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8화(128/353)
☆ 제128화 ☆
* * *
아우로라 후보들이 체시아 백작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곳은 그리 넓지 않은 방이었다.
방 안에는 질문자들이 일렬로 앉아있었고, 참가자들은 그 맞은 편에 차례로 앉았다.
전형적인 면접 진형이었다.
‘면접 장소라기엔 지나치게 사치스럽지만.’
수많은 면접을 봐온 루아티샤로서는 익숙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어색한 듯 어깨를 좁혔다.
하긴 십 대 초반의 아이들이 무슨 면접을 그렇게 봐보았겠는가.
질문자들은 어린 소녀들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국의 미래를 밝힐 영애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군요.”
“오늘 아침 식사는 든든히 하셨나요? 참고로 저는 굶었답니다. 이따 연회 때 많이 먹으려고요.”
‘압박 면접은 전혀 아니구나.’
질문자들이 보내는 다정한 시선에 이번에는 루아티샤가 어색해했다.
질문은 무난했다.
문화 예술 전반에 관한 질문도 있었고, 과거에 있었던 몇몇 영지의 갈등 상황에 대해 질문하며 그 해결책에 관해 묻기도 했다.
최근 새로 시행된 정책 몇 가지에 대한 질문과 몬스터로 인한 재난 구조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청까지.
어떤 것은 영애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고, 어떤 것은 보다 깊은 사고와 관점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무난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루아티샤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수정 거울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이번 면접 질문은 수준이 높네요?”
“예선 마지막 경합 주제가 구휼이라고 했을 때도 생각했지만, 이건 사교계의 레이디를 뽑는 다기보단…….”
훨씬 더 책임과 권한이 막중한 사람이 지녀야 할 역량에 관한 질문 아닌가.
아무래도 아직 어린 소녀들에게는 벅찬 질문이었다.
특히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거늘.
아니나 다를까 대답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긴장한 얼굴로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영애들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네요. 영애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영애들이 있네요.”
“파에라톤 공녀와 미첼로인 영애 말씀이지요? 두 사람의 답변을 듣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니까요? 저게 어린 영애들의 의견이라니.”
루아티샤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생에서 면접을 본 횟수만 해도 몇 번이던가.
인신공격 수준까지 갔던 압박 면접에 비교해서 이렇게 답변자를 배려해주면서 하는 질문은 참 편안했다.
또, 파에라톤 공작가의 내정에도 참여하고 있는 데다가 직접 몇 가지 사업을 꾸리고 있는 그녀로서는 아주 익숙한 질문이었다.
역대 새벽 축제에서 나왔던 질문보다 더 수준 높은 질문이었기에 오히려 루아티샤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제 실력을 발휘했다.
“파에라톤 공녀는 제일 어린 데도 굉장히 능숙하네요.”
“능숙한 것을 넘어서 생각이 톡톡 튄달까? 구휼에 대한 의견서를 봤을 때도 관점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그러네요.”
인생 2회차로서 두 가지 세계를 겪은 루아티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미첼로인 영애는 참 안정적이군요. 어떤 질문이 나와도 흔들림 없어요. 모든 게 준비된 것처럼.”
“미첼로인 영애가 총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간 사교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영애는 아니었는데. 이번 새벽 축제로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보네요.”
“항상 소란스러웠던 영애들을 보다가 저렇게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내실 있는 영애를 보니 눈이 가네요.”
“……소란? 무슨 뜻이죠?”
“어머, 별 뜻은 없는데. 왜 그렇게 반응하세요?”
관람석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생겼다.
강력한 우승 후보가 둘인 상황에서 서로 응원하는 사람이 갈리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스포츠팀 응원하듯 순수한 마음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정치적이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도 많았다.
단순히 영애들의 경합이어도 그럴 텐데, 황자들까지 엮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합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몇몇 영애들은 드디어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안도한 듯 얼굴이 밝아졌다.
“제국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크리켓 배트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요?”
“……?”
생뚱맞은 질문에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미첼로인 영애는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른 영애들은 물론이고 파에라톤 공녀마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되었던 질문 과정에서 파에라톤 공녀가 이런 반응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틀 전, 먼저 질문지를 받아 본 미첼로인 영애 역시 이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랐으니까.
이전까지의 질문은 대부분 국가를 경영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 이런 쓸데없는 물음이라니.
대체 크리켓 배트의 생산 개수가 사교계나 국가 경영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폐하께서 크리켓 경기를 열렬하게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고…….’
의문은 가득했지만 미첼로인 영애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
작년에 생산된 크리켓 배트의 개수를 조사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걸 묻는 건 아닐 거야.’
질문에는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엉뚱한 질문에도 얼마나 당혹감을 감추고 재치 있는 답변을 하는지 보겠다는 걸까?’
그것이 미첼로인 영애가 생각하기에 가장 그럴싸한 이유였다.
만약 그게 진짜 의도라면 자신은 역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자신이 있었다.
“…….”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파에라톤 공녀가 막힘 없이 대답하는 모습을 볼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당황하는 공녀의 모습을 보니…….
‘이 질문으로 내가 이길 것은 확실해.’
그래도 되는 걸까?
“미첼로인은 참으로 대단한 가문이야. 이토록 위대한 학문적 성취를 거둔 가문이 또 있던가. 가히 제국 지식계의 근간이라 할 수 있지. 제국의 모든 이가 미첼로인 가문의 업적을 칭송하고 그 명예를 존중할 게야.”
“과찬이십니다, 황후 폐하.”
“그런데 그 성취에 이런 비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뭐라 할까?”
“……?”
미첼로인 영애는 황후가 들이민 서류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미첼로인 가문에 얽힌 여러 가지 비리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맹세코 가문에 그런 비리가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자신이 미첼로인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언제나 자랑스러웠거늘…….
비리만으로도 충격적인데 황후는 심지어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쉬이, 영애. 떨지 말아. 나는 영애를 좋게 보고 있어. 똑똑한 아이를 싫어하는 어른은 없지. 나는 영애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사실 업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사소한 그림자가 따라오기 마련이야. 그렇지 않은가? 초대 황제께서 창업하실 때도 많은 피를 흘렸어. 억울하게 사라진 목숨들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대 황제의 위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큰일을 도모하다 보면 작은 허물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이해를 넘어 공감이 돼.”
“하나 다른 이들은 또 어찌 생각할지……. 미첼로인의 드높은 명예에 더러운 오명이 묻을까 나는 걱정이야.”
황후는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그 얼굴 아래로 미첼로인을 물어뜯을 독니를 숨기고 있었다.
미첼로인 영애는 고민했다.
차라리 가문의 치부를 밝히는 게 옳지 않을까?
미첼로인 영애는 ‘진리를 밝히는 가문의 일원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배웠다.
진리는 학문적 연구에 있는 게 아니라, 비리를 밝히는 데에 있는 것 아닌가?
그 고민을 알아챘는지 황후가 말했다.
“미첼로인 후작이 안 됐군. 딸 아이 때문에 가문의 명예가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생겼으니.”
충격에 정신없는 열네 살 소녀에게 가문에 대한 죄책감까지 얹어 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수많은 가문의 일원들의 얼굴이 스쳤다.
자신이 황후의 말을 들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큰일을 도모하다 보면 허물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황후의 말이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난 좋은데요? 미첼로인 영애처럼 총명한 사람이 나를 그냥 어린애로 보고 상대도 하지 않는 것보다 제대로 된 호적수로 보는 게.”
“그래요? 나는 이겨야 할 이유가 있는데.”
“멋지게 겨뤄서 이기면 기분이 좋잖아요?”
환하게 웃던 아이의 얼굴.
미첼로인 영애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인 영애.”
“미첼로인 영애?”
“네, 네.”
미첼로인 영애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다니.
“괜찮은가요?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미첼로인 영애에게 물을 한 잔 가져다주거라. ……파에라톤 공녀, 미첼로인 영애의 답변 순서를 미루고 공녀가 먼저 대답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에요.”
파에라톤 공녀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미첼로인 영애는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이 질문에 그렇게 놀랐으면서, 순서까지 당겨지면 파에라톤 공녀가 더 손해인데…….’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루아티샤는 확실히 놀랐으니까.
‘뭐야, 이 지구에서 취업 면접으로 할 것 같은 질문은?!’
하고.
그리고 이건 루아티샤는 이런 질문이 어떤 것을 의도해서 묻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황한 영애들이 마치 찍듯이 천 개, 만 개 하고 대답했지만, 이건 진짜로 크리켓 배트 생산량을 묻는 게 아니었다.
“공녀는 생산량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죠?”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습니다.”
“……모른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질문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루아티샤의 말은 이전까지 다른 영애들이 대답한 것과 확연히 달랐다.
질문자는 물론, 구경하던 관중들까지도 귀를 쫑긋 세웠다.
“크리켓 배트는 생필품도 아니고 취미 활동에 필요한 도구지요. 유행에 따라서 수요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즉, 한 해 생산량에 대해 질문하셨지만, 기준 년도에 따라서 그 값은 천차만별입니다.”
질문자는 조금 당황했다.
설마 이런 식의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유행 외에도 재고 상황이나 인구수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백 년 전 생산량과 올해의 생산량은 확연히 다르겠죠. 해서 대답할 수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질문을 바꾸죠. 작년의 생산량은 어떨 것 같나요?”
조금 전에는 질문의 허점을 짚어 빠져나갔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루아티샤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세 가지 방법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첫 번째는 제국 내에 있는 배트 생산 업체들에 문의하는 것입니다. 문의한 결과를 다 더하면 되겠지요.”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몇 개라고 찍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대답이었다.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니까.
“두 번째는 상황을 가정하고 분석해서 생산량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가령 제국의 인구를 3억 명이라고 가정하죠. 그리고 오직 내수 시장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해요. 배트를 수출하지도 않고, 수입하지도 않는다고요.”
“호오…….”
질문자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확히 질문의 의도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답하고 있다.
“크리켓을 직접 즐기는 인구는 10대에서 30대까지, 새 배트 구매자들은 이 인구 중 반이라고 가정하죠. 이미 배트가 있으면 굳이 새로 구매하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50대에도 크리켓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가정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지’나 ‘가정이 얼마나 정확한지’가 아니었다.
“또, 여유가 없는 집에서는 직접 나무를 깎거나 중고품을 쓰니 구매자들은 소득 수준이 중간 이상인 사람들이라고 하죠. 이런 가정 하에선 인구의 1/30 정도가 배트를 구매하겠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 천만 개가 생산된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루아티샤가 생긋 웃었다.
“그 구매자가 전부 배트를 딱 하나씩만 구매하고, 생산 업체에서 주문량만큼만 생산한다는 가정 하에서 천만 개가 생산되겠네요.”
아이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딜루쿨룸 홀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허어…….”
누군가의 감탄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확한 정보는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을 가정하고, 그 가정을 토대로 분석하고 추론해서 결론을 도출해낸다.
난데없는 질문에 황당해했던 관람자들은 루아티샤의 답을 듣고서야 이 질문의 의도를 깨달았다.
“정말 대단하군요. 처음 배트 생산량을 물었을 때 저는 그걸 가정해서 추론할 생각은 못 했거든요. 차라리 다른 질문이었으면 모를까.”
“어쩜 어린아이가 저런 생각을 다 하죠?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그런데도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더 남아있다니 무척 궁금했다.
“마지막 세 번째 대답은 뭔가요?”
“저는 이 방법을 가장 선호하는데요.”
루아티샤가 웃었다. 조금은 짓궂은 웃음이었다.
“제 보좌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
“그러려고 유능한 사람을 돈 많이 주고 곁에 두거든요.”
엉뚱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