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2화(102/353)
☆ 제103화 ☆
내 지적에 에첸은 언제 웃었냐는 듯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깔끔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그 노예에게 엄청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몰래 치료도 해줬다는 거지? 모진 말을 했지만 하나도 진심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렇게 정리하니까 내가 그 노예를 엄청나게 좋아한 거 같잖아.
“내가 아니라 내 친구라니까?”
“그래, 네 친구.”
내가 입술을 내밀자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내 친구가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줬는데, 그 노예가 엄청난…… 음, 이를테면 소드 마스터가 되어서 찾아왔대.”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렇게 막 대했던 노예가 굉장히 강해져서 찾아왔다니까? 굳이! 찾아왔다구!”
“그냥 찾아올 수도 있잖아.”
“그냥이 아니야. 그 노예가 글쎄, 구속구 열쇠를 줬대. 예전에 자길 구속하고 있던 그 구속구 열쇠.”
“흐음.”
“이게 무슨 뜻 같아?”
“있는 그대로의 뜻 같은데?”
“역시 그런가.”
하아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내 반응에 에첸이 움찔했다. 어쩐지 내 얼굴을 살피며 묻는다.
“별로였어? 받기 싫어?”
“당연하잖아? 언제 어떤 식으로 당할지 모르는데.”
내 말에 에첸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있는 그대로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날 노예로 부리던 네년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가 재밌어질 테니 기대하라고. 조금씩 조금씩 피를 말려서 내가 당했던 수모의 갑절로 갚아주지.”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에첸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아니다.”
에첸이 슥 고개를 돌렸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넌 협상할 때는 눈치 빠르게 굴더니 이런 데엔 진짜 눈치 없구나.”
“뭐어?”
내가 어디 가서 눈치 없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않았다.
로판 여주들이나 그렇지, 나는 독자라고!
“원래 눈치 없는 애들이 자기가 눈치 없는 줄도 모르지.”
에첸의 말에 비죽 심통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그럼 저 뜻이 뭔데?”
“말했잖아. 있는 그대로의 뜻이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있는 그대로의 뜻이면 내가 생각한 게 맞잖아?
에첸은 나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구속구가 뭐 하는 물건이지?”
“그야 구속하는 물건이지.”
“그럼 열쇠는?”
“구속을 결정하는 물건?”
“그럼 그 열쇠의 주인은?”
“…….”
나도 바보가 아니다.
에첸은 나 보고 눈치 없다고 했지만, 이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 거야?”
“그런 거지.”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너는 이야기를 다 아는 게 아니니까. 거기다 내 친구 입장에서 말을 들었고.”
내가 내 모습으로 시드를 치료해주고 보살펴줬다면 에첸의 말도 일리 있었다.
로판의 정석 중 하나잖아?
비극적인 미인 노예남에게 처음으로 따스함을 알려준 여주.
그리고 그 여주에게 집착광공 황제남주.
‘하지만 난 할미였다구.’
거기다가 검을 잘 써서 소드 마스터가 된 게 아니라 무려 황자다.
내가 얼마 전에 황족들을 만나봤는데, 신분에 대한 자존심이 얼마나 높은지 얼굴만 봐도 알겠더라.
태생부터 지배 계급의 꼭대기에 있던 남자.
그런 사람이 순식간에 피지배 당하며 모욕받았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깊겠는가.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건 아니지.’
고개를 젓는데 에첸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아니, 반응이 예상과 전혀 다르지만……. 보고 있으니 그대로도 좋아.”
“……?”
“어쨌든 너…… 네 친구는 그 노예의 생각으로 가득하겠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자꾸만 생각날 거야.”
에첸이 미소 지었다.
어라, 조금 이상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와 협상하러 와서 네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정도면 친구의 고민이 얼마나 깊겠어?”
“그야 그렇지.”
나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저렇게 기분 좋아 보이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앗, 하고 깨달았다.
“혹시 에첸, 연애 이야기 좋아해?”
나는 눈을 빛냈다.
솔직히 나도 남의 연애 이야기 듣는 걸 무척 좋아한다.
‘사귀고 난 후부터는 노관심이고 사귀기 전까지 밀당하는 이야기 듣는 거 너무 좋아.’
여기서 취미가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날 보더니 에첸이 피식 웃었다.
“글쎄,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참 흥미롭네.”
“그렇구나.”
거친 용병단에 있어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에첸도 분명 내 과다!
연애 필터를 끼고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망상 가득한 결론을 낸 거였어.
‘나한테 운명을 만날 거라고 편지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실실 웃는 나를 보던 에첸이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눈치 없는 사람을 싫어했거든.”
“그야 그렇지. 누가 좋아하겠어?”
“근데 지금 보니 그것도 꽤 괜찮은 거 같아.”
“응?”
에첸이 비스듬히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귀여운지도.”
그의 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머쓱해서 드러난 목덜미를 문질렀다.
짧은 단발머리의 끝이 손가락을 사락사락 간질였다.
처음으로, 에첸이 유리한 협상을 위해 수작 부리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Chapter 23.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새벽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황궁의 딜루쿨룸 홀 앞.
마차가 멈춰서서 나는 폴짝 뛰어내렸다.
지난 보름간 2, 3일 간격으로 황궁에 출석하며 다양한 일정을 보냈다.
딱히 경합이라고 느껴지는 건 없었다.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티파티나 각종 사교 클럽, 심지어 게임까지 다양한 친목의 장이 열렸다.
아주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그걸 지켜보며 점수를 매기고 있었을 테지만.’
그나마 경연과 비슷했던 건 살롱을 열어 다양한 정세와 예술 사조에 대해 토의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때는 영애들도 영식들도 꽤 많이 준비하고 긴장한 티가 났다.
그리고 오늘은 대망의 경합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결의가 어려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이목을 끌지 못했어도 이번 경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본선 진출을 점쳐볼 수 있으니까.’
반대로 이번 경합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적이었던 사람도 떨어질 수 있다.
그때, 내 등을 툭 치는 손길이 있었다.
“야.”
돌아보니 라파엘이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놀랐잖아.”
다이빙킥을 계기로 우리는 꽤 친해진 상태였다.
라파엘은 좀 재수 없긴 하지만 허례허식을 차리지 않아서 꽤 편한 상대였다.
‘명문 대귀족인데도 그런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달까.’
걸음을 옮기는 내 옆으로 라파엘이 붙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오늘이 경합일이니까, 이래저래.”
“너도 그런 걸 신경 써?”
“당연하지? 이왕 나왔으면 우승은 해야 할 거 아냐.”
“뭐, 그 말은 너랑 어울리긴 하네. 하도 내일 없는 듯 살길래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어.”
“내일 없이 살다니? 내가 얼마나 건실하게 살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자 라파엘이 날 비웃었다.
“글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건실은 쟤를 가리키는 말 아니겠어?”
라파엘이 턱짓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클라티에였다.
“뭐야, 너 저런 타입이었어?”
“미쳤냐?”
라파엘이 펄쩍 뛰었다.
“난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른 타입은 딱 질색이야.”
“건실하다며.”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보기에. 지금도 봐. 다른 여자애들한테 상냥하게 굴면서 실제로는 어떻게든 자기가 돋보이려고 애쓰잖아.”
“그렇긴 하지.”
“그리고 본인이 먼저 다가가는 건 죄다 유력가의 자제들이고.”
“오올?”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너야말로 내일 없이 맨날 땡땡이치고 사는데 그런 걸 다 보고 있는 줄은 몰랐어서. 다시 봤다?”
“내가 원래 보기보다 더 잘났거든. 물론 보기에도 잘났지만.”
“아, 그러셔.”
우리는 마주 보고 킥킥 웃었다.
“근데 너 우승이 목표면 쟤처럼 구는 게 좋지 않아? 계속해서 세력을 넓히고 있잖아. 저런 것도 평가 요소 아냐?”
라파엘이 클라티에를 눈짓하며 말했다.
“왜 이래? 나도 나 좋다는 사람 많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
나도 무슨 말인지 안다.
나랑 친한 영애들은 입지도, 가문도 크게 특출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클라티에가 인맥의 끝판왕이 되어가는 것과 비교될 만했다.
‘에쉘타인 영애가 좀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서로 무리도 다르고.’
그 외에 많은 영애들이 내게 호의적이었지만, 찰싹 붙어 다니며 친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굳이?”
턱을 치켜들며 도도하게 말하자 라파엘이 재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딱히 너한텐 상관없겠다.”
“그치? 그리고 난 지금 나랑 친한 영애들 좋아. 다들 착하고 귀여워.”
“헤에.”
“살다 보면 때로 배경을 보고 사람을 사귈 필요도 있고, 난 그게 꼭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모든 사람을 그것만 보고 사귈 필요는 없잖아?”
라파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뒤통수에 손깍지를 꼈다.
“네가 본선에 나갈 생각이면 나도 좀 분발해볼까.”
“어머? 분발하면 나갈 수야 있고?”
“넌 내 진가를 몰라서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홀 안에 도착했다.
“루아티샤 공녀님!”
먼저 와 있던 영애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라파엘의 팔을 한 번 툭 치고는 영애들에게 다가갔다.
“델바트렌 공자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냥 시비 걸길래 받아쳤을 뿐이에요.”
내 말에 영애들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닥속닥 묻는다.
“저기, 델바트렌 공자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에요?”
으응?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상기된 뺨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아하…….’
“절대 아니에요. 라파엘한테 말해도 미쳤냐며 펄쩍 뛸걸요?”
“아, 그렇군요. 두 분이 워낙 친해 보여서.”
“친하긴 하지만……. 라파엘은 라파엘이니까요.”
“어머, 델바트렌 공자님이 얼마나 멋지신데요? 인기도 많구…….”
나도 라파엘이 인기 많은 건 안다.
얼굴도 꽤 잘생겼고, 개구쟁이 악동 같은 면이 영애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살피다가 씨익 웃었다.
“혹시 자스민 영애, 라파엘을?”
“어머!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조금…….”
자스민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귀一 여一 워!’
라파엘 놈한테 자스민은 아깝다.
그래도 흥미진진하긴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영애들도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십 대 초반이니 다들 첫사랑을 시작할 때인가.’
할미 모습은 아니지만 어쩐지 할미의 마음이 되어 푸근하게 영애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공一녀一님!”
에쉘타인 영애가 등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열네 살인 그녀는 나를 무슨 막냇동생 다루듯 안고는 얼굴을 부볐다.
본인 말로는 언제나 동생이 가지고 싶었다고 했다.
“하아, 지난 이틀간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혹시 생각해보셨어요?”
“거절할게요.”
“너무해!”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달라는 요구가 더 너무해요.”
“흐응, 그건 순수하게 연구를 위해서인걸요.”
연금술의 이단아라는 별칭에 걸맞게 에쉘타인 영애는 정말 독특했다.
‘엄청 똑똑한데 엄청 이상해!’
에쉘타인 영애는 미련 넘치는 손길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다가 자리를 떴다.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 이상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고개를 젓다가 몇몇 영애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들 눈인사를 해와서 나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하아, 예쁘고 반짝반짝한 언니들 너무 많아. 눈이 즐거워.’
로판뽕 제대로다.
타이셀 영애가 또 윙크를 해 와서 더더욱 마음이 설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교우 관계도 원만.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 평범함이 내 배 속을 따뜻하게 꽉 채웠다.
모든 참가자들이 다 자리해서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뿔피리 소리와 함께 호명관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황태후 폐하와 황비 전하께서 드십니다!”
처음 새벽 축제를 시작할 때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황족이 등장했다.
저번과 달리 에스테반 황자 대신 황태후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번 경합의 심사자들이겠지.’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예를 갖추는 가운데 황제의 호탕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 고개를 들라.”
황제는 미소 지은 채 영애와 영식들을 쭉 둘러보더니 껄껄 웃었다.
“이전보다 더 얼굴이 밝군. 축제를 즐거이 보내고 있는 모양이야. 짐도 기쁘군! 지켜본바 과연 하나하나가 제국의 기재들이라고 할 수 있어 우열을 가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새벽 축제의 우승자를 가리는 축제지.”
그 말에 영애와 영식들이 의지를 다잡는 것이 보였다.
“명예와 영광을 꿈꾼다면 오늘 경합은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거네. 제국의 동량들이 어떤 능력을 펼칠지 기대하지.”
황제가 뒤로 물러나자 새벽 축제의 총괄자인 체시아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경합은 남녀 나뉘어 치러집니다. 영애들은 오른쪽으로, 영식들은 왼쪽으로 입장 부탁드립니다.”
이런 적이 많았기에 익숙하게 오른쪽 문으로 갔다.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황후와 황태후가 함께 들어온 것만 빼면.
놀란 영애들을 향해 황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네, 영애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분 폐하.”
클라티에가 먼저 나서며 인사하자 다른 영애들도 예를 갖췄다.
황후의 시선이 잠시 클라티에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을 상황인데 말을 길게 하는 것도 주책이지.”
황후는 쫙 펼쳤던 부채를 탁, 접으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영애들이 치를 경합에 대한 주제를 말하겠네.”
영애들이 긴장한 채 황후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황후는 충분히 그 시선을 즐긴 후, 입을 열었다.
“구휼이네.”
한순간 장내에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이 어린 영애들의 입을 움직였다.
“구휼이라고?”
“보통 새벽 축제에서는 이런 것보다는 다른 기량을…….”
역대 새벽 축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경합 주제에 다들 놀란 모양이다.
반면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