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0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09화(109/353)
☆ 제110화 ☆
그 소식을 들은 타렌카 후작은 쓰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땐 이미 딸아이가 죽은 지 몇 달이 지나 있었다.
주치의가 말렸지만, 타렌카 후작은 딸아이의 묘지부터 다녀왔다.
딸아이의 무덤을 봤을 때, 그 참담한 심정을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그 앞에서 제 목을 졸라 죽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것은 살아있는 딸에게도 못난 아비였는데, 죽어서까지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였다.
다 회복되지 않은 몸은 북부의 겨울을 견디지 못해 악화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육신의 고통이 차라리 편했다.
영지로 돌아온 그는 니콜라스에게 약식으로 작위를 넘겼다.
가문의 모든 권한을 넘기지 않은 건 이 상황에서도 아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타렌카 선 후작이 된 뷰캐넌 타렌카는 완벽한 칩거에 들어갔다.
바깥일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세월이 흐르는 대로 남은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아주 한가롭고 평화로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한 채 얼마나 지냈을까.
델바트렌 공작에게서 연락이 왔다.
못난 아들놈이 명문가들을 상대로 크게 사기를 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조용히 눈 감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와중, 니콜라스가 외손녀의 양육비로 마나석 광산을 사들인 게 모든 일의 시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양육비라니, 그럼 그 아이가 타렌카 저에서 지냈다는 뜻이냐?”
“예, 파에라톤 공작이 전쟁에 나서며 맡겼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뷰캐넌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내가 죽자마자 전쟁에 나간 파에라톤 공작의 행태는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게야?”
“주인님께서 워낙 파에라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 말에 할 말은 없었다.
파에라톤의 ‘포’만 나와도 괴팍하게 성질을 부렸던 건 자신이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에조차 귀를 닫고 살았다.
델바트렌 공작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이번 일도 몰랐을 것이다.
영지로 불려온 니콜라스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어찌 조카의 양육비 가지고 그런 장난질을 친단 말인가.
하물며 이 사건을 조사하며 그간 처리했던 사업까지 살펴보니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점점 드러나는 범죄에 뷰캐넌은 머리를 감쌌다.
홀로 지내는 동안 가문에 종양이 퍼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뷰캐넌은 늦었지만 이 종양을 잘라내기로 했다.
“아버지, 아버지! 제발……!”
“시끄럽다! 누가 네 아비냐!”
그렇게 뷰캐넌은 다시 타렌카 후작이 되었다.
딸아이가 먼저 가고 하나 남았던 아들마저 내치고 나니 모든 것이 허무했다.
그 아이는?”
“파에라톤 공작이 다시 데려갔습니다.”
“그래…….”
“보시겠습니까?”
“……됐다. 제 아비가 와서 데려갔으면 됐지. 내가 뭘 봐.”
다시 후작이 되었지만 뷰캐넌은 여전히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가문의 일조차 믿을 만한 가신들에게 맡겨놓고 폐거했다.
이미 죽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그리 살았다.
그리고 정말로 죽을 때까지 그리 살다 갈 줄 알았다.
한데 설마 이런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친손녀의 입에서 죽은 딸아이를 두 번 죽이는 말이 나왔다.
거기다 외손녀에게 누명을 씌워 사회적으로 죽이려고 하더니, 구두나 닦으라며 발을 까닥인다.
“……너무 오래 살았군.”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 할 일이라도 바로 했어야 한다.
하지만 눈 감고 귀 막고 지낸 세월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바로 잡지 못했다.
완전히 잘라냈다고 생각한 종양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때였다.
황궁에 태풍이 몰아쳤다.
클라티에의 모욕에 파에라톤 공작가는 참지 않았다.
파에라톤 공작과 공자들이 당장이라도 클라티에를 어떻게 할 것 같았기에 황제는 우선 그녀를 옥사에 가뒀다.
클라티에가 끌려가며 미친 듯이 반항했지만, 타렌카 후작은 말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도에서 클라티에를 맡고 있던 오스틴 부인을 소환해 그간 클라티에의 행실에 대해 들었다.
파에라톤 남자들은 클라티에의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기세였다.
결국 늦은 밤, 클라티에는 옥사에서 다시 끌려 나왔다.
감옥에 갇혀 있는 몇 시간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상해 있었다.
귀족용 감옥이라 평범한 방같이 생긴 곳에 잠시 구금당한 것뿐인데도 입고 있던 드레스는 다 구겨지고 쓸려 엉망이었다. 클라티에가 얼마나 난동을 부렸는지 짐작 가능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클라티에를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파에라톤 남자들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고삐를 쥐고 있는 루아티샤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때, 타렌카 후작이 클라티에의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클라티에 타렌카.”
딱딱한 타렌카 후작의 음성에 클라티에가 흠칫, 하며 고개를 들었다.
“타렌카의 적에서 너를 제명하겠다.”
“하, 할아버지?”
믿기지 않는다는 클라티에의 눈이 벌어졌다.
타렌카 후작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그 단호한 얼굴에서 굳은 의지를 읽은 클라티에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안 돼요, 할아버지! 안 돼요!”
“난 이미 여러 번의 실수를 했다.”
클라티에가 뭐라 외치려 했으나 타렌카 후작은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네 아비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가문에서 내쳐야 했어.”
“……!”
“그러지 못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클라티에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분한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결국 그거예요? 아빠한테도 할아버지는 항상 엄격하셨죠! 고모만 아끼고 사랑하셔서 우리 아빠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생각해보셨어요?!”
“내가 왜 네 아비에게 엄격했다고 생각하는 게냐!”
타렌카 후작이 호통쳤다.
“클라티에, 굳이 네 아비를 언급하는 의도를 내가 모를 거라 여기지 말아라. 그리 아비를 생각했으면 왜 네 아비를 따라가지 않았지?”
“…….”
“나는 네가 제도에 올라가는 걸 반대했다. 왜 그런지 아느냐?”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거잖아요!”
“네가 권력과 힘을 쥐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클라티에는 눈물 젖은 눈으로 타렌카 후작을 노려봤다.
“그래도 나는 네게 기회를 줬다.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고 희망을 가졌어. 그런데 결과가 뭐냐!”
“…….”
“만약 네가 누명을 씌우는 데 성공했다면 억울한 아이가 사회적으로 죽었을 게야!”
“…….”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폭군처럼 사촌을 괴롭혔다니. 너는 네게 조금이라도 힘이 쥐여지면 그걸 휘두르지 못해 발광하는구나.”
그 성정을 알고 후작령에서 엄하게 교육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쩌면 고용인들에게 손을 대는 것조차 제 아비를 닮았을까.
오스틴 부인의 말을 들어보니 제도에 올라와서 몇이나 되는 하녀를 폭행했다고 한다.
“클라티에, 나는 너를 안다.”
타렌카 후작이 자세를 낮춰 클라티에에게 물었다.
“넌 진심으로 루아티샤가 사생아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네……?”
“루아티샤가 사생아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사실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클라티에가 흠칫 몸을 떨었다.
긍정이나 다름없는 대답이었다.
“너는 남을 상처 주기 위해서, 네가 특별해지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보다도 더한 모욕을 주는구나.”
“…….”
“그렇다면 네가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교육이 될 거다. 여기서 깨닫는 바가 있다면 변하겠지.”
타렌카 후작은 몸을 일으키곤 뒤를 돌았다.
“폐하께서 황족을 능멸한 죄로 클라티에를 벌하고 싶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그래도 되는가?”
“저 아이는 이제 타렌카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 말은 클라티에에게 사형 선고보다도 더 끔찍하게 들렸다.
가문의 일원이 아니다?
그럼 평민?
나보고 평민으로 살라고?
자작 영애도 되기 싫어서 엄마까지 버렸던 그녀였다.
클라티에는 무릎 걸음으로 타렌카 후작에게 다가갔다.
“제가 잘못했어요! 네? 사과할게요! 루아티샤한테 사과할게요!”
타렌카 후작은 클라티에를 보지 않았다.
클라티에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휙 고개를 돌렸다.
파에라톤 공작의 품에 있는 루아티샤를 보고 시뻘게진 눈으로 외쳤다.
“루아티샤, 미안해. 미안해, 응? 빨리 나 용서해줘. 할아버지한테 말 좀 해줘, 응? 우리 그냥 장난친 거잖아!”
루아티샤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클라티에의 눈동자에 독기가 어렸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네가 감히 나를……! 이거 다 루아티샤가 한 거예요! 쟤가 더러운 수를 써서 날 함정에 빠트려一.”
클라티에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너무 떠들지 않는 게 좋아.”
“잘못하면 혀가 베일 수 있거든.”
“더러운 입에 내 동생의 이름을 담지 않는 게 좋겠어.”
새까만 마기가 클라티에의 입 안에서 일렁거렸다.
“으, 으흐, 으, 흑…….”
클라티에는 입을 다물지도, 혀를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공포에 질려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타렌카의 일원이 아니라니 그럼 아비인 니콜라스에게 가겠군.”
“그렇겠지요.”
“니콜라스는 더는 타렌카의 일원도, 귀족도 아니게 되었지만 아직도 타렌카의 성을 쓴다고 들었네. 맞나?”
“맞습니다.”
“그럼 니콜라스 타렌카와 클라티에 타렌카에게서 성을 박탈하겠네. 명망 높은 타렌카의 이름을 더는 더럽힐 수는 없으니.”
“……!”
클라티에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황제가 성을 박탈한다는 말은 곧 다른 성조차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평민조차 성을 가지고 있다.
태생부터 평민 나부랭이와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자신에게 평민보다 못한 낙인을 찍다니!
이대로 가다간 평민들조차 자신을 무시할 거다!
클라티에는 입안에 마기가 넘 실거리고 있다는 것도 잊고 발광했다.
“시, 싫어! 안돼! 누구더러 그딴 낙인을 찍는 거야! 안돼! 싫어어어어어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움켜쥐길 꿈꾸던 그녀에게 평민보다도 더 못한 삶이란 죽음보다 가혹한 것이었다.
끝났다.
모든 게 끝이었다.
* * *
황궁에 있을 자격을 잃은 클라티에가 끌려나간 후, 나는 오빠들을 바라봤다.
“오빠들.”
“왜, 일부러 안전한 마기 썼잖아.”
“생각 같아서는 그대로 혀를 베어버리고 싶었다고…….”
“내 동생의 예쁜 눈을 더럽힐 순 없으니 참았지.”
그냥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찔려서 변명하는 오빠들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공격할 의도 없는 안전한 마기였으니 봐줄게요.”
내 말에 오빠들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굳이 안전한 마기 운운한 건 일부러였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친국하고 있는데 오빠들이 칼 들이대며 협박한 걸로 보일 수 있으니까.
진짜 칼이 아니라 장난감 칼이었답니다!一하고 알려주는 거였다.
황제는 나를 향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공녀가 많이 놀랐겠군.”
“조금 그랬지만, 가족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시간이 늦었으니 황궁에서 자고 가는 건 어떤가? 원하는 궁이 있으면 거기서 묵어도 좋다. 세브리안 궁은 봄에 딱 정취가 좋아.”
“황공하오나 폐하, 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던 지라 익숙한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황제는 영 아쉬운 기색이었다.
아까 황족들이 전부 나를 탐내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 쉬며 심신을 가라앉힌 후 폐하께서 초대해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내 말에 황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옳아. 공녀에게 내궁의 구경도 시켜줘야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빠가 나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제에게 말했다.
“그럼 폐하, 제 딸아이가 지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나.”
“오늘 새벽 축제에서 제 딸이 겪은 아픔에 대해선 추후에 논의하도록 하죠.”
황제는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홀을 나가면서 나는 타렌카 후작을 바라봤다.
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있었다.
담담한 얼굴은 자신의 결정에 아무런 후회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모든 것을 다 잃고 초라하게 고개 숙인 외로운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아들을 내치고, 친손녀마저 내친 그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
아무래도 내가 타렌카 후작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니콜라스나 클라티에와 똑같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것 같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一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손녀 일도 몰랐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타렌카 후작이 고개를 들었다.
곧장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어라 말할 듯 입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무슨 염치로 내게 말을 걸겠냐는 심정이 읽혔다.
‘……차라리 말을 걸었으면 그냥 무시했을 텐데.’
다 늙은 할아버지가 저렇게 풀이 죽은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래서 K-유교걸은 힘들다니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타렌카 후작님.”
할아버지라고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타렌카 후작은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그래. 루아티샤, 무슨 일이니?”
“저는 타렌카 후작저에 가고 싶지 않아요. 안 좋은 기억이 많거든요.”
“……그래.”
노인의 얼굴에 아픔이 어렸다.
“그래서 제가 가는 대신 후작님이 언제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타렌카 후작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정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