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1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15화(115/353)
☆ 제116화 ☆
그때였다.
“……음.”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던 루아티샤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 으켰다.
“아.”
눈이 마주쳤다.
루아티샤는 한동안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타렌카 후작을 응시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배시시 웃는다.
“일어나셨어요.”
“……그래.”
버석하고 꺼끌거리는 목소리.
웃고 있던 루아티샤의 얼굴이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잔뜩 고였다.
“미안하다.”
타렌카 후작은 뻣뻣한 몸을 애써 움직여 손녀딸을 끌어안았다.
작은 것이 품 안으로 파고들며 엉엉 운다.
따뜻하게 젖어가는 가슴팍을 느끼며 타렌카 후작은 아이의 등을 계속해서 쓸었다.
코끝이 시큰했다.
어찌 이 어린 것을 두고 가면서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진짜, 끅, 안 일어나시면 평생, 흡,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고개를 든 루아티샤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었다.
타렌카 후작은 그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며 웃었다.
“그럼 안 되지. 내 새끼한테 용서받으려면 어서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나야 하겠구나.”
“후응…….”
루아티샤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돌리니 언제 들어온 건지 손자들과 사위까지 와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렌카 후작의 시선이 깊었다.
진짜로 아무런 정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일어났다는 소식에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루아티샤처럼 울지도, 그렇다고 기쁨과 안도를 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 타렌카 후작은 그 안에 담긴 네 사람의 마음이 보였다.
“……이나이스를 만났다.”
움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네 남자가 동요했다.
“나더러 제 딸을 울리면 용서 안 할 거라고 하더구나.”
어쩜 모녀가 용서하지 않을 거란 말부터 하는 게 이리 똑같은지.
타렌카 후작은 아직도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 있는 손녀의 눈가를 쓸었다.
“그러니 그치려무나. 이러다 몸 상하겠다.”
어찌나 격하게 울었는지 아이의 체온이 뜨끈뜨끈했다.
타렌카 후작은 손녀딸을 어르며 손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나이스가 너희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더구나.”
“…….”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의 얼굴은 얼핏 보면 그저 무표정했다.
하지만 요 몇 주, 편견을 내려놓고 손자들과 시간을 보낸 타렌카 후작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타렌카 후작은 아픈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자식들을 두고 어찌 그리 일찍 눈 감았단 말이냐, 이 나이스.’
그는 시선을 옮겨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봤다.
“남편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녀가 내게 미안해할 건 없습니다.”
묵묵한 대답.
“내가 그리 말하니 순진한 남자 꼬셔놓고 홀아비 만들었다던데?”
그 말에 타렌카 후작의 품 안에 있던 루아티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를 힐끔 보더니 아빠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직 울음기가 남아 있는 눈이 전에 없이 초롱초롱했다.
파에라톤 공작은 그런 딸아이를 조금 난감한 눈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꼬셨는데.”
아, 저런…….
타렌카 후작도, 루아티샤도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이건 누가 봐도 이나아스가 꼬신 거였다.
* * *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타렌카 후작의 상태가 당장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건 아니었다.
해서 그는 자연스럽게 파에라톤 공작가의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타렌카 후작은 조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를 찾아오는 사위와 손주들을 보고 있으면 더더욱 마음이 이상했다.
딸아이가 그렇게 가고 난 뒤, 충격에 정신을 놓았던 때가 생각났다.
방문객을 일절 받지 않고 칩거하던 지난 세월도.
“…….”
손자들이나 사위가 살갑게 챙겨주며 종알종알 있었던 일을 떠드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약해진 체력에 앓다가 눈을 뜨면 손자들이 가끔씩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스민 걱정을 읽어 낼때면 통증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익시온이 안으로 들어오다가 타렌카 후작과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왔느냐.”
익시온은 답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타렌카 후작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영감님, 어서 나으쇼.”
“이 할아비를 걱정하는 게냐?”
“거, 걱정은 무슨! 솜뭉치가 자꾸 여기에만 있어서 짜증 나서 그렇지.”
익시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언뜻 보이는 손자의 뺨이 살짝 붉었다.
타렌카 후작은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구나.”
익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는 타렌카 후작을 힐끔 바라보다가 무어라 말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는 막상 수긍하니 신경 쓰이나 보다.
하지만 익시온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튼 오해하지 마쇼.”
그 말만 남기고 후다닥 방을 나선다.
타렌카 후작은 손자의 뒷모습과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것이 사는 것이지.’
삶이란 이런 것이었다.
오랜 칩거 기간 동안 타렌카 후작은 자신의 몸만 가두는 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가뒀다.
기쁨과 행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끝없이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잘못을 곱씹었다.
마치 스스로를 벌주듯.
그래야지 이 삶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딸아이를 만나보니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나이스는 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주길 바랐다.
무엇보다 이런 못난 아비라도 끝까지 행복하게 살다 눈을 감길 바랐다.
타렌카 후작은 고개를 돌렸다.
뀨.
그가 누워있는 침대 위에는 솜인형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었다.
아기 고양이, 병아리, 양, 토끼, 아기 사슴.
전부 루아티샤가 선물해준 것들이었다.
‘그 아이 눈에는 가족들이 대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거지?’
이제는 꽤나 손자들과 사위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손녀딸이 트레이를 든 채 들어왔다.
루아티샤는 인형을 바라보고 있는 타렌카 후작을 보고 미소 지었다.
“마음에 드세요? 아빠랑 오빠 들하고 딱 어울리죠?”
“…….”
신이 난 손녀딸의 얼굴을 보니 차마 전혀 안 어울린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왜 햄찌 인형은 없지?”
“그건 제가 아니라니까요!”
볼을 퉁퉁 부풀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햄찌였다.
타렌카 후작은 속 생각을 숨기며 얼른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궁금하구나. 이 할아비는 왜 사슴이지?”
루아티샤는 잠시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다가 협탁 위에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용석이나 다름없는 가리비 의자 위에 앉았다.
“그 이야기 아세요? 토끼랑 거북이랑 경주하는 옛날이야기.”
“당연히 알지. 발 빠른 토끼는 농땡이 부리다가 잠들어서 지고, 느린 거북이가 쉬지 않고 묵묵히 걸어서 이기는 이야기 아니더냐.”
오래전, 어린 딸아이와 아들을 앉혀 놓고 읽어주던 기억이 났다.
루아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북이는 느리죠.”
타렌카 후작은 손녀딸을 바라봤다.
왜 사슴이냐는 질문에 웬 동문서답이냐 싶었지만, 영민한 아이이니 이 선문답에도 의미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결국 도착했어요.”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맞았다.
타렌카 후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역시 거북이처럼 너무 느리게 깨달았지만, 결국 왔다.
“그리고 거북이는 오래 살잖아요.”
죽을 고비에 처해있던 할아비를 향한 마음이 느껴졌다.
“한데 왜 사슴이냐. 거북이가 아니고.”
루아티샤가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랑 닮았잖아요? 아가 사슴.”
“허, 나와 닮았어?”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활발히 활동하던 때의 타렌카 후작은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사슴과 닮았다면 차라리 멋들어진 뿔을 가진 수사슴이 어울리지 않더냐?”
타렌카 후작이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에 루아티샤는 “흠.”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밤비와 밤비의 아빠 사슴.
밤비의 아빠 사슴이랑 할아버지는 겉이 조금 비슷하긴 했지만…….
“에이, 할아버지는 밤비죠.”
“밤비?”
“있어요. 아,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는 사슴도 장수의 상징이래요. 불행과 질병을 막아준다고.”
사슴은 무려 십장생 중 하나였다.
“거참, 힘내서 오래오래 살아야겠구나.”
“당연하지요!”
루아티샤는 싱긋 웃은 후 트레이에 놓인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호호, 불어가며 포타주를 한 숟갈 떠서 할아버지에게 내민다.
“아? 하세요.”
“그냥 내가 먹는대도.”
타렌카 후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울 때까지 숟가락을 뺏지 않고 얌전히 입을 벌렸다.
“잘하셨어요.”
루아티샤는 깨끗해진 그릇을 보고 뿌듯하게 말했다.
“원, 나를 애 취급하는구나.”
“자, 이제 이것도 꼭꼭 씹어 삼키세요.”
루아티샤가 공진단을까서 내밀었다.
타렌카 후작은 익숙하게 공진 단을 씹어 삼켰다.
처음엔 알사탕인 줄 알고 됐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도 처음 보는 약이었는데 먹으면 확실히 기력이 돋아났다.
“후식으로는 이거!”
“후식은 보통 달지 않더냐?”
“안 단 것도 얼마나 많은데요.”
타렌카 후작은 픽 웃으며 십전대보탕을 마셨다.
이걸 마시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자신의 몸에 스며들었던 그 기운이 느껴졌다.
“써도 다 삼키셔야 해요!”
한 번도 남긴 적 없는데도 손녀딸은 꼭 저렇게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잘하셨어요. 초콜릿 드릴게요.”
“고맙다.”
사실 공진단도, 십전대보탕도 먹는 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향이 조금 특이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계속 먹다 보니 입에 맞는달까.
루아티샤는 아무래도 제 입맛대로 생각해서 두 약을 먹는 게 퍽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타렌카 후작은 손녀딸의 오해를 내버려 두었다.
“자, 노나 먹자.”
무엇보다 이렇게 초콜릿을 반 갈라주면 손녀딸은 무척 감동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초콜릿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아이가 왜 저렇게까지 감동하나 했는데.
“평소의 초콜릿과 쓴 약을 먹은 뒤의 초콜릿의 소중함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저번에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오늘부터는 방안 산책 말고 바깥 산책도 할 거예요.”
루아티샤가 빈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앞으로 매일매일 나가서 산책해야 해요.”
“매일?”
“체력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후작가의 사람들한테 들었는데 십 년간 산책 한 번 하지 않고 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내셨다면서요.”
“아니, 꼭 그렇진…….”
“침실이나 수로에만 콕 박혀 있고. 어쩌다 가는 곳도 정해져 있고.”
타렌카 후작은 변명을 멈췄다.
미주알고주알 신이 나서 일러바쳤을 집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못써요.”
손녀딸이 허리에 손을 착 얹고 꾸짖는다.
“잘못했다.”
“좋아요. 앞으로는 매일 산책하는 거예요?”
“그러마.”
루아티샤가 싱긋 웃고는 타렌카 후작을 부축했다.
신성력과 천재 여주 버프를 받은 공진단과 십전대보탕 덕에 원기를 충분히 회복한 데다가, 그간 루아티샤와 방안을 돌아다니며 움직였기에 거동이 불편하진 않았다.
타렌카 후작은 손녀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미소 지었다.
꽃이 예쁘게 피었다며 활짝 웃는 손녀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풍족했다.
이런 산책이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 모습을 탐탁지 않게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산책도 나오신 걸 보니 이제 다 회복하셨군요.”
“거동이 괜찮으시면 슬슬 타렌카 저로 돌아가실 때 아닙니까?”
“부축은 성인이 해주는 게 나을 텐데? 솜뭉치는 너무 작고 어려.”
우르르 다가온 파에라톤 공자들이 질투심으로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타렌카 후작을 노려봤다.
타렌카 후작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깨어난 직후에는 그냥 넘어갔다.
그들 역시 기분이 이상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벌써 며칠째 타렌카 후작 혼자서 막냇동생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형국.
“그럼 오빠들이 부축해드릴래?”
루아티샤는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조금 이따 에첸과 약속이 있었기에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익시온이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왜一.”
“싫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내가 계속 부축하는 수밖에.”
“……내가 한다.”
제온이 저벅저벅 걸어 타렌카 후작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어색한지 루아티샤는 웃음이 나왔다.
한 번도 누군가를 부축해본 적이 없다는 게 자세에서부터 티가 났다.
“나중에 칭찬해줘야 해.”
제온이 진지한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봤다.
“알았어.”
“그럼 나도 반대쪽에……!”
“넌 아까 싫다고 했던 거 아니었나? 내가 부축해드려야지.”
익시온과 아레스가 막냇동생의 칭찬을 위해서 서로 부축하겠다고 투닥거렸다.
루아티샤는 웃으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네 사람이 만든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졌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할아버지와 오빠들이 가까이 선 모습이 좋았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빨리 다 나아버리쇼.”
“내 동생이 식사 떠 먹여줄 필요 없도록.”
“정정해져서 바쁘게 돌아다니시면 막내가 말 상대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한다.
파에라톤 공자들의 눈빛이 각오로 빛났다.
어떻게든 건강하게 만들어서 막냇동생을 탈환한다.
그때였다.
“루루.”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정원에 나온 파에라톤 공작이 딸아이를 향해 말했다.
“아빠 아프다.”
예?
아프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멀쩡하다 못해 굳건한 얼굴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빠 아파.”
옆에서 보다 못한 에르켈 자작이 크흠, 하고 기침하더니 덧붙였다.
“각하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네?
모두의 시선이 견고한 근육으로 짜인 파에라톤 공작의 사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