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3화(123/353)
☆ 제123화 ☆
“……뭐?”
에첸의 얼굴은 뭐라 콕 집어서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야 그럴 것이다.
갑자기 할미라고 하면 누구나 그렇겠지.
무엇보다 나는 아즐의 도움을 받아 폴리모프 마법을 완벽히 숨기고 있지 않았나.
직접 만나 거래해본 결과, 에첸은 신의가 있는 상대였다.
첫 만남 이후부터 내 정체를 캐내려 하지도 않고.
그래서 나는 부담 없이 폴리모프 사실을 밝혔다.
“너도 네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듯이 사실은 나도 내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어.”
“……그랬군.”
“진짜 나는 호호 할매야.”
“호호 할매?”
“응, 머리카락도 하얗게 다 셌어.”
멍하니 나를 보던 에첸이 고개를 떨궜다.
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설마…….
‘우는 거야?’
그렇게나 나를 좋아했어?!
조금 마음이 아팠다.
에첸은 이 모습을 내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있었을 테니 얼마나 충격이 크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이 호호 할매라니, 나 같아도 상심하겠다.
넓은 에첸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리는 것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일수록 약해지지 말고 강하게 끊어내야 해!’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열 살 응애와 이십 대 남성.
에첸 역시 폴리모프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중이니 본 나이가 다를 수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다.
이 세계에서 폴리모프란 마법은 그렇게까지 만능이 아니었다.
보통은 눈 색과 머리카락 색을 바꾸고 골격을 살짝 변형하는 것 정도에서 그쳤다.
나처럼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드래곤 정도나 되어야 가능했다.
‘내가 차고 있는 팔찌가 칸도르 백작가의 가보인 이유도 그래서지.’
드래곤이 직접 만든 고대의 마도구였으니까.
여기에 일반 마나석 대신 검은 황금을 물려서 더더욱 정교하게 사용 가능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에첸의 나이를 넓게 잡아도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일 터.
‘나랑은 범죄야.’
그렇다면 감정의 싹까지 완전히 잘라버리는 게 에첸을 위한 일일 터.
“나 완전 꼬부랑 할매야. 이빨도 다 빠졌어.”
내 말에 에첸의 어깨가 더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한참 후에 나온 그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역시 울었구나.’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에첸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가볼게.”
아까 상담 내용에 대한 답을 해달라며 뭉개고 있을 정도로 나는 눈치 없지 않다.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는 침중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에체시스 용병단의 아지트를 나섰다.
* * *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수르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때까지도 고개 숙인 채 가만히 있던 에첸이 얼굴을 들었다.
수르아의 생각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울음기 한 점 없었다.
대신.
“푸하하……!”
에첸은 참았던 웃음 터트리며 어깨를 떨었다.
“마차가 떠나던데 이야기는 잘 끝냈…… 뭐, 뭐야?!”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오던 바렌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산적같이 호탕한 그는 그 용모에 걸맞게 위풍당당하며 용맹했다.
어떤 몬스터가 상대여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던 그가 커다란 몸을 구기며 식겁했다.
저 남자가 저렇게 웃다니.
무서워…….
바렌은 그대로 굳은 채 어쩔 줄을 몰랐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안수르 상단의 상단주인 수르아와 만날 때마다 단장의 기분이 은근슬쩍 좋아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저렇게 웃는다고?
‘죽을 때가 됐나?’
그러고 보니 최근 자주 용병단을 비웠다.
원래부터가 개인 플레이를 많이 하던 사람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건만.
‘그게 신변 정리를 위한 거였나?!’
한 번 크게 웃었다고 죽을 사람 취급까지 가는 건 너무 가긴 했지만, 그동안 에첸이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전혀 오버가 아니었다.
감정이 메마르다 못해 버석거리는 남자다.
“무, 무슨 일 있소?”
말을 걸자 에첸의 웃음이 뚝 그쳤다.
언제 웃었냐는 듯,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알 거 없다.”
에첸은 서늘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알려주겠는가.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자신 혼자만 알고 싶은 일이었다.
에첸의 반응에 바렌은 더더욱 불안해졌다.
“거, 건강이 안 좋은 건 아니오?”
에첸의 시선이 바렌을 향했다.
바렌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내게만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시오. 나 바렌이오.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녀서 단장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거요.”
에첸은 말없이 바렌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역시 안 되는가.’
바렌은 에첸이 용병단을 만들던 초창기부터 함께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에첸은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제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만나고 싶던 할머님을 만나게 되어서. 그뿐이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에첸이 낮게 중얼거렸다.
“……?”
바렌이 고개를 들었지만 에첸은 이미 떠난 후였다.
웬 할머님?
저 인간이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나?
‘역시 죽을 때가…….’
그렇게 오해는 깊어만 갔다.
아지트 밖으로 나온 에첸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서 자신의 거처로 이동했다.
랭킹 1위인 용병단 단장의 거처라기엔 지나치게 텅 빈 곳이었다.
몸을 누일 침대와 작은 탁자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살풍경 한 곳.
하지만 탁자 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화병이 놓여 있었다.
화병에는 어린아이가 만든 것처럼 엉성한 꽃다발이 꽂혀 있었다.
에첸은 갓 꺾어온 것처럼 싱싱한 꽃잎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 아이가 이 꽃다발을 들고 왔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제 앞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모습도.
에첸은 이를 악물고 감정을 견뎠다.
혹시라도 꽃잎이 상할까, 손에는 힘 하나 주지 않았다.
‘괜찮아.’
조금 전에도 보지 않았는가.
지금 그 애는 아주 건강하다.
여전히 엉뚱하고, 여전히 생각이 많고, 여전히 다정하고, 여전히 눈치가 없다.
종알종알 떠들던 그 애의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감정에 서투른 남자가 좋다는 건가?”
가장 중요한 대답을 못 들었다.
에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 *
“하아앙! 우리 아가씨 진짜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멋지고 혼자 다 하시네요!”
낸시가 내 뺨에 얼굴을 부비부비하며 외쳤다.
“고마워…….”
언니들도, 유트라도 예술혼을 불태워서 나를 꾸며주었지만, 나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오늘은 바로 새벽 축제 본선 진출자들을 소개하는 파티가 열리는 날.
처음으로 우리 가문 외의 파티에 참석하는데, 심지어 전국적인 관심마저 받고 있다.
무엇보다一.
‘아빠랑 오빠들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그럴 만도 했다.
새벽 축제 본선 진출자와 인척 관계인 사람은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보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었지만, 황후조차 참석하지 못하니 내겐 나쁘지 않았다.
물론 황제만큼은 예외였다.
이 조항은 올해 처음 생겼다고 한다.
‘왠지 우리 가족이 깽판칠까 봐 걱정되어서 조건에 넣은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번에 클라티에 건으로 우리 가족들이 왔을 때 오죽 강하게 나갔어야지.
이번 파티에 우리 가족들이 참석하게 뒀다간 또 무슨 사달이 나려구.
정상적으로 경쟁하려고 하는 사람들조차 쫄아서 말도 못 붙일 수 있다.
로비로 내려가자 아빠랑 오빠들,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나와 계셨다.
‘……근데 할아버지는 언제 집으로 돌아가실 거지?’
아무리 그래도 후작인데 여기에만 있어도 되는 건가?
고개를 돌리다가 나는 흠칫했다.
아빠가 전에 없이 딱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단순히 파티에 참석할 수 없어서 기분 나쁜 건 아닌 듯했다.
‘어제 상심한 아빠에게 뽀뽀해드릴 때랑은 분위기가 다른걸.’
찔리는 게 있던 지라 나는 살살 아빠의 눈치를 봤다.
내가 시드와 파트너가 되면서 파에라톤 공작가는 어쩔 수 없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나는 가문을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만 는 것일 수도 있어.’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거라면 어떤 세력과 연을 만들어도 좋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좀 더 의논해볼걸.
그때, 아빠가 굳은 입술을 열었다.
“미치겠군. 왜, 내 딸은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거지? 이럴 필요가 있나?”
……그거 때문에 이렇게 무게 잡았던 거였어요?!
나야말로 미치겠다.
* * *
파트너인 시드가 날 데리러 오자, 가족들은 한바탕 난리를 쳤다.
나는 가족들을 겨우겨우 달래고, 나는 시드와 함께 딜루쿨룸 홀로 향했다.
평소와 다르게 딜루쿨룸 홀 안에는 어른들이 가득했다.
귀부인들과 신사들, 기사와 이제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영애와 영식들까지.
또래들과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황궁 연회.
“연습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2층에서 아래의 메인홀을 엿보고 있는데 체시아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내려가서 인사한 후, 한 커플씩 좌측, 우측 번갈아 가며 서고.”
당부의 말에 참가자들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체시아 백작이 나와 시드를 향했다.
“두 분께서는 맨 마지막 순서입니다. 그 상태로 첫 춤을 여시는 것, 잊지 않으셨죠?”
“네, 백작님.”
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부풀렸다.
새벽 축제에서 남녀 통틀어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내가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이 말씀!
우리 아빠가 이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오늘 시드가 조금 이상하다.
묘하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선을 긋는다고 해야 할까.
싸늘한 건 아닌데 저번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담백하다.
주인님, 주인님하면서 사람 놀라게 하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힐끔 올려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저번 같았으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을 텐데, 지금 그는 곧바로 내게서 시선을 뗐다.
‘뭐지?’
시드는 원래도 파악하기 힘든 아이였다.
하지만 또 태도가 달라지니 더더욱 알기 힘들어졌다.
‘……설마 나랑 파트너 하는 데 성공해서 이렇게 입 싹 닦는 건가?’
이번 파트너 건으로 파에라톤은 시드리한 황자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거나 다름없어졌다.
‘얻을 게 사라졌으니 이제 됐다는 거야?’
황당했다.
‘……아니, 좋은 일이지.’
그를 노예로 부리고 폭언까지 했던 나로서는 황자가 된 시드와 깊게 얽혀봤자 좋을 게 없었다.
파에라톤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서든 뭐든 그가 거리를 둔다면 나 역시 신경을 끄면 된다.
“새벽 축제 본선 진출자들이 입장하겠습니다! 귀빈 여러분들께서는 박수로 축하해주십시오!”
호명관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2층의 문이 열렸다.
나는 몸가짐을 바로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
“어?”
시드의 말에 나는 뜨끔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그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찔렸다.
“흐트러졌어.”
시드가 내 머리 장식을 가리켰다.
너무 강하게 고정시키면 혹시 내가 아파할까 봐 하녀 언니들은 항상 느슨하게 꽂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머리 장식을 슬쩍 매만졌다.
“이제 괜찮아?”
“아니.”
고개를 저은 시드가 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오늘 계속 묘하게 떨어져 있던 시드가 한순간에 가까워졌다.
정복을 차려입은 그는 어린애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멋있었다.
“자, 이제 됐어.”
다시 한 걸음, 시드가 멀어졌다.
“고, 고마워.”
시드는 미소 짓지 않았다.
다만 무심한 눈으로 나를 슥 바라보더니 말했다.
“예쁘네.”
* * *
‘신경 쓰여!’
그것도 엄청 신경 쓰여!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신경 끄면 되긴 무슨!
계단 내려가서 인사하는 거 엄청 기대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웃고 박수치면서 뭐라 뭐라 하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시드가 이끄는 대로 홀 중앙으로 가서 그와 인사하고 오늘 파티의 첫 춤을 열었다.
시드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맞잡은 손은 장갑에 감싸여 있는데도 어색했다.
정신이 없었다.
꿍, 꿍 몇 번이나 시드의 발을 밟았는지도 모르겠다.
‘하, 오빠들이랑 아빠랑 돌아가면서 춤 연습했는데 이게 뭐람.’
특훈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춤추면 안 되겠어.”
“어?”
나는 조금 놀라서 시드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뜻이지?
“상대 남자의 발등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뭐야.
나는 쀼루퉁하게 입을 열었다.
“나 원래는 안 밟아.”
“그렇겠지.”
“진짜야. 춤 잘 춰.”
“그래, 누가 뭐래?”
에잇!
꿍!
나는 시드의 발을 밟았다.
하지만 아무런 타격도 느껴지지 않는 듯 시드는 여유롭게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아주 잘 추는군.”
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