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1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11화(111/353)
☆ 제112화 ☆
그때 타렌카 후작은 딸아이가 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파에라톤 공작은 아무리 곁에서 문을 두드린다해도 마음을 열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든 타렌카 후작의 눈에 파에라톤 공작이 들어왔다.
그는 루아티샤가 오물오물 타르트를 먹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 눈빛에는 감정이 없는 듯했다. 지나치게 무감해서 싸늘한 눈빛보다도 더 차가워 보였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먹고 유심히 바라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타렌카 후작은 파에라톤 공작의 눈 속에 스민 다정함을 읽었다.
“…….”
어쩌면 제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티타임 후, 파에라톤 공작과 타렌카 후작은 소응접실로 이동했다.
루아티샤는 경계 어린 눈을 잔뜩 빛나는 오빠들이 안고 갔다.
가죽 소파에 앉은 두 사람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타렌카 후작이었다.
“루아티샤에게는 마기가 없다던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그럼 그간 계속 결계를 쳐주며 지낸 건가? 익시온까지 제도에 온 걸 보면 마기를 다 제어할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그 전엔…….”
파에라톤 공작은 잠시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았다.
루아티샤에게는 마기를 통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마기를 안정화시키는 특별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걸 타렌카 후작에게 밝히는 게 좋은지 확신할 수 없었다.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을 수반하니까.
아내는 부친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파에라톤 공작은 그 누구보다도 꽉 막힌 시선으로 파에라톤을 바라보던 타렌카 후작을 믿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말을 돌렸다.
“제 딸에게 큰 관심을 보이시는군요.”
“내 손녀이니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그렇다고 하기엔 십 년이나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잖습니까?”
“…….”
“후작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나 역시 그럴 자격은 되지 않으니.”
“전쟁에 나간 것을 말하는가?”
“내 딸이 그런 수모를 당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황명이었다고 들었네.”
황명을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다.
사위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가 죽자마자 그리 떠난 게 원망스럽다.
“……성수를 얻기 위해서 황제와 거래했습니다.”
“성수?”
“이나이스를 살리는 데엔 소용없었지만.”
갑작스럽게 나온 딸의 이름에 타렌카 후작이 멈칫했다.
“이나이스를 살리기 위해 성수를 대가로 전쟁에 나가기로 황제와 거래한 건가?”
파에라톤 공작은 답이 없었다.
하지만 타렌카 후작은 그의 태도에서 긍정을 읽었다.
설마 사위가 전쟁에 나간 이유가 그 때문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타렌카 후작이 봤을 때, 파에라톤 공작은 아내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딸아이가 이 넓은 공작성에서 혼자 외롭게 죽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의무감 때문이었나?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런 거래를 한 건가?”
타렌카 후작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
열리지 않는 파에라톤 공작의 입이 답답했다.
그는 재차 채근했다.
“공작은 내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나?”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러나 타렌카 후작은 끈질기게 답을 기다렸다.
긴 침묵 끝에 파에라톤 공작의 입술이 열렸다.
“……이나이스는 내가 가장, 아니,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초조해질 정도로 기대감이 가득했던 타렌카 후작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고, 사랑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죽은 아내에게마저 빈말 한마디 하지 않는 사위가 야속했다.
하지만 어찌 탓하겠는가.
사위가 아픈 아내를 위해 전쟁에 나가 제 목숨을 내놓겠다는 약조를 하는 동안 자신은 무얼 했던가.
“나는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딸아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무정하다며 서운해하고 있었다.
“……후작의 탓이 아닙니다. 이나이스가 후작께 병환을 알리지 말라고 했으니.”
“내가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면 진작 알았겠지.”
“…….”
“그뿐만이 아니야. 피붙이가 피붙이에게 학대당하는 것조차 몰랐다. 내가 정신 놓고 있지 않았다면, 집안 단속을 했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그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고 무서워했을지.
“충격에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쓰러져도 바로 일어나야 했다.”
단호히 말한 타렌카 후작이 고개를 들어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봤다.
“그런데 자네 오늘 조금 다르군.”
당신 탓이 아니라는 말부터 충격에 쓰러졌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까지.
이건 완전히 위로해주는 거 아닌가?
도무지 파에라톤 공작이 할 언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태도는 평소에 비해 공손한 편이었다.
황제 앞에서도 할 말 다 하던 사람 아니던가.
파에라톤 공작이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가 말했다.
“제 딸아이가 장인어른께는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K-유교걸의 설교 되셨다!
“이유는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내 딸이 원하니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렇군.”
타렌카 후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의 이유조차 모르는 건 파에라톤 공작다웠다. 공손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것 역시도.
하지만 딸아이가 원하니 잘 몰라도 하는 것은 그가 알던 파에라톤 공작이 아니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슬픔을 몰라 그가 울면 눈물 대신 타인의 피가 흐른다.
세간에 떠도는 말이었고, 타렌카 후작은 그 말에 가장 동의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점점 그 생각이 깨지고 있었다.
복잡한 기분에 타렌카 후작은 침묵했다.
파에라톤 공작은 잠시 그런 그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중정에 가면 루루가 있을 겁니다.”
저 루루 소리는 영 적응이 안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렌카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네.”
* * *
루아티샤는 봄 햇살을 가득 받은 채 잔디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 가제보가 있는데도 부득불 잔디에 누워 있는 게 꼭 제 엄마와 닮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감고 있던 아이가 반짝 눈을 떴다.
“후작님.”
몸을 일으키려는 아이를 저지하고 곁에 앉았다.
침묵이 찾아왔다.
타렌카 후작은 너무 할 말이 많아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한 마디였다.
“……미안하다.”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잘못했다.”
“무엇을요?”
“너를 방치한 것.”
“……내가 삼촌네 집에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어요?”
“몰랐다는 건 핑계가 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 건 좋아요. 하지만 나는 후작님의 입장이 궁금해요.”
“……네 엄마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후, 나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네가 타렌카 저에 맡겨졌는지도 몰랐지.”
“그랬군요.”
“니콜라스가 마나석 광산 사기를 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네 이야기를 알게 되었지. 그땐 이미 네가 공작가로 돌아간 후였다.”
“그때도 제가 타렌카 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셨구요?”
황궁에서 타렌카 후작이 클라티에에게 화를 냈던 것을 생각하면 모르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직접 확인받고 싶었다.
“……잘 지낸 줄 알았다. 네게 마기가 있는 줄 알았으니.”
타렌카 후작의 뇌리에 당시 영지로 불려온 니콜라스가 루아티샤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파에라톤 공작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 위의 자식들도 그렇지만요. 감정 하나 없습니다.”
“마기요? 그건 파에라톤 공작이 그 애의 새어나가지 않도록 결계를 쳐줬습니다. 그럼 괜찮은가 보죠. 저희야 마기에 대해서 잘 모르니…….”
“양육비 가지고 장난쳤기로서니 설마 제가 애를 굶기고 안 입혔겠습니까? 양육비 따위 받지 않아도 애를 부족하지 않게 키울 재산이 있는데…….”
“저야말로 키우느라 힘들었습니다! 파에라톤은 애가 애 같지 않다더니 그 말이 딱입니다. 공자 중 한 명은 두 살에 몬스터를 잡았다던데, 저는 제가 잡히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말을 듣는데도 무언가 탐탁지 않았다.
그는 따로 후작저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을 수소문해보라고 명했다.
그런데 파에라톤 공녀가 후작저에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반응만 되돌아왔다.
타렌카 후작은 단 한 번 봤던 외손자를 떠올렸다.
제 어미를 향해 한 번 웃어주질 않던, 제 아비를 쏙 뺀 손자.
그 애도 곁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막내 손녀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면 고용인들이 존재조차 모르는 게 이해됐다.
파에라톤은 정서적인 교류 따위 필요 없다고 했으니 어디서든 잘 자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가 제 멱살을 쥐고 싶었다.
“저한테 마기가 있다고 알고 계셨다면, 확실히 어디가서 구박 한 번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셨겠네요.”
루아티샤가 파에라톤 공작성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조금씩 마기가 없다는 말이 퍼졌다.
바깥세상에 귀를 닫고 칩거했던 타렌카 후작으로선 모를 만도 했다.
‘내가 학대당하던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던 게 아니었어.’
버려진 게 아니다.
그 사실이 루아티샤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해 주세요.”
“네 엄마는 아주 말괄량이였단다.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이건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루아티샤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대범하고 용기 있는 아이였지.”
“그랬구나.”
“똑똑하기는 얼마나 똑똑한지. 나는 네 엄마가 타렌카 후작이 될 줄 알았단다.”
“엄마가 파에라톤에 와서 섭섭하셨겠어요.”
“그래, 섭섭하다는 말로는 부족했지. 딸한테 배신감마저 느꼈으니까.”
“그래도 사랑은 막을 수 없으니까요.”
“사랑?”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에 타렌카 후작이 루아티샤를 바라봤다.
루아티샤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아빠랑 엄마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거잖아요.”
타렌카 후작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은 끝까지 아내를 사랑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말하자니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해!’라고 외치는 순진한 아이의 마음을 짓밟는 게 되어버린다.
타렌카 후작은 침묵을 택했다.
루아티샤가 그런 그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후작님은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어요?”
“…….”
“에이, 그럴 리 없잖아요.”
“내가 딸을 사랑하고 물었을 때 그놈…… 아니, 네 아비는 파에라톤에 그런 감정이 없다고 했다.”
무심결에 말해버리고 바로 후회했다.
아이에게 무슨 소리를 한 건지…….
하지만 루아티샤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셨겠죠. 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화상을 입은 사람 같아요.”
“화상?”
“화상이 아물고 나면 만져도 아프지 않으니까 그냥 괜찮은 줄 알죠. 하지만 감각이 둔해지잖아요.”
“그렇지.”
“슥 문질러도 제대로 느끼지 못해요. 느끼고도 뭐였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
“아빠가…… 아니, 아빠뿐만 아니라 오빠들도 그래요.”
“…….”
“마음에 변화가 있어도 그걸 제대로 느끼기 힘들고, 심지어 느끼고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 잘 몰라요.”
루아티샤는 애꿎은 풀을 손가락 사이로 갈랐다.
“마기는 인간을 초월한 힘이라고 하죠. 인간이 불을 다루고 나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되었듯, 마기도 마찬가지예요.”
“불처럼 다루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뜻이구나.”
루아티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 아빠랑 오빠들의 화상이 완전히 치유되었으면 좋겠어요.”
타렌카 후작은 잠시 손녀딸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파에라톤 공작가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 선망하며 두려워하고 우러러보며 증오하기 바빴다.
이런 통찰력은 그저 똑똑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게 아니었다.
‘아주 다정하고 상냥하고 강한 아이이기에 가능하지.’
타렌카 후작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조용히 손을 내려놓고 손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아주 애틋했다.
루아티샤가 이런 아이이기에 사위와 손자들이 그렇게 달라졌구나, 싶었다.
루아티샤를 대하는 그들을 보면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 방식이 조금…… 서툴다고 해야 하나, 과격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정상이 아니긴 했지만.
‘루아티샤, 네가 네 가족의 화상을 치료해주고 있구나.’
루아티샤는 무릎을 세운 채 거기에 턱을 대고 있다가 힐끔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엄마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타렌카 후작은 손녀가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루아티샤가 환히 웃는 게 아닌가.
“거봐요.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를 사랑했다니까.”
“사랑이라고?”
“할아버지는 몰라요. 타인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게 파에라톤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새로 알게 된 파에라톤 공작의 면모를 되새겨 보니一.
“……그건 아주 특별한 의미겠구나.”
“아빠는 빈말을 하지 않아요. 그건 후작님도 아시잖아요.”
타렌카 후작은 목이 까끌했다.
“그래……. 네 아빠는 네 엄마를 사랑했어. 본인도 사랑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건만 네 엄마는 그걸 알았구나. 그래, 얼마나 똑똑한 아이인데 그걸 몰랐으려고.”
타렌카 후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딸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아이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걸로 됐다.’
타렌카 후작이 뜨거워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은 그의 산통을 깨는 말이 옆에서 들렸으니.
“후작님도 참. 별걸 걱정하셨네요. 솔직히 자식을 넷이나 낳았는데, 웬만큼 금슬이 좋지 않고서야…….”
타렌카 후작은 벙찐 얼굴로 손녀딸을 바라보았다.
이 어리디어린 응애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