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magic! RAW novel - Chapter 295
298화.
멸망을 막아내기 위해 총력전에 진입한 인류.
어마어마한 재화와 자원이 에덴이라는 초대형 함선을 구축하기 위해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전반적인 삶의 질은 이전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규모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었기에 이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었다.
[ 에덴을 제작한다고 엘리스가 미합중국에 요구한 건 다름 아닌 1,300t에 달하는 금괴입니다. 아니, 아무리 인류 멸망을 막아선다고 해도 그렇지, 금괴 1,300t이 무슨 뉘 집 개 이름입니까? 그렇게 막대한 부를 우리 미국이 일방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 [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인데 나라에서는 무슨 멸망을 막기 위한 특별세까지 추가로 걷겠다고 합니다. 당장 내가 굶어 죽게 생긴 상황인데 왜 내가 그런 세금까지 내야 하는 겁니까? 막말로 이런 망할 세상 그냥 콱 멸망하게 내버려야 합니다. 누가 도와달라고 했나요? ] [ 에덴 프로젝트로 인해 세계적인 공급망이 또다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가는 날이 갈수록 폭등하며 서민들의 생활은 하루가 갈수록 힘들어져만 가고 있는데 우리 독일 정부는 무슨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을 추진합니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처음에는 일치단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갈수록 삐걱거리기 시작한 인류 사회. 한순간 대량의 자원이 외부로 유출되다 보니 예전보다 많은 것이 부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과도한 계층 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으로 인해 폭동까지 일어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은 군말 없이 현재 상황에 순응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 싫어도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다 죽을 수는 없잖아?
– 개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던데 그래도 살기는 살아야지.
– ??? : 그래서 네가 세계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 한 일이 뭔데?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한 일이라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대의명분에 어떤 무리한 요구에도 감히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막대한 손실과 희생을 떠안는 사람은 따로 있었기에 정부 지도자들도 엘리스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아쉬운 소리는 조금도 할 수 없었다.
[ 여러분께서 착각하시는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프로젝트 에덴은 이미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문명의 기술력을 아득히도 초월한 함선입니다. 앞으로 수천 년은 물론, 수만 년 뒤의 미래 기술로도 과연 만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죠. 게다가 그 규모가 조금 거대합니까? 저걸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들의 양을 생각한다면, 각 국가에서 차출된 자원의 양은 농담이 아니라 함선 전체 비중의 1%도 안 되는 양입니다. ] [ 우주로 떠나서 미지의 외계 문명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누구입니까? 멀린 아닙니까? 수천만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강대한 세력을 가진 문명과 홀로 맞서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왜 자신이 희생해야 하냐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 [ 나를 위해서 인류를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내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와 풍요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 [ 멀린 같은 위대한 영웅이 있기에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멸망을 피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히 해야 합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미 인류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잃고 처참하게 무너져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인류의 비극적인 최후를 막아서기 위해서 기나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결심한 멀린.
아무리 예전보다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보다도 더한 희생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불만의 목소리는 점차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강대한 우주 제국을 상대로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맞서 싸우겠다는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바빠졌다.
매지컬 컴퍼니의 총괄 사장. 이아영과 우로보로스의 부학장. 김영희.
어떻게 보면 지금 추진되고 있는 에덴 프로젝트의 계획을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 둘은 틈만 나면 나를 갈궈대느라 바빴다.
“이 망할 동생 새끼야. 너는 하나뿐인 누나 과로사로 뒤지게 만들려고 작정했냐?”
“혼자서 지구를 막기 위해서 우주 제국을 때려 부수겠다니. 그런 미친 소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어요? 예?”
아무런 상의 없이 이런 폭탄선언을 한 이후부터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두 사람. 기회만 되면 나를 갈구느라 바쁘면서도 아주 가끔은 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오늘과 같이 말이다.
“야. 오늘 저녁에 뭐 일정 있냐?”
“아니, 딱히 없는데 왜?”
“없으면 밥이나 먹고 가라고. 오랜만에 밥해 줄 테니까.”
우로보로스와 매지컬 컴퍼니에서 공동으로 제작 중인 에덴의 핵심 부품에 대해서 논의하러 온 자리에서 갑자기 밥 먹고 가라고 말하는 영희.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일순간 움찔하며 눈을 굴렸다.
“어.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미국 대통령이랑······.”
“미국 대통령이랑 사이좋게 저세상 가고 싶은 거 아니면 닥치고 먹고 가라.”
“······. 네.”
오늘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이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는 영희.
그리고 그녀가 한참 동안 혼자서 요리에 매진하고 있을 그때, 나는 옆에서 가만히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고 있는 아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영은 왜 안 도망가고 앉아있어요?”
굳이 표현은 안 했지만, 그 누구보다 영희의 요리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아영.
제 발로 그 뒤틀린 황천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에 입을 벌렸다.
“그냥요. 저도 저녁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밥이나 먹고 가려고요.”
“네······?”
이성이란 게 있다면 절대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
자발적으로 고문(?)을 당하겠다는 아영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그때, 영희는 상상 이상으로 기묘한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누나······? 이건 도대체 뭐야?”
“렙틸리언 도마뱀 꼬리에 자이언트 게르의 혓바닥.”
“······.”
“겉으로 보기에는 기괴해 보여도 체력 회복과 원기 보양에 엄청나게 좋은 음식이야. 너 주려고 힘들게 공수한 것들이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어.”
평범한 재료들을 가지고도 저세상 음식으로 만드는 특유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영희.
그런 그녀가 내 정원에서 공수한 여러 마법 생명체들을 재료로 한,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로 새롭게 조리하기 시작하자 그 특유의 재능은 상상 이상으로 그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 이런 씨······.”
냄새만 맡았는데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충격.
도무지 한 입을 먹어볼 생각조차 안 나고 있는 와중에 영희는 아주 맛있게 혓바닥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자. 생각보다 질기니까 꼭꼭 씹어먹어라.”
얼른 먹으라며 내 눈앞에 정체불명의 고기 한 점을 내미는 영희.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먹으라고 내미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는 마녀와 같았다.
“으으으······.”
거의 반강제로 고기를 입에 넣으며 처음 느껴보는 식감과 맛에 온몸을 진저리치며 질색하자 영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맛없냐?”
“······. 그럼. 누나는 이걸 먹고 맛있겠다고 하는 미친 새끼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차마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의 끔찍한 맛.
하지만 나의 독설에도 그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맛없는 음식이야말로 몸에 좋은 거야.”
“······. 그러니까 누나가 하는 요리가 죄다 그 모양이었던 거야?”
‘맛없는 음식은 몸에 좋다. 고로 맛있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로 귀결되는 그녀의 정신 나간 요리 공식. 비로소 왜 누나가 하는 요리가 죄다 뒤틀린 황천의 맛이었는지를 깨달아 정신이 멍해진 그때, 아영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멀린 님. 할 이야기가 있어요.”
“······. 무슨 이야기요?”
“오랫동안 고민해 봤는데. 저도······. 멀린 님이랑 같이 갈래요.”
“······. 아영은 갑자기 또 왜 그래요?”
누나의 정신 나간 요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데 이어서 기습적으로 연타를 날리는 아영.
하지만 아영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계속 생각해 봤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냥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상상하고 상상해봐도 멀린 님을 혼자 떠나보내는 건······.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자그마치 10년도 더 넘는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아영.
처음에는 정신 나간 중학생과 20대 어수룩한 편집자의 관계로 시작했지만, 수많은 일들을 거치며 전 세계 경제의 거대한 한 축을 지탱하는 거대 기업의 총괄 이사로 거듭난 그녀는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채로 나를 바라보며 지금껏 차마 자신이 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까지 왜 멀린 님을 대신해서 매지컬 컴퍼니를 맡아왔다고 생각하세요? 돈? 명예? 아니면 이깟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일찍이 회사를 그만둘 거였으면 오래전에 그만뒀어요. 북한 정보부가 납치하려고 했을 때부터, 온갖 재앙이 밀어닥치면서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두 달 넘게 퇴근도 못 했을 때부터 이미 진절머리 났다고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았어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는 사명으로 시작했지만,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컸던 짐.
하지만 묵묵히 그 모든 짐을 짊어왔던 진짜 이유를 말하면서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차마 하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오직 너만을 위해서 내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결말이 이렇게 되면 혼자 남는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내가 너를 얼마나······좋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고백 공격을 시전하며 엉엉 울기 시작한 아영.
“······.”
그런 그녀를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가만히 얼어붙어 있는 나에게 영희는 두 눈을 부릅뜨며 얼른 달래주라며 수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재촉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단······. 저도 마음 같아서는 아영이나 누나나 데리고 갈 수 있으면 데려가고 싶어요.”
이건 거짓말은 아니다.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수십 년은 더 걸릴 머나먼 여정을 혼자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이 지구를 구원하기 위한 미래에서······. 이 둘은 내 곁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됐다.
“저 같은 미친놈을 좋아해 줬다면 그건 진심으로 고마워요. 하지만 알다시피 저도 팔자가 아주 제대로 꼬인 놈이라서 아영이든 누구든 저랑 함께하면 나중에는 무조건 후회할 거예요.”
한 행성의 운명을 바꾸는 쉽지 않은 여정.
그 고되고 기나긴 여정에 엄한 사람을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영을 향해 내가 바라보았던 앞으로의 미래를 나지막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제가 없는 세상에서 아영은 지금처럼 매지컬 컴퍼니의 회장으로서 잘 지내게 될 거예요. 때로는 정신 못 차리는 여러 국가의 분쟁에 휘말려 골머리 썩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저랑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업무 속에서 꽤 많은 여유를 찾게 될 거예요.”
“그 남는 시간에 어수룩하고 저보다 더 정상적인 남자를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죠. 아, 아이는 둘이나 낳게 될 건데 아마 첫째가 꽤 속 썩이게 될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먹거리는 아영에게 앞으로 펼쳐질 밝은 미래를 이야기해주며 나는 안심하라는 듯이 히죽 웃어보이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없는 미래에도 아영은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행복할 거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제가 없더라도 아영은 저의 유산을 지켜주길 부탁할게요.”
“이 지구에 남아서요.”
“······.”
내 말에 잠깐 침묵하다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연신 끄떡거리는 아영.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영희는 불현듯 물었다.
“나는?”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긴 한 듯한 영희.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진심을 담은 조언을 전했다.
“누나는······. 뭐. 조만간 허우대 멀쩡하고 잘생긴 남자 하나 사냥해서 결혼하기는 하는데 제발 그놈의 요리는 좀 하지 마. 무슨 일가족이 식사 시간만 되면 공포에 질려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 무슨 식사 시간이 고문 타임이야?”
“······. 여기서 죽어볼래?”
하여간 미래에도 답이 없을 누나의 요리 실력에 희생당할 미래의 가족들에게 나는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