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1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19화(119/353)
☆ 제120화 ☆
어……?
어찌나 바람이 센지 에스테반이 아예 휙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교차해 방어하기까지 했다.
신기하게도 그 돌풍은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에스테반 황자만을 휩쓸고 사라졌다.
잘 손질된 머리카락도, 옷도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심지어 분수의 물까지 튀어서 앞섶이 다 젖었다.
‘와, 진짜 바람이 일부러 불어도 저렇게까지 엉망이 되진 않겠다.’
이것이 자연의 신비인가.
놀라워하고 있는데 에스테반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바람이……. 이상한데.”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바람이 불어온 쪽을 바라봤다.
‘헉, 설마?’
뇌리에 가족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황궁 안인데. 여긴 심지어 내궁이라고. 거기다가 황자를 공격하면 반역죄를 물을 수도 있잖아!’
에이, 생각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우리 가족들 보면 좀 생각 없을 때가 많은 것 같아…….’
특히 나와 관련되었을 때.
나는 에스테반 황자가 수상하다며 더 파고들기 전에 말을 돌렸다.
“갑자기 제 머리카락을 만지셔서 깜짝 놀랐어요.”
“꽃잎이 붙어있길래.”
“아, 뭐. 꽃잎이 자주 붙는 편이긴 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몰랐는지 에스테반은 벙찐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참나, 그런 뻔한 작업질에 넘어갈까.
우리 오빠들이랑 아빠가 나한테 수천 번은 했던 짓이다.
“자주……?”
“네, 루루一.”
생각 없이 말하다가 확 정신이 들어 말을 멈췄다.
“루루?”
“루, 룰루랄라! 꽃이 신나서 팔랑팔랑 춤추나 봐요!”
꺄르르, 순진한 아이처럼 양팔을 팔랑팔랑하며 웃었다.
“……그렇군.”
에스테반 황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흑흑, 쪽팔려.
‘하지만 루루꽃이라고 말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왜 계속 내 머리카락에 꽃잎이 붙는다고 하는 거야! 거짓말이지!”
“진짜야. 루루꽃이니까 꽃잎이 자꾸 붙을 수밖에 없지.”
“맞아. 루루꽃인걸.”
가족들이 했던 말을 하마터면 그대로 말할 뻔했다.
이래서 습관은 무서운가 봐.
나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그만 들어갈까요? 산책하긴 힘들 것 같네요.”
에스테반 황자는 잔뜩 젖은 제 옷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제대로 구경시켜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군. 다음에 또一 윽?!”
에스테반 황자가 넘어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어머, 괜찮으세요, 전하?”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하면서 땅을 살폈다.
잘 관리된 황실 정원에는 돌부리 하나 튀어나와 있지 않았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아빠랑 오빠들이다.’
네 사람이 여기에 있진 않더라도 가족들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겁도 없이 이러는 게 분명했다.
나는 아까 그 돌풍이 불어왔던 쪽을 향해 주먹을 붕붕 흔들었다.
‘적당히 해, 적당히!’
다행히 그 말이 통한 것인지 티룸으로 돌아가는 동안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루아티샤가 공작저로 돌아가고 난 후.
황후는 곧바로 에스테반의 궁을 찾았다.
옷이 엉망이 된 에스테반이 티룸까지 루아티샤를 바래다준 뒤, 곧바로 황자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 젖어서 돌아온 게냐. 황비 그 요망한 여우가 그 꼴을 보고 얼마나 고소해하던지.”
“바람이 불었어요.”
“바람?”
황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루아티샤도 그렇게 답하긴 했지만,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날이 이렇게 좋은데 무슨 바람이……. 설마 마법? 감히 제국의 하나뿐인 황자에게……!”
“돌아오자마자 조사해봤는데 그런 건 아니었어요.”
에스테반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었다.
황후는 그런 아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디? 그 애는.”
“흥미롭더군요.”
“흥미?”
아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에스테반이 턱을 치켜들며 거만하게 말했다.
“다들 내 앞에서 고개 숙이며 한 번이라도 눈에 들지 못해 안달인데, 걔는 날 지나가는 똥개처럼 보더라고요.”
“감히.”
황후가 노기 어린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비록 황태자 책봉을 받지 못했지만, 에스테반은 공식적으로 황제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당연히 차기 황제는 그가 될 터.
난다 긴다 하는 귀족들조차 에스테반의 눈치를 보거늘, 이제야 제도에 올라온 여자애가 똥개 보듯 그를 본다고?
한데,
“재밌지 않아요?”
에스테반은 분노하긴커녕 웃었다.
황후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배짱이 두둑한 아이인 건 알았지만, 설마 오늘도 그렇게 여유로울지 몰랐어. 어른들이 떠들든 말든 케이크를 한 입씩 먹는 모습을 봤니?”
“봤죠.”
“그 어린 것이 황족 어른 넷을 상대하면서도 기 한 번 죽지 않더구나. 시건방지다고 해야 할지,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흐음.”
“그 담력은 대단하지만 쉽게 길들이기는 힘들 거야.”
황후는 찻잔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일단 우리 편이 되어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할 게야. 거기에 파에라톤 공작가가 네 든든한 우군이 될 터.”
“그렇겠죠.”
멈칫, 찻잔을 매만지던 황후의 손이 그쳤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 아들을 바라봤다.
“이상하구나, 에스테반.”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에스테반은 남 이야기인 양 굴고 있었다.
집중을 안 하는 것치곤 흥미가 없는 것 같지도 않은데.
황후의 시선을 받은 에스테반이 툭 내뱉었다.
“갖고 싶어요.”
“뭐?”
“물론 파에라톤 공작가도 탐나지만…….”
에스테반이 화병에서 꽃을 하나 꺼냈다. 옅은 분홍빛의 꽃잎이 풍성한 라넌큘러스였다.
빙글빙글 꽃대를 돌리며 그가 미소 지었다.
“그것보단 그 애가 더 갖고 싶어졌어요.”
파사삭.
소년의 손안에서 꽃잎이 무참히 뭉그러졌다.
부서진 꽃잎이 하느작거리며 땅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드는 여자애는 처음이거든요.”
같은 시각.
비밀 통로를 통해 델루만 궁에 온 황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겠다고?”
“예, 어차피 폐하께서도 적절할 때 저를 쓰려고 숨겨놓으신 것 아닙니까.”
“그게 지금이다?”
“지금이어야 합니다. 저는 더 못 기다립니다.”
황제는 협상은 없다는 듯, 단호히 말하는 상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약 반년 전, 이 녀석이 은밀하게 자신을 찾아왔다.
황궁 내궁에는 무수한 결계가 쳐져 있는데 홀로 그걸 뚫고 온 것이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놀랍게도 침입자는 자신이 황제의 아들임을 밝혔다.
그리고 증명까지 해내었다.
그토록 출중한 능력을 지닌 아들의 갑작스러운 등장.
의심이 많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성격인 황제로서는 불안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계속 커지고 있는 황후의 세력을 견제할 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一시드는 말이 통했다.
난생처음 보는 부친에게 효심과 사랑을 이야기했으면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주 깔끔하게 원하는 바와 조건을 이야기했다.
황제는 그 점이 자신과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다.
처음 보는 아들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려 하다니.
그는 아비이기 전에 황제였고, 그리 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더 늦어져봤자 황후의 힘만 더 커지겠지. 마침 새벽 축제 본선이 열릴 테니 그때 모습을 드러내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한데 왜 지금 움직이려고 하는 거지? 너는 좀 더 느긋하게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기다릴 수 없게 되었거든요.”
“흠?”
“제 소중한 것에 자꾸만 더러운 게 묻으려고 하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자로서의 권리를 말하는 것인가?
하긴, 이대로 황후의 세력이 공고해진다면 아무리 시드가 전면에 나서더라도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릴 수 없을 터였다.
황제는 그렇게 납득했다.
“준비할 게 많으니 말씀 끝나셨으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황제는 미련 없이 일어서는 아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가 네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황자로서 전면에 나서려면 그만한一.”
“제 이름은 시드입니다.”
단호한 말이었다.
방을 나서던 시드가 걸음을 멈추고 황제를 뒤돌아봤다.
보랏빛 눈동자가 선명한 빛을 발하며 황제를 똑바로 응시했다.
“폐하께는 제 이름을 지을 권리와 기회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고 기회를 놓친 건 폐하십니다.”
“……나는 너를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후의 계략을 막지도 않으셨죠.”
“…….”
“그걸 묵인하는 대가로 그 당시 더 큰 것을 얻으셨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시드의 얼굴을 사실을 나열하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일이 벌어진 후였다. 금제에 걸려 망가진 황자를 인지 하는 것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했어. 아비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황제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탓하는 게 아닙니다. 굳이 제게 변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변명?
황제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입을 벌렸다.
시드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방을 나섰다.
황제는 얼굴을 감쌌다.
“하하.”
메마른 웃음이 그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감히 황제인 자신에게 변명 운운해서 이리 반응하는 건 아니었다.
“굳이 제게 변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폐하를 탓하지 않아요.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딸아이의 시신을 안고 선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내가 생각났다.
“…….”
다 잊었다고 생각했거늘.
황제는 얼굴을 감싼 손을 내렸다.
자신은 사랑보다 황제 위를 선택했다.
그때 마음 따위 전부 버렸다.
한데 이제 와서 왜…….
그는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 *
파에라톤 공작저, 공작의 집무실 안.
집무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신들은 흐르는 땀방울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천둥처럼 커다랗게 울렸다.
넓은 집무실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모두 주인의 심기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에스테반 황자와 정원을 산책했다…….”
파에라톤 공작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가신들의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었다.
“감히 한낱 황자 주제에 내 동생을 탐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황자조차 ‘한낱’이라 무시당했지만, 이 집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산책해서?”
제온의 날카로운 눈에 보고를 하러 왔던 흑풍(타렌카 후작가 정보 조직명)의 부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주군인 타렌카 후작의 명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루아티샤 아가씨를 지켜보라는 말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접근하는 남자들을 선별하라니?
일정 수준 이상 접근하면 그대로 공격을 가하라는 명까지 있었다.
말이 되는가?
하지만 감히 주군께 의문을 표할 수 없기에 일단 명을 따랐다.
다들 저처럼 의문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一.
‘뭐야? 이 분위기는…….’
아까부터 적응되지 않는다.
타렌카 후작이 답을 채근하듯 바라봐서, 그는 우선 입을 열었다.
“산책 중 아가씨 곁에 다가가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만一.”
콰아아앙!
강력한 폭발음에 목소리가 묻혔다.
“이 ♪♬한 ♬♪가 ♪♬♬♪ 하려고!”
공작성에 이어 공작저까지 부순 익시온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