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6화(106/353)
☆ 제107화 ☆
“제국이 크나큰 복을 얻게 되었구나. 이토록 영민하고 사리에 밝은 공녀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폐하.”
그러자 황비가 얼른 다가와 나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루아티사, 정말 너는 내 마음을 들었다 놓는구나. 네가 결백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니?”
각자 한 쪽씩 내 손을 잡은 황후와 황비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 늙은이의 무거운 엉덩이를 들게 하는 자는 처음이야. 공녀야말로 제국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할 수 있겠느니.”
“하하, 짐은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 공녀의 특출남을 알아보았다!”
황태후와 황제까지 내게 다가와 치하했다.
‘언제부터 내가 우리 공녀였던 거지?’
네 황족들은 다 웃고 있었지만 어찌나 서로를 견제하는지 신경전이 다 읽힐 정도였다.
‘음, 익숙한 구도인데.’
왠지 가족들을 보는 것만 같다.
* * *
클라티에는 황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루아티샤를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원하고 원했던 장면이다.
저 자리에 있는 이는 분명 자신일 거라고, 아우로라가 되어 당당하게 이름을 알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야, 그렇게 착한 척, 예의 바른 척하더니 결국 뒤에서 저런 더러운 짓이나 하고 있던 거야?”
“와, 셀란도 영애와 브란테 영애 패거리와 뒤로는 손잡고 있었다니.”
“그 패거리가 다른 영애들 괴롭힐 때 타렌카 영애가 나서서 막아주고 그랬지 않아?”
“그거 다 쌩쇼였던 거지. 으으, 진짜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를 줄이야.”
“난 안 그래도 좀 별로였어. 먼저 말 걸면서 살갑게 대하는 사람들 보면 다 유력 가문 자제들이잖아.”
“안 그런 척하면서 사람 가려 사귀는 거 눈에 보였지. 그에 반해 파에라톤 공녀는 신분이 어떻든 상관 안 하고 잘 어울리고…….”
“맞아, 루아티샤 공녀는 황자 님한테도 수그리지 않고 똑같이 대했지.”
“타렌카 영애랑 친하게 지내는 영애들이 은근 파에라톤 공녀 욕하는 것도 웃겼는데.”
“나도 들었어. 파에라톤 공녀는 사촌인 타렌카 영애를 본받아서 좀 부드러워져야 한다면서 난리였지.”
“난 착한 척하는 것보다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사람이 훨씬 좋더라.”
“나도, 나도!”
“설마 저게 다 연기일 줄은 몰랐어.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경합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씌우려고 해?”
“그러고 보니 타렌카 영애의 부친 말이야. 사기꾼이라서 가문에서 쫓겨난 거라고 하지 않았어?”
“어머, 어쩜 아빠를 똑같이 닮았네.”
킥킥거리는 비웃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클라티에는 귀를 틀어막았다.
추태를 보이지 않고, 의연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애초에 클라티에는 심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클라티에는 도무지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견서를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다 이긴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다 함정이었다고?’
새벽 축제에 루아티샤가 나오는 것을 보고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파에라톤 공녀라는 신분 덕에 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뿐이다.
얼마 안 가서 모자란 밑천을 다 드러내고 비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우리 고모부랑 사촌 오빠들만 불쌍하지. 저런 애 때문에 파에라톤까지 비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갔다.
루아티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숭을 떨지도 않고, 엘리트 그룹에 끼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루아티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짜증 나는 애들한테도 맨날맨날 웃어주면서 친절히 대해 주는데.
왜 쟤는 별 노력도 안 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쟤랑 어울리는 영애들이 유력 가문의 자제들도 아닌데 어째서 선망 어린 시선을 받는 거지?
억울해.
왜 쟤는 항상 편하게 가지지?
노력하는 사람에게 보상이 따라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맞는 거잖아.
하지만 세상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파에라톤 공녀가 새벽 축제의 우승자가 되어서 이번 대 아우 로라가 될 거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았다.
다 신문과 가십지에서 선동해서 그렇다.
요즘 기자들은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그럼 내가 바로 잡아줘야지.’
의견서를 평범하게 바꿔치는 것 정도로는 불안하다.
루아티샤는 황비와 황자에게 이쁨을 받고 있었다.
황자는 심사자가 아니지만, 모친인 황후에게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견서 내용이 다소 이상하더라도 본선 진출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루아티샤가 본선에 진출하면 정말로 자신을 제치고 우승할지도 모른다.
‘그건 안 돼!’
그럼 그 수밖에 없다.
루아티샤가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망신당하고 새벽 축제에서 퇴출당하는 것.
‘아빠가 그랬어. 원래 걔는 제 엄마를 닮아서 남이 받아야 할 걸 뺏어가는 애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루아티샤의 본성을 알려주는 것뿐이다.
처음엔 멍청하고 단순한 포셰트 영애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포셰트 영애는 끝날 때까지 루아티샤의 곁에 있었다.
루아티샤가 중간에 자리를 비운 것은 천운이었다.
루아티샤와 원한이 있는 셀란도 영애와 이야기는 이미 끝내 놓은 상태였다.
셀란도 영애는 루아티샤가 끄적여 놓은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껴 알려주었다.
‘바보, 도서관에서 참고할 보고서 이름도 적어놨네? 내가 잘 쓸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함정인지도 모르고.
서둘러 똑같은 의견서를 두 장 쓰고 먼저 제출했다.
루아티샤가 보고서를 참고하러 도서관에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쓰더라도 그게 제출될 리 없으니까.
셀란도 영애가 의견서를 쉽게 바꿔치기했다며 깔깔 웃었다.
“그렇게 똑똑한 척했으면서 알고 보면 멍청하다니까? 어떻게 의견서가 바뀐 것도 모르고 그대로 가?”
“원래 부족함이 많은 애예요. 의견서 봉투가 땅에 떨어졌으면 한 번 확인이라도 할 텐데, 그 애한텐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거든요.”
“덕분에 우리야 잘 됐지.”
당장 축배를 들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만찬을 들면서도 언제 황제가 불호령을 내릴까 두근거렸다.
잘못했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이건 정의다.
현실이 잘못되었으니 그걸 바로 잡아주는 것일 뿐.
그런데 황제의 불호령은 루아티샤가 아니라 자신에게 떨어졌다.
영애와 영식들의 비웃음.
자신을 비난하고 루아티샤에게 살갑게 구는 황족들.
‘이건…… 아니야. 내가 바랐던 건一.’
“클라티에 언니.”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헉, 하고 고개를 드니 루아티샤가 생긋 웃었다.
“제 꾀에 자기가 당한 기분이 어때?”
“무슨…….”
“그러게 좀 착하게 살았어야지. 이딴 장난질만 안 쳤어도 무난하게 본선 진출하고 사교계에서도 그럭저럭 평판이 괜찮았을 텐데. 왜 그런 욕심을 부린 거야?”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종알종알 속삭이는 목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아,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언니도 알고 있지? 언니는 절대 우승 못 할 거라는걸.”
“뭐?”
“언니가 내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는 거,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 그거 인정하기 싫어서 이렇게 벌레처럼 바둥바둥거린 거고.”
루아티샤는 눈매를 휘었다.
“그래도 꽤 재밌었어. 언니랑 놀아주는 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너무 빤해서 조금 지루했지만.”
루아티샤가 토닥토닥, 클라티에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어. 심심풀이는 되더라.”
클라티에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너, 네가 뭔데……!”
이성을 잃은 클라티에가 괴성을 지르며 루아티샤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딜루쿨룸 홀의 문이 열렸다.
* * *
타렌카 후작성.
성 내부 유리 정원의 수로.
“후작님.”
타렌카 후작은 급한 얼굴로 다가오는 수석 집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제도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말에 후작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더 깊어졌다.
타렌카 후작은 지금 중앙 정치에 끼어들고 있지 않다.
못난 아들 녀석에게 작위를 물려주었을 때부터 후작성에 칩거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그 건 다시 작위를 회수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도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자신에게 연락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다.
“그 애가 문제를 일으킨 게냐?”
“……예, 후작님.”
“오스틴 부인이 수습할 수 없는 문제인가? 웬만한 건 부인이 다 알아서 할 텐데.”
“원래는 오스틴 부인이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런데?”
“그때는 아가씨께서 부정행위의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일이 커져서…….”
“부정행위? 부정행위가 왜 나와.”
“그게…… 새벽 축제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 합니다.”
“뭐야?”
타렌카 후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냥 또래랑 싸운 게 아니라 부정행위? 하!”
타렌카 후작은 이마를 짚었다.
“송구합니다. 한데 그냥 부정행위도 아니고 다른 영애의 답안을 바꿔치기해서 모함하려 했다고 합니다.”
“허어…….”
타렌카 후작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 안의 노기를 읽은 집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쩔까요? 오스틴 부인에게 알아서 해결을 보라 할까요?”
“해결은 무슨 해결!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려 했다 걸렸는데!”
“허면…….”
“그냥 내버려 둬라! 그 애도 한 번 다쳐봐야 잘못을 알지! 어른이 나서서 돈과 권력으로 해결해주면 잘못인지도 모르고 또 똑같은 짓을 저질러!”
타렌카 후작의 역정에 집사는 고개를 수그렸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집사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타렌카 후작은 집사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신경 쓰이겠지.
그리고 사실은 자신 역시 신경 쓰였다.
쯧, 하고 혀를 찬 타렌카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가져와라.”
집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못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내 손녀다. 상대 부모는 당장 달려 올 텐데 내가 안 가볼 수도 없지.”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제도로 간다.”
* * *
황궁의 딜루쿨룸 홀 안.
“이게 지금 무슨 짓거리냐!”
벼락과도 같은 노성이 쏟아졌다.
루아티샤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던 클라티에는 온몸이 굳었다.
절대 제도에서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안 돌아가는 몸을 억지로 돌려 홀의 문을 바라보았다.
“하, 할아버지?”
클라티에는 서둘러 루아티샤의 머리를 놓았다.
다소 민망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희망이 싹텄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직접 오셨어!’
이 일을 어떻게든 수습해줄 것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들도 감히 타렌카의 진정한 지배자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얼굴을 들지 못할 터.
황제도 할아버지가 직접 오신 이상 자신을 어떻게 하지 않을 거다.
“할아버지……!”
클라티에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며 타렌카 후작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당연히 달려오는 자신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한 할아버지의 눈길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클라티에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루아티샤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클라티에의 커다란 눈이 흔들렸다.
‘왜……. 또 쟤야?’
* * *
타렌카 후작은 홀의 문을 열자마자 기함했다.
그래도 행동거지만큼은 바르다고 생각했던 손녀가 조그마한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수순으로 손녀를 향했던 시선이 머리채를 잡힌 아이에게 옮겨갔다.
먼저 보인 분홍빛 머리칼.
딸아이와 똑같이 달콤한 색이었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술렁였다.
그리고 유순하니 말랑말랑한 얼굴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꼭 딸아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가 자신의 외손녀라는 것을.
“루아티샤냐?”
그 말에 머리를 정리하던 아이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파라이바 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누구세요?”
고개를 갸웃하는 것조차 어쩌면 저리 제 어미를 닮았는지.
타렌카 후작은 코가 시큰해져 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감췄다.
“할아버지…….”
곁에 다가온 클라티에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러자 루아티샤가 말했다.
“아, 타렌카 영애의 조부님이셨군요. 안녕하세요, 타렌카 후작님.”
쌩판 남처럼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꽉 막혔다.
“나는…… 네 외조부이기도 하다.”
“그러세요?”
루아티샤는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그 말에 루아티샤가 밝은 얼굴이 된다.
타렌카 후작은 외손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에 가슴이 놓였다.
하지만.
“아빠!”
외손녀의 미소가 향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파에라톤 공작이 잔뜩 굳은 얼굴로 홀 안에 들어왔다.
파에라톤 공자들이 당연하다는 듯 그 뒤를 따랐다.
“그래, 아빠 왔다.”
딸아이의 달랑 안아 들고 머리를 쓰다듬은 파에라톤 공작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누가 내 딸을 괴롭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