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55
55화. >
55화.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민수의 하루~”
누가 들어서는 안 될 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요즘 컴퓨터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물리학계를 완전히 뒤엎으려고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은근 재미가 들려 하루하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있었다.
“아르고스. 이것도 필요한 내용은 다 정리했으니까 암호화해서 저장해 놔!”
– 알겠습니다.
더 팩토리.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소행성들로부터 자원을 채굴-가공-생산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완전히 자율적으로 하는 그야말로 무인공장. 그 공장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완전히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겨둔 나는 프로젝트 전체를 암호화시켜 아르고스 서버 어딘가에 저장시켰다.
“으으으! 이제야 겨우 3개 째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옮기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지금 현재 기술력으로는 내가 모든 과정에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쩝······. 아르고스. 요즘 CIA 쪽 움직임은 어때? 아직도 내가 뭘 하나 계속 염탐하고 있어?”
– 그렇습니다. 지금도 스피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에휴······. 진짜 뻔히 들킨 거 다 알면서 왜 나한테 직접 물어볼 생각은 안 하는 거지?”
이상하게 CIA는 내가 지긋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눈치를 준 적이 여러 번인데도 걸린 것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버티는 것인지 도통 뒤에서 엿보는 것을 포기할 줄 몰랐다.
“진짜 정보부 요원들은 관음증 걸린 환자들만 할 수 있다는 채용 조건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문득 CIA 요원의 자격 요건이 궁금해지는 순간에, 아르고스가 메시지를 보냈다.
– 현재 제 서버에 저장된 프로젝트 001의 암호화 파일을 복사해가서 분석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개입할까요?
“엥? 그 프로젝트 001이면······. 그거?”
– 네. 말입니다. NSA 쪽에서 자체적으로 행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유진이 나한테 하도 난리를 쳐대서 어쩔 수 없이 봉인한 녀석인데 왜 하필 그걸 가져갔대? 자기들이 작정해서 물리학계를 날려버리려고 결심한 건가?”
불타더라도 자기들 스스로 불타겠다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가 순간 엿보인 듯했다. 나는 그래도 하루하루 다크서클이 짙어지는 유진의 얼굴을 생각하며 아르고스에게 말했다.
“아르고스. NSA 측에서 입수한 파일을 강제 삭제하고 앞으로 내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 권한을 없애버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프로텍트가 해제되면 골치가 아파졌다. 이름은 우스꽝스러워도 그 안의 내용은 변화하는 우주의 상대 좌표와 고정된 절대 좌표를 계산하고 차원과 시공간의 이동과 도약에 필요한 좌표들을 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식들로 사실 세상에 공개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 관리자 명령 확인. 앞으로 에 대한 열람 권한 등급을 조정합니다.
아마 갑자기 자료가 삭제된 것을 파악한 NSA 쪽은 한동안 이를 갈겠지만,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이제 프로젝트 004 에 대한 정리도 해 보자고.”
– 프로젝트 004에 대한 기록 시작.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음······. 프로젝트 004는······.”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응? 누구지?”
여기로 누군가 찾아올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아한 얼굴로 인터폰에 보이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리고 조금 당황한 내색을 하며 문을 열었다.
“어······엄마?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민수야. 우리 이야기 좀 하자.”
갑자기 등장한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뭐 하니? 빨리 앉지 않고.”
엄마의 말에 나는 마주 보며 앉고는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일 나가신 것 아니었어요?”
“민수야······. 요즘 엄마가 네가 하는 것들을 보면서 생각했는데 말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답답하게 말을 질질 끌었다.
“제가 요즘 하는 게 왜요?”
“학교도 밥 먹듯이 빠지고······. 이리저리 가서 예의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한테 욕먹고······. 요즘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자꾸 네 걱정이 돼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한탄하듯이 말했다.
“네 아빠는 무슨 너를 세상이 인정하는 천재라며 만날 치켜세우고 주위에 가서 자랑만 엄청나게 해대면서 뭐든 민수 네가 하는 일들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데 엄마는 네가 나중에 어떻게 자라날지 정말 걱정돼······.”
“왜요? 제가 뭐 나중에 뭐 밥이라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닐까 그러세요?”
생각해 보니 아직 내가 아진 전자의 지분 4%와 이번에 만들어진 코퍼레이션 아르고스의 실제 주인이라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돈에 깔려 죽을 수는 있어도 밥 못 먹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너같이 똑똑한 애가 굶어 죽을 리는 없겠지. 엄마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라······.”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조금 어렵다는 듯 힘들게 말을 꺼냈다.
“네가······. 하도 너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며 사니까 그러다 무서운 사람들한테 걸려서 제 명대로 못 살고 일찍 죽을까 봐 걱정된다······.”
“······네?”
뭔가 13살 어린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엄마의 표정은 진지했다.
“우리 민수가 똑똑한 건 엄마가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가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말할게. 민수가 예전에 IQ 검사에서 81이 나온 건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행동하는 거랑 말하는 걸 보면 사회성이······조금······많이 떨어진 것 같았어.”
“······.”
엄마가 사랑을 듬뿍 담아서 진솔하게 팩트를 융단폭격으로 날려대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관리자님.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관리자님의 행동 패턴을 비교 대조했을 때, 저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G-1에 날아온 메시지를 보며 아르고스까지 가세한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파 왔다. 나와 가까운 사람과 인격체(?)가 이렇게 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음······. 엄마가 요즘 그런 걱정을 하고 계셨군요.”
내가 굳은 얼굴로 말하자 엄마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민수야. 엄마가 부탁 하나만 할게. 들어줄 수 있겠니?”
“음······. 무슨 부탁인데요?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그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내 말에 엄마는 이곳까지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우리 민수가······. 학교에서 배울 건 하나도 없다는 건 알아. 그래도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야. 네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여러 가지 즐거운 추억들도 만들고, 다투기도 하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기도 해.”
엄마의 말에 나는 그 부탁이 무엇인지 눈치채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말이야······. 이제부터 학교는 제발 툭하면 빠지거나 지각하지 말고 제대로 다녔으면 좋겠어. 요즘 학교 선생님이 맨날 너 학교 안 온다고 전화 오는 것도 그렇고 친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을 보면 이러다 정말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돼.”
그 말에 나는 문득 이번 생에는 친밀한 또래 친구와 긴밀한 관계를 단 하나도 맺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 봤자 수지 정도?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좀 심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진지하게 엄마의 부탁을 고민했다.
“음······. 꼭 같은 나이의 친구를 만들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그래. 최소한 의무 교육과정인 중학교까지는 정상적으로 다니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 이제 6학년이잖니. 언제 올해가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인데, 즐거운 추억들도 많이 쌓아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엄마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중학교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최대한 학교는 열심히 다니면서 친구들도 사귀어 보도록 노력할게요.”
예상보다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덕분에 엄마는 조금 편안한 얼굴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우리 민수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엄마가 조금은 안심이 되네.”
“헤헤······. 그럼 이제 다 된 거죠? 전 방금 전까지 하던 게 있어서 이만······.”
용건이 다 끝난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엄마가 나를 불러세웠다.
“민수야? 어디 가는 거니 아까 방금 엄마랑 한 약속 잊었니?”
“네?”
의아한 듯이 물어보자 엄마는 미리 준비해 온 책가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학교 가야지?”
생각해 보니 오늘은 화요일.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었다. 순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엄마와 한 약속 때문에 나는 곧장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이충 초등학교의 교문을 들어서며 나는 문득 학교에 온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6학년이 되어서 개학 첫날부터 기자들의 농성에 학교 가는 것을 포기한 채 가끔 윙윙이를 타고 가 얼굴만 비추는 정도여서 같은 반 친구들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으음······.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기도.”
새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상하게 전보다 불량 학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반성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사의 주어진 시간에 충실해야 하는 법. 앞으로 꼬박꼬박 학교에 나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힘을 과하게 주며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애들아. 오랜만이야!”
활짝 웃으며 인사한 나를 반겨주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말했다.
“으응······. 민수 왔구나? 그래······. 정말 오랜만이네. 저저번주에 한 번 오고 처음 온 거지? 그런데 지금 수업 중이니까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으렴.”
갑자기 난입한 나 때문에 한창 진행 중이었던 수업이 방해됐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민망해진 나머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안녕? 네 이름은 뭐니?”
안경을 쓰고 있는 깡마른 아이. 조금 소심해 보이는 듯 주저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중식이야.”
“그래. 만나서 반갑다.”
반갑다는 내 말에 잠깐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중식은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려 열심히 수업에 집중했다. 또다시 책상에 앉아 있던 나는 금세 집중력을 잃고 멍하니 잡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런 내 태도가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계속했다.
*
“중식아 뭐해?”
“중식아 그 책 재밌냐?”
“중식아! 나랑 밥 같이 먹지 않을래?”
“중식아······? 내 말 씹냐?”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억지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최대한 공통적인 관심 주제를 찾아 친교를 다지려고 노력했지만, 중식은 생각보다 그리 협조적인 친구가 아니었다. 서글서글한 태도로 말을 걸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중식과 우정을 다지는 데 포기하려던 나는 우연히 그가 가방에서 꺼내든 책을 보고 놀랐다.
“어? 그건?”
한때 한 시대를 장악했던 초딩들의 게임. 단풍잎 이야기. 그 게임의 공략집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물론 공략집이라고 쓰고 별 시답잖은 정보들만 적혀 있는 불쏘시개라고 읽는 게 더 적절하지만, 옛날에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다. 쌉비인지 싸대기인지 하는 캐릭터를 보며 선망에 빠져 나도 마법사를 키웠었지······.
“너 단풍잎 이야기 좋아하냐?”
내가 그 책을 보며 묻자,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격렬히 반응했다.
“아냐! 난 이 게임 안 좋아해!”
화를 내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중식의 반응에 잠깐 당황했다. 겨우 잡은 대화 주제였지만, 그리 좋은 주제는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 그러냐? 그런데 왜 그 공략집은 보고 있는 건데?”
그러자 그는 조금 침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게······. 빨리 레벨 업을 해야 하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반응에 나는 의아한 눈으로 중식을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중식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 중식이. 내 Zl존x법사는 잘 키워 놨어?”
뒤를 돌아보니 6학년 주제에 엄청난 발육이 위와 옆으로 진행된 커다란 덩치의 아이가 친근하게 중식을 불렀다. 하지만 중식은 그를 보며 움츠러들었다.
“태진아······. 그······그게······. 어제 집에 제사가 있어서 컴퓨터를 할 시간이 도저히······.”
그러자 태진의 얼굴에 피어나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그럼 경험치 하나도 안 올려놨단 말은 아니겠지?”
“그······그 대신! 오늘 집에 가서 어제 못 올린 것까지 올려줄게!”
“하······. 이 새끼가 그런다고 내가 봐 줄 줄 알아? 어제 못 올려서 내가 오늘 들어갔을 때 낮은 경험치로 게임해야 하잖아!”
레벨도 아니고 경험치가 낮은 건 별 상관이 없는데, 이상한 꼬투리를 잡으며 화를 내는 태식을 보며 나는 중식과 태식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야! 따라 나와라.”
태진이 중식을 보며 말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중식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주춤주춤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 후미진 화단으로 가던 태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식 뒤에 따라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넌 뭐냐?”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졸졸 따라가던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구경꾼이야. 신경 쓰지 말고 원래 하려던 것 해.”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순수하게 학교 폭력의 현장을 직접 구경하고 싶다는 마음에 따라나선 것이었지만, 태진은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오해한 듯,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오늘따라 별것도 아닌 찐따들이 자꾸 성질 건드네······.”
태진은 섬뜩한 눈빛을 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 너도 따라와라.”
“응! 헤헤.”
태진은 몰랐다. 그때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민수라는 아이를 돌려보내야 했다는 것을.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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