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5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50화(150/353)
☆ 제150화 ☆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했다.
아센트리움 전당에서 너무 많은 사고를 치고 와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은 그냥 내가 물리치료기에 대해 소개하고 온다고 알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전당에 오겠다는 가족들을 극구 말렸던 만큼 양심이 더 콕콕 찔렸다.
“그, 아, 아빠…….”
일단 사과부터 할까?
아니면 주접으로 마음을 풀어 버려?
열심히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내가 탄 마차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으왓?!”
열린 창문을 통해 나를 번쩍 안아 든 아빠가 나를 품에 넣고는 등을 두들겼다.
토닥토닥.
‘응?’
놀라서 아빠를 올려다보자 아빠가 아주 다정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계셨다.
무표정해서 얼핏 보면 서늘해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지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따스한지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빠에게 시비 걸며 난리를 쳤을 오빠들도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뺨을 쓸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엽고 소중한 내 동생.”
“누가 뭐래도 넌 이 익시온 님의 유일한 동생이야.”
“쓰다듬어줄까?”
“……!”
나는 정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제온이 쓰다듬어 달라고 하지 않고 ‘쓰다듬어줄까?’라고 묻다니!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제온을 바라보자 그가 내 머리를 차분차분 쓰다듬었다.
“바람이 차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시멜로를 듬뿍 넣은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해놨단다.”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가족들이 조금만 힘줘도 깨지는 유리처럼 나를 대하고 있었다.
* * *
파에라톤 공작 일가와 타렌카 후작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가문의 막내를 바라보았다.
공작의 품에 안긴 아이는 양손으로 머그잔을 잡은 채 조심스럽게 후후 입김을 불며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달달하고 따스한 게 배에 들어가니 긴장이 조금 사라졌는 지 아이의 얼굴이 말랑하게 풀렸다.
파에라톤 공작이 딸아이의 머리를 꾹 눌렀다.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쓸 거 없다.”
“네.”
“너는 내 딸이고 파에라톤의 유일한 공녀이며 타렌카의 유일한 직계다.”
“네.”
루아티샤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 정도의 무게를 지닌 자리에 있으면서 어른들과 상의 한번 없이 사고를 쳐버렸나?’
아무래도 꾸짖는 것 같았다.
루아티샤는 힐끔 파에라톤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해야 할까.’
그 모습에 파에라톤 남자들과 타렌카 후작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애가! 오늘 아침만 해도 발표회 하겠다고 신나서 밖에 나갔는데!
이렇게 기가 팍 죽어선 눈치만 보고!
‘감히 엄마 이야기로 내 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해?’
파에라톤 공작의 눈빛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눌렀다.
눈물 값을 받아내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상처받은 딸아이를 달래는 게 먼저다.
아무리 딸아이 덕에 다정함을 배웠다고 하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어쩔 줄 모르고 잠시 삐걱거리다가 딸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떠주었다.
큼지막한 딸기가 있는 부분으로 신경 써서.
평소처럼 앙! 하고 덥석 받아먹는 게 아니라 눈치 보며 조심스레 먹는 것을 보니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애가 얼마나 기죽었으면!
물론 루아티샤는 그런 걸로 기죽을 애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걸 아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타렌카 후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전의 파에라톤 공작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인류가 불을 다룰 수 있게 된 것만큼의 위대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 부족했다.
“루아티샤.”
“네, 할아버지.”
“그 어떤 말도 너를 깎아내리지 못한다. 그러니 너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 없단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깎여나가는 존재가 아니야.”
이쯤 되자 루아티샤도 이상함을 느꼈다.
“……화내지 않으세요?”
“내가 왜 내 딸에게 화를 내지?”
“어…….”
루아티샤는 머뭇거렸다.
‘그야 사고 쳤으니까?’
영상석을 감시 카메라로 써서 소피아와 휴엔 부인을 고발한 것까지 가족들은 이미 다 들었을 거다.
심지어 셰루인 부인의 티파티에서 들은 망언의 녹음본을 어디서 구했는지 예상했겠지.
‘그럼 오늘 일이 우연이 아니라, 내 계획이었다는 것까지 전부 알아채셨을 거고.’
루아티샤가 왜 극구 가족들의 참석을 말렸는지도 다 들통났다.
결과적으로 잘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표회를 이용해 사고를 쳤다는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만약 중간에 뭔가 잘못되었으면 그건 루아티샤 개인의 일이 아니라 파에라톤의 일로 번졌을 거다.
“나는 네게 화나지 않았다.”
“네…….”
“그리고一.”
잠시 말을 멈춘 파에라톤 공작이 가만히 딸아이를 눈에 담았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네게 화를 낼 일은 없다.”
“…….”
“네가 내 가슴을 칼을 꽂아 가르고 심장을 꺼내더라도.”
루아티샤는 입술을 벌렸다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도로 다물었다.
자신을 배신하고 죽여도 화를 내지 않는다니.
그런 건 대체 어떤 마음일까?
“……음, 그럴 때는 그래도 화를 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겨우 그런 말만 나왔다.
“나도 절대 화내지 않을 거야!”
“내 동생은 힘이 약하니까 갈비뼈를 피해 정확하게 심장을 찌를 수 있는 위치로 칼끝을 잡아줄게.”
“굳이 막내의 손을 더럽힐 필요 없지. 내가 알아서 내 목숨 처리할게.”
“이 할아비도 충분히 오래 살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루아티샤는 허리에 손을 얹고 눈썹을 세웠다.
“죽는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죽는 이야기 꺼내면 절대 용서 안 하고 평생 미워할 거야!”
그 말에 가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막내를 바라봤다.
“내가 죽이려고 해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날 혼내야지!”
파에라톤 남자들과 타렌카 후작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함부로 죽는다는 말 꺼낸 거 잘못했어요, 안 잘못했어요!”
“잘못했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이 할아비는 장수로 신기록을 세워보마.”
“좋아요.”
루아티샤가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 몸 숨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드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WBD 호위대에 배정되고 별 의별 일을 다 보았지만…….
‘설마하니 막내 공녀님께 혼나는 공작가를 볼 줄이야.’
막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무릎 꿇고 손들고 벌이라도 설 기세였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루아티샤는 엄한 표정을 바로 하고 파에라톤 공작의 품에서 꼼지락거렸다.
가족의 말은 조금 듣기 민망하고 머쓱하고 간지러웠지만一.
‘그래도 기분 좋다.’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넓은 등에 기댄 것처럼 가슴이 든든했다.
루아티샤는 히히 웃으며 파에라톤 공작의 품에 푹 기댔다.
‘그런데 가족들이 대체 왜 이러지?’
“루루.”
“네, 아빠.”
“네 엄마가 일찍 떠난 것은…… 네 탓이 아니다.”
“네?”
“어렸을 때 매일같이 들었던 말을 떨치는 건 힘들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루아티샤는 멍하니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제온도, 아레스도, 익시온도, 할아버지도 다 비슷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럼 정문 밖까지 마중 나와 있었던 게?’
사고 친 걸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없는 애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 때문인가?
‘아, 맞다. 나 울었지.’
루아티샤는 뒤늦게 깨달았다.
단상에 서서 보란 듯이 울었으니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마이크나 마찬가지인 거에 대고 코 흥! 한 게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에서 잊고 있었다…….’
계속 잊고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저 정말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
루아티샤는 씩씩하게 두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족들의 시선은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울기까지 한 아이가 저렇게 애써 밝은 척하다니.’
‘역시 내 동생은 내가 지켜줘야 해.’
‘감히 내 막내의 귀를 더럽힌 것들을 깨끗이 청소해야지.’
‘조그마한 솜뭉치 주제에 바보처럼 괜찮은 척이나 하고. 이번엔 내가 달래줄 수 있는데.’
소피아와 휴엔 부인을 산 채로 회 뜨듯 요리하고 돌아왔지만, 가족들의 눈에 막내는 그저 한없이 안쓰럽고 가련한 순둥이였다.
‘엄청난 루루깍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프리스가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저 루루깍지 때문에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거였다.
그는 루아티샤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살려주세요, 아가씨!’
* * *
딸아이를 재운 후, 파에라톤 공작은 집무실로 돌아왔다.
집무실은 고요했고 반쯤 어둠에 녹아들어 있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창가에 기댄 채 겨울 정원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루아티샤는 솔직하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해주었다.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리면 말리실 거 같아서…….”
“말리진 않았겠지.”
“……계획에 차질이 생길 거 같아서.”
그 말에 가족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솔직히 루아티샤가 ‘엄마 없는 애’ 운운하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당장 휴엔 부인과 그 딸을 무릎 꿇리고 싶었으니까.
“후…….”
“멋대로 행동한 건 죄송해요. 자칫하면 가문에 피해가 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루루.”
“네.”
“너는 가문에 누를 끼치고 피해를 줘도 돼. 아니, 가문의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아예 멸문시켜도 된다.”
“네에?!”
“너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힘이다.”
동그랗게 뜬 딸아이의 눈이 그렇게나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맞아. 뭐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참으면서까지 다른 귀족 놈들에게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 같아서는 다 쓸어…… 크흠.”
“청소를 한다는 뜻이야.”
“……지금 참고 있는 거였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줄 알았는데.”
“섭섭하구나. 이 할아비의 생각대로 했으면 이미 타렌카의 후계一 크흠!”
네 남자의 시선을 받은 타렌카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그때를 회상하다가 멈칫했다.
그는 자신이 조금 유쾌하고 즐거운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에라톤에게는 가족 간의 정이 필요하지 않다.
정서적 교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그런 것은 거추장스럽고 이해 못 하는 것일 뿐이다.
“아니요. 당신은 깨닫지 못했을 뿐이에요.”
이나이스가 재밌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깨닫게 될 거예요, 분명.”
이나이스가 옳았다.
그 조그마한 아이는 몰래 자신의 가슴에 들어온 주제에 뺑뺑 울면서 난리를 쳐댔다.
그 소란에 아이가 이미 가슴 깊은 곳에 들어와서 이미 드러눕기까지 했다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아들 녀석들도 그런 것이다.
피는 섞여 있으나 서로에게 상관도 하지 않던 녀석들이 이제는 도란도란 앉아 말을 나누게 되었다.
다시는 볼 일 없을 것 같았던 타렌카 후작과 농담을 주고 받게 되었다.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그건 모두 그 조그마한 아이 덕분이었다.
거대한 힘도, 위압적인 마기도 없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아이가 한 일.
‘당신도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처음으로 문장이 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이 그 어떤 생각보다 깊은 자국을 남겼다.
“왜 그렇게 재밌다는 듯이 말하지? 보통은 슬퍼하며 말하던데.”
“그야 당신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잖아요? 그걸 깨달아 가는 걸 지켜보며 기다리는 건데 왜 슬퍼요? 재밌지.”
씨익 웃는 얼굴은 루아티샤가 쏙 빼닮았다.
“내가 너무 빨리 가나 봐요. 조금 더 기다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이나이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뺨을 쓰다듬은 그녀가 미소 지었다.
처연하기보다는 이 순간에도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다 이기는 내기를 하자는 사람처럼.
“내 딸이 당신을 기다려줄 거예요. 깨달을 수 있게.”
죽는 순간에까지 이나이스는 옳았다.
파에라톤 공작은 고개를 들어 건너편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루아티샤의 침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파에라톤 공작은 예상하고 있던 듯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집무실 안에 들어온 타렌카 후작이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았다.
그제야 파에라톤 공작도 몸을 돌렸다.
“그래서.”
그 나지막한 말에 어둠 속에서 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렌카 정보 조직 흑풍의 부대장인 프리스와 파에라톤 WBD 호위부의 부장 산드라였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 물음에 두 사람은 절도있게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히 주군의 명을 어긴 죄, 죽음으로 달게 받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파에라톤 공작이 서늘한 얼굴로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할 말이 그뿐인가?”
“……죄송합니다. 모든 것은 저희의 불찰입니다. 죽음 외의 다른 것을 요구하신다면 응당 그에 따를 것입니다. 어차피 이 몸뚱어리와 목숨은 오롯이 주군의 것입니다.”
“아니, 아니.”
타렌카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나와 파에라톤 공작의 명을 듣고 움직이는 자들이다. 그 충성심과 능력은 다른 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
그 말에 두 사람은 얼굴도 못 든 채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토록 신뢰를 주셨는데 주군의 믿음에 배신을 하다니…….
그런데 어째 이어지는 파에라톤 공작의 말이 묘했다.
“그런 정도의 인사들인데 내 딸이 단번에 포섭했다……라는 건가.”
“내 손녀딸의 수완은 참으로 대단하구만.”
“내 딸은 역시 기재 중의 기재야. 나를 닮았어.”
예?