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8화(108/353)
☆ 제109화 ☆
“루아티샤!”
클라티에가 눈물 젖은 눈으로 양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내가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어떻게 그런 짓을. 정말 미안해.”
나는 조금 놀랐다.
클라티에라면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다.
아까 내 머리채를 잡았던 것처럼.
그런데 이렇게 울면서 잘못을 호소하다니?
‘아무래도 타렌카 후작의 등장으로 정신이 들었나 보네. 잘못하면 진짜 망할 수 있다고.’
그럼 작전을 좀 바꿔야겠는데?
“순간적으로 욕심에 눈이 멀었나 봐.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어.”
클라티에가 내 쪽으로 다가오려 하자 아빠가 나를 보호하듯 꽉 끌어안았다.
클라티에는 그 모습을 보며 멈칫하곤 아픈 미소를 지었다.
“너는 화목한 가족들이 있지만, 나는 부모님도 이혼하셨거든.”
“…….”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 리가 나한테 있는 거 같았어. 그래서 새벽 축제에서 우승하는걸로 채우려고 했나 봐.”
나는 정말로, 기분이 더러워졌다.
왜냐하면 전생에서 내가 고아였기 때문이다.
다 자란 후에야 수소문해서 부모를 찾았다.
어린 미혼모였고, 나를 몰래 낳아 버린 상황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때는 지금과 다르니까, 더더욱 힘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도무지 그렇지 않아.
생부 쪽은 아예 나더러 자기 자식이 아니라면서 오래전 제가 임신시킨 여자를 욕했다.
항상 텅 빈 자리가 있는 것 같았다.
삶은 고됐고, 나는 죽을 때까지 반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썩 훌륭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손가락질당할 삶은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클라티에가 진심 하나 없이, 그저 동정심을 사고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지금도 봐. 힐끔 타렌카 후작을 곁눈질하잖아.’
결국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타렌카 후작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진심이라면 저럴 수 있을까?
아니, 진심이어도 문제다.
잘못을 저질러놓고서 ‘사실 나는 이러저러한 아픔이 있어서 그랬어’라고 피해자한테 말하는 건 무슨 경우지?
나도 피해자니까 네가 이해하라는 건가?
그걸 이해해주지 않으면 나쁜 년이고?
“누구나 널 좋아하잖아. 지금도 그래. 나한테는 정말 가시방석 같은 자리인데, 다들 나는 신경 안 쓰고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나는 항상 이렇게 소외되어서…….”
어디서 지금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거지?
“사람들이 피해자한테 신경 써주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타렌카 영애.”
클라티에의 얼굴이 굳었다.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 된 이유는 영애가 저지른 죄 때문이고, 지금 사람들이 날 신경 써 주는 건 내가 그 피해자이기 때문이에요.”
“…….”
“누구나 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나는 사랑받으니 이런 피해를 입어도 된다는 뜻인가요?”
“내 말을 오해하는 것 같은데…….”
“오해라고 하지 말아요. 그 뜻 맞잖아요. 만약 누명이 벗겨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고 사교계에서 매장당했을 거예요.”
“…….”
“그런 짓을 저지르고 하는 말이, 넌 사랑받았고 나는 이혼 가정이라 힘들다?”
“사실이잖아.”
클라티에의 눈빛에 고집이 어렸다.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애가 할 소리인가요?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놓一.”
“나는 그저 사과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클라티에가 내 말을 가로막듯 외쳤다.
당혹감에 물든 얼굴을 보고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피해자 행세조차 생각대로 안 돼서 어떻게 해?
나는 타렌카 후작이 굳은 얼굴로 클라티에를 바라보는 것을 확인했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공녀의 마음이겠지.”
상황을 지켜보던 황제가 나섰다.
“타렌카 영애, 영애는 감히 짐이 친람하는 새벽 축제에서 파에라톤 공녀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네. 이는 파에라톤의 용서를 구하고 끝날 일이 아니야. 황실을 능멸한 죄이기도 하니.”
“폐, 폐하, 저는 그럴 의도는…….”
“영애의 입으로도 말하지 않았나? 이는 단순한 부정행위가 아니라 황실에 대한 모욕이라고.”
자기가 했던 말이었기에 클라티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짐은 우선 파에라톤 공녀의 뜻을 존중하겠네.”
“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타렌카 영애와 단둘이 대화를 나눠도 될까요? 또래끼리 허심탄회하게요.”
“원하는 대로 하거라.”
아빠와 오빠들은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지만, 내가 싱긋 웃으니 결국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만 꾹 눌렀다.
나와 클라티에만 남기고 모두가 내실을 나갔다.
시종이 문을 닫기 직전, 타렌카 후작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리며 접힌 부채 끝으로 귀를 톡톡 두드렸다.
* * *
둘만 남게 되자 클라티에는 사나운 눈으로 루아티샤를 노려봤다.
“무슨 꿍꿍이야? 단둘이 이야기할 때 내가 패악을 부렸다면서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하려고?”
황제가 루아티샤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듣고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황당하다는 듯 클라티에를 바라봤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통할까? 황제 폐하께서는 널 봐주는 조건으로 타렌카에 많은 것은 얻어낼 수 있을 거야.”
“…….”
“내 말 한마디가 폐하의 생각을 바꿔서 그 이득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직 십 대 초반인 영애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황제에게도 좀 부담일 거다.
그러니 할아버지에게 먼저 협상을 제시하겠지.
‘할아버지도 그럼 못 이기는 척 황제의 조건을 받아들이실 거야.’
나서서 죄를 면해달라는 말은 안 하셔도 그 정도는 할 게 분명했다.
이건 단순히 자신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클라티에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럼 왜 둘만 이야기하겠다고 한 거야?”
“앞으로 사교계에서 못 볼 거 같은데, 마지막 할 말은 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눈치 보느라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있었잖아.”
앞으로 사교계에서 못 볼 거란 말이 클라티에의 가슴을 콱 찔렀다.
“너 뭐가 그렇게 당당해? 날 함정에 빠트렸으면서!”
“네가 날 모함하려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 네 잘못까지 나한테 전가하는 거야?”
“넌 어쩜 그렇게 한 마디도 지질 않니?”
“그다지 좋지 못한 네 머리 탓에 말빨이 딸리는 건 아니고?”
클라티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잠시 루아티샤를 바라보던 클라티에가 피식 웃었다.
“하긴, 넌 예전부터 뻔뻔하기 짝이 없었지.”
움찔, 하는 루아티샤를 보고 클라티에는 더 진하게 웃었다.
‘역시.’
쟤는 그 시궁쥐 같던 때로부터 하나도 벗어나지 못했다.
“거둬주고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우리 아빠를 협박하기나 하고.”
“은혜?”
“그래, 네 주제를 잊은 거야?”
“……내 주제가 뭔데?”
루아티샤는 애써 당당한 척하고 있었지만, 두 눈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저 창백해진 얼굴 좀 보라지.
약점을 제대로 물었다.
“너, 내 구두나 닦던 애잖아.”
클라티에가 비죽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드레스 자락이 들리며 반질반질한 구두가 드러났다.
“너네 엄마가 더럽게 바람피워서 태어난 주제에, 어쩜 아직도 파에라톤 행세를 하고 있니?”
루아티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반응에 클라티에는 더 신이 났다.
새벽 축제 내내 주제도 모르고 잘난 척하던 것을 드디어 눌러줄 수 있게 됐다.
“너 같은 사생아년, 우리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일그러진 루아티샤의 얼굴을 보니 통쾌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자신이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면 한참 남았다.
“자, 이리 와서 예전처럼 내 구두나 닦으렴.”
클라티에는 그 구두를 까딱이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콰앙!
거친 소리와 함께 내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타렌카 후작이 그늘진 얼굴로 문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다만 형형하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그가 얼마나 진노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하, 할아버지!”
클라티에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구두를 닦으라고?”
타렌카 후작의 시선이 다리를 꼰 채 구두를 내밀고 있는 클라티에를 훑었다.
그제야 클라티에는 자세를 바로 하며 벌떡 일어났다.
“오, 오해예요!”
“너희 집에서 저 애를 어찌 취급한 게냐!”
“자, 장난이에요. 그냥 공주님 놀이했던 거예요! 서로 공주님이 되었다가 시녀도 되었다가 하면서 一.”
“어찌 된 애가 입만 열면 거짓말뿐인 게야!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커다란 호통에 클라티에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제, 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그냥…….”
그때, 루아티샤가 타렌카 후작을 등지고 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변명거리를 찾던 클라티에의 시선이 자연히 그쪽을 향했다.
루아티샤는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천천히, 소리 없이 입술이 움직인다.
‘또 속냐? 그냥 등신이 아니라 상등신이었네.’
클라티에의 초록빛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 너어!”
흥분한 클라티에가 그대로 루아티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은 루아티샤에게 닿지도 못했다.
새까만 마기가 둘의 사이를 가르더니 루아티샤를 보호하며 휘감았다.
“뭐 하는 거지?”
파에라톤 공작의 서늘한 음성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난 소리에 파에라톤 공작가 사람들과 황제까지 다시 내실로 온 것이다.
“와, 정말 미쳤네? 그새를 못 참고 우리 솜뭉치한테 손대려고 해?”
“폐하, 당장 저것을 구금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안 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거든요.”
아레스가 봄볕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황제에게 말했다.
“그냥 지금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온의 날 선 시선에 클라티에는 숨을 멈췄다.
그녀는 뻐끔뻐끔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저는……. 이건 다 루아티샤가 일부러一.”
“클라티에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루아티샤가 클라티에의 말을 자르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파에라톤의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생아라며 무시했는데, 내가 새벽 축제에서 이길 것 같으니까 화났던 거구나.”
속상하다는 듯 조용히 한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클라티에는 제 약점을 제 입으로 말하는 루아티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가장 숨기고 싶었을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사……생아?”
파에라톤 공작과 공자들에게서 표정이 사라졌다.
클라티에는 저를 향한 네 쌍의 붉은 눈동자를 보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타렌카 후작은 눈을 감았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딸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웃을 때면 세상을 주고 싶고, 그 아이가 울 때면 제 목숨마저 주고 싶었다.
그 애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대범했으며 배짱도 두둑했다.
당연히 후계자로 생각했고 딸 아이 역시 그 뜻을 알고 기뻐했다.
그대로 쭉 행복할 줄 알았다.
딸아이가 파에라톤 소공작과 결혼하겠다고 하기 전까진.
파에라톤 공작부인이 되겠다는 말에 타렌카 후작이 느낀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화를 냈고 그 후에는 어르고 달랬다.
딸아이 밑으로 있는 아들 녀석은 어려서부터 사고만 치는 게 권력까지 잡으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를 놈이었다.
그저 다소 부족한 정도라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 녀석의 손에 하녀가 죽은 전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리 반대해도 그때 가문에서 내쳤어야 했다.
딸아이는 니콜라스가 작위를 물려받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괘씸했지만, 자기 삶을 찾아가고 싶다는 말에 반대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만 그 상대가 파에라톤 소 공작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타렌카 후작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를 사랑하냐는 자신의 물음에 그는 파에라톤에게 그런 감정은 없다고 답했다.
딸아이의 고집에 누그러졌던 타렌카 후작이 다시 반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미련한 것아, 왜 하필 그놈이랑 결혼하겠다는 거야. 세상에 너를 떠받들며 살 남자들 천지다. 한데 그놈은 너를…….”
“알아요.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행복해요.”
빙그레 미소 짓는 딸을 보니 더 이상 반대할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딸아이를 시집 보내고 나니 세상만사에 의욕이 사라졌다.
아들 녀석은 여전히 탐탁지 않았다. 자신이 유일한 후계자라는 생각에 더더욱 방만해졌다.
그 꼴을 보니 딸이 밉기도 했다.
인생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렌카 후작은 중앙 정계에서 손을 떼고 후작령에서 반쯤 칩거하며 세월을 보냈다.
일부러 딸아이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가봤자 속만 터질 게 분명했으니.
그러다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것이 아비 속은 다 썩여놓더니 그래도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서 가봤다.
아이랑 알콩달콩 지내고 있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 기대는 파에라톤 공작성에 도착하는 순간 산산이 깨졌다.
파에라톤 공작을 쏙 뺀 아이는 제 어미를 보고서도 한 번 웃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손주를 낳았다는 소식에 달려갔는데 그 손주를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했다.
기가 막혀 하는 그에게 공작성 사람들이 말했다.
파에라톤엔 그런 감정 교류가 딱히 필요 없다고.
아이는 잘 클 테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제 새끼와 감정 교류조차 하지 못하는 딸아이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돌아가자.”
“싫어요.”
“아비 말 듣거라. 이딴 메말라 비틀어진 곳에서 남은 평생을 살 작정이냐?!”
“메마르지 않았어요. 겉보기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안 그래요. 아버지는 제 남편에 대해서도, 제 아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라요.”
“모르긴 뭘 몰라! 내가 이곳에 오고 네 새끼가 널 보고 웃는 거 한 번 못 봤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네가 안 돌아오면 내 평생 네 얼굴을 다시 보지 않겠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뭐야?! 진짜로 이 아비를 안 볼 작정이냐?”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놓고서 더 충격받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딸아이가 쓰게 웃었다.
“아버지, 저는 이미 파에라톤 공작부인이에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행복해요.”
타렌카 후작은 그 길로 영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파에라톤령으로 발걸음하지 않았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딸아이가 원망스럽고 밉고 괘씸했다.
아이를 또 낳았다는데 어쩜 한 번 찾아오질 않는지.
핑계 삼아 찾아오면 더는 헤어지라는 소리 안 할 텐데.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겠지만 그래도 꼭 안아줄 텐데.
그냥 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얼굴만 비춰주지.
늙은이 고집만 는다고 했던가.
먼저 가볼까, 하다가도 다시 자리에 앉길 몇 번.
그러다 부고를 들었다.
딸아이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