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4화(104/353)
☆ 제105화 ☆
“두 영애의 의견서를 보고 짐의 눈을 의심했네.”
황제가 고압적인 얼굴로 클라티에와 루아티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감히 짐이 친람하는 새벽 축제에서 이 무슨 무도한 짓거리인가! 어려서부터 도둑질을 하는 자가 어찌 제국의 동량이라 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노성이 드넓은 딜루쿨룸 홀에 울려 퍼졌다.
“내 이 일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홀에 자리한 영애와 영식들은 황제의 진노에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사히 경합을 치렀다며 즐겁게 식사했건만 이 무슨 날벼락인가.
하지만 정작 그 분노의 대상 중 한 명인 루아티샤는 태연자약한 얼굴이었다.
‘조금 빡치긴 했겠지만, 저렇게까지 화내는 건 일부러 오버 하는 거지.’
황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쁠 건 없다.
타렌카와 파에라톤.
둘 다 대명문 고위 가문이다.
‘아이의 잘못이라며 쉽게 덮지 않으려고 밑밥을 까는 거네.’
가문에까지 책임을 물어서 얻어낼 건 얻어낼 생각이다.
다 받아낸 후에야 ‘허허, 아이가 치기 어린 경쟁심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덮어 주겠지.
그 과정에서 부정 행위자의 명예가 실추되겠지만, 황제는 크게 개의치 않을 거다.
감히 본인이 친람하는 경합에서 이딴 수작을 부렸으니 그 정도 벌은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아니, 어쩌면 새벽 축제가 끝나고 이 일이 잠잠해지면 실추된 명예를 되살려주는 조건으로 또 다른 것을 얻어낼 생각인지도 몰라.’
원래 아무리 잘못했어도 권력자가 계속 곁에 두며 예뻐하면 결국 물길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사회 아니던가.
‘황제는 자신의 이익에 민감한 자야. 계산이 빠르고 평판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구나.’
권력의 중심에 서기엔 적합하지만 적을 만들기 쉬운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두 영애에게 묻겠다. 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면 사실대로 답해야 할 거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황제의 물음과 동시에 루아티샤의 눈앞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 발생!
〈클하다, 추라티에야!〉
독자님!
클라티에가 감히 독자님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누명을 씌우려 합니다.
억울합니다! 화가 납니다! 짜증 납니다!
실력으로 안 되니 이런 치졸한 수를 쓰다니!
클하다, 추라티에야!
만약 이대로 누명의 씌워진다면 독자님의 명예에도, 영향력에도 크나큰 위기입니다!
어서 이 누명을 벗으세요!
그리고 쟤 좀 사라지게 해주세요!
– 조건:
1. 부정행위 의혹 누명 벗기
2. 클라티에의 가면 벗기기
– 보상: 10000캐시 뽑기권, 제국 내 영향력 증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루아티샤가 퀘스트를 받는 사이 클라티에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황공합니다, 폐하.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파에라톤 공녀와 제 의견서가 같다니……. 이는 단순한 부정행위가 아니라 황실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믿기 힘들어요.”
클라티에가 두렵고 황망한 일이 벌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가늘게 떨었다.
억울하고 가련한 자태가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파에라톤 공녀는 어찌 생각하지?”
“저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 제 것을 베꼈다면요.”
루아티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당한 태도에 황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호오, 공녀는 타렌카 영애가 공녀의 의견서를 베꼈다고 말하는 건가?”
“저는 타인의 의견을 참고조차 한 적 없으니 만약 두 의견서가 똑같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과연.”
황제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 반응에 클라티에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황제는 눈도 없나? 저토록 오만하고 방만하게 행동하는데 왜 저런 반응인 거야!’
이대로 둘 순 없다.
“……루아티샤, 왜 그렇게 나를 공격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거야? 네가 나를 미워한다는 건 알지만, 이건 정말 큰 일이야.”
루아티샤는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무시했다.
그럴수록 클라티에는 속상하고 안타까운 얼굴을 꾸며내며 말을 이었다.
“날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장난이겠지만,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야. 어떻게 황제 폐하마저 속이려 하니?”
루아티샤가 옅은 한숨과 함께 클라티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타렌카 영애, 감정에 호소하지 말고 사실에 입각해서 이야기하세요.”
“……뭐?”
“이건 어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누가 나빴니, 착했니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언제一.”
“너무 그렇게 감정적인 일로 몰아가려고 하면 주장에 근거나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그러는 건가 의심이 들어요.”
“의, 의심이라니!”
“푸훕……!”
순간 지켜보던 영애와 영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라파엘이 애써 비웃음을 참으며 점잔을 빼고 있었다.
클라티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영애의 주장은 알겠네. 서로 결백하다는 거군. 그렇다면 대질 심문을 하는 수밖에.”
황제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타렌카 영애, 그대가 먼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게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못하지만 꽤 중요한 사실이긴 하지.”
클라티에가 잘 들었냐는 듯 루아티샤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니 그대에게 먼저 발언 권을 주겠다.”
“황공합니다, 폐하.”
예를 갖춘 클라티에가 고개를 들고 명료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의견서를 작성하고 제출하기까지 제 행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경합 주제를 받자마자 다른 영애들과 함께 도서관에 갔습니다. 도서관에서 다른 영애들과 토론을 하고 자료를 찾아본 뒤, 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제출 전까지는 계속 도서관에 있었다는 말인가?”
“예, 폐하. 도서관에 있었던 영애들이 전부 절 목격했을 겁니다.”
황제는 그 말이 맞냐는 듯 영애들을 돌아보았고, 영애들이 고개를 숙였다.
“깔끔하군. 무엇보다 증인이 되어줄 목격자도 많고.”
“황공합니다.”
클라티에가 고개를 숙였다.
가려진 그녀의 입꼬리가 비죽 치솟았다.
‘내가 이겼어.’
클라티에는 루아티샤의 행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도.
“파에라톤 공녀는 어떻지?”
“저는 경합 주제를 받은 뒤 정원으로 갔습니다.”
“호오, 정원이라.”
“네, 정원에서 일단 손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화장실을 사용했고요. 다시 돌아와서 의견서를 작성했습니다.”
“공녀의 동선에 목격자는 있나?”
“제, 제가 같이 있었어요!”
포셰트 영애가 나서서 손을 들었다.
“파에라톤 공녀는 정원에서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양쪽 다 증인이 있긴 하군.”
그때였다.
“포셰트 영애, 저와 정원에서 만났을 때 영애 혼자 있지 않았나요? 설마 모르는 척하진 않겠죠? 우리 대화도 주고받았잖아요.”
셀란도 영애가 앞으로 나서며 날카롭게 이야기했다.
“그땐 파에라톤 공녀가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때였어요. 제가 거기까지 따라갈 순 없잖아요!”
포셰트 영애가 항변했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자신이 완전한 증인이 아니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셀란도 영애, 있었던 일을 고하라.”
“저는 도서관에서 함께 있던 영애들과 토론을 한 뒤, 혼자서 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할 겸 정원에 나왔습니다.”
셀란도 영애가 다른 영애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포셰트 영애가 풀밭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지요. 해서 인사차 몇 마디 주고받은 게 다입니다.”
“흠, 그럼 파에라톤 공녀가 화장실을 이용했을 때 목격자는 없는 건가?”
황제의 물음에 루아티샤가 답했다.
“네, 저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니까요. 멀리서 저를 본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저와 동선이 겹친 사람은 없습니다.”
“흠,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저는 딜루쿨룸홀에 있었고 다른 영애들은 거의 전부 도서관에 있어서 그랬던 듯합니다.”
행적이 묘연하다는 것은 정황상 아주 불리하다.
하지만 담담하게 인정하는 루아티샤를 보니 황제는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파에라톤 공녀가?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하지만 의견서도 더 늦게 냈고 중간에 딴 데로 샜다잖아.”
“타렌카 영애는 계속 도서관에 있었고. 나도 봤는걸.”
자신을 부정 행위자라고 의심하는 소리에도 루아티샤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의연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하물며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루아티샤의 눈동자에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건 용의자로서 의심당하는 자가 아니라, 시험하고 판단하는 자의 눈이었다.
‘오호라…….’
황제는 그게 괘씸하기도 하면서도 꽤 구미가 당겼다.
루아티샤의 생각대로 황제는 감정적이라기보단 계산적인 자였다.
황제의 머릿속에서 저울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저 눈빛은 일부러 숨기지 않는 거군.’
일종의 도발이었고 그건 아주 제대로 먹혔다.
이 정도면 명분이 충분하니 파에라톤의 약점을 잡는 걸로 끝낼까, 고민하던 황제가 생각을 바꿨으니까.
“그럼 의견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이번에도 발언권은 정황상 보다 결백한 타렌카 영애에게 먼저 주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클라티에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구휼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냐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입니다. 이 내용에 관해 친한 영애들과 함께 심도 있게 토론했습니다.”
클라티에가 함께 토론한 영애 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 계층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선 도서관에 있던 〈서북 지방 소득 분위 보고서〉와〈서북 지방 구휼 실태 조사〉를 참고했습니다.”
황제가 관료를 바라보자 관료가 바로 확인했다.
“해당 보고서에 나온 수치와 의견서의 수치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클라티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는 명백한 증거가 될 터였다.
“하지만 홀로 의견서를 작성하면서 생각해보니, ‘과연 그것 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서 구휼미의 유통 구조와 재정적 상황에 대해 고찰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구휼을 진행할 때, 구휼단이 직접 서북 지방으로 갑니다. 이는 비효율적으로…….”
클라티에의 말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아주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남이 써준 의견 가지고 생색은…….’
루아티샤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대질 심문이 진행될 줄 알고 미리 각본을 짠 모양이었다.
그 결과, 클라티에의 말은 그럴싸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베낀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듯했으니까.
클라티에가 말을 마치자 황후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보니 타렌카 영애가 아주 생각이 깊군.”
“황공합니다, 폐하.”
클라티에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영애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잘 이끄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료에 근거해서 논리를 펼치는 것도 잘할 줄이야. 내 영애를 다시 봤어.”
아무래도 황후는 클라티에가 결백하다고 확신하고 미리 선점하려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장내에는 클라티에의 결백을 인정하고, 부정을 저지른 루아티샤를 경멸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니까.
루아티샤는 여전히 나서지 않는 황태후와 걱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황비를 눈에 담았다.
그때, 황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파에라톤 공녀에게도 발언권을 줘야겠지. 공녀의 생각은 어떤가.”
한없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루아티샤는 생긋 웃었다.
“저는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뭐라?!”
예상치 못한 말에 홀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공녀, 신중해야 할 것이야. 지금 공녀의 말은 타렌카 영애의 의견서를 그대로 베꼈다는 말밖에 되지 않네.”
“그럴 리가요.”
루아티샤는 더 깊게 미소 지었다.
“제가 할 말이 없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이유가 뭐지?”
루아티샤는 고개를 돌려 클라티에를 바라보았다.
승리감에 도취된, 우월감 가득한 얼굴.
그녀는 그 얼굴을 응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가 이미 폐기한 의견에 대해서 왜 뒷받침할 근거를 대야 합니까?”
“……!”
마치 허물이 벗겨지는 것처럼 클라티에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루아티샤는 미소 지었다.
‘그래, 저 얼굴이 보고 싶었어.’
* * *
내 말이 불러온 파문은 엄청났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황제가 손을 들었다.
“폐기한 의견……이라고 했나?”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화장실을 가기 전에 손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했습니다. 그때 적었던 의견입니다.”
“지금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수작입니다!”
여유로웠던 전과 달리 클라티에가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나는 클라티에를 무시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제가 쓴 의견서가 아니니 거기에 대해 할 말은 없습니다.”
“폐하! 파에라톤 공녀는 도서관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근거를 제대로 댈 수 없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겁니다!”
“타렌카 영애는 자중하라! 파에라톤 공녀는 그대가 발언할 때 가만히 있었다. 한데 어찌 영애는 이리 경망스럽게 계속 말을 얹는 게야!”
황비의 꾸짖음에 클라티에가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공녀, 어디 한 번 상황을 설명해보라.”
황제의 명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저 아이디어를 폐기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논리가 허술했거든요.”
“호오?”
“타렌카 영애의 말대로 구휼단이 직접 서북 지방으로 가는 현행 방식은 분명 비효율적이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설마 그걸 제국의 관료들과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생각하지 못하셨을까요?”
“설마, 그럴 리 없지.”
황제가 미소 지었다.
“네, 현행 방식이 3년째 유지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타렌카 영애의 의견서처럼 여러 영지의 손을 타게 되면 시간은 단축될지언정 유통 단계는 늘어납니다.”
“그렇지.”
“그리고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단계가 많아진다는 것은 관리 감독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삥땅치기 수월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아스텔리안 황제 24년, 동부 지방의 대규모 가뭄 때 타렌카 영애가 주장한 방식을 시행했다가 뒤늦게 관료의 착복이 밝혀졌던 때가 있습니다.”
“끔찍했던 일이지. 그 탓에 구휼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으니까. 동부의 수많은 제국민이 죽었어.”
“물론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신료들이 착복할 거라 단언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스승이지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옳아. 과거 실패한 정책을 똑같이 펴선 안 될 일이야.”
클라티에의 얼굴이 썩어들어 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칭찬받았던 자신의 의견이 ‘과거에 이미 실패했던 정책’이라고 조목조목 반박당하니 그럴 만했다.
근데 어쩌지?
아직 끝이 아니거든.
“그리고 〈서북 지방 소득 분위 보고서〉와 〈서북 지방 구휼 실태 조사〉를 근거 삼아 구휼 배분을 결정하는 것도 허술합니다.”
“어째서지?”
“두 보고서는 서북 지방에서 작성해 올린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구휼미를 더 받기 위해 부르주아와 젠트리 계층을 모집단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결과 72.8%나 되는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결과가 나왔죠.”
내 입에서 정확한 수치가 나오자 황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공녀는 도서관에 가지 않았어도 수치를 다 외우고 있군?”
“물론입니다. 도서관에 가지 않아서 근거가 허술할 거라니, 그런 생각은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만 할 수 있겠죠.”
명백한 저격에 클라티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실질적으로 배분을 생각할 거라면 두 보고서 말고 작년과 재작년도의 구휼 결과 보고서를 참고하는 게 좋습니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작성한 거라 훨씬 객관적이거든요.”
내 말에 클라티에의 연둣빛 눈동자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도서관에서 서북 지방 소득 분위 보고서랑 서북 지방 구휼 실태 조사를 찾아서 참고하면 될 듯.
내가 가짜 아이디어를 적으면서 일부러 써놨던 보고서의 제목들이었다.
클라티에는 그걸 보고 그대로 참고한 거고.
나는 클라티에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등신. 뻔한 함정에 걸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