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화(12/353)
☆ 제12화 ☆
황당한 퀘스트 내용에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 상황도 잊었다.
어서 이 고구마를 뿌리째 뽑아 주십시오!
탄산 가득한 사이다를 날려주십시오!
– 조건: 클라티에에게 사이다 먹이기
– 보상: 2000캐시 뽑기권
– 퀘스트 실패 패널티: 환생자 버프 해제
킁킁, 뭐지?
‘왜 낯선 퀘스트창에서 익숙한 내 전생의 향기가 나는 거지?’
분명 전생에서 이와 비슷한 댓글을 달았던 것 같은데.
퀘스트 내용에 자극을 받은 로판 독자로서의 내 영혼이 외쳤다.
‘그래, 맞아! 고구마는 전부 부숴버려야 해! 사이다! 사이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아무 말 못 하는 걸 보니 너도 이제 깨달았구나.”
퀘스트를 확인하느라 침묵했던 걸 단단히 오해한 클라티에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키지 않아도 와보길 잘했어. 역시 넌 내가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한다니一.”
“야.”
미소 짓던 클라티에의 얼굴이 확 굳었다.
“지, 지금 나 보고 말한 거야?”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어?”
“너, 네가 어떻게……!”
클라티에는 새하얗게 질려서는 세상에 다시 없을 모욕을 들은 것처럼 파르르 떨었다.
“너 머리가 이상해졌니? 내가 누군지 잊었어?”
클라티에가 사나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사정없이 일그러진 얼굴.
‘저런 표정은 처음 봐.’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팔걸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내게 힘을 줘! 사이다 폭격기 여주 언니들!’
“글쎄. 아직 제대로 된 무시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대강 여주 언니들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클라티에가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너 대체 왜 그래? 뭐 잘못 먹었니?”
“잘못 먹었다니.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탈인데.”
클라티에가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동자가 나를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는다.
그녀는 곧 알겠다는 듯 피식, 한쪽 입매를 비틀었다.
“아? 공작가에서 잘 대접해주고 좋은 옷 입혀줬다고 이렇게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거구나?”
옷? 갑자기 옷 얘기가 왜 나와?
“너를 불쌍히 여겨서 우리 고모부가 호의를 베풀어준 거뿐이야. 호의를 권리로 알면 안 돼. 그건 네 것이 아니야.”
훈계하듯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슬슬 감이 왔다.
‘뭐야, 그러니까 내가 자기보다 좋은 옷 입고 있어서 보자마자 시비였던 거야?’
어이가 없다.
“동정받는 것뿐인데 착각하면 안 되지. 이렇게 건방지게 굴면 다들 싫어해.”
“대체 내가 언제 건방지게 굴었는데?”
“그것도 모르다니. 하아, 역시 아빠 말이 맞았어.”
클라티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포옥 쉬었다.
“넌 특별 취급받으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아이랬어. 그래서 일해야지만 음식을 주는 거라고.”
클라티에의 표정은 당당했다.
“그런데 우리 아빠의 교육이 소용없었구나.”
마치 자신이 옳은 말을 하는 것처럼, 모자란 내게 가르침을 내리는 것처럼.
“너 그러다 미움받고 우리 고모부한테 쫓겨난다?”
학대를 교육이라 포장하는데 얼굴에 그늘 한 점 찾아볼 수 없다니.
클라티에는 그 모든 것을 봤다.
내가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도.
겨울에 외투 한 장 없이 바깥으로 쫓겨났던 것도.
내 키보다 배는 큰 조각상을 닦다가 떨어진 것도.
후작에게 맞은 종아리 때문에 똑바로 눕지도 못했던 것도.
전부 다 봤다.
그리고 내게 속삭이곤 했다.
“어머나, 불쌍해라. 내가 남긴 과자라도 주고 싶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대. 어쩔 수 없지. 네 잘못인걸? 힘내렴.”
아주아주 뿌듯한 얼굴로. 착한 자신의 격려에 한껏 도취 되어서.
팔걸이를 붙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네 말대로 내가 공작가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지.”
내 말에 클라티에가 승리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이제一.”
“그런데 너한테 한 말 때문에 쫓겨날 것 같진 않은걸.”
나는 클라티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항상 나를 향해 짓곤 했던, 우월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건방지다고? 감히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지?”
나는 등받이 깊게 앉으며 오만한 얼굴로 클라티에를 불렀다.
“타렌카 후작 영애.”
뭐라 말하려던 클라티에가 멈칫했다.
“감히 파에라톤 공녀인 내게 건방지다고 하는 건가?”
방안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새하얗게 질린 클라티에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크으, 로판 짬바!’
내가 이런 대사를 칠 줄이야.
분함과 억울함이 클라티에의 커다란 눈에 가득가득 차올랐다.
저보다 한참 못한 내가 신분으로 위에 있다는 게 퍽 부당한 모양이다.
“너, 너어…….”
“너라니. 공녀님이라 불러야지. 그 정도 예법도 못 배웠어? 남의 예법을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어떨까.”
클라티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곧 죽어도 내게 ‘공녀님’이라 부르기 싫은가 보다.
신분 가지고 이러는 게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먼저 시작한 건 저쪽인걸.
나 혼자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고 입 다물고 있으면 고구마만 쌓일 뿐이다.
‘이 정도면 퀘스트 완료가 뜰 법한데.’
나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알림창이 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클라티에를 여기서 내보내기라도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티에를 보니 곧장 눈이 마주쳤다.
날 노려보던 그녀가 울컥한 얼굴로 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너한테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줬는데 넌 정말 고마운 줄도 모르는구나? 원래 그런 애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은혜?”
“그래! 버림받은 널 우리 아빠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 펴줬잖아!”
기가 막혔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하녀들에게도 안 주는 딱딱해진 빵을 버리지 않고 내게 줬지. 상하기 직전인 남은 고기를 처분하듯 주기도 했고. 난 그것조차 감사하며 먹어야 했어. 그마저도 꼬박꼬박 주지 않았으니까.”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자지도 못했다.
항상 눈치를 보며 구석에서 오그라든 채 살아야 했다.
그게 어떻게 보살핌인가?
“그건 학대였어.”
“학대라니! 감히 우리 가족을 모욕하는 거야? 우리가 아니었으면 넌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거야! 아무리 못 배웠어도 그 정도는一.”
“네 말이 맞아.”
“뭐‘?”
“난 못 배웠다고.”
클라티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이어 말했다.
“네 아비는 파에라톤 공작가로부터 막대한 양육비를 받아먹었으면서 단 한 번도 날 ‘양육’하지 않았으니까.”
“……양육비?”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지 못했는데 당연히 교육 같은 건 받지 못했지.”
클라티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러니 친애하는 내 사촌 언니.”
나는 한껏 동요한 클라티에를 보며 생긋 웃었다.
“너는 나보다 배운 만큼 조금 더 나은 면모를 보여야 하지 않겠어?”
“나는 항상 너보다 나았어! 그래서 넌 항상 미움받고 난 항상 사랑받았다고!”
“글쎄. 나보다 낫다면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겠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할 줄 알아야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은 딱히 상관없어.”
클라티에가 “이익!”하고 성질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빽 소리 지른 그녀가 내게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공작가에서 돈을 줬다고? 그럴 리 없잖아! 넌 버림받은 애인데! 너네 엄마가 바람피워서 낳은 사생아라고!”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클라티에는 흠칫했지만 질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타렌카 후작가의 이름을 걸고?”
“당연하지!”
“그래? 그럼 물어보자.”
설령 내가 정말로 사생아라 해도 클라티에가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타렌카 후작 영애가 파에라톤 공녀를 모욕한 거니까.
“무, 물어보다니, 무슨…….”
“책임질 수 있다며.”
나는 설렁줄을 붙잡았다.
지금 방안엔 클라티에와 나, 단둘뿐이었다.
클라티에의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하녀 언니들에게 둘만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클라티에 성격상 어떻게 나올지 뻔한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자, 잠깐!”
클라티에가 기겁해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한껏 당겨진 줄을 보고 클까 봐 티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녀의 시선이 문과 나를 오락가락하며 불안하게 흔들렸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이윽고 문이 열리고 내 하녀들이 들어왔다.
“응, 타렌카 후작가에서 파에라톤 공작가의 혈통에 관해一.”
“흐, 흐아아앙!”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놀라서 클라티에를 보니 그녀는 흐끕, 끕 하며 억지울음을 모으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새빨간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아가씨!”
내 하녀들 뒤에 있던 클라티에의 하녀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 속에 있는 리엔의 모습을 보고 바짝 움츠러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흐, 흐윽, 끅, 리에엔…….”
클라티에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는 데 성공했다.
“누가 우리 착한 아가씨를 이렇게 속상하게 했어요! 대체 누가!”
리엔이 클라티에를 어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차마 리엔을 마주 보지 못했다.
“흑, 나는 친절하게 조언해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히끅, 흡, 나는 도와주려 했던 건데……!”
클라티에는 가련한 새처럼 몸을 떨었다.
도무지 아까 전까지 내게 막 말을 일삼던 애로는 보이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클라티에가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동정심을 사려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본인이 억울하다며 울고 있었다.
“나보고 막 건방지다구, 흑. 자기한테 고개 숙이라구우……. 우리가 학대했다구 했어!”
클라티에가 리엔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왜, 왜 그런 나쁜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미웠어?”
흠뻑 젖은 발간 눈가가 참으로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네가 걱정되어서, 널 위해서 온 건데.”
리엔이 다른 하녀에게 클라티에를 맡기고 벌떡 일어났다.
쿵쿵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리엔의 모습에 나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바보야, 이제 겁먹을 필요 없어! 쟤는 날 때리지 못해!’
속으로 나 자신에게 외쳤지만, 굳어버린 몸은 손 하나 까닭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리엔에게 맞았던 기억이 눈 앞을 가렸다.
“우리 아가씨가 얼마나 착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겁니까.”
리엔은 일부러 바짝 다가와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위압감을 느껴서 더 겁을 먹도록.
‘알고 있어. 하나도 안 무서워.’
나는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이제 괜찮아. 여기는 안 전해. 그때와는 달라.’
하지만 어린 몸은 덜덜 떨기만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때, 부드러운 손이 나를 뒤로 끌었다. 낸시였다.
그리고 내 앞에 생긴 틈으로 안나가 자리 잡았다. 마치 리엔으로부터 나를 가려주듯.
“공녀님을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오만불손하군.”
리엔은 하대하는 안나에게 빈정이 상한 듯했지만, 따지진 않았다.
“……공녀님께서 하도 얼토당토않은 말을 해서 여쭌 것뿐입니다. 어린아이를 그렇게 싸고돌기만 해서는 제대로 크지 못합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가르쳐야지요.”
“우리 아가씨께서 대체 무얼 잘못했지? 오히려 후작 영애가 우리 아가씨께 폐를 끼친 것 아닌가?”
“그럴 리가요! 우리 아가씨께 선 어찌나 사촌 동생을 위하시는지 오늘 선물까지 가져왔습니다. 그런 분이 시비를 걸었겠습니까?”
“맞아요!”
클라티에의 하녀가 상자를 내밀며 동조했다.
돌아가던 상황을 보던 클라티에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나는 널 생각해서, 히끅, 선물까지 챙겨왔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 거야?”
“……선물이라고?”
참 기묘한 기분이었다.
클라티에는 내게 먹다 남은 쿠키조차 준 적 없다.
그런데 선물이라니.
기가 막힌 것을 넘어 속이 울렁거렸다.
내 물음에 상자를 들고 있던 하녀가 픽, 웃으며 뚜껑을 열었다.
아마 내가 선물에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 우리 아가씨께서 신경 써서 고른 드레스입니다!”
하녀의 손길에 따라 초록빛 드레스가 허공에서 물결쳤다.
“이 옷 갖고 싶어 했잖아.”
클라티에가 내게 말했다.
“넌 원래 이런 옷 못 입어봤으니까.”
아직 울음기가 남아 있는 얼굴은 아주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드레스 몰래 훔쳐보는 거 봤어.”
클라티에가 드레스를 받아들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화해하자. 네가 했던 심한 말은 언니인 내가 용서해줄게.”
내 손에 보드라운 천이 닿았다.
아마 클라티에에게는 작아서 입지 못할 드레스가 내 손에 감겼다.
“고맙지?”
클라티에가 내게 물었다. 적선하듯 헌 드레스를 주며.
그 순간이었다.
“내 딸의 옷을 훔쳐 입었던 주제에 말이 많군.”
차가운 목소리가 낮게 방안을 갈랐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섬뜩할 정도로 위험한 음성이었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했다.
문가에 파에라톤 공작이 비뚜름히 기대어 서 있었다.
아주 나른하고 난폭한 미소를 지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