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3화(13/353)
☆ 제13화 ☆
* * *
회의장의 분위기는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원인은 분명했다.
파에라톤 공작.
거의 십수 일 만에 등청한 그는 위압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으,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은 한층 더한데?’
‘간만에 등청해서는 왜 저렇게 무섭게…….’
귀족들은 땀을 흘리며 슬슬 그의 눈치를 보았다.
“이견이 좀체 좁혀지지 않는군요. 이번 전쟁의 논공행상은 각 사단에서 올린 장계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추후 논의하도록 하죠.”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크로펠 백작이 헛기침과 함께 상황을 정리했다.
“허허, 그래요, 그래. 벌써 몇 시간째 쉬지도 못하고 회의 중 아닙니까. 숨 한 번 돌립시다. 다른 안건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귀족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어이쿠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딸아이에게 에끌레어를 사다 주기로 했는데 큰일 났습니다.”
“허어, 별걸 다 걱정하십니다. 그런 건 풋맨에게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뭘 모르는구먼. 풋맨이 사오는 것과 아비가 직접 사오는 게 딸아이에게 같겠나?”
“백작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먹을 걸 사 들고 가면 어찌나 반기는지. 그 모습 보려고 일부러 풋맨 말고 제가 사갑니다.”
“저도 잘 알지요. 제가 귀가하면 꼼지락꼼지락하면서 제 두 손을 살피는데 어찌 빈손으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렇지! 내 손녀는 에끌레어를 사다주면 고맙다며 뽀뽀를 해준다네! 얼마나 귀여운지!”
허허허!
즐겁게 떠들던 귀족들이 움찔했다.
찌릿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시선이 느껴졌다. 외면하려고 해도 도무지 할 수 없는, 날카로운 시선.
어색하게 웃음을 멈춘 그들이 힐끔 옆을 곁눈질했다.
‘히익!’
파에라톤 공작의 서늘한 얼굴이 그들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샤샤샥, 찔끔한 귀족들이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러고 보니 파에라톤 공작은 잡담을 싫어했지!’
저번에 “한가하게 잡소리나 지껄이자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닐 텐데?”라며 회의장을 얼렸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랜만에 나와서 저 일 중독자 페이스를 깜빡했어!’
“빠, 빠, 빨리 회의를 진행하죠.”
서둘러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테르쵸 자작.”
자신을 부르는 깊고 낮은 목소리에 테르쵸 자작은 움찔 어깨를 떨었다.
테르쵸 자작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며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봤다.
“거기가 어디라고?”
“예?”
‘거기가 어디라니, 내 묫자리는 어디냐는 걸까……?’
딸에게 에끌레어도 못 사다 줬는데.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침을 꿀꺽 삼킬 때, 파에라톤 공작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그 디저트 가게.”
“딸에게는…… 예?!”
생각지도 못한 말에 테르쵸 자작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 에끌레어 가게를 묻는 건가?’
그럴 리 없다.
테르쵸 자작이 대귀족이거나 노회한 정치인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급 중앙 관료로 선별 회의에 참석할 만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귀족 사이 돌려 말하는 화법에 아주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파에라톤 공작은 디저트 가게를 묻고 있는 게 아니다.
감히 국무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딸 줄 과자 사기 어렵네, 뭐네 하며 희희낙락거렸다고 면박을 주는 것이다.
‘아니, 면박 수준이 아니야. 나는 공작에게 디저트 거리밖에 안 된다는…… 그래, 이건 목숨이 아깝지 않냐는 협박이다!’
확실했다.
저 파에라톤 공작이 진심으로 디저트 가게를 궁금해할 리 없으니까.
‘파에라톤 공작, 무서운 남자…….’
다른 귀족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공이 빈 상태로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람 여럿이 모이면 꼭 분위기 파악 못하는 자가 한 명쯤은 있기 마련.
“허허허! 파에라톤 공작께서도 디저트에 관심이 있으신가 봅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속 터지는 말에 다들 식겁해서 슈에브 후작을 노려봤다.
‘눈치 좀 챙기쇼!’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아니나 다를까, 파에라톤 공작
이 매섭게 눈을 번뜩이며 슈에브 후작을 바라보았다.
“크흠, 다시 회의를 시작하죠. 다음 안건은 신전에서 온 공문에 관한 겁니다.”
이러다 진짜로 살인나겠다고 판단한 크로펠 백작이 서둘러 회의를 진행시켰다.
그때, 파에라톤 공작에게 보좌가 다가와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한순간에 파에라톤 공작의 눈빛이 달라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장을 나서는 공작의 모습에 모두 당황했다.
“파, 파에라톤 공작님! 어딜 가십니까! 아직 논의할 안건이 한참이나一”
“급한 일이 생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등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은 마무리 지어야一.”
“언제부터 선별 회의 참석이 의무였지?”
파에라톤 공작이 그를 만류하던 자들을 쏘아보았다.
그 붉은 눈과 마주친 자들이 주춤하며 입을 다물었다.
파에라톤 공작이 회의장을 나가고 나서야, 귀족들이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번에도 갑자기 나가지 않았소?”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파에라톤 공작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을 수도……. 괜한 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국제 정세를 확인해 보고 각 영지에 무슨 일은 없나 점검해야겠군.”
파에라톤 공작보다 한발 늦게 회의장을 나서던 수석 보좌, 에르켈 자작은 귀족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일 없습니다. 그러니 긴장들 푸시죠.’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주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갑자기 나간 것은 막내 아가씨께서 무려 창문을 닦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고.’
그 당시 에르켈 자작은 설마 파에라톤 공작이 회의장을 뛰쳐나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하녀들의 연락에 대수롭지 않게 말을 전했을 뿐이었건만.
‘한동안 나오지 않으셨던 건 막내 아가씨께서 낯설지 않게 붙어 있을 거라고 해서 그런 거고.’
내내 집에만 있을 듯했지만 논공행상에 관련된 논의에 가장 큰 공로자인 파에라톤 공작이 빠질 수 없었다.
해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참석한 것이다.
‘오늘은 막내 아가씨한테 타렌카 후작 영애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셔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속으로 대답해줘봤자 저 안에 있는 귀족들은 들을 수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타렌카 후작도 돌아버렸나 보군.”
파에라톤 공작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딸을 보내면 내가 아무것도 못하리라 생각한 건가.”
맹수의 목울음처럼 사나운 목소리였다.
그 옆얼굴을 보며 에르켈 자작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타렌카 후작은 처남이면서 그렇게 공작 각하를 모르는 건가.’
어린애라고 봐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긴, 몰랐으니까 그딴 짓을 벌였겠지.’
감히 공작가의 이름을 이용해 사기를 치다니.
자살하기 딱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왠지…….’
에르켈 자작은 힐끔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그것보단 막내 아가씨를 냉대한 것에 더 분노하신 것 같단 말이지.’
파에라톤 공작가는 보통 인간들과 다르다.
아이를 방치하고, 냉대하고, 일을 시켰으니 당연히 분노할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
파에라톤의 직계를 무시했다고 분노할 순 있지만, 내 아이를 힘들게 했다고 분노하진 않는다.
‘그게 학대라는 개념도 없으시겠지.’
파에라톤의 혈족들에게는 어떤 정서적 교류도 필요하지 않다.
인간 사회에 섞여들기 위해서 일정 이상의 학습은 하지만, 본인들의 정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막내 아가씨 위의 세 도련님들도 그렇고.’
부자 관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삭막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에르켈 자작은 무심코 말했다.
“보기 좋습니다.”
저를 향한 파에라톤 공작의 시선을 느끼고서야 그는 아차, 했다.
하지만 감정이라곤 한 톨도 없는 괴물 같았던 주군의 색다른 모습을 요사이 너무나 많이 봐서일까.
저절로 입이 열렸다.
“저어, 그러니까 각하께서 아가씨를 소중히 지키고 애지중지하시는 모습이…….”
“파에라톤의 핏줄이다. 성년이 될 때까지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
딸을 아낀다기보단 가보를 잘 간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게 아니라一.”
황급히 입을 열었던 에르켈 자작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앞에서는 각하께서 평범한 아빠처럼 보인다는 건데…….’
과연 이 뜻을 공작이 알아들을까?
평범한 아빠라는 게 뭔지나 알까?
나는 그 애의 아비이니, 아비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一따위의 대답만 돌아오는 게 아닐까.
“각하, 막내 아가씨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으십니까?”
파에라톤 공작이 걸음을 멈췄다. 붉은 눈동자가 똑바로 에르켈 자작을 향했다.
뚜렷한 색을 담고 있는 눈과 다르게 그의 시선은 따뜻하지도, 하다못해 차갑지도 않았다.
감정의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감한 눈동자.
‘아.’
에르켈 자작은 깨달았다.
‘모르는구나.’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그런 감각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어쩐지 에르켈 자작은 이 강인하고 위대한 남자가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공작가의 다른 혈통들과 확연히 다른 막내 아가씨도.
“하찮은 소릴 하는군.”
“실언했습니다.”
고개 숙인 에르켈 자작을 내려다보던 파에라톤 공작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긴, 네가 그리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막내에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무엇을 이르십니까.”
에르켈 자작은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각하께서 아가씨가 파에라톤의 혈통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하시면…….’
그 조그마한 아가씨가 어떻게 될지.
“너무 잘 넘어져. 거기다 울기까지 하지.”
“그건 〈마기〉가 없으시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말하면서도 이 대답이 막내 아가씨의 변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기〉가 없는 파에라톤의 직계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내게 보고 싶었다고 한다든가, 내 볼에 뽀뽀를 하지 않나, 저번엔 내 무릎 위에서 잠들었지.”
예?
뭔가 생각하는 것과 점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혼자서 한껏 심각했던 에르켈 자작은 조금 얼빠진 얼굴로 파에라톤 공작을 올려다봤다.
‘어쩐지 각하의 얼굴이 오늘따라 의기양양한데.’
똑같이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오만해 보였다.
“더 이상한 것은 나다. 막내를 보고 있으면…… 신체에 이상 반응이 생겨.”
“예?”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는데 그간의 관찰 결과 확실해. 다른 때에는 괜찮은데 막내가 옆에 있을 때만 그러더군.”
방금 있었던 일을 잊었냐고, 진지해지지 말자 생각했지만 에르켈 자작은 어쩔 수 없이 심각해졌다.
공작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으니까.
‘설마 타렌카 후작의 흉계는 아니겠지.’
혈족의 피를 이용한 저주 같은 게 흑마법에 존재한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신체적 이상입니까.”
“가슴이…….”
“가슴이?”
“간질간질해. 벌레라도 들어간 듯이.”
“…….”
또 나만 진지했지.
아니, 그것보다 벌레라니요.
딸에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것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딸에게.
“예, 뭐. 심장이 빠르게 뛰고 가슴이 꽉 막힌 듯도 하고요?”
“그래. 가슴이 꽉 막힌 것 같고 자꾸 뭘 처먹이고 싶은 것이…….”
표현이 좀 그렇긴 했지만 에르켈 자작은 조금 기대하며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자꾸만 뭘 먹여주고 싶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어진 공작의 말은 그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했다.
“아무래도 저것밖에 못 먹는가 싶어서 답답한 모양이다.”
에르켈 자작은 흐린 눈으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오, 나의 주군.
“먹을 것 외에 다른 것도 더 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고, 가끔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
제국의 자랑이자 긍지.
“보다 보면 깨물어주고 싶고, 벽을 부수고 싶기도 해.”
위대하고 고귀한 살아있는 전설.
“새삼 정리하니 심각한 병증이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에휴.
‘뭐가 살아있는 전설이냐. 그냥 살아있는 천치인데.’
우리 공작님은 아직 멀었는가.
‘그래도 이만하면 커다란 발전이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감정조차 처음 겪어봐서 이상 증세라고 하는 사람 아닌가.
‘언젠가 이상 증세의 이름을 알게 되시지 않을까.’
에르켈 자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마차 앞에 도착한 참이었다.
에르켈 자작이 막 마차에 뒤따라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아.”
파에라톤 공작이 그를 막았다.
“넌 아까 귀족들이 말했던 디저트 가게 알아 오도록 해.”
“예? 지금 알아 와도 다 매진 되었을 텐데요. 아까 대화를 생각하면…….”
파에라톤 공작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빤히 바라볼 뿐.
살 떨릴 정도로 위압적인 시선에 자작이 움찔했다.
‘방금 대화 때문에 각하께서 누군지 잊고 있었네.’
파에라톤 공작이 어떤 존재인가.
‘요즘 아가씨를 대하시는 태도도 있고 하니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당장 알아오겠습니다. 혹시 남은 에끌레어가 있으면 사 올까요?”
“그래. 그 애는 단 것을 좋아하니까.”
“알겠습니一.”
“아니, 아니지. 사지 마.”
“예?”
“나중에 내가 사겠다.”
“가, 각하께서 직접이요?”
파에라톤 공작이 디저트 가게에 가서 에끌레어를 산다고?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무서운 소리였다.
그때, 무언가가 에르켈 자작의 뇌리를 스쳤다.
“제가 먹을 걸 사들고 가면 어찌나 반기는지.”
“제가 귀가하면 꼼지락꼼지락하면서 제 두 손을 살피는데
“내 손녀는 에끌레어를 사다 주면 고맙다며 뽀뽀를 해준다네!”
설마 그것 때문에?!
“알아오는 김에 다른 유명 디저트 가게도 알아 와.”
“예…….”
“푸딩 전문점은 꼭 포함 시켜.”
“예…….”
“아, 그리고 어린애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가게도.”
“예…….”
“더 생각나는 것은 통신석으로 알려주지. 빨리 가야 하니까.”
이게 끝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은 갑이고 에르켈 자작은 철저한 을이였다.
“예…….”
탁, 문이 닫히고 마차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홀로 남은 에르켈 자작의 눈에서 또르륵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 * *
“내 딸의 옷을 훔쳐 입었던 주제에 말이 많군.”
파에라톤 공작의 목소리가 소란스럽던 방안에 울려 퍼지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한순간에 시선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익숙한 듯 여유로웠다.
‘공작이 왜 벌써 집에?’
오늘은 황궁에 가서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밤늦게 들어올 거라 하지 않았나?
파에라톤 공녀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딸인 그녀보다 먼저 파에라톤 공작에게 다가가는 존재가 있었다.
“고모부! 티에 왔어요!”
클라티에가 어여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도도도 달려갔다.
안아달라는 듯 활짝 벌린 팔을 거절할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러나.
“왜 그런 누더기를 들고 있지?”
파에라톤 공작은 클라티에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대로 지나쳤다.
클라티에의 두 눈이 충격으로 크게 벌어졌다.
‘나를 무시하고一.’
무시하는 것까지야,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파에라톤 공작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쟤를 안아 들어……?’
저보다 한참은 모자란.
파에라톤 공작의 친딸도 아닌 사생아를.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