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5화(105/353)
☆ 제106화 ☆
‘등신. 뻔한 함정에 걸리냐?’
부채로 슬쩍 입술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말하자 그걸 알아들은 클라티에가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래, 더 흥분하렴.
오늘에야말로 네 가면을 벗길 거니까.
그때, 황제가 내게 물었다.
“궁금해지는군. 원래 공녀의 의견이 뭐였는지.”
‘원래’내 의견이라.
황제는 이미 저 의견서가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다.
나는 씨익 웃으며 황제가 가장 솔깃해할 이야기부터 꺼냈다.
“저는 서북부의 상단에 세금을 더 부과하겠습니다.”
* * *
“호오?”
세금이라는 말에 황제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클라티에는 이때다 싶어서 말을 얹었다.
“세상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먹을 곡식도 없어서 구휼을 받는 지역에 더 부담을 주겠다는 뜻이야?”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타렌카 영애. 상단에 한다고 했죠.”
“그게 그 말 아니야? 상단에서 일하는 사람은 서북 지방의 사람들이야.”
클라티에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흥, 아까 조목조목 반박하길래 대체 무슨 의견을 들고 오나 했더니, 세금? 하, 가난한 사람한테 세금을 걷자는 걸 말이라고…….’
그때였다.
“그게 그 말이라니. 경제 관념이 없군. 근로자와 상단은 완전히 별개다. 타렌카 영애는 좀 더 학문에 정진하는 게 좋겠군.”
황제가 대놓고 클라티에에게 면박을 줬다.
‘뭐,뭐야…….’
클라티에는 당황해서 황제의 안색을 살폈지만, 황제는 차갑게 얼굴을 돌렸다.
루아티샤는 입술을 깨무는 클라티에를 보고 미소 지었다.
‘상단이 꼼수를 써서 소비자나 근로자에게 세금을 전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지.’
황제는 그걸 알면서도 세금이라는 말에 얼른 루아티샤의 역성을 들어준 거다.
빠져나간 곳간을 채울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자가 누가 있는가?
“뷰렌 상단과 롤스 상단은 서북부 지방을 주름잡고 있는 상단입니다. 이들이 서북에서 얼마나 많은 부를 독점하고 있는지는 폐하께서도 아시겠죠.”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티샤는 그 애매한 반응에 황제가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황제가 전국구도 아니고 기껏해야 지역 상단의 상황을 다 꿰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두 상단이 내는 세금은 어떻죠? 이러저러한 이유로 감면받아서 비율로 따지자면, 소작농이 지주에게 내는 요율보다 적습니다.”
“허, 도둑놈들이었군.”
“서북부가 가난해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황제는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저 작은 꼬마 아가씨의 입에서 나올 말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게 뭔가.”
“건조 기후라 땅이 척박한 것을 가장 먼저 꼽겠습니다만, 사실 이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큰 문제가 아니다?”
“사막과 맞닿아 있는 서북부는 원래 척박했죠. 하지만 중앙에서 몇 년째 구휼이 필요할 정도로 가난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대가뭄이 찾아온 것도 아니니까요.”
“공녀의 말이 옳군. 자족이 잘 되던 곳이었지.”
“두 번째 문제는 상단입니다. 척박한 서북부에 물자를 수혈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막고 있지요.”
“아까 말했던 그 문제인가?”
“네, 이들은 서북 지방의 유통망을 장악해서 식료품과 생필품에 막대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물건을 살 수밖에 없겠군.”
“네, 서북 지방은 물가가 타지방보다 훨씬 비쌉니다. 먼 곳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서 비싸게 파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하지만 목화가 나는 서북에서 면포조차 비싸게 팔립니다. 물론 유통을 독점하고 있기에 농민이나 생산자에게는 헐값에 물건을 들여오고요.”
길게 말했지만 단순한 말이었다.
폐하, 상단이 돈 없는 사람들한테 빨대 꽂아서 저렇게 더, 더 가난해진 거예요!
“허어…….”
황제는 탄식했다.
서북 지방의 핵심을 찌르는 아이에게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척박한 땅에 물건을 싸게 들여와 더 비싸게 파니 사람들이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상인 나부랭이들이 그딴 농간을 부리고 있었다니.”
“이를 가능하게 한 게 바로 세 번째 문제입니다. 바로 상단과 토호 세력의 유착이죠. 토호 세력이 다른 상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서 유통을 독점할 수 있는 겁니다.”
상단이 빨대 꽂게 구멍 뚫어 준 놈들이 토호 세력들이구요!
루아티샤의 말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서북 지방의 토호 세력은 짐의 오랜 골칫거리다.”
그럴 것이다.
루아티샤는 빙긋 웃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유로 든 것이니까.’
“서북 지방의 토호 세력이 이렇게 커다란 힘을 떨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막의 야만인들 때문이지.”
루아티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사막의 야만인들이 진짜로 국경을 침범한 것은 200년도 더 전이다.
오랜 평화는 옛날부터 서북 지방을 지켰던 토호 세력의 권력을 더더욱 강화했다.
전쟁이 사라지고 오로지 부의 축적에만 집중한 결과, 그들은 일반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제 배를 살찌우는 기생충이 되었다.
“저라면 우선 상단에 세금을 물린 다음, 그 세금이 서북 지방의 제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세금으로 구휼을 하자는 건가?”
황제는 이제 평가자로서 루아티샤의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유능한 책략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것도 한 방편이겠죠.”
“다른 방법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그 방법을 쓰기 전에 사막의 약탈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금력이 필요할 테니 그 세금이 쓰일 수 있겠군요.”
“하나 약탈은 옛일이고 현재엔…….”
말을 하려던 황제가 멈췄다.
약탈자들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굳이 전쟁을 할 필요 없다.
무력 시위만 할 뿐.
그리고 이 무력 시위는 토호 세력에게 엄청난 압박을 줄 것이다.
서북 지방에 황권이 강해질 기회.
계산이 빠른 황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거지?”
황제는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북 지방은 건조한 기후 탓에 재배 작물이 한정적이지요. 문제는 목화와 밀, 옥수수 모두 지력을 소모한다는 겁니다.”
“다른 산업을 발전시키는 게 좋다?”
“마침 서북 지방엔 코발트 광산이 있지요. 이를 이용하면서 북부의 제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황제가 씩 웃었다.
그 커다란 코발트 광산을 토호 세력이 전부 다 독점하고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루아티샤의 말은 분명했다.
그 광산을 뺏어서 제국민의 입에 넣어줘라.
어떻게 뺏을지 흐릿하게나마 밑그림도 그려준 상황 아니던가?
물론 그 과정에서 황실의 재산도 불어날 테고.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할까.’
“다행히 커다란 강이 있으니 이를 이용해서 댐과 저수지를 만드는 것도 좋겠습니다.”
루아티샤는 간단하게 덧붙였다.
경제를 살리는 데에 뉴딜이 빠질 수 없으니까.
“허허, 서북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겠군! 파에라톤 공녀의 위명이 헛것이 아니었음을 짐이 오늘 확인했네. 아니, 오히려 명성이 축소된 점이 있어!”
황제가 크게 웃으며 루아티샤를 치하했다.
그럴수록 클라티에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황제로서는 이보다 좋을 게 없었다.
골치 아프던 서북부 지방의 가난을 해결할 수 있고, 그보다 더 골치 아프던 토호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황권마저 강화시킬 수 있으니.
서북 지방의 영주들은 황제보다 토호 세력의 눈치를 봤으니 그에겐 얼마나 아니꼬웠겠는가.
황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통 크게 구휼미를 풀었는데 3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답답하던 차였다.
루아티샤는 좋아하는 황제를 보며 웃었다.
‘그래, 그 짜증 나는 토호 세력이랑 상단 좀 치워주면 우리 안수르 상단도 그 덕 좀 볼게.’
검은 황금이라는 초유의 아이템 덕에 서북 지방의 진출은 다른 상단에 비해 수월했다.
하지만 품목을 늘리려고 하면 견제가 엄청나게 들어와서 신경에 거슬리던 차였다.
‘그리고 진짜로 뉴딜 할 거면 파에라톤에 일감 좀 넘겨줘야 하는 거 알지? 내 아이디어 홀랑 가져가서 남 좋은 일 시켜주면 계산이 안 맞잖아.’
대규모 공사는 당연히 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생긴다.
‘서북 지방은 파에라톤령과도 가까우니까 우리 가문의 영향력을 커지면 좋지.’
순진한(?) 황제는 루아티샤의 흑심도 모르는 채 앓던 이가 빠졌다며 껄껄 웃었다.
“파에라톤 공녀가 아주 영민하군요. 설마 구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던 문제에 서북부의 유착 세력과 독과점 문제를 들고 나올 줄이야.”
황비가 루아티샤를 치하하자 황후 역시 서둘러 말을 보탰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구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지를 고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타지역과의 교역 이야기를 꺼낼 거고.”
실제로 영애들의 의견이 다 그런 식이었다. 더 나아가 교역 이야기를 한 사람이 미첼로인 영애였고.
“한데 파에라톤 공녀는 서북 지방의 특성과 가난을 연관 지어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제시했군요.”
황태후가 루아티샤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루아티샤는 무릎을 굽혔다 폈다.
“감사합니다.”
예의는 바르나 아주 당당한 태도였다.
겸양은 하나도 떨지 않는 그 태도가 오히려 황족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본인의 의견이 지닌 가치를 잘 알고 있군. 그리고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티도 내고 있어.’
다시 못 구할 보석이 눈앞에서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탐나지 않을 수 있을까?
황제와 황후, 황비와 황태후는 입맛을 다셨다.
그들에게 클라티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 * *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황족들뿐만 아니라 체시아 백작을 위시한 관료들까지도 전부 감탄한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잘 통할 줄이야?’
사실 내가 저런 생각을 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번 경합의 심사자는 황족들이다.
‘그럼 황족들 입맛에 맞는 답을 줘야지.’
먼저 출제자나 심사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이 말은 K-학교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을걸?
나는 그에 맞춰서 심사자인 황족이 원하는 것을 생각했다.
1.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구휼로 돈이 빠져나갔으니 황실에선 더더욱 돈을 채우고 싶을 것이다.
2. 3년간 밥까지 줬는데 여전히 황권보다 토호 세력의 권력이 강한 서북 지방이 얼마나 짜증 나겠는가.
당연히 토호 세력을 밀어내고 황권을 강화하고 싶을 것이다.
구휼을 어떻게 할 것인가一라는문제에서 벗어나서 저기서부터 출발하면 아주 간단하다.
구휼의 원인은 가난이고, 저 두 가지를 서북부의 가난과 엮으면 되니까.
어쨌든 이렇게 감탄해주면 나야 땡큐였다.
심지어 내 의견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했으니까 더더욱 효과 있겠지.
‘고마워, 클라티에!’
네가 아니었으면 내 의견서는 그냥 황족들이랑 관료 몇이 보고 말았을 텐데!
개수작을 부려준 덕분에 소문도 엄청나겠네!
공녀님 경합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거기다 네가 날 모함하려다가 개쪽 당했다는 소문은 덤이고.’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혜안에 기대어 감히 여쭙겠습니다.”
“무엇이든 편히 묻거라.”
“의견서의 허점을 다 알고, 심지어 더 나은 의견을 생각한 제가 과연 그 의견서를 제출했을까요?”
“그럴 리 없지. 이 의견서는 공녀의 것이 아니군.”
황제가 쿵짝을 맞춰 서둘러 대답했다.
“그렇다면 폐하, 어째서 제가 쓰지도 않은 의견서가 제출된 걸까요?”
“누군가가 공녀의 의견을 바꿔치기한 게 분명하다.”
좋아.
내 주장이 아니라 황제의 말이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힐끔 옆을 보니 클라티에는 당장 아니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얼굴로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째려본다.
눈알 빠지겠다, 얘.
“누군가가 제 의견서를 타렌카 영애와 똑같은 내용으로 바꿔치기 했다는 거군요.”
뭐, 정확히는 바꿔치기 당해준 거지만.
“타렌카 영애,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모두의 시선이 클라티에에게 쏠렸다. 의심과 분노, 경멸이 가득한 눈빛.
클라티에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누군가가 저를 모함하려고 제 의견서를 베껴 루아티샤의 이름을 적은 게 아닐지……. 저는 정말 억울해요, 폐하.”
“그럼 타렌카 영애의 의견서가 제가 미리 적었다가 폐기한 의견과 똑같은 건 순전히 우연이겠죠?”
내가 옆에서 약 올리자 클라티에가 나를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타렌카 영애, 감히 짐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건가? 짐을 능멸하는 것에 대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황제를 능멸한 죄.
그 묵직한 울림에 클라티에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 저, 저는 그게 아니라…….”
“영애의 입으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의견서를 바꿔치기 했다면 분명 증거가 남아 있을 테니.”
“그러고 보니 의견서를 제출하러 갈 때 부딪친 사람이 있어요.”
내 말에 클라티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덜덜 떠는 사람이 있었다.
“셀란도 영애, 우리 부딪쳤죠?”
내 물음에 셀란도 영애는 입을 벌렸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셀란도 영애와 내가 첫날부터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그저 부딪쳤을 뿐이라고 발뺌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러니 해야 할 말을 해야지?
“저, 저는 아니에요! 그냥 타렌카 영애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바보 같은 소릴! 아니에요, 폐하! 셀란도 영애가 분명 저와 루아티샤를 골탕 먹이려고一.”
“시끄럽다!”
황후가 벌떡 일어나 일갈했다.
“감히 황제 폐하께서 친람하시는 경합에서 이딴 부정을 저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거짓말만 일삼는구나!”
“화, 황후 폐하…….”
클라티에가 억울함 가득한 눈으로 황후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다.
아까 전만 해도 황후는 클라티에의 편을 들어줬으니까.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도 모르다니! 내 이토록 오만방자하고 악랄한 영애는 본 적이 없어!”
황후가 신랄하게 클라티에를 욕했다.
황후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클라티에는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귀족은 제국민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타렌카 영애가 과연 그 본보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
사교계에서 클라티에를 배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클라티에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윽고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후는 클라티에를 상관도 하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