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7화(127/353)
☆ 제127화 ☆
사소한 실랑이 끝에 우리는 딜루쿨룸 홀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도 화려했던 홀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드넓은 홀 안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서 초대장이 없어도 일정 작위 이상의 귀족이라면 전부 참석 가능했기 때문이다.
홀 중앙은 비어 있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가장자리 부분은 몇 단으로 된 관중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관중석은 1층뿐만 아니라 2층, 3층까지 다 이어져 있었다.
오페라 박스석처럼 생긴 귀빈석에는 우리 가족들의 자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갈 곳은 저 박스 석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참가자들은 저쪽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아크린 놈과 눈이 마주쳤다.
“히, 히익……!”
나를 보자마자 아크린 놈이 식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후후, 내 다이아몬드 계란 으깨기가 날카로운 추억을 남겼나 보구나.’
나는 뿌듯하게 가슴을 폈다.
아크린 놈은 일신상의 이유로 근 한 달간 새벽 축제에 불참했는데,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억지로나마 나온 듯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아크린 놈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이 모습을 퀴렐 영애가 봐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크린 놈의 시선이 묘하게 나를 비껴가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위…….
고개를 드니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왜 나보다 우리 가족들을 더 무서워하지?’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물러나던 아크린 놈이 다시 “히이이익!” 하고 기겁했다.
왜 그러나 싶어서 봤더니 이번에는 시드가 서 있었다.
“……?”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가족들과 시드를 번갈아 보던 아크린 놈이 후다닥 딜루쿨룸 홀을 빠져 나갔다.
‘수상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족들과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섯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아레스는 아예 내게 윙크까지 한다.
‘흠.’
시드와 가족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친밀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친밀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삭막했지만, 시드가 파트너인 나를 데리러 공작저에 찾아올 때와 비교하면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적어도 오빠들이 시드를 당장 죽이지 못해 혈안인 건 아니니까.
‘이상한데.’
뭐, 그래도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보단 나으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가족들한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아우로라 후보 대기실로 갈게요.”
“재밌게 놀다 오거라.”
가족들의 배웅을 맞으며 나는 씩씩하게 대기실로 갔다.
가족들 앞에서 경합하는 건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잘해서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 * *
새벽 축제의 마지막 경합이 시작되자, 딜루쿨룸 홀의 바닥은 하나의 전광판으로 변했다.
바닥 위에 거울 수정을 설치해서 참가자들의 경합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정 거울에는 실제 지형을 그대로 축소해서 만든 모형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마도구로 만든 인형들이 바쁘게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새벽 축제 본선에 진출한 영식들이 모형 지형에서 인형으로 모의전을 치르는 것이다.
전부 다 똑같은 병력을 할당받았기에 이 모의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지휘관의 능력!
그야말로 개개인의 능력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한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현재 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시작 지점을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어서, 이전까지의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 더 유리했다.
그 때문에 1위를 달리고 있던 시드리한 황자가 가장 먼저 스타팅 포인트를 골랐을 때는 다들 안타까운 한숨을 흘렸다.
전쟁에서 고지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상식.
하지만 시드리한은 저점을 골랐고, 고지는 2위였던 에스테반에게 돌아갔다.
“아무렴.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놈이 뭘 할 줄 알겠어? 이런 고등 능력에서 판가름 나는 거지.”
황후는 피식 웃으며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딱히 수를 쓰지도 않았는데 시드리한이 알아서 망하는 길을 선택을 했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놈’에게 에스테반 황자는 여태 까지 지지 않았나요? 그렇게 무시하는 상대에게 왜 1위를 뺏겼는지 참 궁금하네요.”
황비의 말에 황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그래봤자 최종적으로 우승할 사람은 자신이 아들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스테반은 고지를 점한 상태에서 다른 영식들의 병력을 화려하게 무효화시키고 있었다.
“어머, 우리 에스테반 황자가 아크린 영식의 인형들을 모조리 아웃시켰네요. 폐하께서도 든든하시겠습니다. 저런 출중한 황자가 후계로 있어서.”
은근하게 후계 운운하는 황후의 말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아크린 영식을 누른 것 가지고 너무 호들갑이군. 아크린 영식은 한 달쯤 전부터 제대로 참가도 안 하고 있던 놈인데. 오늘도 어디다 정신을 빼놓고 온 건지 저딴 것을 전략이라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방금 아크린 영식의 돌진은 공격이 아니라 자살이었죠. 그걸 격파했다고 자랑하기엔…….”
황제의 말에 냉큼 한마디거든 황비가 황후를 슬쩍 바라보더니 부채 끝으로 톡, 입술을 건드렸다.
“아, 하긴. 황후께서 자랑하는 마음도 이해 갑니다. 그간 에스테반 황자가 보여주었던 능력을 생각하면…….”
“황비!”
황후의 외침에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진정하시구려. 좋은 날 왜 그렇게 날을 세우는지 모르겠군.”
황후는 이를 악물었다.
황제가 요즘 시드리한을 밀어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처사 아닌가.
‘흥, 우리 에스테반이 그 버러지의 병력을 죄다 쓸어버리고 난 다음에는 과연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지.’
황후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 수정 거울을 바라봤다.
그런데.
“세상에, 저런 전략을?!”
“와아?!”
예상치 못한 전개에 관람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에스테반의 병력이 시드리한의 후미를 치려고 했다가 되려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저게 늪이었다고요?! 그냥 봐서는 모르겠는데!”
기동성이 높은 기사 인형들은 전부 늪에 발이 묶였다.
늪에 빠지지 않은 병력을 물리기도 전에 좌우에서 마법이 터져 나왔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와 궁수부터 차례로 날리는 깔끔한 클린샷.
“……?!”
“와, 병력을 숨겨뒀었네요. 일부러 유인했던 거예요.”
늪 너머로 보이는 병력은 마법사의 환영으로 수를 불린 눈속임이었다.
시드리한의 꼬리를 잡으려던 에스테반이 역으로 꼬리를 잡힌 상황!
“잠깐, 그럼 시드리한 황자는 늪지대인 걸 알고 일부러 저 지점을 선택한 거였나요?”
“그것도 모르고 스타팅 포인트를 잘못 선택했다고 실망했네요.”
“아니, 근데 저기가 늪인 걸 알고 바로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요?!”
뒤늦게 에스테반 황자가 자신의 병력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 * *
‘젠장, 젠장, 젠장!’
인형을 조종하고 있는 에스테반이 속으로 욕을 삼켰다.
‘이딴 속임수나 쓰다니! 교활한 놈!’
인형들은 의지가 없다.
앞서가던 인형들이 늪에 빠졌다고 뒤돌아 도망치거나 자의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당연히 에스테반 황자가 명을 내려줘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순발력이 빠르지 않았다.
처음 늪에 빠지자마자 재빨리 남은 병력을 후퇴시켰으면 이 지경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시드리한은 아주 순조롭게 남아있는 에스테반의 병력을 학살했다.
하지만 에스테반은 자신의 실책을 탓하기보다는 남을 탓했다.
‘당당하게 정면 승부해야지! 간사한 새끼가!’
처음 시드리한이 저점을 선점했을 때, 에스테반은 ‘전략의 기본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라며 비웃었다.
전쟁이 시작하고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는지, 정찰을 보내도 시드리한은 스타팅 포인트에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흥, 쫄았나. 이제 알겠냐? 네가 잘못 선택한걸. 넌 나한테 질 수밖에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가까이 있는 영식들과 몇 번 부딪치며 싸웠다.
계속 승리한 에스테반은 자신감을 얻고 아예 시드리한의 본거지로 쳐들어갔다.
고점에서 기다리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계속된 승전으로 신중함이 사라지고 교만이 자리 잡았다.
여기서 화려하게 승리해서 그간의 설욕을 갚아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콰앙!
결국 조종할 인형 하나 남지 않은 에스테반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완벽한 패배.
에스테반은 이를 으득 갈았다.
* * *
“신기하군요.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어떤 군사적인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저게 바로 타고났다는 걸까요?”
“그에 반해 에스테반 전하께서는 실책이 너무 많네요. 고점을 차지한 덕분에 유리했다는 것 외엔…….”
“유리한 곳을 선점했으면 그냥 그 자리에 있었어야죠. 계속 기다렸으면 승패가 달랐을 수도 있는데. 너무 경솔했어요.”
“흠, 시드리한 전하는 에스테반 전하의 성격까지 계산에 넣은 걸까요?”
“스타팅 포인트를 선택하신 걸 보면 맞는 듯합니다. 저런 전략은 인내심이 커야 가능하죠. 에스테반 전하와 확연히 다르군요.”
“십 대 초반의 소년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내심이네요. 보통 이런 끈질긴 전략보다는 화려하게 싸우는 걸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이인데.”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내 병력을 잃지 않고 남의 병력을 없애는 가죠.”
관람석의 웅성거림이 황족들이 앉아있는 박스석까지 전달되었다.
황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흠, 시드리한은 참으로 효율적으로 전략을 짜는군. 아직 인형을 한 채도 잃지 않았어.”
에스테반이 아무리 유리한 고점에서 싸웠다고 해도, 아무런 병력 손실도 없을 순 없었다.
몇 번 전투를 치르며 크고 작은 승리를 맛보았지만, 전투 불능이 된 인형의 수도 상당했다.
“그렇네요. 설마 이런 전략을 짰을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어요.”
“일부러 숨을 죽이고 기다렸던 거야. 다른 참가자들이 서로 부딪치며 싸우면서 병력을 깎아 먹도록.”
황제가 흡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 결과를 보시게. 경기가 후반부로 접어든 지금, 가장 많은 병력을 소유한 건 시드리한이다.”
“주변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까지 이용하는 판단력까지……. 시드리한 황자는 정치외교적으로도 재능이 있나 봅니다.”
황비가 웃으며 시드리한을 칭찬했다.
그럴수록 황후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분노를 속으로 삭이고 있는 수밖에.
* * *
황후보다는 아니지만, 파에라톤 공작 일가와 타렌카 후작이 자리한 박스석의 분위기 역시 좋지 않았다.
“……끈기 있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군. 이건 곧 집요하다는 뜻이다.”
“집요한 자들은 보통 집착적이지.”
타렌카 후작이 파에라톤 공작의 말을 받았다.
다섯 남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 귀찮은 게 붙었네.”
“내 동생이 너무 귀여워도 곤란하군.”
“막내의 매력은 나만 알면 되는데.”
일단 시드리한과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파에라톤 공작가는 어쨌거나 새벽 축제 본선이 열리는 동안 내부 참석이(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안에서 날파리를 쫓아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들이 사주할 필요 없이 이미 열심히 날파리를 푹찍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시드리한 황자.
루아티샤가 그를 파트너로 고른 이상 시드리한의 접근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해서 몇 가지 조건 하에 새벽 축제가 끝날 때까지만 서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됐다.
“……여우를 쫓겠다고 사자를 들인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
저놈이 전술을 쓰는 걸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승리를 이뤄내고서도 시드리한은 아주 신중하게 움직였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확실하게 승리를 잡는 전략.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접전이 펼쳐질 것 같으면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델바트렌 영식과 원수라도 졌나? 왜 갑자기 달려드는 거지?”
시드리한은 라파엘의 병력을 발견하자마자 여태까지의 신중함은 던져버리고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라파엘은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에스테반에 비해서 훨씬 좋은 대응책을 펼쳤다.
전방의 병력으로 돌진을 막고, 광범위 마법으로 발을 묶은 것이다.
그리고 남은 병력은 빠르게 후퇴했다.
병력 차이가 큰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니,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라파엘이 비명을 질렀다.
시드리한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리 방어막을 쳤다.
그리고 가속 마법까지 걸면서 라파엘의 뒤를 쫓았다.
라파엘은 이를 악물고 응전했으나 전멸을 면할 순 없었다.
“와,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정면 승부도 잘하네요.”
“화려한 컨트롤이었어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미리 예측하고 방어진을 펼치는군요.”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시드리한이 이런 승부에서도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라파엘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시드리한만이 알 것이다.
* * *
‘와, 엄청나네.’
나는 아우로라의 대기실 쪽에도 설치된 작은 수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곳에서는 전장에서 날뛰는 시드의 병력이 커다랗게 비추고 있었다.
시드님 전장을 뒤집어 놓으셨다!
‘근데 라파엘이 불쌍하네. 왜 저렇게까지 잡는 거지?’
나중에 가서 라파엘 녀석 위로나 해줘야겠다.
이스포츠를 구경하는 느낌으로 보고 있는데 퀴렐 영애가 말을 붙였다.
“공녀는 떨리지도 않아요? 우승은 바라보지도 않는 저조차 너무 떨리는데.”
그러고 보니 한가롭게 수정 거울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른 영애들은 초조한 얼굴로 대기 중이었다.
‘하긴,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답을 해야 하니 당연한가.’
“저도 떨려요.”
“거짓말.”
퀴렐 영애와 속닥이는데, 문이 열리고 체시아 백작이 들어왔다.
“이제 영애들 차례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내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트너가 잘해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잘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