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4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49화(149/353)
☆ 제149화 ☆
“무, 무슨 애가…….”
사람들은 기가 막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센트리움 전당은 몇백 년 전에 세워진 곳이라 보안이 취약하죠. 그래서 혹시나 하고 영상석을 설치했어요.”
아센트리움 전당은 주로 학회나 발표회 같은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 딱히 귀중품이 없었다.
전당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이긴 하지만, 정문과 후문의 마도 잠금장치를 제외하고는 딱히 보안이랄 게 없었다.
‘이러다 숭례문처럼 누가 방화하면 어쩌려구.’
물론 마도 잠금장치를 해제하려면 상당한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본디 이번처럼 중요한 물건을 미리 옮겨놓는 경우엔 따로 용병단이나 사병을 써서 경계를 서지만 루아티샤는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휴엔 부인과 소피아가 일을 저지를 것을 예상해서다.
“만약 제가 영상석을 설치하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오늘 물리치료기를 시연했을 때 황태후 폐하께서 큰 봉변을 당하셨을 겁니다.”
황태후가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당장 저 죄인을 포박해라!”
혹여라도 알아채지 못했다면 자신이 큰 봉변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한 모양이다.
“감히 제국의 공녀와 공작가를 모욕한 죄. 공녀를 사기꾼이라 모함한 죄. 이 많은 귀족들과 황족에게 거짓을 고한 죄. 악의적으로 충격기를 설치해 사람을 해치려 한 죄.”
황태후의 눈빛이 차갑게 아리엘을 쏘아봤다.
“이 죄는 쉬이 씻기지 않을 것이다!”
그때, 루아티샤가 황비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하지만 소피아는 아직 어린아이예요. 아이가 뭘 알겠어요. 다 잘못 보고 배운 탓이지.”
그 말에 사람들의 관심이 휴엔 부인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휴엔 부인은 저 난리가 났는데 나 몰라라 하고 있네요? 아까 애가 파에라톤 공녀를 모욕했을 때 대신 사과를 하든지 말리든지 했어야지.”
“애가 벌을 받기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걸 보니…….”
“설마하니 저런 충격기를 아이가 준비했겠어요? 마도 잠금장치도 휴엔 부인이 푼 거겠죠. 물약을 만들어냈으니 그 정도 능력은 있을 테니.”
“헉, 그럼 본인이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있는 동안 딸에게 안에 들어가서 충격기를 부착하고 나오라고 시킨 건가요?”
꽤 그럴싸한 말이었다.
루아티샤는 냉큼 그 말을 받았다.
“어쩌면 소피아는 저 충격기가 뭔지도 몰랐을 수도 있어요. 엄마가 가서 붙이라고 하니까 붙인 걸 수도…….”
루아티샤의 말에 셰루인 부인이 잔뜩 굳은 얼굴로 휴엔 부인에게 다가갔다.
“자네에게 정말 실망이네.”
“부, 부인.”
“충격기를 부착한 일은 너무 큰 일이라 내가 쉬이 말을 보탤 일이 아니네.”
휴엔 부인이 입술을 달싹였다.
충격기와 자신은 상관없다고 항변하고 싶은 듯한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아이 앞에서 대체 어떤 식으로 말했길래 애가 공녀에게 엄마 없다며 운운하는가.
소피아도 부친이 없지 않은가? 그 설움을 모르지 않을진대!”
“저, 저는 결코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적이一.”
“자신의 재주를 갈고닦을 생각은커녕 남의 재주를 질투해 이런 모함까지 하다니! 그것도 저 어린아이를!”
셰루인 부인의 안광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를 카리스마가 좌중을 압도했다.
“내 후원은 이걸로 끝이네. 옥사에 갇혀서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말게.”
셰루인 부인은 그 말만 남기고 차갑게 뒤를 돌았다.
소피아와 휴엔 부인을 든든히 끌어올려 주던 동아줄이 한순간에 끊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황실 기사들이 휴엔 부인을 포박했다.
* * *
“공녀, 많이 피곤하지?”
“세상에, 이 작은 아이가 오늘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 늙은이 심장이 아직도 벌렁거릴 지경이야.”
“자아, 이걸 한 번 먹어보려무나. 달콤한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게야.”
황비와 황태후는 물론, 귀부인들이 내 곁에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오늘 오신 분들께 못 볼 꼴을 보여 드려서…….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공녀는 아주 잘했어. 이보다 더 어찌 잘하누?”
“우리 영감이 아주 공녀처럼 똘똘한 아이가 있었다면 진작 후계로 삼았을 거라고 말했단다.”
“걱정일랑 하지 말고 아가는 푹 쉬려무나.”
“할무니…….”
초롱초롱 감동한 눈으로 귀부인들을 바라보자 다들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제가 돌보도록 하지요.”
황비의 말에 귀부인들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후는 조금 망설이는 듯했으나 그보다는 물리치료기를 한 번 더 해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듯했다.
‘물리치료기 엄청 좋아하네.’
나는 예감했다.
‘곧 제국에 동네 한의원의 탈을 쓴 사랑방이 생기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건 곧 정보의 결집을 뜻하지!
나는 속으로 히히 웃으며 황비의 치맛자락을 꼬옥 붙잡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황비 전하, 저 부탁이 있어요.”
“우리 루아티샤가 본비에게 무슨 부탁이 있을까.”
“휴엔 부인과 소피아에 대한 처벌 권한을 파에라톤에 주시면 안 될까요?”
황비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생각에 잠겼다.
“……황태후께서 변을 당하셨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 이번 일의 권한을 파에라톤 공작에게 넘기도록 하마.”
“정말요?”
“그래, 가장 피해 본 것은 파에라톤의 공녀이니 파에라톤에서 그 핏값을 받아내야지.”
아니, 뭐. 핏값씩이야.
황비 마마도 상냥해 보이지만 은근히 냉철하다니까?
“히히, 고맙습니다.”
소파에서 일어나 배꼽 인사를 하자 황비가 후후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고마우면 황비궁에 놀러 오렴. 본비가 언제나 루아티샤에게 줄 과자를 준비해놓고 있으니.”
나를 향한 눈빛은 다정하고 손길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죽은 황녀가 내 또래이니 날 보면 딸 생각이 나나 보다.
나는 조금 찡해져서 황비의 손을 잡았다.
“맛난 걸로 준비해주셔야 해요. 초코 잔뜩 들어간 걸로.”
“후후, 그러마.”
“가서 제가 침도 놔드릴게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침? 타렌카 후작을 살렸다는 그 침술 말이냐?”
“특별 서비스에요. 루루는 황비 전하가 엄청 좋으니까!”
이왕 서비스하는 김에 애교까지 떨자 황비님이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어머나, 그것참 영광이구나.”
나는 그 말간 웃음을 보며 미소 지었다.
황녀님이 살아계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와도 참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
* * *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발표회는 나름대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나는 마지막에 나가서 대강 손님들에게 얼굴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잔뜩 들었다.
손님들이 다 나가자 나는 척 뒤를 돌았다.
“모두 수고했어! 오늘 성공은 다 그대들 덕분이야.”
디에르 자작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고 옐로체는 싱긋 웃었다.
피안크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륀드는 빙글빙글 웃으며 “그럼요. 야근 엄청 했다구요?” 하고 장난을 쳤다.
하지만 이 좋은 분위기에도 죽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래?”
나는 흑풍의 부대장 프리스와 WBD 호위부의 부장 산드라를 보며 물었다.
“……그럼 제 목숨 좀 구해주십시오.”
“목숨? 갑자기 왜? 누가 죽이겠대?”
깜짝 놀라서 묻자 프리스가 꺼멓게 죽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소동이 공작님과 후작님의 귀에도 들어가겠죠?”
“그러겠지?”
“그러면 제가 아가씨의 명을 받고 그날 일을 모조리 숨긴 것까지 다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아?’가 아닙니다!”
프리스가 절박하게 외쳤다.
나는 서둘러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걱정 마. 내 부탁을 들어주느라 그렇게 된 건데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그럼 이 프리스, 공녀님만 믿겠습니다.”
“그 죽음의 손아귀에서 저희를 구해낼 수 있는 건 오로지 공녀님뿐입니다!”
“알았어.”
내 말에 프리스와 산드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근데 죽음의 손아귀라니. 남의 가족에게 말이 좀 심하네.”
내 말에 프리스와 산드라가 움찔했다.
그리고 서로 속닥거리는데.
“공녀님도 만만찮은 팔불출…….”
“피에 흐르는 것 아니겠…….”
아니, 두 사람은 나름대로 다른 가문에 속한 비밀 조직의 주요 인사인데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야?
“다 들리거든?!”
내 외침에 두 사람이 깨갱한 척 고개를 숙였다.
“흥!”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나저나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살린담?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다 나 때문이긴 했다.
정확히는 셰루인 부인의 티파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 * *
시간을 거슬러 올라 셰루인 부인의 티파티 날.
소피아 때문에 먼저 티파티를 빠져나온 나는 곧바로 마차에 올라타지 않았다.
대신 한마디만 했다.
“나와.”
갑작스러운 내 말에 안나와 풋맨 그리고 마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나와. 안 그러면 아빠한테 오늘 백 명의 영식들에게 꽃다발을 받았다고 말할 거야.”
“네?”
안나는 더더욱 알쏭달쏭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 명도 아니고 백 명의 영식에게 꽃다발을 받았다니.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음, 우리 아빠랑, 오빠들이랑 할아버지가?”
“그건…… 반박할 수 없군요.”
안나와 풋맨, 마부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숨을 곳도 없어 보이는 공터 한가운데에 흑색의 가벼운 경장 차림을 한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안나가 바짝 경계하며 나를 안아 들었다.
꽉 끌어안은 채 온몸으로 나를 보호하는 것이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안나를 토닥였다.
“괜찮아.”
“파에라톤 울딸랑구 호위부 소속부장, 산드라가 공녀님을 뵙습니다.”
“타렌카 정보 조직 흑풍의 부대장, 프리스가 아가씨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내 앞에 정중히 부복했다.
그런데 부대 이름이 이상했다.
“울……딸랑구 호위부?”
“제도에 올라온 뒤 공작 각하께서 신설하셨습니다.”
“이름이 왜 그래…….”
“각하께서 친히 이름을 내리셨습니다.”
“…….”
소속된 사람들한테 괜히 내가 미안하네.
“어디 소속이라고 밝히기 진짜 싫겠다…….”
“저희는 그래서 약어를 씁니다.”
“약어?”
“WBD 호위부라고.”
“무슨 약어인데?”
“월드 베스트 딸랑구.”
“…….”
그런 약어로 괜찮은 거야?
아니, 그것보다 왜 월드 베스트 도터(daughter)가 아니라 월드 베스트 딸랑구인 거야?
이것도 K-로판의 잔재인 거야?
‘이해하려 하지 말자. 이건 오히려 이해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거야.’
이들이 말하는 건 알파벳이나 영어가 아니었지만, 내게는 자연스레 그렇게 필터링되는 바람에 더 괴로웠다.
나는 애써 호위부의 이름을 무시하며 손을 척, 내밀었다.
“내놔.”
“네? 무엇을 이르시는지.”
“아까 꺼 영상석으로 다 찍었잖아.”
“무슨 말씀을……. 저희는 어둠 속에서 아가씨를 호위하라는 명을 받고 움직일 뿐입니다.”
“그래?”
“물론입니다.”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는 것하며 어떻게 봐도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조차도 ‘내가 생사람 잡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일을 잘하긴 잘한다.
“이상하다? 그럼 어떻게 아레스가 나랑 자스민이랑 티리엘이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 다섯 판을 먹어 치우는 영상을 보고 있었던 걸까?”
“글쎄요? 참 신기하군요. 다 아레스 공자님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허를 찔렸을 텐데 두 사람 모두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흐응. 그렇게 나오시겠다?
“안나,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아, 아가씨?”
프리스가 처음으로 당황해서 나를 불렀다.
안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아가씨.”
마부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산드라와 프리스와 눈을 맞춘 채 악동처럼 씨익 웃었다.
“에체시스 용병단이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고, 공녀님?”
이번에는 산드라까지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된 채 나를 바라보았다.
풋맨이 빙긋 웃으며 내게 답했다.
“그야말로 S급 중에서도 독보적인, 랭킹 1위의 용병단이지요. 사람들은 경외를 담아서 에체시스의 단장을 용병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음, 에첸이랑 왕은 전혀 안 어울리는데.
걔도 알고 보면 은근 호구 기질이 있어서 걱정된달까.
그 호구 기질의 덕을 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어디 가서 사기당하진 말아야 할 텐데.
하여간에 신경 쓰이는一.
“어떤 일을 의뢰하실 생각이 세요?”
안나의 질문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훨씬 더 짓궂은 얼굴로 흐흥 웃었다.
“날 납치하라고.”
그 말에 산드라와 프리스가 입을 떡 벌렸다.
“무력으로 막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발걸음은 우리 아빠도 막지 않거든.”
“…….”
“자아, 이제 다시 이야기를 해 볼까?”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죽상이 된 두 사람에게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내놔.”
* * *
그렇게 영상석을 얻어낸 나는 온실에서 소피아와 있었던 부분만 잘라내서 가족들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아예 안 가져가면 의심할 테니까.
그리고 오늘 발표회에서 소피아의 신경을 긁어서 그 애가 또 피해자 행세를 하면 그때 딱 맞춰서 공개할 생각이었다.
‘소피아가 물리치료기가 고대 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 바람에 전혀 쓰임이 달라졌지만.’
그런데 대체 어떻게 고대 유물이 아니란 것을 알아낸 걸까.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오늘 분명히 깨달았다.
소피아는 내 예상대로 어린아이가 아니고, 휴엔 부인과 모녀 관계가 아니다.
휴엔 부인의 사주가 아니겠냐며 공개적으로 그녀를 압박한 것은 그 이유였다.
소피아와 달리 휴엔 부인은 꽤 이빨이 먹힐 것 같거든.
황비가 파에라톤에 처벌 권한을 일임했으니 두 사람의 신병은 공작저로 인계될 터.
집에 가자마자 두 사람을 내가 직접 심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 아빠…….”
나는 그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정문 밖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아빠와 오빠들 그리고 할아버지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