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3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35화(135/353)
☆ 제135화 ☆
황제의 말에 티룸 안의 공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제 딸아이 같은 손녀를 얻을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제 손녀딸 같은 손녀라니……. 하하, 설마 황자님들을 염두하고 하신 말씀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암, 폐하께서 설마 그러실 리가 없죠.”
흉흉한 기세가 아빠와 할아버지한테서 뿜어져 나왔다.
농담 한 번 던졌다가 이 사달이 나자 황제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 두 사람 다 왜 그러나! 짐은 그저 공녀가一.”
“공녀가?”
“제 동생이 어떻다는 말씀이죠?”
“폐하의 손녀와 우리 막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빠들까지 가세하자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그대들이 부럽다는 말이었네! 됐나!”
“흠, 부러우실 만도 하지요.”
“하지만 제 딸입니다.”
“제 손녀입니다.”
“제 막내.”
“제 동생.”
“제 솜뭉치.”
“거참! 됐다, 됐어!”
황제가 질색팔색하며 버럭 소리쳤다.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는데一.
‘네 가족들의 팔불출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진짜 심각하구나!’
딱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황제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래도 오늘은 쪽팔린 주접떨면서 말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야.’
황제가 눈치 없었다면 오늘도 황제 앞에서 눈물의 주접쇼를 펼쳤어야 했을 거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황제가 안색을 바꿨다.
조금 전까지는 주책 부리는 아저씨 같았다면 지금은 진지한 황제의 얼굴.
나 역시 자세를 바로 했다.
“공녀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 큰 봉변을 당할 뻔했구나.”
“루아티샤가 미리 말을 해주었단 말씀입니까?”
“그래, 내게 쪽지를 보내주었지.”
황제가 품에서 접힌 쪽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어린아이가 또박또박 눌러 쓴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엘리시아나 황제
“엘리시아나? 오래전 멸망한 니타르 제국의 황제군요.”
“그래, 니타르 제국의 가장 유명한 황제 중 한 명이지. 더 유명한 건 그녀의 오라비인 알데히트 폐제고.”
알데히트를 폐위시킨 결정적인 사람은 그의 배우자인 비앙카 폐후였다.
알데히트는 잔혹하고 의심이 많았으나 비앙카만큼은 철석같이 믿었고 끝까지 감쌌다.
그러나 비앙카는 처음부터 복수를 위해 엘리시아나와 손을 잡고 의도적으로 알데히트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알데히트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였으니까.
‘이거 완전 회귀 복수 로판 아니냐구!’
역사서를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가.
알데히트가 끝까지 비앙카의 손을 놓지 않은 결과, 그녀의 복수는 성공했고 알데히트는 처형당했다.
여기서 재밌는 일이 생기는데.
훗날 알데히트의 딸이 황제가 되기 위해 고모인 엘리시아나를 축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작전 중 하나가 엘리시아나 황제의 남편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안토니오를 꼬신 것이었다.
그래, 말 그대로 고모부를 꼬셨다.
막장 중에 막장이었다!
심지어 2대에 걸쳐서 황제가 똑같은 덫에 놓인 상황!
하지만 엘리시아나는 남편을 의심하다가 증거가 잡히는 순간 빠르게 손절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남자 들여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개인적으로 회귀 복수 로판 찍은 비앙카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가 더 궁금했는데, 역사서에는 쓰여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한 마디로 내 쪽지는 그거였다.
황후 감싸주다가 알데히트 폐제 꼴 나지 말고, 엘리시아나 황제처럼 빠른 손절하세요!
“내 공녀의 명민함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이런 옛 고사를 이용해 이리 알려주다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역사를 인용하는 건 아주 세련된 정치 사교술이었다.
“공녀는 이번 새벽 축제 때문에 제도에 올라왔고, 딱히 다른 사교 모임에 참여했던 것도 아닌데…….”
언제 이런 세련된 정치 사교술을 익혔는가. 공작에게서 배운 건 아닐 텐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폐하.”
그건 그냥 ‘빠른 손절 ㄱㄱ’를 있어 보이게 적으려고 했던 것 뿐이예요.
“짐이 황실의 위신을 생각해서 이 일을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다면 되려 역풍을 맞을 뻔했어.”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황후의 시녀들이 내부 고발을 할 줄이야. 거기다 그만한 증거 자료까지. 허어, 그간 황후가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했길래.”
응, 아니에요.
애초에 시녀들은 황후를 배신할 생각도 없었고 증거인멸도 착착 진행되었을 거예요.
‘내가 끼어들지만 않았으면.’
하지만 황제는 설마 내가 시녀들을 포섭하고 증거를 모아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히히, 어리다는 건 이럴 때 참 편하다니까!’
내가 성인이었다면 증거 자료를 들고 시녀들까지 증인으로 이끌고 나타난 상황에서 한 번 의심 받았을 텐데.
절대 의심 못 하도록 쐐기를 박아줘야지!
“저도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저는 미첼로인 영애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혹시나 하고 시녀 분들의 움직임을 주시했어요. 그런데 증거로 보이는 서류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제가 작아서 잘 안 보였나 봐요.”
“그랬구나, 그랬어.”
“다행이라고 안심하면서도 한 편으로 폐하 생각이 났어요.”
“거기서 내 생각이?”
“물론 폐하께서는 공명정대하신 분이지만, 황제의 위치에서는 때로는 대의를 위해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감싸야 한다고 들었어요.”
“옳은 말이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 혹시라도 황후 폐하를 감싸시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오해받을까 봐 재빨리 쪽지를 쓴 거였어요. 폐하께서는 대의를 위해 그러시는 건데.”
내 말에 황제가 껄껄껄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그 작은 몸으로 어찌 그런 용감한 행동을 했을까! 기특하고 기특해!”
“시드리한 황자님과 증거 자료에 이상이 없나 확인하는 와중에 페르마인 백작님이 나서서 막 소리쳤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서북부의 하이에나들이 기회를 잡고 황실을 물어뜯으려고 했지. 하마터면 나까지 휘말릴 뻔했어.”
황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이런 장한 일을 했는데 내 공녀에게 보답을 안 할 수가 없지. 원하는 게 있는가?”
그래.
계속 그 말을 기다렸어.
황제는 아주 계산적인 사람이다.
그걸 바꿔 말하자면 도움을 받고 입 씻을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
“갖고 싶은 거요?”
“그래, 말해보거라.”
“저 그럼 땅 갖고 싶어요! 땅 부자가 진짜 부자래요!”
“뭐어?”
손을 번쩍 치켜들며 외치자 황제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래, 틀린 소리는 아니지. 전통적으로 땅을 가진 자가 지주가 되고 영주가 되고 왕이 되었으니까.”
“이번에 영애들이랑 이야기하다 들었는데, 땅 투자가 최고래요!”
“영애들이 그런 소리를 해?”
“네! 땅에 투자해서 돈 많이 많이 벌어서 아빠한텐 장갑 사 드리고 할아버지한테는 목도리 사드릴 거예요!”
“호오?”
황제가 아빠와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두 사람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나는?!”
오빠들의 외침에 나는 씩 웃었다.
“제온한테는 말랑말랑한 솜인형, 아레스한테는 복슬복슬한 털 꼬까옷, 익시온한테는 토끼 귀 머리띠 사줄 거야.”
“……토끼귀?”
익시온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싫어?”
“……아니, 누가 싫대?”
익시온이 투덜거렸다.
“허허, 공녀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 가족들한테 그거 다 사 주려면.”
“그럼요!”
“그럼 어디가 좋을까. 어디 보자, 황실에서 소유하고 있는 땅이…….”
황제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렸다.
나는 선수를 쳤다.
“저 갖고 싶은 곳 있어요!”
“……그래? 어디지?”
황제는 조금 떨떠름하게 물었다.
내가 너무 노른자 땅을 말할까 봐 걱정한 것이다.
걱정 말아요, 황제 씨.
“저 펠로만 평원이요!”
“펠로만 평원? 샤이렌 평원을 말하는 건가.”
의외의 요구에 황제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펠로만 평원에는 영수 악트셰라켄이 살고 있다.
영수가 잠들어있을 때도 혹시 깨어날까 봐 그 드넓은 평원을 그대로 놀렸는데, 심지어 지금은 잠에서 깨어난 상태다.
그 탓에 사람들이 접근조차 못 하고 있다.
“그곳엔 영수 악트셰라켄이 있네. 공녀가 그 사실을 모를 것 같지 않은데.”
“네, 알아요!”
“그런데도 그곳을 원한다고?”
황제의 눈에 의심이 어렸다.
“이유가 뭐지? 가져가 봤자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주긴 힘들 텐데.”
왜긴 왜야.
거기에 내 꽃밭이 있으니까 그렇지.
검은 황금 제작 때문에 나는 샤이렌꽃이 계속 필요했다.
그래서 악트셰라켄이 깨어난 이후부터는 에체시스 용병단에게 채집을 의뢰했던 거고.
용병단이 펠로만 평원에 오가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슬슬 에체시스 용병단이 왜 펠로만 평원에 자꾸 들어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혹시라도 누군가 따라갔다가 토벌도 안 하고 꽃만 채집해오는 걸 보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예 평원 일대를 전부 내 땅으로 삼아서 확실하게 통제하는 게 낫지.’
나는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힐끔힐끔 황제의 눈치를 봤다.
“이건 비밀인데…….”
“비밀?”
“듣고 나서 폐하가 그 땅 계속 가지고 있겠다고 하지 않기예요?”
“뭔데 그런 말을 하는가.”
“움, 에체시스 용병단이라구, 엄~청 강한 용병단이 있는데요. 그 용병단이 악트셰라켄을 무찌를 거래요!”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그런 소문이 돌긴 했다.
자꾸 용병단이 알짱거리니 악트셰라켄의 토벌을 준비해서 그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이다.
“허어, 그래?”
“네! 그러고 나면 그 땅은 매우 값이 오를 거래요! 그게 바로 성공한 땅 투자라고 영애들이 그랬어요!”
나는 순진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외쳤다.
“그래, 그 말대로 된다면 참으로 좋겠구나!”
황제가 웃었다.
그는 내가 평원을 원하는 이유를 납득한 듯했다.
“혹시라도 이 땅 덕에 돈 많이 벌면 짐에게도 선물을 해줄 테냐?”
“흠, 그건 봐서요.”
“허허, 이거 공녀에게 사탕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앞으로 잘 보여야겠어!”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리고 체시아 백작에게 명해 땅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황제는 악트셰라켄을 무찌를 확률이 지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봐도 그래. 무찌를 생각은 전혀 없지만.’
황제 입장에서는 완전히 남는 장사일 터.
‘그래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계속 나한테 퍼주지.’
자신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색해질 사람이니까.
생글생글 웃는데 아빠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빠도 땅 많다. 줄 수 있어.”
“…….”
“……할애비가 저번에 준 땅으로는 부족했더냐?”
넣어두세요, 넣어 둬.
* * *
“내가 그것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줬는데, 감히 나를 배신해!”
온몸이 시뻘게질 정도로 흥분한 황후가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쨍그랑一!
값비싼 화병부터 시작해서 온갖 기물이 테이블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황후의 구둣발 아래에서 깨진 물건들이 콰직 소리를 내며 짓밟혔다.
“내 이것들을 가만두지 않을 게야!”
깨진 사기 조각을 움켜쥔 황후의 손에서 붉디붉은 선혈이 흘렀다.
“폐, 폐하, 고정하십시오. 이럴 때일수록 심기를 굳건히 하셔야 합니다. 옥체가 상하실까 걱정됩니다.”
배신자들을 내쫓고 하나 남은 측근 시녀가 황후를 말렸다.
황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내게는 이제 그대밖에 없군.”
눈치 빠른 다른 시녀들에 비해 푼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은 건가 싶었다.
“그대에게 이리 충의가 있을 줄이야.”
“황송합니다, 폐하. 저는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 너를 믿어도 되겠는가?”
황후의 말에 시녀가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예, 예, 폐하. 저는 오직 황후 폐하 한 분만의 사람입니다.”
“좋아, 그러면一.”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황비가 들어왔다.
황비는 엉망진창이 된 방 안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황후께서는 성정을 가라앉히셔야겠습니다. 이 무슨 추태란 말입니까?”
“하! 네 세상이 온 거 같으냐? 멋대로 들어온 것으로 모자라 감히 황후인 내게 무슨 망발이냐!”
“황후께서야 말로 망언을 삼가시지요. 나는 황비입니다.”
“당장 저년을 내 궁에서 끌고 가라!”
황후가 밖을 향해 핏대 세워 외쳤다.
병사들이 황급히 들어 왔지만, 황비를 보고서 감히 붙들지 못했다.
“뭣들 하는 게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황후께서 무슨 권한으로 이들에게 명하신단 말씀입니까.”
“뭐야?”
황비가 근위병 중 십인 대장에게 물었다.
“자네에게 묻겠네. 황후의 인장도 없으면서 황실 근위병을 부릴 수 있나?”
“불가합니다.”
“그럼 궁인 통솔 권한은?”
“없습니다.”
“좋아. 다들 나가.”
“예, 황비 전하.”
황비의 말에 모든 병사들과 궁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망설이는 기색조차 없었다.
황후는 그 모습을 경악해서 바라봤다.
자신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나라의 황후인데!’
황후에게 유일하게 남은 측근 시녀만이 황비에게 불복 중이었다.
“나가라고 했을 텐데.”
황비가 싸늘한 목소리로 시녀에게 말했다.
시녀는 무릎 꿇은 채 엎드릴 뿐 나가지 않았다.
“뭐, 상관없지.”
황비는 신경 쓰지 않고 저벅저벅 황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황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내 자식을 죽인 죄, 죗값을 치를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