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1화(101/353)
☆ 102화 ☆
검은 비단 같은 아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아빠가 옅게 미소 지었다.
‘……누구 아빠인지 진짜 잘 생겼네.’
패륜이긴 하지만 아빠가 만족하셨으니 그걸로 됐다.
그때 오빠들이 은근하게 물었다.
“근데 춤 연습 상대는 누구였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궁금해서.”
“알아만 둘게. 아무 짓도 안 해, 응?”
“…….”
왜 아무 짓도 안 한다는 말이 더 불안하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오빠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몰라. 이름도 모르는 애였어. 근데 오빠들이 관심 가지면 나도 관심이 갈 것 같네.”
“우린 그딴 놈한테 관심 없어.”
“절대 궁금하지 않아.”
“누군지 기억도 하지 마. 우리도 관심 없으니까.”
좋아.
더 이야기가 나올까 나는 서둘러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나저나 아빠, 혹시 황궁에 황자가 돌아왔다는 소식 같은 건 없나요?”
아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옛날에 풀어주었던 노예 이야기인가?”
“네, 맞아요. 사실 오늘 황궁에서 시드를 봤거든요.”
“……그렇다면 돌아온 것이겠구나. 하지만 그에 관한 소문은 일절 없었다. 아마 황제가 막는 것이겠군.”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는 소문이에요? 아니, 시드가 돌아온 건 숨길 수 있겠죠. 그래봤자 오래는 못 숨기겠지만.”
황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지 않은가.
“하지만 황자가 그런 금제에 걸리고 노예로 팔리기까지 아무런 말도 돌지 않았다는 게 이해 안 돼요.”
무려 황자가 없어진 사안이다. 그런데 조용하다고?
내가 타국의 황자일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디에르 자작과 칸도르 백작이 얼마나 웃었던가.
그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아빠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황자의 존재조차 몰랐을 테니까.”
“네?”
“루루, 네가 알고 있는 황제의 자식은 누가 있느냐.”
“황후 소생인 에스테반 황자와 시드가 전부죠. 황비님께서 낳으신 황녀는 백 일을 채 넘기지 못했고.”
“시드는 네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더냐? 진짜 이름은 무엇이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책에도, 어떤 공식 기록에도 에스테반 황자 외의 다른 황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황가에는 비밀이 아주 많다. 특히 후궁전은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금지(禁地)지. 더불어 책봉 받지 않은 후궁은 공식 석상에 나오지조차 않아.”
즉, 외부에서 후궁과 접촉할 수 있는 루트는 없다는 뜻이었다.
“현재 황제의 자식은 에스테반 황자 하나다. 후궁에서 태어난 자식은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시드가 있죠.”
“그래. 그 말은 시드 같은 존재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
“현 황제는 후궁에서 태어난 자식을 공식적으로 인지하지 않았다는 거군요.”
“거기에서 몇이나 태어났는지 모르는 일이지.”
“거꾸로 말하자면…… 몇이나 죽어 나갔는지 모른다고도 할 수 있네요.”
내 말에 아빠가 굳은 표정으로 내 머리를 꾹 눌렀다.
“가끔 너의 총명함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너무 일찍 깨닫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구나.”
“괜찮아요! 나는 세상의 따뜻한 면도 많이 많이 알고 있으니까! 아빠랑 오빠들이 알려줬잖아요.”
“네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지.”
아빠가 피식 웃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오빠들도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비죽비죽 가시가 서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나도 가족들과 만나기 전엔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였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족들 품에서 나는 환히 웃었다.
* * *
이틀 후.
나는 에체시스 용병 단장과의 협상을 위해 변장을 하는 중이었다.
아즐이 정령의 물로 폴리모프 마도구인 팔찌를 감싸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반나절은 괜찮을 거예요. 마나가 새어 나오진 않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네. 그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에첸은 왜 나만 오라고 하는 거지?”
단장과 상단주의 독대.
이번 협상에서 에첸이 요구한 사항이었다.
내 정체를 캐내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간 움직임과 맞지 않았다.
지난번 에첸과의 대면 이후로, 나는 에체시스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내 정체를 조사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기 위해서 직접 얼굴을 본 것 아닌가?
하지만 중간에 미행을 멈춘 것부터 시작해서 정보를 캐내는 움직임이 일절 사라졌다.
더 이상 내 정체에 관심 없는 것처럼.
“저는 아가씨의 안전이 걱정입니다.”
“그건 진짜로 걱정할 필요 없어. 지난번 만났을 때 협상도 우호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렇게 뒤통수칠 놈으로 보이진 않았어. 무엇보다…….”
나는 내 목덜미를 매만졌다.
지금은 폴리모프 마법으로 모습이 바뀐 상태라 보이진 않지만.
“아빠가 직접 걸어주신 결계진이 있으니까.”
아즐이 미소 지었다.
“그래도 물의 축복을 걸어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아즐이 조심스럽게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닿은 부분을 기점으로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이 몸 안으로 퍼져나갔다.
“고마워, 아즐.”
“아가씨께 도움이 되는 것이 제 기쁨입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나는 로브를 입고 후드를 눌러쓴 후,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 * *
예의 그 용병단 아지트의 문을 열자 에첸이 차를 따르며 미소 지었다.
독대라는 말대로 방 안에는 에첸뿐이었다.
나는 인사도 생략하고 물었다.
“왜 굳이 우리 둘만 만나자는 거야?’’
“그러고 싶으니까.”
허.
그것참 할 말 없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뭐가 문제지? 나도 내 용병단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고 너도 네 상단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잖아.”
“그렇다고 해서 보통 둘이서 만나진 않지.”
“하지만 많은 것이 오가는 회담일수록 둘이서만 만나지.”
“일리 있는 말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척 팔짱을 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것이 오가는 자리인지 한 번 볼까?”
“전부터 생각했지만 항상 급하더군. 우선은 자리에 앉아서 다과라도 드는 게 어때?”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은 아니一.”
에첸이 몰랑몰랑 폭신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 접시를 내밀었다.
어찌나 폭신한지 접시의 움직임을 따라 수플레 팬케이크가 찰랑찰랑 흔들린다.
“아니지만! 중요한 거래처니까 특별히 다과부터 들지.”
내 말에 에첸이 피식 웃으면서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
“자, 여기 아이스크림이랑 과일도 있어.”
나는 사양 않고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자를 때부터 구름을 자르는 것 같았다.
얼른 아이스크림과 함께 입 안에 넣자 순식간에 사르르 녹으며 사라졌다.
“맛있어…….”
저절로 안면근육이 흐물흐물 풀어진다.
나는 정신 없이 팬케이크를 해체했다.
이걸 그냥 두는 것은 이 훌륭한 팬케이크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게 두 개째를 순식간에 흡입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에첸이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민망함이 몰려왔다.
“묻었어.”
“응?”
입가를 쓰는데 에첸이 고개를 젓고는 내게 손을 뻗었다.
“이쪽.”
진득한 메이플 시럽이 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츕,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빨아 먹은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도 맛있게 먹길래 얼마나 맛있으면 저러나 생각했는데, 그냥 달기만 한데.”
“그냥 달다니! 메이플 시럽의 깊은 풍미를 몰라보는 네 미각이 잘못된 거야. 그리고 팬케이크랑 곁들여 먹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거든?!”
이 맛있는 수플레 팬케이크를 모욕하다니 참을 수 없었다.
그가 비딱하게 턱을 괸 채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
“진짜야!”
나는 얼른 수플레 팬케이크를 썰어 아이스크림까지 착착 얹었다.
“자, 먹어봐.”
척 내미니 그가 입을 벌려 포크를 물었다.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에첸의 갈색 눈동자는 아주 깊고 짙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어라?’
나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가족들이랑 하도 이러고 살아서 딱히 자각이 없었다.
내가 지금 열 살 응애의 모습이었다면 별 상관도 없었을 거다.
애기가 삼촌한테 얼린 요구르트 자랑하면서 나눠주는 느낌이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사샥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포크를 빼냈다. 귓가가 뜨거웠다.
“확실히.”
에첸이 입술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엄지로 슬쩍 훔치며 이어 말했다.
“그런 거 같네.”
나는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맛있는 팬케이크가 울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나한테 이런 수작은 안 통한다니까?”
“주변에 잘생긴 남자들이 많아서?”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아주 잘생긴 남자를 만나지 않았어? 네 운명을 만나는 날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그딴 쓸데없는 편지를 다 보냈어. 급한 일인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쓸데없다니? 운명을 만나는 건 아주 중요한 일 아닌가?”
그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어땠어, 네 운명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드의 모습이 내 눈앞을 스쳤다.
운명을 만날 거라는 문장을 파삭 밟으며 나타난 소년.
찬란한 금발, 오묘한 빛깔의
보랏빛 눈동자.
주인님, 하고 속삭이던 목소리.
“……글쎄, 그날 만난 사람이 워낙에 많았어야지. 그중에서 한 명쯤은 내 운명일 수도 있겠지.”
에첸은 내 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운명이라는 게 어떤 운명인진 모르는 거 아냐? 원수가 될 운명일 수도 있지.”
시드의 손에 복수 당할 운명이라던가.
“점술사가 이야기한 운명은 말 그대로 운명의 상대였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그날 만난 남자만 해도 몇 명인데.”
“바람둥이.”
“뭐?”
어이가 없었다.
에첸은 어쩐지 조금 심술이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지?
“나중에 내가 결혼하면 뭐라도 얻어먹고 싶어서 그래? 왜 이렇게 내 운명의 상대에 신경 써.”
에첸은 답이 없었다.
“알았어. 그날 만난 사람과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내가 잊지 않고 너한테 한턱 쏠게. 됐지?”
에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의뢰 협상이나 하지.”
어쩐지 내가 되게 눈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날 만난 사람 중에 에첸이 있었다면 나한테 수작 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잖아.’
“샤이렌 꽃의 상태는 확인하고 왔어. 훌륭하더군. 그리고 진짜로 영수 악트셰라켄과 어떤 접촉도 하지 않은 것도 알아봤지. 솔직히 감탄했어.”
“내 선물이 만족스러웠다니 다행이군. 그럼 다음 의뢰가를 정하는 데 무리가 없겠어.”
“다음에도 이런 실력을 기대하면 좋게 쳐줘야겠지.”
거래처를 후려치면 칠수록 품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10만 송이를 의뢰할게. 의뢰 가는…… 지난번 에체시스에서 구매했던 검은 황금 물량. 거기에 추가로 20%를 더 얹어주지.”
“흠? 가격을 좁혀 나갈 생각은 없는 건가? 처음부터 후하게 부르는군.”
“멋진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지.”
“상단주께서 이 정도로 성의를 보여줬으니 나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여야겠군.”
역시 에첸은 합리적이다.
이쪽에서 후하게 부르면 이때다 싶어서 더 가져가려 욕심부리는 자들도 넘쳐나는데.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파트너야.’
나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에첸이 마주 미소 지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이런 쿨거래라니.
모든 거래가 이랬으면 좋겠다.
준비해온 의뢰서에 샤이렌 꽃 물량과 검은 황금 물량을 적은 다음, 각자 싸인을 했다.
이것으로 할 일은 전부 마무리되었다.
이제 저 문을 나가면 다음 의뢰 때에야 에첸과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 점쟁이가 그렇게 용해?”
“여태까지 말한 게 틀린 적은 없다. 넌 그날 네 운명을 만났어.”
“그럼 혹시 내가 그 점쟁이를 만날 수 있을까?”
에첸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니, 그 운명에 대해서 좀……. 무슨 운명인지 확실하게 듣고 싶은걸.”
“내가 말했잖아. 운명의 상대라고.”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신년마다 인터넷 무료 토정비결을 봐서 아는데 그 운명이란 게 뭔지는 까봐야 안다니까?
보통 애정이라고 말하지, 운명같이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는 다구!
하지만 에첸은 만나게 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저렇게 믿고 있는 점술가면 에첸과 많은 것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크니까.
“보아하니 딱히 지금 남자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닌 듯한데 왜 그렇게 운명에 신경 써?”
에첸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랬지. 못 만나는 거면 됐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에첸을 바라봤다.
무명의 용병단을 창설해서 단숨에 최고로 키워낸 사람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용병 중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있다. 에첸이 그 사람들을 잘 파악하고 다뤘기에 지금의 에체시스 용병단이 있는 거겠지.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인데.”
“아하, 친구 이야기.”
“걔가 나쁜 애는 아닌데……. 사정이 있어서 노예를 조금 막 대했거든?”
“나쁜 애는 아닌데 노예를 막 대했다?”
“아니, 때리거나 고문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그냥, 말만 좀 험하게……
“흐음.”
“노예가 싫거나 미워서 그랬던 건 아니야. 험하게 했던 말이 딱히 진심도 아니었고.”
“…….”
“노예가 다친 상태였는데 뒤에서 몰래 치료해주고 그랬어. 솔직히 마음이 쓰였거든. 근데 그 노예는 그걸 몰라.”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 왜 그렇게 웃어?”
아까부터 에첸이 기분 나쁠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