40%에 따른 부분보상 달성에 의해 다음 수령에 필요한 수치가 증가합니다.』
『다음 부분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시청률 50% 이상이나 막장도 90% 이상을 달성해야 합니다.』
막장도를 어찌할 수 없는 이상 이제는 시청률 50퍼센트를 달성해 재차 시간을 연장한 뒤 신작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 십 년간 시청률 50퍼센트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종편도, 웹플릭스도 나오기 전의 옛날 에나 가능했을 얘기죠.’
2천년대 중반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나로서도 진심으로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점유율보다도 파이 크기 자체의 한계에 가까웠다.
‘뭐, 그래도 일단 뭔가 목표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최근의 디에고 로드리게즈를 어찌 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최근의 그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아무렴. 그 교주는 너일 테고.]김철 선배가 이죽거렸다. 거기에 눈을 흘기고 있던 와중이었다.
문득 최도정 사장이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나는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나는 순간 의아해졌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음 봤을 때 서예린 작가를, 나아가 자네의 안목을 우습게 본 것 말이네. 결국 자네가 옳았고 나는 틀렸어.”
···아, 그리고 보면 그런 일도 있었더랬다.
내가 옳은 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안이었기에 그만 잊고 있었다.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현재로서는 승부가 났다고 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작금의 상승세는 『연극처럼 살다』와의 연계로 인한 바가 크니까요.”
“그 『연극처럼』도 서 작가가 적잖은 몫을 하지 않았나? 결국 자네가 옳았던 거지.”
음?
나는 조금 의아한 심정이 되었다. 어째 최도정 사장은 자기가 졌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꽤 승부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음식이 나오며 잠시 대화가 끊겼다. 뜨끈한 국밥이었다.
“들지.”
“예.”
식사가 이어지던 중간 최도정 사장이 말했다.
“어쨌든 간에 내가 졌으니 자네에게 줄 내깃돈을 고민해봐야겠군.”
“······?”
그런 약속이었나?
내가 아리송해있던 와중 이어 최도정 사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었다.
“그래, 우리 자회사 하나를 자네한테 통째로 맡기는 정도면 어떻겠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