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7화(107/353)
☆ 제108화 ☆
파에라톤 공작의 읊조림에 장내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공작은 완전하게 마기를 제어 중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파에라톤 공작의 위압감과 흉포함은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을 압박했다.
거기에 파에라톤 공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마기에 취약한 아이들이 있으니 마기를 제어 중이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피를 토하면 막냇동생이 슬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붉은 눈동자에 스민 분노는 산전수전 다 겪은 황족들마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빽빽한 침묵.
그 침묵을 뚫고 익시온이 입을 열었다.
“왜 내 솜뭉치가 찌그러져 있지?”
노기 하나 없는,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그러게. 내 동생이 아무리 말괄량이라도 이런 식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다닐 애가 아닌데.”
“누가 감히 내 막내의 머리칼을 건드린 거지? 나도 내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는데.”
홀 안의 영애와 영식들은 감히 파에라톤 공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파에라톤 공녀가 가족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황궁에 올 때마다 마치 호위하듯 바래다주고 마중 나오는 데 누가 모르겠는가.
심지어 파에라톤 공녀에게 다가가는 남자가 있으면 눈에서 불을 뿜을 듯 쏘아봤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꼭 보이지 않는 칼날이 목에 드리운 것만 같았다.
‘와, 타렌카 영애 완전 ♬됐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저 저 분노가 자신에게까지 튀지 않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다.
“루루, 네가 말해보렴.”
파에라톤 공작이 다정하게 딸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넘겨 주며 말했다.
“누가 널 괴롭혔지?”
* * *
아빠의 물음에 나는 배에 힘을 줬다.
굳이 사양할 이유는 없지.
클라티에의 이름을 우렁차게 외치며 일러바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타렌카 후작이 클라티에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마치 아빠의 물음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 할아버지?!”
클라티에는 깜짝 놀라 타렌카 후작을 올려다봤다.
나는 나대로 놀랐다.
‘클라티에의 잘못을 덮어 주러 온 게 아닌가?’
“클라티에.”
타렌카 후작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클라티에게 말했다.
“루아티샤에게 사과해라.”
“할아버지!”
클라티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타렌카 후작은 흔들림이 없었다.
“너는 내가 여기 왜 왔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그건…….”
클라티에는 ‘당연히 날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돈과 권력을 써서 네 잘못을 덮어 주려고?”
“…….”
“틀렸다. 네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제대로 사과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 저는一.”
“피해자는 부모까지 나설 텐데 이쪽은 무겁게 엉덩이 깔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래서 온 게야.”
클라티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어떻게 제게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저한테 이렇게 잔혹하세요! 전 할아버지의 손녀인데……!”
“잘못한 일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시키는 게 그리 모진 일이더냐?”
“…….”
“네가 이딴 짓을 저질러도 그걸 덮어주고 상대에게 사과 한마디 안 하게 하는 게 옳은 일이냐?”
타렌카 후작은 단호한 얼굴로 클라티에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네게 좋은 할아비가 될 수 없다.”
나는 조금 놀랐다.
‘의외네.’
클라티에의 인성을 보고서 타렌카 후작도 똑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술을 꽉 깨문 클라티에는 고개를 돌려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아니, 왜 날 노려봐.’
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하라는 할아버지 말이 그렇게 억울하니?
인격 교육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저렇게 컸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저 눈알은 내 동생을 담기에 너무 부족한 것 같은데.”
옆에서 들리는 혼잣말에 나는 기겁했다.
“사람의 눈알을 뽑으면 안 돼, 아레스.”
“그럼 감히 내 솜뭉치의 이름을 담은 입은?”
“익시온, 사람의 입을 찢는 것도 안 돼.”
“청소는 해도 돼?”
“사람은 청소하는 게 아냐.”
속삭이던 오빠들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오빠들을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아빠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좀 해봐요. 여긴 황궁이잖아요.’
내 시선을 받은 아빠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것 하나는 양보해주렴.”
양보요?”
갑자기 양보가 왜 나와.
“감히 내 딸의 머리채를 잡았던 손은 자르는 것으로 하자.”
예?
뭘 잘라요?
맞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오빠들도 다 아빠 자식이었지.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머리카락이 헝클어졌을 뿐 다치지도 않았는데…….”
살다 살다 클라티에를 변호할 날이 올 줄이야.
“정확히 세 가닥 뽑혔다.”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난 뽑힌 느낌도 없었는데?
“그럼 제가 클라티에 머리카락 서른 가닥 뽑는 걸로 할래요.”
아빠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이렇게 착해서야.”
아니, 머리카락 세 가닥 뽑혔다고 서른 가닥 뽑겠다는 게 착하다고요?
아빠가 나를 안은 채 뚜벅뚜벅 걸어 클라티에에게 다가갔다.
언제 나를 노려봤냐는 듯 클라티에가 가련한 얼굴을 했다.
“고, 고모부…….”
“누가 네 고모부지?”
아빠가 싸늘한 얼굴로 클라티에를 내려다봤다.
그 서슬 퍼런 기색에 클라티에가 찔끔해서 뒤로 물러났다.
“이전부터 아주 묘하게 말을 하더군. 내 딸을 사촌으로 여겨지고 않으면서 나를 고모부라 부르다니.”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루아티샤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저를 밀어낸 건 루아티샤예요. 새벽 축제에서도 제가 먼저 다가갔는데…….”
“친해지고 싶어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모함했나?”
“그, 그건…….”
“친해지고 싶어서 내 딸의 드레스를 훔쳐 입고.”
“…….”
“친해지고 싶어서 감히 내 딸의 머리채를 잡아?”
아빠의 눈동자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빛났다.
그때, 황제가 나섰다.
“황궁에서 보기 힘든 파에라톤 공작과 타렌카 후작을 이런 일로 보게 되다니 인생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군.”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경직된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자고 하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빠에게 통하겠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 황실에서 주관하는 새벽 축제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다니 심히 유감입니다.”
뼈가 있는 말에 황제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보통은 자초지종이 어찌 되었든 우선 논란을 만들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아빠는 홀에 들어오며 황족에 대한 예도 갖추지 않았다.
“이래서야 다른 귀족들이 안심하고 황궁에 제 아이들을 보내겠습니까?”
오만하리만치 불편한 심기를 토하는 아빠의 말에도 황제는 미소 지었다.
“그래, 파에라톤 공작의 우려는 짐도 이해하는 바이네. 그래서 일이 일어나자마자 연락을 넣은 것 아닌가.”
그보다는 가해자의 가문을 압박하려는 의도였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빠는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날 선 미소를 지을 뿐.
“시시비비는 다 가려졌네. 남은 것은 이에 대한 해결뿐이지. 자리를 바꾸는 게 어떻겠는가?
보는 눈이 많아.”
그 말에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구경거리가 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그리고 클라티에가 내 과거를 폭로할 수도 있고.’
어렸을 때 타렌카 저에서 구박당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걸 흠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아빠는 니콜라스 타렌카에게 굳이 소송을 걸지 않으려고 했던 거다.
내가 그 과정에서 상처받을까 봐.
그 꼬리표가 내게 계속 따라다닐까 봐.
‘나는 크게 상관없지만.’
그걸 흠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피해자인 내가 무슨 잘못인가?
하지만 파에라톤의 명예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신경 쓰였다.
‘클라티에는 평판과 명예에 굉장히 신경 쓰니까 굳이 날 학대했다는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겠지만.’
‘이판사판이다. 혼자서는 못 죽는다!’하면서 말해버릴지 누가 아는가.
그렇게까지 치밀한 애도 아니고.
‘밝혀져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굳이 나서서 밝힐 빌미를 마련해줄 필요는 없지.’
* * *
새벽 축제 참가자들은 다 귀가하고 우리는 딜루쿨룸홀 안쪽의 내실에 자리 잡았다.
당연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클라티에는 훌쩍이고 있었고, 오빠들은 그런 클라티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타렌카 후작은 어쩐지 나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얼굴이 뚫릴 것만 같았다.
아빠는 그런 타렌카 후작을 경계하며 나를 땅에 내려놓질 않았다.
“크흠, 파에라톤 공작이 막내딸을 아낀다는 말은 들었네만, 이토록 귀애하는 줄은 미처 몰랐군.”
황제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입을 열었다.
“하기야, 저런 딸을 두고 어찌 귀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짐도 저런 딸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싶네.”
‘어, 황제의 의도는 알겠는데 이 주제는 좀…….’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는 듯이.
“제 딸 같은 딸을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할 겁니다.”
“……그런가?”
황제는 조금 떨떠름하게 답했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것은 다행인데 왜 이런 대답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왜긴 왜겠어요. 팔불출이니까 그렇지!’
왜 하필 팔불출 스위치를 누르는 주제를 고르냔 말이다.
“예, 제 딸은 저와 평생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황제가 아니라 타렌카 후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타렌카 후작의 미간이 꿈틀했다.
“평생?”
“평생 아빠랑 살 거라고 한 번도 아니고 총 열일곱 번 말 했습니다.”
……그걸 다 세고 있었어?!
“허, 허허, 파에라톤 공녀가 공작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야.”
황제가 웃었다.
아무리 봐도 사회 생활할 때 짓는 웃음이었다.
“부럽군, 부러워. 에스테반은 아들 녀석이라 그런지 영 살가운 맛이 없어서.”
“제 딸은 제게 다정하고 상냥하고 살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군…….”
“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경마장에 가지 말라더군요.”
“경마장엔 왜?”
황제는 자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타렌카 후작만 바라보며 말하는 아빠를 보고 흐린 눈을 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대꾸해주는게 아빠가 황궁을 부술까 걱정되는 모양이다.
아빠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타렌카 후작을 바라봤다.
“잘생겨서 말이 안 나오기 때문이라더군요.”
“…….”
황제는 침묵한 채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는 충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너, 그런 말을 했니……?’라는 속마음이 절로 읽혔다.
아니, 아빠 황제 앞에서 왜 그 주접 자랑을 하세요!
체통 좀 지키세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 막내는 제가 조각상인 줄 알고 전시실에서 한참 동안 절 찾았습니다. 제가 막내를 안고 있었는데요.”
목소리 한 번 듣기 어렵다는 제온 파에라톤이 하는 말에 황제는 입을 떡 벌렸다.
아레스가 질세라 입을 열었다.
“폐하께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귀족 계보에서 저에 관한 자료를 바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저는 제국과 천국의 혼혈인데 표기가 잘못되었습니다.”
“뭐……?”
황제는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아레스를 쳐다봤다.
“제 동생이 그러더군요. 저는 그냥 인간일 리 없다고. 제국과 천국 혼혈이라고.”
황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레스를 바라보던 그 시선 그대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타렌카 후작이 아주 열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 아닌가?
“크흠, 저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제겐 벽이 있다더군요.”
익시온의 말에 황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익시온이 그걸 신경 쓸 리가.
“완벽이라는 벽 말입니다. 제 솜뭉치한테는 제가 완벽하다는 거죠.”
나는 콧대를 세우는 네 남자를 보고 머리가 아파 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이다.
그것도 황제의 앞.
새벽 축제를 통해 쌓아놨던 내 이미지!
유능 당당 똑똑 이미지 어디 갔어!
‘이것이 나의 업보인가.’
왜 그런 주접을 부려서 지금까지 이렇게 고통받는 거지?
“……듣다 보니 조금 솔깃하기도 하고.”
황제 아저씨, 제정신이에요?
뭘 솔깃하긴 솔깃해!
황제가 나를 향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지금 파에라톤 공녀의 마음이 궁금하구나. 어떻지?”
황제는 은근히 기대하는 것처럼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하씨, 내가 황제한테까지 주접떨어줘야 해?
진짜 싫다.
“……전 지금 풍차예요.”
“풍차……?”
“가족들이 저를 돌아버리게 만드니까.”
“……푸하하하하하!”
황제가 껄껄 폭소를 터트렸다.
아빠가 턱을 치켜들었다.
“들으셨습니까? 돌아버릴 정도로 저를 좋아합니다.”
아니, 그거 아니야…….
힐끔 주변을 돌아보니 타렌카 후작이 입술을 달싹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차마 내게 말을 걸기 힘든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 클라티에가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