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93
93화. >
93화.
깊은 새벽. 인천항의 부두는 잠에 빠져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이! 빨리빨리 움직여!”
다급한 목소리로 튀어나오는 중국어.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여럿이 바쁘게 컨테이너 하나를 크레인에 담아 옮기고 있었다.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인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거칠게 부두 안으로 들어왔다.
“일은 얼마나 됐어?”
인천 지방 경찰청 수사부 부장. 김찬후. 그가 차 문을 거칠게 닫으며 작업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말했다.
“거의 다 됐소. 이제 컨테이너 운송 트럭에 고정만 하면 바로 상품들을 빼낼 수 있소.”
꽤 험한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 그의 얼굴에는 거친 흉터가 길게 나 있었고, 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에는 살벌한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찬후는 그런 그를 보면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도대체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기에 이렇게 밖으로 정보가 새어나가나! 쟈오! 네놈들이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다고 해서 손을 잡았는데, 이런 식으로 나까지 위험하게 만들어?”
찬후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있는 힘껏 그에게 고함쳤다. 하지만 상대는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그저 차가운 눈으로 찬후를 직시했다.
“뭐······뭐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차갑게 바라보는 눈. 하지만 찬후는 그의 눈을 보면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상 입을 놀리면 자신도 소리 없이 이 세상에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수 있다는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 두지······. 빚에 허덕이며 나락에 빠진 당신을 도와준 건 우리야. 물론 당신 덕분에 우리도 비교적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도 우리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소. 우린 서로 협력하는 관계지 상하 관계가 아니야.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네놈 새끼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되겠지?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리면 입을 찢어줄 테니까 닥치고 있어.”
처음에는 무미건조하게 시작한 쟈오의 말이 광기에 서린 듯 으르렁거리며 끝났다.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살기에 찬후는 당황한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흠. 알겠소. 내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 미안하오.”
찬후의 사과에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찬후에게 눈길만 한 번 주고는 몸을 돌려 한창 컨테이너에 달라붙어 수송 준비를 마무리해 가는 작업자들에게 말했다.
“빨리 움직여. 물건은 부산으로 가지고 간다.”
원래라면 오늘 아침에 중국으로 보내져야 하는 물건들이었지만, 일이 꼬인 탓에 부산 쪽에 잠깐 잠적하며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게 생겼다. 중국 쪽에서 이미 물건을 받을 준비를 다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뒤바뀐 일정에 나중에 한 소리 들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제기랄······.”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는 갑자기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더니 크게 외쳤다.
“모두 멈춰!”
그의 고함에 작업장 안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의아한 눈으로 일제히 그에게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앞에 있는 어두운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조용한 침묵 속. 어딘가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이 야밤에 뭐 이렇게 바쁘게 작업을 진행하시나?”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백인. 그가 홀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며 작업장 안의 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눈에는 경멸이 어려 있었다.
“중국이 인신매매에 관해 여러 가지 보고들이 들어간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하자니 참으로 참담하군. 이런 식으로 예전부터 수많은 사람을 잡아가고 또 착취했겠지.”
커다란 차량 위에 올려져 있는 컨테이너를 보면서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의 백인 남자의 행동을 보며 쟈오는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쟈오의 질문에 백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FBI 한국 지부장 캐널 데인이다. 네놈들 같은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 이 늦은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순순히 투항해라.”
권총 하나와 함께 FBI 배지를 꺼내 드는 그를 보며 쟈오는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한가득 맴돌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FBI가 도대체 왜······?”
미국도, 미국인도 아닌, 한국 땅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납치를 해 왔는데 갑자기 한국 경찰도 아니고 미국 연방 수사국이 뜬금없이 튀어나오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너희가 알 것 없고······. 전부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머리 위에 올리도록.”
철컥.
권총을 장전하며 위협적으로 그들을 조준했지만, 아무도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저 미묘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작업에 매진하던 그들 무리는 십 수 명이 넘었지만 지금 그들을 체포하려는 자는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전부 연장 들어라.”
쟈오의 말에 일제히 무언가를 손에 집어 들기 시작했다.
품 안에 숨기고 있던 칼부터 쇠 파이프. 빠루나 망치.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흉기들을 손에 하나둘 쥐어 들고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데인은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살기를 풍기며 다가오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천천히 뒷걸음질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총을 든 그라도 순식간에 달려드는 그들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눈치가 있다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텐데? 혼자 우리를 막으러 오다니. 우리 삼합회를 너무 우습게 본 것 같군.”
쟈오는 긴장한 얼굴로 이리저리 권총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조준하며 주춤거리는 그를 보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살인멸구(殺人滅口). 그만 죽으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철창 안에 갇히게 될 테니, 몇 명이 죽더라도 모두가 달려들어 그를 죽여야만 했다.
“미국 수사 요원을 죽이겠다고? 미쳤군. 그 후환을 감당할 수는 있나?”
그 말에 쟈오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미국이 아무리 분노에 날뛴다 하더라도 한국은 그들의 영토가 아니었다. 게다가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국과 더 가까운 한국에 심어둔 조력자들이 더 많았기에 최악의 상황에도 중국으로 안전히 빠져나갈 방법은 있었다.
“그건 두고 봐야 할 문제겠지. 미국이 과연 너 따위 경찰 하나 때문에 중국에 숨어든 우리를 잡으려고 얼마나 최선을 다할까?”
쟈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데인은 사방으로 자신이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
“죽여.”
그 말과 동시에 기세가 바뀌어 천천히 다가오는 중국인들. 죽음이 다가온 순간이었지만, 데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쟈오는 그런 그의 미소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정말 고맙군······. 너희를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줘서.”
탕
데인의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의 총탄이 불을 뿜으며 누군가의 머리에 박혔다.
탕 탕 탕
하나에 그치지 않고 이리저리 총탄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일제히 데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미 총탄에 쓰러진 자들의 틈새로 재빨리 포위망을 빠져나온 상태였다.
“그런데 말이야······.”
두두두두두
갑자기 사방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군홧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그 신호였는지, 쟈오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딱딱하게 얼굴이 굳었다. 데인은 그런 쟈오를 보며 장난스러운 듯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언제 혼자 왔다고 한 적 있나?”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사방으로 튀어나오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 하나 같이 소총을 들고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는 그들을 보면서 모두가 당황해하며 무기를 내려놓았다.
짤그랑. 땡그랑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기를 내던진 채 손을 들고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다 틀렸다는 듯이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는 쟈오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찬후에게 다가가 데인은 수갑을 채웠다.
“너희들은 미 연방 수사 요원 살인 미수 혐의와 UN 인신매매방지 의정서 규정 위반으로 긴급 체포한다. 필요하다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니까 잘 알아두도록. 되도록 제일 비싼 변호사로 찾는 게 좋을 거야. 미국 형법이 꽤 엄중하거든.”
데인은 쟈오와 찬후에게 수갑을 채우고 난 후에 손을 들고 서 있는 나머지 중국인들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건 기록. 2003년 5월 14일 05시 38분. 인천항 부두에서 인신매매 조직이 사람들을 국외로 이송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 탐색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19명 정도의 중국인 범죄 조직원들과 접촉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범죄 현장을 목격한 본 요원을 살해해 범죄 현장과 증거들을 은폐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무력 진압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 2명을 체포하고 나머지 17명은 사살하였다.”
“뭐······?”
쟈오가 데인의 알 수 없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지만, 데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말했다.
“처리해.”
타타타탕. 타타탕.
마치 번갯불에 콩 볶는 듯한 요란한 소리들이 울렸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부러지는 그들을 쟈오는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어떻게.”
법을 준수하고 지켜야 할 경찰과 군인들이, 무장 해제한 채로 투항한 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찬후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며 데인에게 따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분명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고 있었잖아! 비무장에 저항을 포기한 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다니? 이건 명백한 살인이야! 살인!”
방금 전까지도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던 그들을 방관하던 그가 살인이라고 외쳐대는 것이 아이러니했는지 데인은 실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연방 요원을 죽이려고 무기를 들었던 가해자들이 어느새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지? 도무지 한국인이면서 쓰레기 같은 타국의 범죄자들을 옹호하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오게 되는 지 궁금하군.”
“뭐······뭐야?”
끼이이익 쾅.
컨테이너의 문이 강제로 잡아 끌리며 요란한 금속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겁에 질린 듯, 약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혼미한 사람들이 가득 웅크리고 있었다.
“피해자들 현황은?”
“남성 9명. 여성은 모두 7명으로 총 16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군인들이 피해자를 한명씩 컨테이너 밖으로 조심스럽게 데리고 나왔다. 마약이라도 주사한 것인지, 하나 같이 눈이 풀린 채 멍하니 있는 그들을 보면서 데인은 분노했다. 그리고 거칠게 찬후의 멱살을 움켜쥐고 잡아끌었다.
“이······이게 무슨 짓이야! 놔!”
“저 사람들을 봐라. 저게 네놈이 팔아먹으려고 했던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너의 그 같잖은 동정심을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자들을 위해 표출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목소리는 왜 내지 않는 것이지?”
“······.”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닫는 그를 보면서 데인은 차가운 분노를 담아 살벌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모든 힘을 다해서 네놈의 남은 잔당들을 뿌리 뽑도록 하지. 네놈이 이들과 작당하면서 얻은 것들을 동전 한 푼 남기지 않고 모조리 회수하고 그 어느 사소한 비리 하나까지 모조리 파내주도록 할 테니까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 말에 찬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어느새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파멸을 선고하는 사신이 이미 자신의 목에 낫을 걸었다는 것을.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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