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4화(124/353)
☆ 제124화 ☆
그 순간, 시드의 손이 내 허리를 꽉 잡았다.
어?
내 몸이 번쩍 들렸다.
크게 벌어진 내 눈에 시드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면서 씩 웃었다.
사뭇 짓궂은 웃음이었다.
“이러면 못 밟지.”
어…….
얘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짝짝짝짝一!
박수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음악이 끝난 것이다.
“멋진 피날레였네요.”
“참 귀여운 꼬마 커플이에요. 사랑스러워라.”
“어머나, 손 꼭 잡고 종종 걷는 것 좀 봐요. 확실히 어린아이가 있으니 더 지켜보는 맛이 있네요.”
“열 살이 본선에 진출한 경우는 새벽 축제 역사상 처음이죠?”
“그런데도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니……. 파에라톤은 파에라톤인가 봐요.”
댄스홀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장 어리면서도 예선 성적이 가장 좋은 참가자.
거기다 부정행위의 가해자로 억울하게 지목되었다가 스스로 누명을 벗겨내기까지.
나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사람들은 물론 신문에서까지 내가 에스테반 황자와 파트너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황자가 나타나고, 내가 그 황자랑 파트너가 되니 이목이 우리에게만 쏠리는 건 당연했다.
“루, 루아티샤 공녀!”
그때 커다랗고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도도도 달려온 포셰트 영애가 흥분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그 아이는 한참 숨만 색색거리며 날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다, 다음엔 내가 더 멋진 거 보여줄 테니까! 각오해!”
오?
조금 귀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냥 바라보고 있자, 포셰트 영애가 어물어물 손가락을 내렸다.
“억울하단 건 아니야! 이번엔 네가 잘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분한 듯 고개를 숙였던 포세트 영애가 다시 얼굴을 들고 빽 소리 질렀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내가 너보다 백배, 천배, 만배 더 멋지니까!”
포셰트 영애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주먹으로 거칠게 털더니 그대로 달려갔다.
돌돌 말린 붉은 머리카락이 촐랑촐랑 흔들렸다.
“미안하다. 하도 따라오겠다고 졸라서 뭔가 했더니 이럴 줄이야.”
포셰트 후작이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후작님이 사과하실 일도 아닌걸요.”
“오랜만이구나, 공녀. 많이 컸군.”
“그때보다 키만 훌쩍 큰 게 아니랍니다? 어때요, 제법 의젓하죠?”
내가 예를 갖춰 무릎을 굽히자 포셰트 후작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커도 공녀는 공녀구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니 참 반가워.”
“저보다 네 살 어린 후작님의 손자분도 무럭무럭 잘 자랐나요?”
후작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어떻게 잊겠어요. 무려 한 살 응애를 신랑감으로 어떠냐면서 들이미셨는데.”
“내 손자가 조금만 더 나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연하는 싫으냐?”
“몇 살인데요?”
“너보다 네 살 어리단다.”
“…….”
“크면 네 살 차이 별거 아니란다.
“한 살 응애를 남편감으로 들이미는 할부지가 있는 남자애는 무조건 별로야.”
“이것 참, 내가 내 손자의 앞길을 막아버렸구나. 그래도 손녀딸은 딱 너랑 동갑이란다. 나중에 만나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흥, 봐서요.”
“허허, 그때는 내가 조금 주책이었지.”
포셰트 후작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지금은 어떠냐. 내 손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애가 똘똘하고 잘생긴 것이一.”
포셰트 후작이 말을 하다 말고 뚝 멈췄다.
그의 시선이 나를 빗겨가 있었다.
뭐지?
옆을 쳐다봤지만,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시드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별로 이 대화에 관심 없는 듯 파티장 내부를 구경 중이었다.
“내가 또 주책을 부렸구나. 파트너가 있는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례지.”
턱을 쓸어내린 포셰트 후작이 가늘게 뜬 눈을 빛냈다.
“어디서 사자 새끼가 나타났구나.”
“사자요?”
“그래, 숲의 왕은 사자여야 하는 법이지. 여우 새끼가 아니라.”
흠, 왜인지 몰라도 시드가 포셰트 후작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포셰트 후작은 먼저 시드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붙였다.
파에라톤 공녀인 나에 이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포셰트 후작까지.
눈치를 보던 다른 귀족들이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드리한 황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궁금했을 터였다.
물론 그걸 아니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웃기는 일이군. 황자로 태어나 황자로 길러지고 황자로 교육받지 못한 애송이가 황자 대접을 받으려 하니.”
에스테반의 싸늘한 목소리에 주변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유일한 황제의 자식으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져온 사람은 에스테반이었다.
그에 반해 시드는 급작스럽게 황제가 인지해 거의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황.
황제가 지금 시드의 편을 들어 주고 있다는 건 알지만,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시드를 정말 후계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저 황후를 견제하는 말로 쓰는 건지 의중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
“글쎄, 황자로 길러지고 교육받은 게 그 수준이라면 딱히 필요 없는 듯한데.”
“뭐?”
설마 이런 말이 돌아올 줄 몰랐는지 에스테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한 태에서 나온 것이 감히! 그 언사를 보니 황궁 밖에서 나뒹구는 동안 어디서 더럽게 굴러먹었는지 뻔하구나!”
오만한 얼굴로 외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자연히 시드를 처음 봤던 순간이 떠올랐다.
텅 비었던 눈동자.
그 어린 나이에 죽기 위해서 우리 집에 찾아왔다.
새빨갛게 꿈틀거리던 금제에 고통스러워하던 모습까지 떠오르자 나는 진짜로 열이 받았다.
“황자 전하.”
“파에라톤 공녀. 공녀도 어떤 더러운 게 묻었는지 모르는 놈은 내버려 두고 고귀한 자에 걸맞게 一.”
“전하께서는 지금 민가의 백성들을 천하고,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더러운 것이라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나는 충격받은 얼굴을 꾸며냈다.
“세상에……. 저는 잘 모르지만, 아빠가 그러셨어요. 황제 폐하께서는 어찌하면 제국의 백성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까 항시 고민하신다고.”
솔직히 우리 아빠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 한 번도 없다.
내가 보기에도 황제는 딱히 백성에게 관심 없었다.
황제가 관심 있는 건 황권을 강화하는 거지만 알게 뭔가.
황권을 강화하려면 병력과 백성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니까 신경 쓰긴 하겠지.
힐끔 곁눈질하자 멀리서 아닌 척 이쪽을 주목하고 있던 황제가 은근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백성들을 위해 힘쓴다는 소리를 싫어하는 위정자는 없었다.
“저는 황자 전하께서 당연히 폐하의 뜻을 받아들이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년 황궁에서 자랐으면서도 황제의 뜻에 반하네?
시드한테 뭐라 할 처지 아니지 않아?
내 말의 속뜻을 읽은 에스테반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너…….”
“제국의 모든 백성들을 아우르고 품으셔야 할 황자 전하께서 민가의 삶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저는 너무 충격이에요. 아니면, 제가 배운 게 잘못된 걸까요?”
속상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자 마음 여린 귀부인들이 아니라며 내게 고개를 저었다.
에스테반은 내게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분위기가 이렇게 된 이상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옛말에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곳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왕을 갈아 넣어 행정 시스템을 유지하던 조선의 기조였으니까.
서양 쪽 중세 시대에는 딱히 이런 풍토가 없었다.
‘하지만 여긴 K-로판을 참고해서 만든 세계!’
믿는다!
“황제 폐하께서 가끔 잠행을 나가시는 이유도 그 민심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
“감히 여쭙겠습니다. 백성의 곁에서 살아온 시드리한 전하의 행적이 진정 더러운 삶인가요?”
내 말에 침묵이 찾아왔다.
모든 귀족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수적일수록 결벽적인 성향이 있었다.
평민을 배척하는 마음.
그런 귀족들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른다’는 에스테반의 말에 은연중 동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편견 없는 눈으로 속상해하면서 이렇게 말하자 수치를 아는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내 언사는 꽤 정치적인 결과를 냈지만, 그럴 계산으로 나선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가자, 시드.”
나는 시드의 손을 꼭 잡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에스테반의 파트너인 미첼로인 영애와 엇갈리며 시선이 잠시 마주쳤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괜찮아?”
테라스로 나와 단둘만 되자마자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에게 물었다.
화나고 속상한 얼굴.
시드리한은 이 아이가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여간 진짜. 이래서 오냐오냐하며 자란 놈은 안 된다니까?”
시드리한이 빤히 쳐다보자 지레 찔린 루아티샤가 중얼거렸다.
“뭐, 나도 좀 오냐오냐 자라긴 했지만…….”
그냥 오냐오냐 수준이 아니었다.
‘흐엥! 루루 제국 갖구 시퍼!’
一라고 하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정도의 오냐오냐였다.
루아티샤는 아까부터 말없이 가만히만 있는 시드리한을 속 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툭 내 뱉었다.
“기죽지 마.”
이 할미가 어떻게 키웠는데!
“저렇게 남의 약점 가지고 조롱하는 놈, 나는 딱 질색이야. 네가 신경 쓸 필요 하나 없어!”
씩씩거리며 에스테반을 욕하던 루아티샤가 아차, 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앗, 아니, 그게 네 약점이라는 소리는 아냐. 황궁 밖에서 큰 게 무슨 약점이라고. 그리고 네가 겪은 일은 네 잘못도 아니잖아. 이건 그냥 정치적으로…….”
“알아.”
시드리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맺혔다.
“다 알고 있어.”
처음 보는 표정.
횡설수설하던 루아티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쏴아아아一.
불어온 산들바람이 파릇파릇한 나뭇가지를 흩트리곤 시드리한의 머리칼을 스쳤다.
결 좋은 금발이 한차례 물결친다.
문득, 루아티샤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드리한의 눈빛이 티 없이 맑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가락 끝이 간질거렸다.
“시드, 너 나한테 해코지할 생각은 없는 거지?”
시드리한은 대답 대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루아티샤는 그 눈빛이 누군가와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생긴 건 전혀 다른데.’
“그럼 됐어.”
루아티샤가 씩 웃었다.
“전 주인으로서, 그리고 나 자신과 우리 가문을 위해서 너한테 협력할게.”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
시드리한은 조금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내밀어진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아까 같은 말 들었을 때, 가만히 있지 마. 절대. 알았지?”
“알았어.”
아무래도 루아티샤는 자신이 상처받아서 말이 없다고 오해하는 듯했다.
전혀 아니었다.
그 어떤 것도 시드리한을 상처 낼 순 없었다.
이 작은 꼬마 아가씨 외에는.
황궁에서 곱게 자란 에스테반 따위, 아무리 귓가에서 앵앵거려봤자 한 입 거리도 되지 않는 상대다.
‘오히려 좋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루아티샤가 발끈해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게 꼭 위기에 처한 왕자를 구해주는 멋진 공주님 같았다.
“휴, 걱정이다, 정말. 좀 더 강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혼자 종알종알거리는 루아티샤를 보며 시드리한은 미소 지었다.
눈치 없는 주인님과 달리 자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조차도 알지 못하는 게 있었다.
바로 루아티샤와 함께 있을 때, 그가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다는 것.
* * *
시드리한 황자, 등장과 함께 화려한 업적
이변은 없다, 파에라톤 공녀의 금빛 질주
사랑스러운 꼬마 커플 탄생?
파에타론 공작가, 절대 아니라고 못 박아
새벽 축제에서 최고의 화제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을 말할 것이다.
오프닝 파티부터 시작해서 다과회는 물론 살롱까지.
루아티샤는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살롱을 직접 주최하기까지 했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바로 점수가 깎일 거라는 우려와 달리 루아티샤는 완벽하게 살롱을 진행했다.
참관하러 온 귀부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타고났다는 게 이런 건가요?”
“살롱에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지 않나요? 어떻게 이렇지?”
“공작부인이 안 계신데도 어쩜…….”
“하지만 상황이 묘하네요. 황후 전하께서 사람들을 다시 규합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위기감을 느끼신 거겠죠.”
“차라리 에스테반 황자님과 파트너였다면 공녀도 일이 수월했을 텐데…….”
“시드리한 황자님이 출중한 분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감명받고 있지만,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기반이라는 게 있잖아요.”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귀부인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루아티샤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루아티샤는 그런 귀부인들을 보고서도 내색 없이 걸음을 옮겼다.
‘흐음, 다들 에스테반과 시드 사이에서 저울질 중이구나.’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보여줘 봤자 다면적인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는 이상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무게추를 얹어 줘야지.’
“귀부인들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제 살롱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흥미로운 살롱이었단다. 새벽 축제 참가자들에 한정된 토의가 아니었다면 나까지의 견을 낼 뻔했어.”
“와아, 셰루인 부인의 칭찬을 받다니, 너무 영광이에요! 기뻐라……!”
루아티샤가 통통한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환히 웃었다.
“어머? 나를 아니?”
“그럼요. 지난번 경제지에 실린 부인의 논문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아아, 옛 튤립 파동에 대한 현대적 해석 말이구나.”
루아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아루소 남작께서 쓰신 논문 아닌가요? 저번 달에 부인께서 〈에코노미아〉에 게재한 〈검은 황금의 무역〉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자원의 독점 점유에 관한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또랑또랑한 대답에 셰루인 부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