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5화(125/353)
☆ 제125화 ☆
셰루인 부인은 유명한 학자였고, 환심을 사려는 사람들이 논문을 언급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대강 아는 척을 해오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애라고 해도, 아니, 어린애이기에 더더욱 그런 식의 거짓된 접근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해서 시험해 본 것인데 루아티샤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답했다.
“……아루소 남작은 그다지 유명한 학자가 아닌데 그의 논문까지 잘 알고 있구나.”
“유명하고 유명하지 않고는 학술적 깊이와 아무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그 논문의 내용이겠죠.”
“옳은 말이야. 아루소 남작이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서도 페리샤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 받는 게 참으로 안타까워.”
주변에 있는 귀부인들은 물론, 참관하러 왔던 다른 귀족들도 아주 흥미진진한 눈으로 루아티샤와 셰루인 부인의 대담을 지켜봤다.
셰루인 부인이 저런 식으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 본다.
셰루인 부인은 그녀대로 감탄했다.
‘정말 똘똘한 아이인데? 거기다가 진솔하기까지.’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검은 황금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본질을 꿰뚫듯 아주 날카로웠다.
어린애가 벌써 못된 것부터 배워서 아는 척하며 거짓말부터 한다고 의심했는데, 자신의 착각이었다.
셰루인 부인은 다소 까다롭긴 해도 천성은 속이 깊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수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이 그녀의 벽을 두껍게 만들고 가시를 세우게 했을 뿐이다.
“파에라톤 공녀, 내가 미안하구나. 순수하게 다가오는 너를 시험했어.”
루아티샤는 다소 놀랐다.
설마 이렇게 솔직하게 시험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사과할 줄은 몰랐다.
‘셰루인 부인은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본인도 솔직하구나.’
단순히 유능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험하신 건 조금 속상했지만 그래도 사과하셨으니 괜찮아요! 사과한다고 반드시 용서할 필요는 없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대하라고 배웠거든요.”
“진심으로 대해줘서 고맙구나.”
셰루인 부인이 미소 지었다.
시험한 줄 몰랐다거나 무작정 괜찮다고 하지 않고, 속상했다며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어른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명예를 아는 자로서 말로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할 수 없지. 공녀에게 선물 하나를 하마.”
“와아, 정말요?!”
루아티샤가 두 손을 번쩍 올리며 기뻐했다.
“공녀가 원하는 것을 주도록 하지. 뭐가 좋니?”
“음,으음……. 저 파블로바가 먹고 싶어요!”
난데없이 튀어나온 디저트에 귀부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하하, 공녀도 아직 애기인가 봅니다.”
“확실히 다른 파에라톤과는 다르네요. 사랑스러워라.”
“다른 것을 요구해도 된단다.”
셰루인 부인 정도 되는 사람이 무언가를 주겠다고 할 때엔 더 큰 걸 생각하는 법이다.
“저는 진짜로 셰루인 가의 파블로바가 먹고 싶은걸요. 겉은 파삭파삭하면서 안은 쫀득쫀득 하다구 하던데……. 그러면서도 솜사탕을 먹는 것처럼 사르르 녹는다고 해서 계속 궁금했어요.”
셰루인 가의 파블로바는 유명하긴 했다.
머랭은 특성상 설탕을 많이 넣어서 거품의 안정도를 높이는데, 셰루인 가의 파티시에는 무슨 수를 쓰는 건지 설탕을 적게 쓰면서도 안정적이고 식감도 좋은 머랭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든 파블로바는 계속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마법같은 디저트가 되는 것이다.
파티시에는 그 파블로바를 사신 접대 만찬에 낸 공으로 훈장까지 받았다.
‘단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사족을 못 쓸 만도 하지.’
하지만 미안함을 표하겠다고 했는데 파블로바만 달랑 보낼 순 없었다.
이건 체면과 명예의 문제였다.
“그럼 언제 공녀를 초대하마. 맛있는 파블로바를 대접하도록 하지.”
말을 내뱉고 셰루인 부인은 멈칫했다.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렸나?’
셰루인 부인의 인맥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와아! 정말 기대돼요!”
하지만 토실토실한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폴짝폴짝 뛰는 아이를 보니 그런 의심은 싹 가셨다.
‘똘똘하면서도 이토록 순수한 아이는 처음 보는데……. 가르치는 보람이 있겠어. 다른 이들한테도 소개해주고 싶군.’
셰루인 부인은 루아티샤를 초대하는 날에 다른 사람들까지 부를 계획을 짰다.
[〈사교계 명사, 셰루인 부인〉이 독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이는 곧 제국 내 영향력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좋아.’
순수한 아이, 루아티샤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을 보는 데 까다로운 셰루인 부인의 인맥은 황금 인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운영하는 독서 클럽인 〈메티스〉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프라이빗 모임.
‘〈메티스〉의 의견은 황제라도 무시할 수 없지.’
목적을 달성한 루아티샤는 귀부인들에게 인사하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인사하는 모습도 어쩜 저리 귀엽죠?”
“통통한 팔다리 좀 봐요. 어휴, 우리 애도 빨리 결혼시켜야겠다. 저런 손주 보게.”
주변 귀부인들의 수다를 들으며 셰루인 부인은 품에서 조그마한 판을 꺼냈다.
점수를 체크하는 판이었다.
살롱의 참관자들은 전부 심사 위원들이었다.
그녀는 루아티샤의 이름 옆에 100점과 20점을 입력했다.
도합 120점!
100점이 만점이었으나 심사위원의 재량으로 총 20점의 가산점을 줄 수 있었다.
보통은 20점을 여러 사람에게 나눠서 조금씩 주었다.
하지만 셰루인 부인은 가산점을 전부 루아티샤에게 주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셰루인 부인이 점수를 매기는 것을 본 다른 사람들도 판을 꺼내 점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력한 점수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 * *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황후는 중간 정산된 점수를 보고 소리를 내질렀다.
“가산점을 다 파에라톤 공녀에게 몰아주다니! 이딴 식으로 점수를 매기면 어쩌자는 게야!”
“고정하시지요, 폐하. 오늘 토론회에서 에스테반 전하께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시지 않았습니까.”
“훌륭한 성적? 합산 성적이 이제 막 황궁에 온 반편이보다 낮은데 훌륭하다는 말이 나와?!”
밖에서 자라 황족으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던 시드리한은 오히려 에스테반보다 앞서고 있었다.
물론 한 끗 차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황후의 입김이 닿은 자들이 에스테반에게 점수를 몰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면승부를 했다면 커다란 차이가 났을 터.
황후는 자신의 아들보다 버러지 같은 시드리한이 실질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수를 써.”
측근들은 난색을 표했다.
이미 수는 쓰고 있었다. 점수를 조작 중이지 않은가.
“이 이상은 힘듭니다. 황비가 두 눈을 부릅뜨고 견제 중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힘을 실어 주고 계시고요.”
콰앙!
황후가 내리친 테이블이 부르르 떨렸다.
“어찌 그리 머리가 안 돌아가? 두 사람이 시드리한을 싸고 돈다면 아우로라 쪽을 건드리면 되지 않는가!”
새벽 축제에서 파트너십은 굉장히 중요했다.
“어차피 에스테반과 그 버러지의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 문제는 미첼로인 영애와 파에라톤 공녀다.”
“곧 미첼로인 영애가 살롱을 주최하죠. 저희 측 귀족들에게 무조건 120점을 주고 파에라톤 공녀에게는 할 수 있는 최저점을 주라고 하겠습니다. 분위기상 공녀에게 0점을 주면 티가 나니…….”
마음에 썩 드는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수 차가 꽤 줄어들 것이다.
파에라톤 공녀에게 가렸을 뿐, 미첼로인 영애도 나름대로 출중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까.
황후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기댔다.
‘부족해.’
미첼로인 영애는 똑똑하고 생각이 깊었지만, 사람의 시선을 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사교계에서는 내향적인 사람 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아무래도 유리했다.
특히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선.
툭, 투둑.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황후가 입을 열었다.
“아우로라 쪽 마지막 경합 주제를 알아내.”
“예? 그건…….”
“못하나?”
황후가 날카롭게 벼린 눈으로 측근들을 훑어봤다.
“에오스 쪽을 알아내라는 것 보단 수월할 텐데.”
황자들의 황위 다툼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 있는 에오스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덜했다.
“황금을 얼마든지 써도 좋아. 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
“……알겠습니다.”
“알아낸 다음에는 미첼로인 영애에게 미리 알려줘. 다행하게도 마지막 경합은 심층 면접이니 미첼로인 영애에게 유리해.”
“예, 미첼로인 영애의 학문적 지식과 교양은 쉐브론의 교수들도 인정할 정도니까요.”
“조용한 성격이라 화려하게 나서는 면이 약해서 지금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심층 면접에서는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진득한 사람이 돋보이지요. 파에라톤 공녀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둘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파에라톤 공녀가 아무리 총명하다지만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미첼로인 영애는 대답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
이기지 않는 게 더 힘든 상황!
황후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좋아. 살롱에서 점수 차를 좁히고 최종 경합에서 역전승. 사람들은 드라마를 좋아하지.”
파에라톤 공녀는 이 드라마틱한 역전승의 발판으로 전락하리라.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인 에스테반과 그 파트너였다.
“흥, 어리석은 계집. 무려 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건만. 주제를 모르고 에스테반을 거절한 게 네 패인이다.”
파사삭.
중간 보고서에 적힌 루아티샤의 이름이 황후의 손길에 무참히 구겨졌다.
* * *
‘와, 대단하다.’
나는 차분하면서도 심도 있게 살롱을 이끌어나가는 미첼로인 영애를 보고 감탄을 했다.
영애들 중 상위권 세 명은 살롱을 주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데, 오늘은 2위인 미첼로인 영애가 살롱을 주최하는 중이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발화자의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핵심을 짚어 더 깊은 토의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나중엔 교과서에 적히는 업적을 남길 게 분명해.’
감탄하는 사이에 살롱이 끝났다.
미첼로인 영애와 눈이 마주쳐서 엄지를 척, 치켜들었는데一.
‘어라?’
미첼로인 영애가 아무 반응 없이 시선을 휙 돌렸다.
‘못 봤나? 아니지, 눈이 마주쳤잖아.’
음, 경쟁 관계라고 해서 무시하고 날을 세울 사람은 아닌데…….
“꽤 흥미로운 전략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수준 낮은 말싸움을 하는 멍청한 작자들보다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낫더라고요.”
“영애께서 이용당한 거였어도요?”
“저 역시 그 상황의 일부였으니까. 본선에서 잘 부탁드려요.”
긴 머리카락을 쿨하게 넘기며 내게 악수를 청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무리 지금 1, 2위를 다투고 있다고 해도 날 인정했으면 인정했지 미워하진 않을 사람.
예선에서부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지 않았던가.
그때, 툭 하고 무언가가 내 손에 부딪쳤다.
‘쪽지?’
나는 테이블 위로 굴러온 쪽지를 펴 보았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밖에서 만나자는 내용.
‘누구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쪽지를 던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살롱이 끝났기에 나는 부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새벽 축제의 살롱은 다 수준이 높군요.”
“잘해야 본전이라는 살롱 주최를 하면서 오히려 두각을 내보이다니.”
“파에라톤 공녀 때도 놀랐지만, 미첼로인 영애는 과연 미첼로인 영애랄까요. 안정적이네요.”
“하지만 조금 심심하지 않나요? 카리스마가 약해서 그런가 참가자들이 확실히 파에라톤 공녀 때보다 집중하지 못하네요.”
“어머? 그건 집중력이 없는 그 아이들의 잘못이죠.”
조용히 지나가는데 참관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스포츠팀을 응원하듯 각자 열성적으로 미는 우승 후보가 있었다.
‘음, 설마 저렇게 경쟁 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미첼로인 영애의 태도가 변한 건 아니겠지.’
조금 아쉬웠다.
쪽지에 적힌 장소는 뒤편 뜰의 벤치.
하지만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설마 장난은 아니겠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루루.”
내 애칭에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크린 영식?”
친분이 하나도 없는 영식의 등장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왜 나를 불러냈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응? 연애 상담?
무뚝뚝한 아크린 영식과 수줍음이 많은 퀴렐 영애가 언제 이어질지는 내 지대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애 상담하기엔 아크린 영식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나?
내가 두 사람 연애사에 관심 있다는 걸 너무 티냈나?
그러나 이어지는 아크린 영식의 말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공녀가 내게 보여준 행동에 결심을 굳혔습니다.”
응?
아크린 영식이 내게 바짝 다가와 내 손을 움켜쥐었다.
“공녀와 사귀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공녀의 마음은 다 알고 있으니.”
“내 마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파트너를 하느라 힘들지 않습니까. 공녀가 내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 나도 퀴렐 영애를 택하지 않고 당연히 공녀를一.”
“미쳤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갔다.
“아, 아니. 아크린 영식,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영식에게 관심 하나 없어요. 그런 마음은 눈곱만큼도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전부터 네가 날 곁눈질하면서 요사스럽게 웃었잖아. 다 알아. 나도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그만 튕겨.”
와.
최소한의 예의도 집어던진 태도에 감탄밖에 안 나왔다.
이게 본성이었나?
“후우, 얘야, 잘 들으렴? 내 눈알이 움직이는 곳에 네가 있었을 뿐이야. 딱히 널 보고 웃었던 적 없어. 퀴렐 영애가 귀여워서 웃었으면 모를까!”
“아, 퀴렐 영애가 신경 쓰여서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一.”
“나 눈 높아! 넌 우리 아빠랑 오빠들 얼굴에 비하면 오징어라는 표현도 미안할 정도야!”
“오, 오징어?! 먼저 꼬리친 주제에!”
제정신인가?
열 살 응애한테 꼬리 쳤네, 마네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