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1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12화(112/353)
☆ 제113화 ☆
설마…… 뜻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겠지?
타렌카 후작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루아티샤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아차, 했다.
어쩌겠는가. K-유교걸이 어르신의 순수함(?)을 지켜드려야지.
“아가는 엄마랑 아빠가 보름달이 뜨는 밤에서로 손을 꼬옥 잡고 사랑으로 기도하면 황새가 물어다 주는 거랬어요. 그쵸?”
“그, 그래! 그렇지!”
타렌카 후작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깜짝 놀랐네.’
어찌나 놀랐는지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리디어린 응애가 어르신의 순수함(?)을 지켜줬다고 뿌듯해하는 것도 모르고.
“있죠, 내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신 거래요.”
루아티샤가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조금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나이스가……. 그래, 좋은 이름이구나.”
타렌카 후작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과는 조금 다른 침묵이었다.
늦봄의 바람은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만발한 꽃과 풀에서는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타렌카 후작은 용기를 냈다.
“……루아티샤, 이 못난 할아비가 너무 늦었구나.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네 할아버지로서 살아도 되겠니?”
루아티샤는 잠시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명문 세도가를 이끄는 수장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거인이 초조해하며 자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거는 허락 맡는 게 아니에요.”
“그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아다 보면 어느새 싫어도 가족이 되어 있는 거니까.”
“그래, 그렇구나. 네 말이 옳아.”
타렌카 후작이 미소 지었다.
제 손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찌나 이렇게 똘똘한지.
“할아버지로 인정해달라고 네게 말할 게 아니라 내가 우선네 할아버지가 되어야겠구나.”
“……저는 후작님이 아빠를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평생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죠. 그건 괜찮아요.”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는 루아티샤의 눈에는 아픔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후작님은 오빠들의 외할아버지기도 하잖아요.”
“……!”
“들었어요. 후작님이 제온이 엄마 품에 안기려 하지도 않아서 많이 화를 내셨다고.”
그랬었다.
이 드넓은 공작성도, 딸이 배 아파 낳은 새끼조차 딸을 차갑게 거부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
해서 딸에게 어서 이 공작성을 떠나자고 윽박질렀지.
“제온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해보려고 하셨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그때는 왜 딸의 말에 더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 첫 손주의 상태를 좀 더 살펴보지 않은 것인지.
후회된다.
“제온은 누구의 온기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그건 제온 탓이 아니에요.”
“그게 제온이 입은 화상이구나.”
“맞아요. 다른 오빠들도 다 각자의 화상이 있죠.”
타렌카 후작은 눈을 감았다.
“……내가 많은 잘못을 했구나. 내가 할아비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구나.”
따스한 봄 햇살은 감은 눈 사이로도 스며들었다.
* * *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은 타렌카 후작을 독대하겠다는 막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해줬다.
하지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찌 그냥 손 놓고 있겠는가.
그들은 중정이 잘 보이는 창문에 자리를 잡고 매의 눈으로 타렌카 후작을 감시했다.
그런데.
설마 저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화상이라…….”
그 누구도 자신들을 그리 보지 않았다. 감히 누가 그러겠는가?
하지만 루아티샤는 그들이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상처를 찾아내 어루만져준다.
“……나는 평생을 저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화상을 입어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알아채지도 못하는데.
저 아이의 말 한마디면 심장을 꽉 조인 것처럼 아릿해졌다.
목을 죽이고서야 비로소 갈증을 깨닫는 것처럼, 저 아이는 그렇게 자신을 일깨운다.
“…….”
사실 이제 와서 외조부를 만나봤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딱히 외조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지금도 루아티샤의 관심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게 최대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달랐을 것이다.
정이 깊고 생각이 많은 아이다.
어릴 적 외삼촌의 집에서 자랐으니 자연히 외할아버지에 대해 생각이 닿았겠지.
왜 집안의 어른이 자신을 이리 내버려 두나 원망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애가 타렌카 후작에게 하는 말은 외할아버지로서 오빠들을 보듬어달라는 거였다.
안 그래도 새벽 축제에서 큰일이 있어 놀랐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괴롭혔던 외사촌과 그 사달이 났으니 속으로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저 녀석은 항상 저래. 약골 주제에 자기보다 우리를 더 챙기려고 들지.”
남의 상처를 그렇게 잘 보면서 자신의 상처는 한 번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본다.
“그래, 그러니 우리가 루아티샤를 챙겨야지.”
“……막내를 상처 입히는 것 들은 깨끗하게 지워야 해.”
타렌카 후작과 루아티샤가 중 정에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세 남자는 자연히 창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갔다.
“어? 셋 다 같이 있었어? 안 그래도 오빠들 찾고 있었는데 딱 마주쳤네!”
루아티샤가 반가운 우연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세 남자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왜 찾았어?”
루아티샤는 그 말에 타렌카 후작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아빠도, 나도 후작님이랑 이야기 나눴으니까 오빠들도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구나.”
루아티샤는 온건한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그딴 거 필요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튼 잘됐다.’
루아티샤는 타렌카 후작을 향해 힘내라며 주먹을 꼭 쥐여 보이곤 자리를 떴다.
루아티샤가 타박타박 멀어지자 부드러웠던 파에라톤 공자들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익시온이 날 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솜뭉치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를 그렇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그 애뿐이야. 말해두지만 나는 하하호호 하는 가족 놀이 따위 필요 없으니까.”
“제 동생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시면 됩니다.”
싱긋 미소 짓는 아레스를 보고 타렌카 후작은 잠시 침묵했다.
편견이 걷히니 비로소 보였다.
이 아이들은 정말로 가족이 필요 없는 게 아니다.
그저一.
“너희에게 미안하구나. 나는 파에라톤에 대해서도, 너희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다.”
“…….”
“이제 와서 지난 세월 동안 무심했다면서 사과한다고 당장 너희가 나를 할아비로 느낄 수 없겠지. 그걸 바라는 것은 욕심이야.”
“…….”
“하지만 루아티샤의 말대로 너희와 시간을 보내면, 너희 곁에 있다 보면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게 있겠지.”
“그딴 거 필요 없一.”
“필요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언제든 너희의 곁에 있을 테니. 너희가 우연히, 단 한 번이라도 이 할아비가 필요해졌을 때 바로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타렌카 후작은 그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았다.
외출이 길고 마음의 동요도 컸다.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단호한 의지로 벼려져 있었다.
그러나 노쇠한 몸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지팡이를 짚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타렌카 후작은 조금 더 손주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을 내리누르고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
파에라톤 공자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뚜벅뚜벅 걸어가는 타렌카 후작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익시온이 입술을 비죽였다.
“뭐야, 저 노인네.”
텅 빈 공간에 그의 투덜거림이 울려 퍼졌다.
* * *
선전포고(?)했던 대로 타렌카 후작은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에라톤 저를 찾았다.
루아티샤의 손님 명목으로 오는 것이니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은 그를 저택 밖으로 쫓아낼 수도 없었다.
그는 거침없이 손주들에게 다가갔다.
“예민해서 사람이 곁에 오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고. 많이 힘들었겠구나. 할아비가 돼서는 그것도 모르고…….”
주름진 손으로 제온의 손을 꼬옥 잡았다가 뿌리침 당하는가 하면.
“아레스, 그렇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게 화를 내렴. 손주가 투정 부리는 것 보는 것도 말년의 기쁨이지.”
“……제가 투정 부리는 걸로 보이셨나 봅니다?”
아레스에게 무려 비딱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허허, 욘석. 장난이 지나치구나. 그래, 아이는 원래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어야 건강한 게지.”
“……한 번만 더 귀찮게 굴면 다음에 부서지는 건 벽이 아니라 댁일 수도 있어.”
폭발한 익시온이 마기로 벽을 부수게까지 만들었다.
아무리 손주들이 으르렁거려도 타렌카 후작은 멈추지 않았다.
억지로 말을 붙이고 반응을 이끌어내며 손자들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예민한지를 파악해나갔다.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은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냥 피할 수도 없는 게, 자신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루아티샤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까 봐 걱정됐다.
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타렌카 후작을 상대했다.
물론 타렌카 후작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루아티샤였다.
루아티샤는 티테이블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디저트를 바라봤다.
“어떠니? 네가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가져왔단다.”
“이거 다 못 먹어요.”
아무리 자신이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마치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거 하나는 있겠지!’라고 외치듯 디저트가 쌓였다.
하지만 디저트가 문제는 아니었다.
“저 테이블이랑 의자는 대체 뭐예요?”
햄찌 의자가 뀨 하고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다른 의자들은 아기 고양이와 양, 토끼, 병아리 모양이었다.
테이블은 숲속 동물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은 통나무였고.
“네가 좋아할 거 같아서 장인들을 시켜 만들었단다.”
‘……아니, 오해에요. 이런 거 제 취향 아닌데요. 우리 아빠 취향이지.’
아무래도 자신의 방에 있는 가리비 의자와 프릴과 레이스로 꾸며져 있는 핑크 티룸을 보고 착각한 듯했다.
“동물 친구들은 네 방에 있는 솜인형을 참고했단다.”
타렌카 후작이 뿌듯하게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것까지 생각해 주신 건 감사한데…….’
“네게 많은 인형이 있던데 특히 이 인형들을 좋아하더구나.”
“어떻게 알았어요?”
“그럼 내 손녀가 좋아하는 걸 모를까.”
타렌카 후작이 미소 지었다.
“그 친구들한테 무슨 이야기가 있니?”
타렌카 후작의 질문에 별 뜻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은 인형 놀이를 많이 하니 손녀가 거기에 대해서 종알종알 떠드는 걸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거 아빠랑 오빠들이잖아요.”
“양은 아레스고, 토끼는 익시온.”
타렌카 후작은 잠시 침묵한 채 집 나가려는 정신줄을 붙들었다.
“……너희 아빠는?”
“아빠는 딱 봐도 아기 고양이 잖아요?”
“…….”
“병아리는 제온이에요. 졸졸 쫓아다니는 게 딱 병아리니까.”
타렌카 후작은 정신이 혼미했다.
그런 그를 보고 루아티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햄찌는 저 아니니까.”
솜인형과 제일 닮은 애가 눈을 번뜩이며 정색한다.
“햄찌 인형은 옛날에 하녀 언니들이 선물해준 거라 소중한 것뿐이에요.”
타렌카 후작은 뀨뀨 동물 친구들과 벼린 날처럼 날카로운 사위와 손자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또 어딨을까, 했지만 왠지 설득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런 것보다.
‘부러워.’
“……이 할아비는?”
“네?”
“할아비는 무슨 동물이누?”
“그건…….”
생각하던 루아티샤가 조금 부끄러운 얼굴로 몸을 휙 돌렸다.
“몰라요.”
타렌카 후작은 그 모습은 껄껄 웃었다.
손녀가 귀여운 한편으로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너무 많으니까 아빠랑 오빠들도 불러서 같이 먹어요. 그러고서도 다 남겠다. 언니들한테도 줘도 돼요?”
“그래, 그러자꾸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파에라톤 공작과 공자들이 방에 들어왔다.
그들은 동물 뀨뀨 의자를 보고 잠시 얼굴을 굳혔다.
파에라톤 공작이 딱딱한 얼굴로 아기 고양이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타렌카 후작은 실소를 머금었다.
싫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걸 보라.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파에라톤 공작이 제 딸에게는 당해내지 못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재밌었다.
그때 파에라톤 공작이 입을 열었다.
“루루, 앞으로 새 가구가 갖고 싶으면 아빠에게 말하거라. 내가 더 잘 만들어 줄 수 있다.”
파에라톤 공작이 경쟁심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타렌카 후작을 바라봤다.
‘……아기 고양이가 문제인 게 아니라 그쪽이었나.’
이날 타렌카 후작은 사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에라톤 공작의 은밀한 취미는 딸아이에게 어울리는 공주님 가구를 주문하는 거였다.
파에라톤 공작이 딸아이를 제 무릎에 앉혀서 햄찌 의자는 결국 타렌카 후작의 차지가 되었다.
타렌카 후작이 손녀딸을 위해 공수해 온 디저트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루아티샤는 행복하게 뺨을 부풀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너도나도 포크를 내밀었다.
“후작님, 순서를 지키시죠? 저희가 세 번 먹여줄 때 한 번 먹여줄 수 있습니다.”
“제온 이 자식, 내 차례였는데 뭐 하는 거야!”
아주 시끌벅적한 티타임이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첫 방문과 달리 타렌카 후작은 함께 소란을 떨었다.
‘즐겁구나.’
즐거움을 느낀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타렌카 후작은 자신의 가슴에 아직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딸아이가 죽으면서 모든 행복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으으, 더는 못 먹어! 배 터질 거 같아!”
루아티샤가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외쳤다.
타렌카 후작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행복하다.
그래, 자신은 지금 행복했다.
그는 천천히 손주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안 되겠다. 좀 걸어야겠어요.”
“그래.”
파에라톤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딸아이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공자들도 당연하다는 듯 그 옆에 섰다.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직도 앉아 있는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았다.
“후작님은 안 오세요?”
당연히 함께 걸을 거라고 생각하는 얼굴.
‘아…….’
타렌카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야지. 같이.”
타렌카 후작이 지팡이를 짚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타렌카 후작의 몸이 휘청거렸다.
다시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노쇠한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타렌카 후작은 그대로 쓰려졌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손녀딸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걸어오는 발소리.
할아버지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내 강아지가 저리 부르니 어서 눈을 뜨고 답을 해주어야 할 텐데.
하지만 감긴 눈은 꿈쩍도 하지 않고 혀는 굳은 듯했다.
서서히 잦아드는 의식 사이로 손녀가 제 손을 꼭 붙드는 게 느껴졌다.
이나이스를 만날 때가 된 것 인가.
이제 여한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