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
165화.
인천국제공항.
탈레반과의 극적인 협상 타결에 무사히 풀려난 22명의 성물 교회 선교단들이 공항에 발을 들이자,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그들을 덮쳤다.
“지금 심경이 어떠십니까?”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번 사태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해주세요!”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하자 이들을 인도하던 정부 관계자들은 난처한 얼굴로 막아서며 말했다.
“탈레반으로부터 인도받은 모든 인질의 건강 상태는 양호합니다. 다만, 오랜 기간 억류되어 있어서 많이 피곤하고 또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이런 식의 질문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이후 외교부 주재 브리핑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외교부 공보관이 폭발적인 그들의 질문 세례를 몸으로 막으며 인질들을 최대한 빨리 공항에서 빼내기 위해서 시간을 끌려고 했지만, 어디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와 함께 소리치며 달려드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그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예지야!”
“석구야! 우리 왔다!”
“어······엄마? 아빠!!”
“아이고! 정말 살아 돌아왔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피해자들의 부모가 어디에선가 달려와 그들을 껴안으며 공항 한가운데에서 신파극을 찍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엄청난 무리를 함께 이끌고 왔다는 것이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다가와 말했다. 인자한 미소를 한가득 얼굴에 담고 있는 그는 자신을 못 알아본 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가슴에 손을 대며 소개했다.
“저는 성물 교회의 새로운 목사로 부임하게 된 이용석이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 온갖 고초를 겪으신 성도들을 직접 맞이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거대한 현수막을 더불어 성가대의 열렬한 찬송가는 공항 한복판에서 여러 사람의 눈과 귀를 홀렸다. 그리고 그 상황에 경악한 외교부 공보관은 그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리와 상의도 없이 멋대로 이런 짓을!”
안 그래도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고 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어 주지는 못할망정,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대는 성물 교회의 만행에 그는 허탈감을 넘어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용석 목사는 자신이 뭐가 잘못한 건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따지고 드는 그를 향해 물었다.
“이런 짓이라뇨?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받는 이들을 환영하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게다가 지금 이들은 누구의 강요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오오오! 거룩하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여러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진실 된 어린양들입니다.”
애써 그 아프간의 오지에서 데리고 왔더니, 자기들끼리 신을 찬양하며 공항 한가운데에서 외쳐대는 이들을 보며 그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들을 데리고 온 공무원들은 물론 자기 갈 길을 가던 일반인들과 취재를 위해 달려온 기자들까지 말이다. 그리고 성물 교회 사람들의 행보는 하나도 남김없이 카메라에 찍혀 온갖 매체에 보도되었다.
– 와. 진짜 저 사람들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건가?
–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네
– 이런 놈들 구하겠다고 정부가 나서서 협상한다고 날뛴 거냐?
공항에서 버젓이 보여주는 이들의 태도에 분노한 여론은 순식간에 끓어오르기 시작하며 기독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에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C-5 수송기 한 대가 인간의 탈을 쓴 사탄 하나를 데리고 무사히 한국 땅에 안착했다.
“한국에 온 게 이게 얼마 만이래?”
두 달도 넘게 전 세계를 싸돌아다니고 이번 문제까지 해결하면서 거의 석 달 만에 귀국한 나는 묘한 서울 특유의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히죽 웃었다.
“민수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바로 집으로 갈까요?”
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유진은 최근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때문에 고생이 심했는지,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아뇨, 지금 당장 청와대로 갈 거예요.”
“청와대요······? 갑자기 거기는 왜요? 프리덤과 관련한 협의는 조만간 하기로 이야기를 나눈 상태잖아요.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 돌아왔는데, 부모님 얼굴도 한번 보고 피로를 풀고 난 다음에 해야죠. 가끔은 모든 것을 다 잃고 휴식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지 매일 같이 일에 매진하는 건 좋지 않다니까요? 워커 홀릭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요?.”
내가 청와대를 가려고 하는 목적을 약간 오해한 듯, 일은 나중에 하고 우선 좀 쉬면서 피로를 풀자는 유진의 말에 나는 그녀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인지, 나를 진정으로 위해 하는 말인지 헷갈렸다.
“그거 때문에 가려고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요?”
“아직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지 못했잖아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인질들도 이제 무사히 다 풀려나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든 게 완전히 다 해결되었는데 아직도 무슨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고······.”
답답하다는 듯이 불평을 쏟아내던 유진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을 멈추고는 불안한 표정으로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민수님······.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 때문은 아니겠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강하게 째려보는 유진을 보면 그녀가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추측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 하셨는데요?”
빙그레 웃으며 묻는 내 질문에 유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빠르게 쏟아내며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소 민수님을 경험해 본 바로는, 절대 마음에 안 들거나 당한 일에 대해서 복수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었죠. 이번 사태에서 탈레반 테러 단체는 물론 중동 전체가 민수님의 신기술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파탄 나게 생겼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고 치고, 그러면 이제 남은 곳을 생각한다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을 기똥차게 끓인다고 했던가? 나와 함께한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는지, 그녀는 스스로 내가 노리고 있는 목표물에 대한 그 해답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번에 인질로 피랍되었던 성물 교회 사람들이 되겠죠.”
유진의 말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간 제 비서로 일한 보람이 있네요. 유진. 이렇게 혼자서 제 수를 생각해내다니 말이에요.”
긍정의 의미가 가득 담겨 있는 내 말에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수님. 이 세상에서 절대 얽혀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종교에 미친 광신도들이에요. 그들을 공격했다가는 나중에 무슨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고요.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말도 있잖아요. 괜한 곳에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요. 어차피 성물 교회는 민수님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자멸하고 말 거에요. 안 그래도 이번에 공항에서 벌인 짓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물론 기독교 내부에서도 엄청나게 욕먹고 있다고요. 그런 비이성적인 사람들한테······.”
일장 연설을 나한테 쏟아붓고 있는 유진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무슨 소리를 그녀가 하더라도 내 마음은 변할 일이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기에, 나는 사악한 웃음을 그녀에게 지어 보이며 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그냥 저랑 같이 집으로······. 민수님! 어디 가세요! 아직 제 말 안 끝났어요.”
“금방 돌아갈 테니까 먼저 가 있으세요.”
뒤로 돌아 홀로 걸어가는 민수를 바라보는 유진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어렸다. 지금껏 민수의 비서를 하는 동안에도, 깨닫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어떤 흉계로 이들을 엿 먹일 것인가 하는 그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매번 기상천외한 짓으로 상대방을 엿 먹이는 민수의 행보에, 유진은 또다시 일어날 커다란 후폭풍을 상상하며 일순간 밀려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
청와대 경호실과 비서실의 도움으로 은밀하게 외부의 시선을 피해 안으로 들어온 나는 전기찬대통령과 오랜만에 직접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대통령님.”
임기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전기찬 대통령. 치열한 정치 인생의 끝맺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지만, 눈동자만큼은 아직도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민수 군······. 자네 왔는가······.”
전기찬 대통령은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지으며 나를 맞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왜 그가 낯선 반응을 보이는지 눈치채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생각보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시나 보네요?”
내 말에 전기찬 대통령은 부정하지 못한 채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끄응······. 고놈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거세게 저항하고 있어. 법적으로 들어가면 아마 우리가 오히려 불리할 거라고 청와대 수석들이 나를 뜯어말리더군. 뾰족한 방도가 없어.”
전기찬 대통령과 내가 계획한 광신도들에 대한 참교육.
그것은 바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들어간 모든 비용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하는 것이었다. 탈레반과의 협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긴급 파견된 고위 공무원들만 해도 수십 명에, 인질들 전원 한국행 비행기에 태우는 것만 해도 수억 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특수부대의 군사 작전 수립과 관련 정보 수집에 대한 비용만 해도 모두 합하면 족히 수십억 원은 넘을 비용을 전부 성물 교회 쪽에 청구하려 했지만, 돈이 걸린 문제이다 보니 이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우리가 세금 내는데 구해줘 놓고 비용 청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소방관이 자기 일 때문에 불 끄러 가는데 출장비를 청구하는 거 봤냐!”
법정 소송도 불사하며 배 째겠다는 태도로 버티는 이들의 언행은 많은 사람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현실은 이들이 유리했다. 막상 법대로 하게 되면 오히려 이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큰 상황에 전기찬 대통령은 이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어 고심하던 차였다.
“저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 무슨 다른 방도라도 있는 건가?”
전기찬 대통령은 히죽거리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집무실에 놓여 있는 푹신한 소파에 앉으며 눈을 빛냈다.
“돈 안 내고 버티겠다고 한다면 어쩌겠어요? 구상권 청구는 포기하도록 하죠. 어차피 재판 가면 우리가 불리한 걸 가지고 괜히 질질 끌면서 이 문제를 오래 가져갈 필요는 없잖아요? 그 대신······.”
그 차선책으로 다른 방법을 전기찬 대통령에게 제시해주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그······그렇게 하면 엄청난 반발이······!”
“반발이야 엄청나긴 하겠죠. 단순히 성물 교회만이 아니라 개신교, 가톨릭, 그리고 불교는 물론 모든 종교 단체에서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니까요.”
그야말로 종교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수준으로 번져버릴 수 있는 초강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라는 내 말에 전기찬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만 뻐끔거렸다.
“하지만, 전 국민의 50% 이상은 무신론이죠. 그렇게 치면 최소한 절반 이상은 대통령님이 내리시는 결정에 지지할 거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에서 내거는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결정이란 말이죠. 게다가······.”
“법대로 하자는 그쪽 말대로 우리도 법대로 해 보자는 거잖아요?”
내 마지막 말에 전기찬 대통령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종교계 전체에 여파를 일으킬 선택, 하지만 모든 명분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에, 칼자루를 쥔 채 그걸 휘두를지 말지를 고민하던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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