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6화(126/353)
☆ 제126화 ☆
“황자 둘에 라파엘 공자, 거기에서 모자라서 나까지. 아주 불여우 나셨어? 이딴 식으로 꼬리 치고 다니니까 여자애들이 너 싫어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언니들은 다 나 귀엽다고 좋아해.
‘후…….’
말로 해선 안 되겠다.
“야.”
나는 짝다리를 짚고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사과하고 꺼져.”
“하, 이게 귀엽다, 귀엽다 해 주니까 자꾸 기어오르네? 상황 파악이 아직도 안 돼?”
아크린 놈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데다가 단련까지 한 그는 나에 비해 한참 컸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알겠어? 다리를 깊이 넣어야 해.”
“아니야. 그렇게 멀찍이서 발끝으로 차면 안 돼. 확실하게 간격을 좁혀서 파고든다는 느낌으로.”
“그래, 그 상태로 무릎의 스냅을 이용해서 빠르게 차올려.”
“좋아, 그거야! 다시!”
“잘했어. 꼭 기억해. 정면에서 차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걷어 차올려야 제대로 으깰 수 있어.”
누가 그랬던가.
몸이 학습한 것은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물 흐르듯 구사된다고.
“아아아악一!”
나는 오늘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 아크린 놈이 그대로 픽 쓰러져 나뒹굴었다.
다리 사이를 감싼 채 부들거리는 꼴이 심각한 외상을 입은 듯했다.
‘앗, 구두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네. 미안해라.’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고 일컬어지는, 강도 10의 다이아몬드로 계란 으깨기!
과연 그 효과는 엄청났다.
“흥,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나는 무려 다섯 살 때부터 오빠들한테 특훈을 받았다 이 말씀이야.
장장 5년을 단련한 계란 으깨기 기술이다!
“우리 오빠들이 그랬어. 협박은 약한 것들이나 하는 거라고. 무조건 실력행사부터 들어가야 한다고.”
“크으, 흑…….”
“나는 친절하게도 경고까지 해줬는데 더러운 입을 놀려? 하긴, 약한 개는 잘 짖는 법이지.”
내가 터진 계란도 다시 터트릴 기세로 발을 휙 들어 올리자, 빌빌거리던 아크린 놈이 지레 쫄아서는 몸을 움츠렸다.
“앞으로 그딴 식으로 살지 말아라. 다른 영애들한테까지 지저분한 입 함부로 놀리면 으깨는 게 아니라 아예 확! 쥐어뜯어 버린다.”
나는 침을 퉤, 하고 뱉고는 뒤를 돌았다.
그런데.
‘어…….’
풀숲 사이에 가만히 서 있는 퀴렐 영애의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언제부터? 아니, 이거 괜찮은가?’
딱 지저분하게 얽히기 좋은 상황이었다.
“하……. 기가 막혀서.”
퀴렐 영애가 싸늘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걸 뭐라고 말을 하지. 일단 오해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퀴렐 영애가 내게 물었다.
“괜찮아요, 공녀?”
상냥한 얼굴.
퀴렐 영애는 곤혹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생긋 웃었다.
“잘했어요. 저딴 새끼는 계란을 터트리는 걸로도 부족해요. 아예 ♬♪를 ♩♬♪해서 ♪♩해버려야 해!”
튀어나온 거친 언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나 수줍어하던 퀴렐 영애가…….
‘……내 타입인데?!’
퀴렐 영애는 아직도 못 일어나고 부들거리는 아크린 놈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야, 파에라톤 공녀가 착해서 쥐어뜯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라. 공녀가 먼저 손 쓰지 않았으면 내가 아예 다 뽑았어.”
뭐를?!
퀴렐 영애는 내가 한 것처럼 침을 탁 뱉고 뒤돌아섰다.
“저기, 퀴렐 영애는 괜찮아요?”
몇 개월간 아크린 놈이랑 나름대로 썸을 타던 사이 아니었나.
겉으론 시원시원하게 행동하더라도 속이 말이 아닐 것 같았다.
퀴렐 영애는 나를 바라보더니 방긋 웃었다. 언제나 보았던 귀여운 웃음이었다.
“파에라톤 공녀가 날 구했네요. 저딴 놈인지도 모르고 사귈 뻔했으니까.”
토닥토닥.
퀴렐 영애가 내 등을 다정하게 도닥였다.
“놀랐죠?”
자신보다 나를 걱정해주는 상냥한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런 놈은 어딜 가나 있죠!”
씩씩한 대답에 퀴렐 영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언니들은 나를 좋아해!’
뭔 여자애들이 날 싫어한다 만다야.
꼭 저런 놈들이 지 혼자 착각 속에 빠져서 멀쩡한 사람들 싸움 붙이더라.
우리는 아크린 놈 따위는 버려둔 채 손을 꼭 잡고 후원을 나섰다.
“저놈 평소에는 입 다물고 있어서 그냥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어딘가 쎄하달까?”
“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흥, 생각할수록 짜증 나요. 그래도 공녀가 대신 으깨줘서 기분이 좀 나아요.”
퀴렐 영애가 수줍게 웃으며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제가 계란 으깨는 거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오빠들이 단련시켜줘서.”
내가 고개를 치켜들고 뽐내자 퀴렐 영애가 깔깔 웃었다.
‘음, 이런 걸로 뽐내고 되나 싶지만……. 언니가 웃으니 됐다.’
“공녀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건 예선 첫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상냥한 아이인지는 몰랐어요.”
“그래요? 나는 퀴렐 영애가 다감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화끈하기까지 한 언니인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서로를 마주 보며 히히 웃을 때였다.
“커헉! 으, 우읍!”
뒤쪽에서 난데없이 비명이 들렸다.
마지막 소리는 흡사 입을 틀어막는 것 같은…….
‘뭐지?’
뒤를 돌아봤지만 나무와 수풀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긴 널브러져 있던 아크린 놈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일어나려다가 아파서 비명 질렀나 봐요.”
쌤통이다.
내 말에 퀴렐 영애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마지막 살롱은 다음 주에 열리죠?”
“우리 새벽 축제 말고 다른 이야기 해요. 몇 달째 평가만 받으니 진짜 기 빨려요.”
퀴렐 영애가 지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사실 이제 아무래도 좋아요. 본선 진출만으로도 만족해서.”
대다수의 영애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본선 진출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니까.
‘흠, 새벽 축제 이야기 말고, 연애 이야기……는 지금 상황에서 좀 그렇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데 퀴렐 영애가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었어요? 성녀가 등장했다는 소문.”
“성녀요?”
성녀라니!
나는 눈을 빛냈다.
로판의 필수 요소인 성녀가 없어서 얼마나 실망했던가!
외할아버지를 치료할 때도 그랬지만, 이곳에선 신성력이 병을 쑥쑥 낫게 한다거나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성녀!
성녀라면 분명 특별하고 멋진 기적을 일으키겠지!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왜, 전에 드래곤을 봤다는 소문도 크게 났는데 구름을 착각한 거였잖아요.”
“그랬죠…….”
내가 시무룩해 하자 퀴렐 영애가 달래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요! 남부 끝에서 도는 소문이라는데 거긴 워낙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대다수가 남부 사람들의 허풍이긴 했지만.’
나는 속마음을 숨기고 활짝 웃었다.
“이번 소문은 진짜였으면 좋겠네요!”
“파에라톤 공녀는 성녀가 좋나 봐요?”
“멋있잖아요! 신성력으로 기적도 일으키고! 다친 사람도 치유하고 마왕도 무찌르고!”
내 말에 퀴렐 영애가 쿡쿡 웃었다.
‘진짜 성녀가 나타났다면 어떤 사람일까.’
성녀였던 여주 언니들을 떠올리자 나는 아주 들떴다.
‘같은 편이 된다면 정말 좋을 거야!’
신나는 마음으로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회랑 저편으로 사라지는 사람 그림자가 내 눈을 스쳤다.
‘에스테반과 미첼로인 영애?’
축제의 파트너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에 걸렸다.
‘얼핏 보인 미첼로인 영애의 표정이 좀…….’
퀴렐 영애는 전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퀴렐 영애, 저는 레이디스룸 좀 들렀다가 갈게요.”
“그래요.”
퀴렐 영애는 아쉬운 얼굴로 내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회랑 끝까지는 자연스럽게 쭉 걸어간 다음, 퀴렐 영애가 안 보일 때부터는 발걸음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었다.
너무 눈치를 봤나?
에스테반과 미첼로인 영애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쪽으로 가는 걸 봤는데…….’
그때였다.
“어쩔 셈이야?!”
무언가에 막힌 듯, 먹먹한 소리가 작게 울렸다.
“네년 때문에 지게 생겼잖아!”
미친?
이 목소리는 분명 에스테반 황자였다.
“잘해야지, 응? 그래야 네가…….”
그다음부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함친 덕분에 목소리가 새어 나왔던 듯했다.
‘……이제 알겠다.’
미첼로인 영애가 나를 외면했던 이유.
나는 휴게실의 문 앞에 선 채 고민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
제대로 된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거 아닐까.
하지만.
미첼로인 영애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나 그래봐야 열네 살 소녀였다.
아니, 성인이라도 언어적 폭력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나는 그게 얼마나 마음을 꺾는지 잘 알고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내가 그랬으니까.
벌컥!
예고도 없이 문이 열리자 에스테반 황자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어머, 두 분이 안에 계신 줄 몰랐네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파에라톤 공녀.”
“안녕하세요, 황자 전하. 오늘 미첼로인 영애의 살롱이어서 친히 마중 오신 건가요?”
“……그래.”
“친절하셔라.”
나는 웃으면서도 미첼로인 영애의 안색을 살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표정은 확연히 굳어 있었다.
“두 분 이후에 일정이 있으신가요? 데이트?”
“데이트라니! 그냥 들린 것뿐이다.”
에스테반 황자가 질색하며 부정했다.
레이디에 대한 예의가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넌 로판 속에 들어가면 남주는커녕 섭남도 안 되겠다.’
딱 봐도 황자라고 거들먹거리다가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깨닫고 엉엉 울 엑스트라3이었다.
“잘됐네요. 사실 전 미첼로인 영애를 찾고 있었거든요.”
미첼로인 영애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날 외면하고 있었다.
반응은 엑스트라3에게서 나왔다.
“미첼로인 영애를? 왜?”
“그건 황자 전하께서 아실 일 없죠.”
딱 자른 말에 에스테반이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전하,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에스테반은 나한테 뭐라 말을 붙이고자 했지만 내 냉랭한 태도를 보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휴게실에서 나갔다.
흥이다!
“……왜 왔어요?”
응?
미첼로인 영애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나를 휙 돌아보며 외쳤다.
“내가 황자한테 끌려가는 걸 보고서 온 거 아니에요? 이렇게 오면 내가 고마워하고 좋아할 줄 알았어요?”
“음, 딱히 고마워하라고 온 건 아닌데……. 그냥 에스테반 황자가 너무 재수 없었을 뿐이지.”
그 말에 미첼로인 영애가 당혹스러운 듯 눈매를 파르르 떨었다.
항상 차분했던 미첼로인 영애의 얼굴은 수많은 감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분함과 억울함, 수치심,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해버렸다는 부끄러움, 자신에 대한 실망.
나는 미첼로인 영애가 스스로를 탓하는 게 싫었다.
내게 화풀이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감정 조절 잘하는 열네 살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은 엑스트라3 놈의 잘못이었다.
“역시 들어오길 잘했어요. 미첼로인 영애가 이렇게 화내는 것도 보고.”
미첼로인 영애가 ‘지금 놀리는 건가’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한테 자존심 세우는 거, 나를 인정해서 그런 거잖아요?”
“…….”
“나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
“내가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는 게 좋다고요?”
“난 좋은데요? 미첼로인 영애처럼 총명한 사람이 나를 그냥 어린애 취급하며 상대도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좋아요. 나를 제대로 된 호적수로 봐서 그런 거잖아요.”
에스테반 황자와 있던 순간에도 딱딱하게 굳었을지언정, 한 번도 허물어지지 않았던 미첼로인 영애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그 얼굴을 감추듯 고개를 숙였다.
한참 후, 흥분감이 사라진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나한텐 지지 못할 이유가 있어요.”
“그래요? 나는 이겨야 할 이유가 있는데.”
미첼로인 영애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생긋 미소 지었다.
“똑똑한 영애들과 멋지게 겨뤄서 이기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렇네요.”
미첼로인 영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어딘지 어두웠고 지쳐 보였다.
“멋지게 겨뤄서 이기면 정말 기분 좋겠죠. 하지만…….”
그 뒷말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 * *
그날이 왔다.
새벽 축제 마지막 날.
“오늘로 새벽 축제도 끝이구나.”
다사다난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기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가족들은 다른 모양이다.
“드디어 끝났군.”
“내 동생 얼굴 까먹을 뻔했어.”
“끝나면 종일 집에만 있자.”
“쓸데없는 것들이 달라붙을 일도 없겠지.”
“제도를 떠나 할애비 영지로 휴양가는 건 어떠냐.”
다들 오늘만 기다렸다는 반응이었다.
“타렌카령은 뭐가 좋아요?”
“거긴 네 또래 남자애가 없다.”
“……?”
그게 좋은 거야?
그래도 마지막 경합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최종 우승 후보의 가족들까지 다 입장 가능했다.
우리 가족은 시끌벅적하게 한 마차를 타고 황궁에 도착했다.
새벽 축제가 열리는 딜루쿨룸 홀의 외관에는 대문짝만하게 내 얼굴이 걸려 있었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최종 우승 후보인 미첼로인 영애와 베리안 영애의 얼굴도 함께 있었다.
어서 들어가려는데 가족들은 우뚝 멈춰선 채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하, 하하, 축제라지만 너무 오버다. 왜 저렇게 크게 걸어놓았지?”
민망함에 머쓱하게 웃는데 가족들이 중얼거렸다.
“……좋은데?”
“공작성 정문에 아예 걸어놓을까? 더 크게.”
“흠, 후작성의 성벽도 괜찮은 듯하고.”
예?
저기요.
내 얼굴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