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2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29화(129/353)
☆ 제129화 ☆
* * *
“풋……!”
“푸하하! 저게 진짜 정답이네요. 파에라톤 공녀가 잘 아는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답에 사람들이 웃었다.
사교계에서는 이런 위트도 굉장히 중요한 소양이었다.
하지만.
‘……놀라운데?’
몇몇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리기보단 눈을 빛냈다.
파에라톤 공녀는 처음 질문의 허점을 짚고, 두 번째 대답을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뛰어난 분석력과 논리력, 추론력, 순발력까지!
그 명민함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다만 그 능력은 ‘지시받는 사람’의 영역이지, ‘지시하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었다.
파에라톤 공녀는 마지막 대답을 함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가 ‘지시하는 사람’의 면모까지 보인 것이다.
‘처음부터 세 번째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그저 반전을 꾀해서 웃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답변 순서는 철저히 계산되어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만약 두 번째 대답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파에라톤 공녀의 능력에 관해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능력 없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아랫사람의 정보와 의견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무시해 그릇된 판단을 내렸던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 참, 정말로 제국의 새로운 새벽을 열 아이가 등장했군.’
폐쇄적이었던 파에라톤 공작가가 중앙 사교계에 깊게 발을 담갔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는데, 이제 보니 파에라톤 공녀야말로 공작가의 보물이었다.
‘……손자 녀석이 여덟 살이니 파에라톤 공녀와 나이도 딱 적당하고.’
‘흠, 아들놈이 열다섯인데 조금 그러려나? 나중에 크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새벽 축제가 끝나면 사교 클럽에 나오겠지? 조카 놈한테 편지를 보내보라고 해야겠다. 아들이 없지만 조카 놈이 있어서 다행이야.’
시드리한 황자와 파트너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막말로 새벽 축제에서 파트너였던 아이들이 실제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가.
그냥 어릴 적 추억일 뿐이지.
무엇보다 선택은 파에라톤 공녀가 하지 않겠는가.
그 순간, 파에라톤 공작가와 타렌카 후작이 자리 잡은 박스석 안.
“……뭐지? 갑자기 기분이 더러운데.”
익시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제온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관중석을 훑었다.
“갑자기 이 홀에 있는 버러지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지는군.”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다섯 남자가 모두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관람석을 훑었다.
아무도 루아티샤와 손자? 아들? 조카와 붙여주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건만.
실로 짐승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이번엔 또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지?!’
순식간에 돌변한 분위기에 에르켈 자작이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박스석 안은 화기애애했다.
또박또박 대답하는 루아티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귀여워.”
“사랑스러워.”
“완벽해.”
“제대로 찍고 있나?”
“파에라톤과 타렌카의 가보가 될 영상이다!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목을 내놓는 게 좋을 거다.”
하며 윽박지르던…… 아니, 어쨌든 흐뭇해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경합이고 뭐고 막둥이의 재롱(?) 잔치라도 온 듯 행복해하던 다섯 남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살인이라도 낼 기세로 관중석을 노려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에르켈.”
“예, 예!”
에르켈 자작은 바짝 긴장해서 답했다.
‘이곳 귀족들을 살해하겠다고 하시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는다……!’
파에라톤 공작가를 향한 지고한 충성!
“딴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서 찍어라. 방금 루루가 고개를 약 3도가량 기울였다.”
각도가 3도 움직인 걸 과연 기울였다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갑은 파에라톤 공작이었고 에르켈 자작은 철저한 을이었다.
“……눼.”
충성이고 뒷수습이고 뭐고, 그냥 다 죽이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공녀의 대답 잘 들었습니다. 미첼로인 영애, 이제 괜찮나요?”
질문자가 조심스레 미첼로인 영애에게 물었다.
미첼로인 영애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이마는 배어 나온 식은땀으로 축축 하기까지 했다.
“괜찮,습니다.”
“영애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자리를 지키는 것도 소양이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참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동안 충분히 잘해 왔고, 그건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질문자들이 달랬지만, 미첼로인 영애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나갈지, 준비해온 답이라도 할지.
“…….”
루아티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준비해온 답을 말하더라도 우승자는 루아티샤일 거다.
질문의 진의를 깨닫지 못했던 자신과 다르게 루아티샤는 정답 이상의 것을 말했으니까.
황후 역시 미첼로인의 비리를 밝히진 않을 것이다.
질문지를 미리 받아봤음에도 실력 차이로 진 것을 어찌하겠는가.
미첼로인의 약점을 계속 쥐고 있는 게 더 이득일 테고.
다만 부끄러웠다.
대답하지 않고 나간다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수 있으리라.
황후와도 협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건 도망치는 것일 뿐이야.’
미첼로인 영애는 옆을 돌아보았다.
루아티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지게 겨룰 상대가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얼굴.
‘……나도 멋지게 싸워보고 싶었어.’
자신의 자랑이었던 미첼로인이 이렇게나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가문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지금 나 역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데.’
미첼로인 영애는 고개를 들었다.
질문자들은 총 다섯 명.
하지만 딜루쿨룸 홀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 보고 있으리라.
또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말은 제국 전역에 울려 퍼지겠지.
“……정말로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지 않아요.”
미첼로인 영애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역시 이만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궁의를 불러一.”
“아니요.”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질문자의 말을 끊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을 보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만둬.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거야?
너는 지금 네 손으로 미첼로인의 명예와 역사와 긍지와 업적을 땅에 처박고 있어.
하지만 미첼로인 영애는 버석거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저는 이틀 전, 오늘의 질문지를 미리 받았습니다.”
말했다.
말해버렸다.
이제 돌이킬 순 없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미첼로인 영애, 지금 영애가 한 말의 심각성을 잘 알고 계시겠죠.”
온화했던 질문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는 이 질문의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진짜 정답은 아니겠지요.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은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국에서 생산된 크리켓 배트는 약 721만 개입니다.”
“…….”
“저는 크리켓 경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만약 질문지를 미리 받지 못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거예요.”
면접장은 물론, 딜루쿨룸 홀까지 싸늘한 침묵에 감싸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충격과 경악, 의심.
물론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황후는 팔걸이를 부서트릴 듯 붙잡은 채 벌떡 일어났다.
황제와 황비, 황태후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저 입을 막으라고 소리치려 했던 것을 멈추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황후는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난 후 흉흉한 눈으로 측근들에게 명했다.
“당장, 당장 가서 저년의 입을 막아. 거울 수정 송출을 막든 뭘 하든 여기서 끝내!”
황후는 낮게 외치며 동향을 살폈다.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질문자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제 권한을 벗어난 문제군요. 미첼로인 영애, 질문지 유출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잠시 후 따로 진행될 겁니다.”
그 말에 황후는 조금 안도했다.
비공개 조사 과정에서 황후의 이름이 나와도 어떻게든 막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황제가 자신을 견제한다고 해도 이런 일에 제국의 황후가 오르내리도록 두진 않을 것이다.
이건 황가의 위신 문제였으니까.
그때였다.
“미첼로인 영애.”
루아티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질문지 유출과 본인의 부정행위 사실을 알린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따로 조사받을 거라는 무거운 말에 위축되었던 미첼로인 영애가 고개를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물론 조사가 진행되고 정의로우신 황제 폐하의 명 아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만,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해요.”
“파에라톤 공녀.”
질문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멈추지 않았다.
“부정행위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서 그 이유를 직접 듣는 건 당연한 권리겠지요.”
“…….”
루아티샤를 불렀던 질문자는 입을 다물었다.
루아티샤가 조사 과정에 대해 무시하지 않으면서 명분까지 쌓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이 방 안의 모든 것이 중계되는 상황.
섣부르게 말리는 것보다 입을 다무는 게 나았다.
“……공녀에게는 충분한 권리가 있지요. 정식으로 조사받기 전에 모든 분들이 보는 앞에서 한 가지 밝히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네가 미쳤구나, 클라우디아 미첼로인.
미첼로인 영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건 어쩌면 가문의 위신을 세울 마지막 기회를 자신의 손으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지 유출 조사 과정에서 황후의 이름을 안 밝힌다는 조건으로 가문의 비리와 관련하여 협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진실을 밝히지 않았을 거야.’
황후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 생각은 없다.
‘황후 폐하, 폐하께서는 제 약점을 쥐고 있으니 저를 폐하의 손바닥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셨겠죠.’
진노한 황후가 쳐죽일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저 역시 폐하의 약점을 손에 넣었답니다.’
벌컥!
면접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궁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다짜고짜 미첼로인 영애를 끌고 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루아티샤가 그 앞을 막아섰다.
“내 몸에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 가족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거든.”
새파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열 살짜리에게서 나올 수 없는 위압감에 궁인들이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공녀님, 저희는 감히 황제 폐하께서 주관하시는 새벽 축제에서 부정을 저지른 죄인을 호송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를 막아서 시다니요.”
궁인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말했다.
총명한 파에라톤 영애라면 분명 막아서는 데에 대한 명분을 댈 것이다.
그럼 이쪽은 할 말도 없어지고 당장 미첼로인 영애를 끌고 갈 수도 없어진다.
‘그래도 시간을 끌어서 수정 거울 송신이 끊어지면…….’
“그래서, 뭐.”
“……?”
그게 끝?
루아티샤는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지금은 자신이 말할 때가 아니었다.
미첼로인 영애는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렸다.
지금 홀 안에서 자신을 지켜 보고 계신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진리를 밝히며 사는 길을 추구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제가 부정을 저지른 것은 황후 폐하께서 제 가문을 두고 저를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의 의미를 스스로조차 알 수 없었다.
분노, 실망, 통쾌함, 좌절, 희열, 해방감, 두려움…….
온갖 감정이 물밀듯 터져 나왔다.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던 루아티샤가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는 게 보였다.
그간 루아티샤를 보면서 진심으로 마주 웃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첼로인 영애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라며 올라갔다.
눈물에 흠뻑 젖어 있지만, 지난 몇 개월간 지었던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 * *
미첼로인 영애의 폭로는 황궁 안에 거대한 폭탄을 터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황후께서?”
“설마 에스테반 황자 전하의 파트너라서 그런 걸까요?”
“……질문지까지 유출했는데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요? 다른 것에도 손을 쓰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죠.”
“다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된 영애의 말만 믿고 제국의 황후 폐하를 의심하다니요!”
“그 말씀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열네 살밖에 안 된 영애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제국의 황후 폐하를 모함하겠습니까.”
“미첼로인 영애의 말은 진실이라고 봐야지요.”
“미첼로인 영애가 사실이라고 생각해도, 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다른 자가 농간을 쳐서一.”
“다른 자라니요? 대체 누가 그런 농간을 부린단 말입니까. 막말로, 이런 부정행위까지 저질렀어도 우승자는 명백한데.”
그 말에 이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딜루쿨룸 홀 안에 들어와 있던 기자들은 입을 다문 채 거침없이 타자기를 놀렸다.
관람자로 온 귀족부터 시작해서 홀의 도어맨까지도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가 있었으니.
“들었나?”
파에라톤 공작이 방만하게 다리를 꼬며 턱을 치켜들었다.
“내 딸이 나를 등에 업고 협박하던 것을. 아주 훌륭해.”
이 순간까지도 루아티샤의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던 에르켈 자작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게 자랑할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